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38
이동진 글.그림 / 봄봄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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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8



고향과 시골

―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이동진 글·그림

 봄봄 펴냄, 2014.4.25.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인천입니다. 수많은 살림집이 다닥다닥 붙은 곳이 내 고향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공장이 잔뜩 몰린 데가 내 고향입니다. 서울로 보내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늘 매연과 쓰레기물이 쏟아집니다. 나와 동무는 늘 매연을 마셔야 했고, 쓰레기물 냄새를 맡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동무들과 놀면서 공장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 동네나 학교 둘레에는 공장이 참 많지만, 놀 적에는 오직 놀이만 생각해요. 구슬땀을 흘리면서 놀고, 비지땀을 쏟으면서 흙투성이가 됩니다. 운동회 연습을 하느라 두어 시간씩 학교 운동장에서 뒹굴어야 할 적에는 잠자리처럼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면서 놀고 싶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 여름 내내 시원한 들에 나가 살던 딱새가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떼 지어 돌아온 참새도 까치도 모두 우리 마을에서 추운 겨울을 날 것입니다 ..  (3쪽)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온통 놀이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놀이가 사라집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무들은 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동무는 ‘놀이’를 등돌린 채 술이나 담배나 당구로만 빠져듭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놀이는 없이 대학입시만 있고, 대학입시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오려는 몸짓만 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대학교 아이들한테는 놀이가 있을까요. 갓 스무 살이 되면서 ‘어른 허락’이 없이도 술과 담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 있지 싶습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중학교 문턱에 한발을 디딜 때부터 놀이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초등학교부터 놀이가 없지 싶습니다. 학교 이름은 ‘국민’에서 ‘초등’으로 바뀌었으나, 어릴 적부터 한자급수 자격증을 따도록 내몰리고, 영어를 더 빨리 배워야 한다는 등쌀에 시달리며, 갖가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돌아야 합니다.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놀이가 없지 싶어요. ‘놀이 체험’은 있을 테지만, 놀이가 없어요. 아이들끼리 복닥거릴 빈터가 없고, 아이들끼리 만나서 어울릴 마당이 없습니다.




.. “바람이 차다. 유라 옷 단단히 입혀라.”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골목길에 노란 은행잎이 뚝 뚝 떨어집니다 ..  (10쪽)



  집과 동네와 학교에서 놀이가 사라지면서, 고향을 고향으로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느긋하게 지낼 틈이 없으니, 고향에 있더라도 고향을 느끼지 못합니다.


  고향이란 어떤 곳일까요. 태어난 곳이면 고향이 될까요. 어릴 적 뛰놀던 즐거운 이야기가 깃들지 못하는 곳을 고향으로 여길 만할까요. 입시교육만 받다가 서울로 떠나는 아이들한테 고향이 있을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언제나 학원만 빙글빙글 돌던 아이들한테 고향은 어떤 빛이거나 내음이거나 노래가 될까요.



.. 동네 어귀,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나이가 오백 살도 더 먹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  (17쪽)




  이동진 님이 빚은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봄봄,2014)를 읽습니다.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는 시골자락 이야기가 흐릅니다. 짚을 얹은 지붕에 박이 열리고, 누런 소가 있으며, 오줌장군을 지게에 짊어진 아저씨가 있습니다. 밭일을 하는 아버지가 있고, 솥을 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어머니가 있어요.


  이러한 그림은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새마을모자를 쓴 아저씨를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책에 나오듯이 경운기와 비닐집은 오늘날 시골에도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듯이 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누나를 오늘날 시골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뿐 아니라, 들에서 들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오늘날 시골에서 볼 수 없어요. 노을을 바라보거나 가을빛을 한껏 누리는 아이를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찾아볼 수 없지요.


  우리한테 고향은 어떤 곳일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나 입시교육만 받다가 도시로 떠난 아이들한테 고향은, 또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오직 입시교육만 받다가 그저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지내는 아이들한테 고향은, 또 시골은 어떤 자리일까요.


