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영혼 - 내면의 자유를 위한 놓아 보내기 연습
마이클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성해영 감수 / 라이팅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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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2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

― 상처받지 않는 영혼

 마이클 A. 싱어 글

 이균형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2014.5.8.



  내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내 마음은 언제나 안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마음이 안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를 바라보며 ‘너는 참 아름답네’ 하고 말해야 내가 아름답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바라보며 ‘너는 참 안 아름답네’ 하고 말하더라도 내가 안 아름답지 않아요.


  내 모습은 내가 짓습니다. 내 삶은 내가 짓습니다. 내 길은 내가 짓습니다. 남이 짓는 내 모습이 아닙니다. 남이 짓는 내 삶이 아닙니다. 남이 짓는 내 길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어서 누리는 모습이고 삶이며 길입니다.



.. 우리는 외부의 에너지를 연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내부의 에너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평생 느끼고 행동하지만 무엇이 그런 활동이 일어나게 하는지 모르고 있다 … 당신은 내부에 아름다운 에너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열려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낀다. 닫혀 있을 때는 그것을 못 느낀다 … 선명하게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당신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  (75, 80, 131쪽)



  꽃한테 곱다고 자꾸 말을 걸면, 꽃은 한결 곱게 피어납니다. 내 동무와 이웃한테 ‘참 곱네요’ 하고 말을 걸면, 또 마음속으로 ‘참 고우시네요’ 하고 생각을 하면, 내 동무와 이웃은 차츰 고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스스로 말을 걸면 돼요. 내가 나한테 ‘나는 참 곱구나’ 하고 말을 걸면, 또 마음속으로 ‘나는 얼마나 고운 사람인가’ 하고 생각을 하면, 나는 날마다 차츰 고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지구별한테 말을 걸어 보셔요. 우리 지구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말을 걸어 보셔요. 하늘을 보며 말을 걸어 보셔요. 별도 달도 해도 구름도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말을 걸어 보셔요.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내가 거는 말 한 마디가 조그마한 씨앗이 됩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마디가 자그마한 사랑이 됩니다. 내가 읊는 이야기가 작디작으나 어여쁘게 빛납니다.



.. 가슴은 창조의 걸작품 중 하나이다. 그것은 엄청난 악기이다. 그것은 피아노나 현악기나 플루트 등의 아름다운 소리를 훨씬 능가하는 진동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삶과 씨름하지 않고 삶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경험하면 당신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건드려질 것이다 …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의식은 그저 무엇이든 주의를 끄는 것에 딸려 간다 ..  (88, 101, 112쪽)



  마이클 A. 싱어 님이 쓴 《상처받지 않는 영혼》(라이팅하우스,2014)을 읽습니다. ‘다치지 않는 넋’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아프지 않는 마음’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내 넋이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나요? 아무렴. 그렇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사랑하면 돼요. 스스로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품고 아름다움을 늘 떠올리면 돼요.


  아름다운 넋은 다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남을 다치게 하지 않으니, 스스로 다칠 일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아프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남을 아프게 하지 않기에, 스스로 아플 일이 없습니다.



..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일상의 일들이 불가피하게 그것을 건드린다 … 삶은 당신을 가장자리로 밀어붙이는 상황들을 일으킨다. 그것은 모두가 당신 속에 걸려 있는 것들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다 … 그 짓을 왜 하는지를 정말 알고 싶다면 그 짓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된다 … 철창은 꼭 철창처럼 생겨야만 하는 게 아니다. 불편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철창을 만들 수 있다 ..  (127, 201, 206쪽)



  언뜻 보기에 바보스럽다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나 몸짓이나 생각이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바보스러울까요. 처음부터 바보스럽게 태어났기 때문일까요. 둘레에서 자꾸 바보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일까요. 스스로 바보스럽네 하고 되뇌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바보짓을 하면 바보스럽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보짓을 할 적마다 따사롭게 타이르는 이웃이 없으니 바보짓에서 못 헤어날는지 모릅니다. 바보짓을 하더라도 둘레에서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다독이면 앞으로는 고운 짓을 할는지 몰라요.


  곰곰이 살펴보면 우스꽝스럽다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도 몸짓도 생각도 우스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우스꽝스러울까요. 처음부터 우스꽝스럽게 태어났기 때문인가요. 옆에서 으레 우스꽝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인가요. 스스로 우스꽝스럽네 하고 읊기 때문인가요.


