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653


《モダン 新語辭典》

 早坂二郞·松本悟郞 엮음

 浩文社

 1931.10.20.첫/1932.3.1.다섯벌.



  우리는 우리 손으로 바깥길을 익히거나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중국을 섬기는 몸짓이 너무 드센 나머지, 한문만 글이라 여기면서 한글을 얕보고 깎아내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곰곰이 보면,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본 수수한 시골 어버이는 글(한문)을 하나도 모르지만 말(우리말)로 살림을 짓고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벼슬아치·임금·붓바치는 말(우리말)이 아닌 글(한문)로 나라일·감투를 거머쥐면서 들꽃사람(백성·한문을 모르는 채 흙을 일구는 사람)을 짓밟고 괴롭히며 우려먹었습니다. 벼슬을 쥔 사내들이 세운 꼰대질(가부장권력)이 무너지던 1900년 언저리에 일본말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요. 일본이 총칼로 뒤덮은 1910년 무렵부터는 ‘일본이 일본 한자말로 받아들인 바깥길(서양문화·문물·문명)’이 너울거렸습니다. 《モダン 新語辭典》은 일본사람이 바깥길을 받아들이려고 애쓴 자취가 물씬 흐릅니다. ‘새롭고(モダン) 새로운(新語) 말’을 꾸린 작은 책을 펴면, 영어를 어떤 한자말로 옮겨야 사람(일본사람)들이 알아듣기 좋으려나 하고 생각한 자취를 읽을 만합니다. 우리는 아직 영어도 한문도 일본 한자말도 ‘우리 말글’로 옮기는 기틀을 안 닦거나 못 세웠습니다. 새술을 새자루에 담듯, 새길은 우리 새말로 담는 넋을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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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790


《페스탈로찌, 人類의 敎師》

 오사다 아라타(長田 新) 글

 이원수 옮김

 신구문화사

 1974.5.1.



  2005년에 태어난 아이는 이해 언저리에 나온 책을 모릅니다. 1975년에 태어난 몸이라 이해 언저리에 나온 책을 몰라요. 그래도 1993년까지 푸른배움터를 다니며 책마실을 다닌 인천 마을책집에는 ‘안 팔린 채 묵은 1970년대 첫무렵 손바닥책’이 제법 있었습니다. 푸름이일 적에는 ‘서문문고’하고 ‘박영문고’를 하나둘 사읽었고, 1994년부터 서울 골골샅샅 헌책집을 누비면서 ‘신구문고’를 마주하며 눈길을 틔웠습니다. 이 가운데 ‘新舊文庫 23’인 《페스탈로찌, 人類의 敎師》는 이름으로만 알던 페스탈로치라는 어른이 왜 어른이요, 아이 곁에서 어떤 배움살림을 폈는지 상냥하면서 쉽게, 또 낱낱이 풀어내더군요. 더구나 옮긴이가 어린글꽃(어린이문학)을 펴는 이원수 님이더군요. 예전이나 오늘이나 우리나라는 아직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끔찍합니다. 이름은 배움터(학교)이되, 삶도 살림도 사랑도 등진, 배움길이 아닌 죽음길이라고 느껴요. 살림꽃(밥짓기·옷짓기·집짓기)하고 너무 먼 우리나라 배움터를 오래 다닐수록 오히려 사랑을 잊으면서 잃지 않을까요?


페스탈로찌는 드디어 50인의 빈민 아동을 목표로 하여 빈민 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거기에 나서서 아동을 모아 왔다. 그는 이 아이들과 같이 여름에는 땅을 갈고 겨울에는 면화를 실이나 베로 가공하여 경영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마음에는 다만 빈곤을 극복하여 자신을 자립으로 끌어올리는 노동의 쾌감이 생길 뿐 아니라 자활하면서 그들이 내적인 여러 가지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페스탈로찌의 신념이었다.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노동을 하는 사이에 지적 도덕적 및 종교적 여러 힘은 말하기·읽기·쓰기·외기 등에 의하여 연습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 큰 세대에서는 사랑이 그 수호신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더우기 아이들의 마음속에 모든 인간적인 고상함과 위대함을 자각케 하고, 그리고 그것을 공고히 하는 가정의 힘은 그 수호신으로서의 사랑 가운데 들어 있어서 거기서부터 흘러나온다. 이러한 수호신이 페스탈로찌의 빈민 학교를 강력히 지배했다. 그러나 페스탈로찌가 그들의 식탁에서 같이 먹어도, 아니 그들에게는 맛난 감자를 먹이고 자기는 험한 음식을 먹어도 이 훌륭한 사람은 그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관청도 그를 원조해 주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는 이런 사업에 대한 세세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채무는 점점 불어 가서 1780년에는 학교를 해산하는 비운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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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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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776


《Van Gogh, Auvers sur oise》

 Fernand Hazan 엮음

 Fernand Hazan

 1956.