  오늘날에는 고향을 어떤 곳이라고 얘기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손으로 모를 심거나 나락을 베는 일도 드문데, 무엇을 고향이나 시골로 삼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 산마루에 걸린 저녁 해가 쑥쑥쑥쑥 단숨에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에 숯불을 쏟아부은 듯 빠알간 노을을 남겼습니다 ..  (24쪽)



  생각해 보면, 고향과 시골을 몽땅 잃은 채 살아온 나날은 아주 짧습니다. 우리 스스로 고향과 시골을 모두 등돌린 채 살아온 나날은 몹시 짧습니다. 기껏 백 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쉰 해가 안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은 나날이 더 줄어듭니다. 시골에 골프장과 관광단지와 공장과 발전소와 송전탑이 자꾸 들어섭니다. 아름다운 시골 들이나 숲은 사라지고, 어디에나 비닐밭이요 농약논입니다. 비닐을 안 쓰는 밭을 구경하기 어렵고, 농약을 안 뿌리는 논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메뚜기와 잠자리를 어디에서 볼까요. 제비와 박쥐를 어디에서 보나요. 소쩍새나 뜸부기가 둥지를 틀 수 있는가요. 여우와 범은 어디로 갔을까요.


  참말 요새는 허수아비도 안 세웁니다. 농약을 뿌리면 새도 농약을 먹고 죽으니 굳이 허수아비를 세울 일조차 없습니다. 요새는 농협에서 헬리콥터를 띄워 농약을 뿌리기에 참새가 낟알을 쪼아먹을까 걱정하지 않고, 메뚜기가 낟알을 갉아먹을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닐과 농약이 춤추는 시골에 젊은이와 어린이가 자취를 감춥니다.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모습이리라 느낍니다. 1980년대 첫무렵까지 이와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련하면서 아득한 빛이고 무늬입니다. 되찾거나 되살릴 길이 없지 싶은 모습이고 삶입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답거나 덜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향이 고향다움을 잃고 시골에서 시골빛이 사라지는 흐름에서 고향과 시골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하나 있으니 반갑습니다. 부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이 노을을 누리기를 바라고, 어른들도 하루에 몇 분이나마 짬을 내어 아이들과 하늘빛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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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지를 끌고 비룡소의 그림동화 46
도날드 홀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주영아 옮김 / 비룡소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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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7



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 달구지를 끌고

 도날드 홀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주영아 옮김

 비룡소 펴냄, 1997.11.20.



  아침에 일어나서 멸나물 잎사귀를 하나 똑 뜯습니다. 지난해까지 우리 집 멸나물을 제대로 못 느끼며 살았습니다. 이 풀을 먹을 적에도 냄새나 맛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잎사귀 하나를 코에 대고 큼큼 냄새를 맡습니다. 참말 남다른 냄새가 있구나 싶습니다. 입에 넣어 혀로 한 입 무는데 새삼스레 남다른 맛을 느낍니다. 먼 옛날 누군가 이 풀한테 ‘멸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을 알겠습니다. 멸나물을 약풀로 삼던 한약방에서 한자를 빌어 ‘어성초’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도 알겠습니다. 멸나물에서는 물고기 냄새가 납니다. 비린내라면 비린내이고 물고기 냄새라면 물고기 냄새입니다.



.. 10월이 되자, 농부는 소를 달구지에 매었어. 일 년 내내 가족 모두가 기르고 만든 것 가운데서 남겨 둔 것들을 달구지에 가득 실었지 ..  (3쪽)





  우리 집 뒤꼍에는 갯기름나물이 자랍니다. 갯기름나물을 처음 알아본 해에는 몇 잎만 살짝 뜯었습니다. 널리 퍼지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지난해에도 몇 잎만 살짝 뜯었고, 그러께에도 몇 잎만 가만히 뜯었지요. 그리고 올해에는 제법 많이 뜯습니다. 올해에는 퍽 여러 곳에 씩씩하게 퍼졌거든요.