  어쩌면 자꾸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니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포근하게 감싸는 이웃이 없으니 우스꽝스러움에서 못 벗어날는지 모릅니다. 우스꽝스럽더라도 둘레에서 가만가만 보듬으면 앞으로는 예쁜 짓으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 당신이 가지고 있는 좋아함과 싫어함에 대한 고정관념에다 사람들을 끼워 맞추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인간관계가 아주 수월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 신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떨까? 신은 사랑이라면? 진정한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랑은 대상 속에서 오로지 아름다움밖에 보지 않는다 … 태양을 보라. 태양이 성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밝게 비춰 주는가? 성자는 숨 쉴 공기를 더 많이 받는가? 비가 이웃집 나무에 더 많이 내리는가 ..  (252, 289, 292쪽)



  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잘할 수 있고 한 번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잘못하기에 엉터리이지 않습니다. 잘할 적에 차분하면서 즐겁게 웃으면 되고, 잘못할 적에 곰곰이 되새기면서 빙그레 웃으면 됩니다.


  물잔이나 밥그릇을 아이가 떨어뜨려 깰 수 있어요. 그래, 물잔을 깼구나. 밥그릇을 깼구나. 잘디잔 조각이 방바닥에 흩어졌으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렴. 깨진 잔은 치우자. 깨진 밥그릇을 치워야겠네.


  아이들은 일부러 떨어뜨려서 깨지 않습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미끄러집니다. 힘이 모자라 그만 놓칩니다. 게다가 어른도 미끄러뜨리면서 물잔이나 밥그릇을 깨곤 해요. 아이만 물잔이나 밥그릇을 깨지 않습니다.


  올해에 꽃이 많이 피고, 열매가 그득 달릴 수 있습니다. 올해에 드센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꽃이 많이 떨어지고, 열매도 안 익은 채 죄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해가 따사롭게 비추는 날이 있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리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보드라운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거센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면 될까요. 내 삶을 어떻게 가꾸면 될까요. 어떻게 마음에 담으면 될까요. 내 길을 어떻게 걸으면 될까요. 어렵게 보면 어렵고, 즐겁게 보면 즐겁습니다. 넉넉하게 보면 넉넉하고, 기쁘게 보면 기쁩니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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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또 진다 - 손석춘과 지승호의 대자보, 창간호 01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1
손석춘.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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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0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 이대로 가면 또 진다

 손석춘·지승호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4.19.



  곁님 핏기저귀를 애벌빨래 해 놓고 두 아이 잠자리를 살핍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작은 책상맡에 앉아서 글씨쓰기를 하다가 “나 잘래요. 졸려요.” 하고 말한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눕습니다. 큰아이는 자겠다고 말하면 언제나 몇 분 안 되어 곯아떨어집니다. 낮잠이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아이는 이렇게 까무룩 꿈나라로 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열 해쯤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에는 곁님 속옷을 손빨래 할 수 있는 사내가 드물었습니다. 거꾸로 보면, 오늘날에도 가시내는 사내 속옷이며 양말을 모두 빨래합니다. 빨래기계에 넣든 손으로 비비든 아직도 집식구 빨래는 거의 다 가시내 몫입니다. 빨래기계를 쓸 줄 모르는 사내도 꽤 많지 않을까요? 속옷이나 양말은 빨래기계에 넣어서는 잘 안 빨리고, 손으로 비비고 헹구어야 잘 빨리는 줄 아는 사내는 퍽 드물지 않을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아기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손으로 비벼서 빨래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천기저귀였을 테지만, 이제는 종이기저귀를 쓰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서는 거의 다 종이기저귀를 씁니다. 천기저귀를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지만, 천기저귀를 손으로 빨래하는 사람은 더욱 드뭅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서 빨래하는 살림꾼이라면 기저귀를 마땅히 손으로 빨겠지요. 걸레를 손으로 빨고, 집식구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면서 ‘여기에 때가 많이 탔구나’라든지 ‘이쪽이 많이 해졌구나’ 하고 생각하는 살림쟁이라면 똥기저귀이든 핏기저귀이든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빨래하리라 생각합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농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 걱정스러운 것은 여전히 문재인 의원 같은 분이 차기 대선 출마를 언급하면서 계속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차이를 강조한다는 거예요. 마치 자기들 외에는 깨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듯이 주장하거든요 … 스스로 진단했듯이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과오가 이명박 정부한테 정권을 넘겨준 거라면, 왜 그랬는지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22, 23, 24쪽)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손빨래를 했습니다. 마흔 살이 된 올해에도 손빨래를 합니다. 앞으로 스무 해가 흘러 예순 살이 되어도 손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손빨래를 하면 마음이 차분하면서 따스합니다. 손빨래를 하는 동안 옷과 이불을 더 찬찬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몸이 얼마나 작은지 헤아리고, 곁님 몸이 어떠한가를 살핍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며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빨래하며 ‘밥을 잘 삭히고 튼튼하게 자라는가’를 곰곰이 눈여겨보았습니다.