  손으로 책을 쥐면, 숲에서 자라던 나무가 품은 숨결이 번집니다.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서 읽으면 ‘줄거리’를 훑을 뿐이지만,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로 묶은 책에는 ‘해바람비를 머금고 살던 숲빛’이 흐릅니다. 1994년에 서울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에 갓 들어갈 즈음, 책숲마실을 즐기는 윗내기(선배)한테서 서울 홍대 앞에 〈글벗헌책가게〉라는 곳이 있으니 찾아가 보라는 귀띔을 들었어요. 아직 한창 추운 2월 한복판에 혼자 찾아가서 개미굴 같은 골마루를 누빕니다. 《연려실기술》을 살폈고 《Van Gogh, Auvers sur oise》를 골랐습니다. 헌책집지기는 “젊은이는 뭘 배우는데 영 다른 두 책을 고르나?” 하고 묻습니다. “네덜란드말을 배워서 통·번역 하는 일을 하려고요. 네덜란드 살림을 담은 그림도 보고, 우리 발자취를 담은 이야기도 읽으려고요.” 이날 장만한 ‘환 호흐(반 고흐)’ 조그마한 그림책을 한 해 내내 주머니에 꽂고서 틈틈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만나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으레 보여주면서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작고 이쁘게 멋진 책을 다 내네. ‘오베르 쉬르 와즈’를 느낄 수 있어.” 하고 속삭였습니다. 2001년 무렵, 우리 집에 놀러온 어느 분이 작은책을 훔쳐갔습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책을 울면서 그리다가 스무 해 만에 헌책집에서 다시 만났어요.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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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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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2.

숨은책 788


《二十世紀文學의 反逆》

 헤르만 그리사 글

 이동승 옮김

 탐구당

 1964.9.30.



  어릴 적부터 책을 안 빌려읽었습니다. 누가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빌려서 읽을 만하다면 스스로 새로 장만할 노릇이라 여겼어요. ‘읽을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한 벌 훑고서 끝이 아니에요. ‘읽을 책’이란 곁에 두고서 틈틈이 되읽고, 다시 집어들 적마다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길잡이라고 느껴요. 같은 책을 며칠째 되읽는 모습을 보는 동무는 갸우뚱하며 “넌 참 알쏭하다. 어느 책은 훌떡 읽어치우고, 어느 책은 며칠째 들고 다니네?” 하고 묻습니다. “응, 한 벌 읽고 나면 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책이 있더라. 마음이 뭉클해서 다음 쪽을 차마 못 펼치고 며칠째 들고 다니는 책도 있고.” ‘探究新書 21’로 나온 조그마한 《二十世紀文學의 反逆》은 겉그림이 뜯긴 채 ‘영락중·상업고등학교 도서실’에 오래 깃들었다가 버림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영락장서 第 783號’를 받고, 나중에 ‘第 143號’로 바뀌었는데, 끝내 빌려읽은 손길을 못 탔어요. 이대로 헌종이(폐지)가 될 뻔하다가 헌책집 지기가 건져냈고, 한참 잠들다가 제 손으로 넘어옵니다. 한켠에 글붓으로 ‘새로 산 날’을 적습니다. 한자투성이에 깨알같은 글씨를 나중에 기꺼이 읽어 줄 뒷내기가 있을는지 모르나, 오래 손길을 기다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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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20.

숨은책 784


《‘아이큐 점프’ 1991년 22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29》

 편집부

 서울문화사

 1991.



  어린날에 손에 쥔 살림돈(용돈)은 많지 않습니다. 살림돈으로 주전부리를 사먹는 일은 아예 없고, 책이나 날개꽃(우표)을 사거나, 돈터(은행)에 맡겼습니다. 사흘마다 마을 앞에 ‘그림꽃(만화)을 가득 실은 짐차’가 왔습니다. 새책으로 살 엄두는 못 내고, 철이 지나 버려야 한다는 그림꽃책을 헐값으로 샀어요. 언니하고 푼푼이 모아 《드래곤볼》을 새책으로 1∼42까지 짝을 다 맞춘 날은 몹시 기뻤는데, 설하고 한가위에 작은집 아이들이 놀러올 적마다 골치를 앓았어요. “빌려가도 돼요?” “언제 돌려주게?” “다음에 가져올게요.” “너, 그러고서 여태 안 가져왔잖아.” 안 빌려주겠노라 해도 작은집 아이들은 슬쩍 빼돌렸고, 다음 설·한가위에 시침을 뗍니다. 작은집은 작은아버지가 모든 ‘그림꽃 달책(만화잡지)’을 다 사주던데, 이 녀석들이 빌려가서 하나도 안 돌려주느라 잃은 그림꽃책이 수두룩합니다. 《‘아이큐 점프’ 별책부록 1 드래곤볼》을 2022년에 헌책집에서 꾸러미로 만났습니다. 어린날이 떠오르더군요. 그때 잃은 책은 여태 짝을 못 맞추지만, 덧책(별책부록) 몇 가지로 시름을 달랬습니다. 1992년부터는 덧책 뒤에 알림그림이 사라졌으나, 이 덧책 뒤쪽에 이레마다 다른 알림그림이 실린 모습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주전부리도 다른 것도 장만하지 못 하던 살림돈이었으나 구경만으로 즐거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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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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