  갯기름나물은 줄기가 통통합니다. 통통한 줄기까지 톡 소리 나게 끊어서 입에 넣으면 해사한 냄새와 맛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도시로 마실을 갔다가 저잣거리에서 갯기름나물을 한 꾸러미 사서 먹을 적에는 이런 냄새나 맛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참말, 풀을 먹으려면 ‘내가 가꾸는 보금자리에서 돋는 풀’을 먹어야 제맛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쑥잎을 먹거나 갓잎을 먹거나 유채잎을 먹을 적에도 그렇습니다. 고들빼기잎이나 씀바귀잎을 먹을 적에도 그렇습니다. 제비꽃잎이나 괭이밥꽃잎을 먹을 적에도 그래요. 길에서 뜯는 풀과 집에서 뜯는 풀이 다릅니다.


  다만, 어디에서 뜯는 어느 풀이든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려는 생각이면 ‘다르면서 즐겁고 재미난 냄새와 맛’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 집 풀은 우리 집 풀대로 반가우면서 맛나고, 이웃마을 풀은 이웃마을 풀대로 반가우면서 맛납니다.



.. 달구지가 가득 차자, 농부는 아내와 아들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어. 그리고 농부는 소를 몰고 열흘 동안 걸어갔단다 ..  (10쪽)





  도날드 홀 님이 쓴 글에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비룡소,1997)를 읽습니다.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는 미국 시골마을에서 살던 네 식구가 가을에 한 차례 도시로 마실을 다녀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가을과 겨울과 봄과 여름에 네 식구가 즐겁게 일하고 쉬고 놀고 노래하다가, 한가을인 시월을 맞이해 소한테 달구지를 씌우고는, 열흘에 걸쳐 천천히 걸어서 도시로 나가서 ‘시골에서 거둔 것’을 내다 판 뒤, 사탕과 주머니칼과 바늘을 넣은 무쇠솥 하나를 막대기에 걸쳐 어깨에 얹고는 다시 열흘에 걸쳐 천천히 시골 숲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 겨우내 농부는 새 멍에를 깎아 만들고, 새 달구지를 만드는 데 쓸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널빤지를 쪼갰어 ..  (29쪽)



  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숲집에서 살던 사람이지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몇몇 임금과 신하와 지식인과 사대부와 이런저런 사람들을 빼고는, 그러니까 1%나 0.1%에 이르는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 숲집에서 살던 사람이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조선이라든지 고려라든지 고구려라든지 발해라든지 부여라든지 백제라든지 가야라든지 신라라든지 옛조선이라든지, 이런저런 이름을 굳이 안 붙이더라도, 누구나 숲집에서 살았어요. 옛날에는 어느 마을이든 모두 숲이었어요. 마을과 마을 사이는 모두 숲이었고, 마을도 숲을 이루었고, 집집마다 숲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숲을 없앤 궁궐에서 지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권력과 숲은 걸맞지 않은 듯해요.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나무도 풀도 꽃도 없앤 시시하고 따분한 곳에 건물만 으리으리하게 올린 탓에, 늘 서로 다투거나 싸웠지 싶어요.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터라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꾀하면서 ‘숲사람’을 들볶았지 싶어요.




.. 5월이 되자 농부의 가족은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었어. 그 사이 사과나무꽃이 피었다 지고, 꿀벌들은 깨어나서 ..  (36쪽)



  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숲은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숲집에서 지내는 사람한테는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숲은 어느 것이든 베풉니다.


  먹고 입고 자는 동안 쓸 모든 살림살이를 숲에서 얻습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도시사람이기에 흙이 없이 밥을 먹지 못합니다. 대통령이나 임금이기에 싱그러운 바람을 안 마시면서 살 수 있지 않습니다.