  내 어버이와 곁님 어버이가 몸져누우면 그때에도 기저귀를 쓸까요. 어쩌면 늙은 할매와 할배가 기저귀를 대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저귀를 대어서 바지런히 갈며 빨아야지요. 아기 똥이든 할매 똥이든 모두 같습니다. 사랑하는 집식구 몸을 살피고 돌보는 일은 언제나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듯,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가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사랑둥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녁 아이들을 살뜰히 아낍니다.


  밥을 차리면서 이 밥을 누가 얼마나 맛나게 먹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맛나게 먹은 밥으로 신나게 일하거나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밥상맡에 둘러앉고, 즐겁게 노래하듯이 수저를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정희 권력은 비정했잖아요.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 이런 게 지금 국면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고요 … 한번 상상해 볼까요? 만일 손석희가 〈뉴스타파〉로 옮겨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뉴스타파〉에 엄청난 기부금, 후원금이 몰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는 사람에게 좀더 힘을 실어 주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 진보 진영 내부에서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  (32, 37, 38, 55쪽)



  어떻게 가꾸는 삶이 아름다울까요?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 아름답겠지요. 어떻게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러울까요? 사랑으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럽겠지요.


  평화를 생각하기에 평화롭습니다. 전쟁을 생각하기에 툭탁거리거나 싸웁니다. 민주를 생각하기에 민주를 이룹니다. 독재를 생각하기에 독재가 불거집니다.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착하게 돈을 벌어 착하게 씁니다. 안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안 착하게 돈을 벌어 안 착하게 돈을 써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고 느껴요. 스스로 삶을 어떤 생각으로 지으려 하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이 된다고 느껴요. 아름다울 삶을 생각해야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돈을 더 벌 삶을 생각하면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대학교 학벌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생각하면 이때에도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대학교도 다니고 돈도 즐겁게 벌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삶을 가꾸면서 자가용을 몰고 도시에서 아파트를 얻으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넋이 아닐 적에는 책을 많이 읽어도 아름다운 말을 베풀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얼이 아닐 때에는 훌륭한 스승한테서 배운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 이명박이나 박근혜만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진보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 폐쇄적인 1980년대식 비합법 조직을 지금까지도 유지하다 보니 자기들의 경직성을 못 느끼는 겁니다. 오히려 그 경직된 사상을 아직도 엄청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통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고 함께 토론해야 해요. 아마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자신 있게 얘기 못 할걸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사상은 잘못된 거죠. 굳이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런 폐쇄적인 사상으로는 어떤 변혁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41, 53쪽)



  손석춘·지승호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 《이대로 가면 또 진다》(철수와영희,2014)를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말, 이대로 나아가면 아름다울는지요? 한국에서 한국말을 주고받는 한국사람으로서, 참말, 이대로 살면 아름다운가요?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한 척 거꾸러집니다. 기우뚱하다가 뒤집어지면서 가라앉습니다.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배가 어딘가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손을 쓰지 않다가 삼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에 갇힌 채 바닷속에 잠겼습니다.


  아주 놀라울 뿐 아니라 끔찍하고 슬픈 일이 벌어졌으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고 밝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를 몰던 사람도,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저 멍합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과 제주여행을 가던 어른들은 왜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배가 거꾸러져서 이렇게 되는데, 배가 거꾸러지지 않아도 삶과 죽음 문턱에서 아픈 이웃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 곳곳에서 아파서 끙끙 앓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지역과 재산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얼굴과 몸매와 키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1등이 아니면 뒤로 처질 뿐 아니라 눈길이나 사랑을 못 받는 한국 사회입니다.