  밥이 나오려면 들과 숲이 있어야 합니다. 들과 숲에는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수많은 벌레와 새와 짐승이 어우러지고 냇물이 흐릅니다. 냇물에는 물고기가 삽니다. 내와 못과 바다가 아름다이 만납니다.


  숲사람한테는 ‘나라(정치)’가 없습니다. 숲사람한테는 ‘사회(전쟁)’가 없습니다. 숲사람한테는 ‘책(교육)’이 없습니다. 그러나, 숲사람은 누구하고나 어깨동무를 하는 이웃입니다. 숲사람은 스스로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도시에서 정치를 하거나 사회를 꾸리거나 경제를 만지거나 교육을 벌인다는 이들은 온갖 지식을 주무릅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정치·사회·경제·교육을 하는 이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지 못해요.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누리는 아름다움을 도시 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숲이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저마다 숲을 보듬고 아낄 때에 아름답습니다. 숲에서 이는 바람을 마시면서 몸이 튼튼합니다. 숲에서 나는 밥을 먹으면서 마음을 살찌웁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마주하면서 넋이 맑게 빛납니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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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10 09:18   좋아요 0 | URL
멸나물 잎사귀에서, 역시 물고기 냄새가 나는군요.^^
바바라 쿠니 님의 그림이 글과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책인
<달구지를 끌고>를 또 이렇게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로 한번 더 읽으니
참 좋은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4-06-10 09:44   좋아요 0 | URL
냄새와 맛이 재미있더라구요 ^^
이름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아침잎을 먹었습니다~
 
꼬마 곰 코듀로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17
돈 프리먼 지음, 조은수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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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6



여기에 네 책이 있단다

― 꼬마 곰 코듀로이

 돈 프리먼 글·그림

 조은수 옮김

 비룡소 펴냄, 1996.7.10.



  책방마실을 하면서 그림책 《꼬마 곰 코듀로이》(비룡소,1996)를 보았을 적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집 네 살 작은아이한테 주어야겠구나.


  책방에서 책값을 셈할 무렵, 네 살 작은아이는 까무룩 잠듭니다. 나는 작은아이를 왼어깨에 살포시 안습니다. 그러고는 책꾸러미를 한손으로 들고, 일곱 살 큰아이는 아버지 뒤를 잘 따라오라고 불렀습니다.


  잠든 작은아이를 안은 채 문방구에 갑니다. 문방구에 가서 두 아이가 쓸 필통을 장만하고, 새 연필을 고릅니다.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습니다. 작은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습니다. 두 아이와 택시에 오르고, 대화역 앞에 있는 아이들 이모네 집으로 찾아갑니다.



.. 날마다 코듀로이는 다른 인형들과 함께, 누군가가 자기에게 다가와 집에 데려가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  (3쪽)



  아이들 이모네 집에 작은아이를 눕히고 큰아이를 재우려 했으나,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고, 큰아이도 더 놀려 합니다. 그렇구나, 너희들 마음은 그렇구나. 두 아이 옷을 벗겨 씻깁니다. 노느라 흠뻑 흘린 땀을 따스한 물로 씻기고, 머리를 감깁니다. 이제 아이들은 개운한 몸이 됩니다. 너희들 몸이 개운하지 않아서 잠을 못 잤느냐?


  잠에서 깬 작은아이는 ‘제 책’을 달라고 말합니다. 응, 네 그림책 줄게. 자, 여기에 네 책 《꼬마 곰 코듀로이》가 있어. 작은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빨간 빛깔 감도는 그림책을 받습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글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읽습니다. 책겉에 있는 곰인형 그림을 짚으면서 “곰인형이야!”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곳에 곰인형이 있구나.



.. 어느 날 아침, 웬 여자아이가 멈춰 서더니 코듀로이의 반짝이는 눈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  (5쪽)



  곰인형을 본 아이는 곰인형을 마음에 담습니다. 곰인형을 느낀 아이는 곰인형한테 마음을 건넵니다. 둘은 한마음이 되고, 둘은 한식구가 되며, 둘은 한빛이 됩니다.


  얼마나 즐거울까요. 얼마나 환할까요. 마음에 둔 곰인형을 품에 안은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곰인형을 바라본 아이는 다른 것을 보지 않습니다. 곰인형과 속삭이는 아이는 다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곰인형이랑 노는 아이는 다른 놀이나 사건이나 사고나 불행이나 행복이나 근심이나 시름이나 텔레비전이나 영화 따위를 하나도 떠올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를 바라보고, 오로지 하나를 느끼며, 오롯이 하나를 보고 또 봅니다.



.. “난 리자야. 넌 내 곰 인형이 될 거야. 어젯밤에 돼지 저금통에 든 돈을 세어 보았어. 엄마가 널 데려와도 좋다고 하셨어.” 여자아이가 말했어요 ..  (25쪽)



  그림책 《꼬마 곰 코듀로이》는 어떤 책일까요. 여기에 네 책이 있다고 부르는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어떤 노래가 될까요.


  아이들은 모두 안다고 느껴요. 곰인형은 ‘돈’으로 살 수 없어요. 곰인형은 ‘마음’으로 사귑니다. 곰인형은 ‘물건’으로 간수할 수 없어요. 곰인형은 ‘벗님’이 되어 내 곁에 있어요.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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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스 지음, 가비 카벨리우스 그림, 이필렬 옮김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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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4



우리 몸을 살리는 숨결

―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서 글

 가비 카벨리우스 그림

 이필렬 옮김

 창비 펴냄, 2004.5.25.



  바람이 거세게 불면 자전거가 앞으로 잘 안 나아갑니다. 자동차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그대로 달릴 테지요. 무거운 쇳덩어리인데다가 기름을 태워서 달리니, 자동차를 달리면서 힘들 일은 드물어요. 맞바람을 맞으면서 이 바람이 그치기를 바랄 만하지만,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맞바람을 그대로 맞기만 할 뿐, 바람이 수그러들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쪽에서 가면 맞바람이지만 저쪽에서 오면 등바람이에요. 가는 길에 맞바람이면 오는 길에 등바람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자전거를 달리기에 수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날이 무덥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따순 기운을 옮깁니다. 바람이 불어서 서늘한 기운을 옮깁니다. 바람이 부니 우리들은 늘 새 숨을 마시고, 바람이 부니까 풀과 나무가 싱그러이 빛날 수 있으며, 바람이 불어 지구별에 골고루 온갖 목숨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사람의 몸은 태양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흙 한 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들어 있을까요? 열 마리? 쉰 마리? 100마리? 믿어지지 않겠지만, 흙 한 줌 속에는 지구 전체에 살고 있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생명이 숨어 있습니다 ..  (7, 24쪽)



  비가 내리면서 뭍에 새 기운이 감돕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며 사람도 논밭을 가꿉니다. 비가 내려 뭍에서 흙이 쓸려 바다로 가니, 갯벌이 싱그럽고 바다에도 새 기운이 감돕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아마 지구별에는 푸른 빛이 사라지겠지요. 비가 없이는 물을 쓸 수 없고, 비가 없이는 들과 숲에서 풀도 나무도 자랄 수 없어요.


  꽃은 정수기 물로 크지 않습니다. 열매는 수돗물로 익지 않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페트병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지 않습니다. 바닥이 흙인 내나 가람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야 싱그럽게 빛나는 목숨입니다. 시멘트로 덮은 바닥을 흐르면 내나 가람이 아니요, 시멘트로 가두는 댐에서 플라스틱이나 쇠붙이나 시멘트로 만든 길을 거쳐서 흐르도록 하는 물은 목숨을 살리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풀과 나무는 흙땅에 뿌리를 내려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이룬 땅에 뿌리를 내리는 풀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 자라는 풀과 나무는 흙을 찾아 뿌리를 뻗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삶터를 뒤덮습니다. 시골도 도시도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어씌웁니다.



.. 옛날에 물방아는 곡식을 빻는 일 말고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의 힘으로 무거운 해머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물방아도 있습니다. 이런 물방아가 있는 방앗간에서는 쇠를 두들겨 칼 또는 낫을 만들었습니다 ..  (15쪽)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서 님이 글을 쓰고 가비 카벨리우스 님이 그림을 그린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창비,200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얻는 기운(에너지)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지구별에서 어떤 기운을 얻어서 문명사회를 누릴 수 있는지 가만가만 알려줍니다. 석탄과 석유와 가스에 기대는 문명사회인데, 이 세 가지만으로는 문명사회가 버틸 수 없을 뿐 아니라, 머잖아 무너질밖에 없는 흐름을 밝힙니다.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읽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이 책을 쓰거나 옮긴 분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을까요. 바람과 물과 해가 사람을 살리는 바탕이라면, 우리는 문명사회를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바람과 물과 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가 되어야 옳지 않나요. 바람과 물과 해를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과 문화가 되어야 바르지 않나요. 바람과 물과 해를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일구는 길을 찾아야 아름답지 않나요.



.. 과학자들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확실한 것은 열기가 나무의 탄수화물을 분쇄하고, 이때 많은 빛과 열이 방출된다는 것입니다. 이 빛과 열은 태양에서 나와 나무 속에 붙잡힌 에너지입니다 ..  (31쪽)



  그림책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는 ‘과학’과 ‘문명’이라는 틀에서 바람과 물과 해를 바라봅니다. 바람과 물과 해에서 기운(에너지)을 얻는 흐름은 보여주지만, 막상 이런 기운을 왜 얻어야 하고 왜 누려야 하는지를 밝히거나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전기를 써야 하니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얼거리에 갇힙니다. 전기를 왜 써야 하는지, 전기를 쓰는 우리 사회와 문명은 어떤 모습인지를 밝히거나 보여주지 못해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쓸까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써야 할까요? 마을을 수수하게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이 쓰는 전기는 아주 적어요. 그러나, 군사과학이라든지 전쟁무기라든지 군부대를 거느리느라 쓰는 전기가 대단히 많습니다. 핵무기를 비롯한 갖가지 전쟁무기와 군부대 때문에 전기를 엄청나게 쓰는 문명사회입니다. 미국도 러시아도 한국도 모두 똑같습니다.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을 치르며, 또 무슨무슨 운동경기를 치른다면서 쓰는 전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바람을 골고루 나누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물을 함께 나누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해를 함께 즐기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우리 몸을 살리는 숨결이라는 바람과 물과 해를 슬기롭게 맞아들이거나 나누는 길을 잊은 채, 앞날을 읽거나 그리지 못하는 채, 쳇바퀴를 도는 문명사회와 제도권교육이라고 느낍니다. 4347.5.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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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6
로저 뒤봐젱 지음, 서애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4



읽는 책과 살아가는 빛

―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로저 뒤봐젱 글·그림

 서애경 옮김

 시공사 펴냄, 1995.6.30.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책은 모으라고 있지 않습니다. 책이 있는 까닭은 이야기를 적어서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담아 이웃한테 널리 퍼뜨리고 싶기에 책을 엮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문화권력을 거머쥔 이는 이러한 권력을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뜻에서 책을 엮습니다. 권력을 움켜쥐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이는 이웃한테 사랑을 한결 따사로이 알려주거나 들려주고 싶어서 책을 엮습니다.


  끼리끼리 권력을 더 단단히 다지려고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만 알 수 없다고 여겨, 다 함께 슬기를 빛내고 삶을 밝히는 길을 알도록 하고자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이 지구별에는 두 갈래 사람과 삶이 있어요.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꾀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갈래가 하나 있어요. 삶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려는 갈래가 하나 있습니다. 책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납니다. 신문과 방송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나요.




.. 피튜니아는 하는 짓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을 받는 암거위야 …… 피튜니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딱정벌레를 잡아 먹기도 하고, 클로버 이파리를 물어 뜯기도 하고 풀 이파리에 맺힌 이슬 방울을 쪼기도 했지 ..  (5쪽)



  로저 뒤봐젱 님이 빚은 그림책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시공사,1995)는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미국에서 1950년에 처음 나왔어요. 한국말로는 1995년에 처음 나왔으니, 한국 어린이는 미국에서 마흔다섯 살 묵은 그림책을 누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오래되었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책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밝혀서 알려주거든요.



.. “옳아, 주인 집 아들 빌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옆구리에 끼고 오는 것을 보았어. 이건 책이야. 그래 맞아. 책이야! …… 이제 생각난다. 바로 며칠 전에 펌킨 씨가 빌에게 책은 아주 소중한 것이랬지. 펌킨 씨가 그랬잖아.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  (8쪽)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수수한 암거위입니다. 여느 암거위처럼 풀밭을 돌아다닙니다. 벌레를 잡고 풀잎을 뜯으며 이슬을 마십니다. 더없이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하루를 누립니다. 아마 모든 들짐승이 이처럼 수수하면서 평화롭기에 사랑스러우면서 즐겁게 살아갈 테지요.


  들짐승이나 멧짐승한테는 ‘똑똑함’이나 ‘잘남’이 따로 없습니다. 더 높은 짐승이나 더 낮은 짐승이 없습니다. 더 높은 벌레나 더 낮은 벌레가 없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함께 어우러집니다. 같이 살아갑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짓습니다. 아니, 사람들 스스로 틀을 짓는다기보다 문명사회에서 틀을 짓습니다. 문명사회가 된 뒤부터 제도권이라는 틀이 생기고, 제도권에서는 숫자로 삶을 가르지요. 숫자로 삶을 가르니, 은행계좌로 틀을 가르고, 집 넓이와 땅 넓이로 틀을 갈라요. 벌어들이는 돈과 따는 점수로 틀을 가릅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으로 틀을 짓고, 운동경기 또한 숫자로 틀을 짓습니다.


  우리는 삶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숫자로 틀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도권 울타리에 깃들어 문명사회에 젖어드는 사이에 어느덧 ‘삶을 누리는 길’이 아니라 ‘숫자에 몸을 맞추고 숫자에 마음이 얽매이는’ 나날이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쳇바퀴질을 해요. 쳇바퀴 삶이 되고, 쳇바퀴 지식이 되며, 쳇바퀴 직업과 학교가 됩니다.


  책을 100권 읽은 사람이 책을 1권 읽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책을 999권 읽은 사람이 책을 1000권 읽은 사람보다 못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읽은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들추지 않은 사람이 책을 백만 권쯤 들춘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삶은 숫자로 나누지 못합니다. 웃음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노래는 숫자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방송이나 ‘순위 차트’에서 1등이 되어야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순위 차트’에서 100등이나 1000등쯤 하면 안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그림 한 점이 백 억원에 팔리면 훌륭한 작품일까요? 사진 한 점이 일 억원에 팔리면 빼어난 작품일까요? 글 한 줄을 천만 원에 팔면 놀라운 작품일까요?





.. 피튜니아는 주저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끝내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이제 알았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  (31쪽)



  졸업장은 종이 한 장입니다. 돈도 종이 한 장입니다. 책은 종이꾸러미입니다. 졸업장으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삶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웃으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기뻐요. 스스로 속삭이는 사랑이요, 스스로 나누는 사랑이고, 스스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이면 삶이 사랑스럽지요.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삶은 사랑하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빛을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하루하루 가꾸면서 살림을 알뜰살뜰 다스릴 적에 삶이 빛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기로 합니다. 피튜니아는 책을 ‘읽고 생각을 기울이며 마음을 쓰고 사랑을 나누’는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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