.. 물론 〈한겨레〉가 조중동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정말 창간 이후 진보와 노동 쪽에 근거한 이야기와 의제 설정을 충실히 해 왔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후임은 거의 보수적 학자로 채워집니다. 미국식 사회과학자, 미국식 박사들이 대학을 지배하는 거죠.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총장들이 지식인의 사명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아예 없어요. 총장들이 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하는 사람들이죠. 인문적 소양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 그 두 사람이 처절하게 뭔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무너졌으면 정말 괜찮은데, 김대중은 공기업까지 다 팔아넘겼고, 노무현은 한미FTA를 강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  (72, 86, 104쪽)



  비가 내리는 사월입니다. 비가 내리면서 아주 조용합니다.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밤바람은 선선합니다. 마을 어귀에도 저 먼 큰길에도 오가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오직 빗소리가 마을과 집을 감쌉니다.


  비가 그치면 멧새가 노래하겠지요. 멧새 노랫소리 사이로 개구리 노랫소리가 퍼지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에 이어 머잖아 풀벌레 노래잔치가 펼쳐지겠지요.


  어제 낮에 마을 들판에서 제비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딱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마을 들판에서 제비 수백 마리를 보았습니다. 올해에는 고작 여섯 마리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난해 여름에 제비들이 한창 시골집마다 처마 밑에 깃들어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울 적에 항공방제를 한다면서 헬리콥터가 온 마을과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농약을 뿌려댔어요. 농약바람이 보름 남짓 불면서 제비가 거의 다 사라졌고, 개구리도 거의 다 사라졌어요. 풀벌레 또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쓰레기를 아주 잘 태웁니다. 비닐이든 농약병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태웁니다. 감나무 옆에서도 태우고, 이웃집 돌울타리 옆에서도 태웁니다. 비닐 타는 냄새가 이웃집에 퍼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농약이 이웃집으로 날려 냄새가 코를 찔러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젊은이와 아이가 사라져 풀(나물)을 뜯을 사람이 없는데다가, 풀을 뜯길 소나 짐승도 사라지니,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풀을 잡는다며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 박근혜는 한 번도 서민으로 살아 본 적이 없죠. 당연히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박근혜는 자기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닫혀 있어요. 최소한 진실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안 보입니다 …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면서 생각을 좁혀 갈 수 있는 토론이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진보를 이루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현실의 한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해요 ..  (91, 100, 106쪽)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이대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입니까. 이대로 내달리는 삶이 꿈입니까. 이대로 치닫는 삶이 즐겁습니까.


  대통령을 바꾼대서 나라가 바뀌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바꾸면 대통령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가 바뀌려면 나라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사회를 바꾸어야지요. 나라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려면, 나라와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을 찾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걸어갈 길을 찾고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길을 살피며 즐겁게 노래할 길을 가꾸어야 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대통령 뽑는 자리에서 또 엉터리 같은 일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여린 아이들과 착한 어른들이 터무니없이 바닷속에 잠기는 일이 다시 터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참말 이런 삶이 재미있을까요? 이대로 그냥 가는 삶이 우리한테 빛이나 소금이 될 수 있을까요?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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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뉴욕
E. B. 화이트 지음, 권상미 옮김 / 숲속여우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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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9

 


작은 책에서 숨쉬는 ‘마을’
― 여기, 뉴욕
 엘윈 브룩스 화이트 글
 권상미 옮김
 숲속여우비 펴냄, 2014.3.17.

 


  봄이 되니 문을 활짝 열고 지냅니다. 겨울 끝자락까지 방문을 꼭꼭 닫으며 찬바람을 막아야 했으나, 봄부터 문을 모두 열고 햇빛을 받아들이고 햇볕을 맞이합니다. 문을 활짝 열고 지내니 낮이 한결 환할 뿐 아니라, 우리 집 둘레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한결 또렷하게 듣습니다. 꽤 멀리 떨어진 들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들려주는 봄노래도 들어요.


  따사로운 봄이기에 아이들은 하루 내내 마당에서 뛰놉니다. 마당에서 뛰놀다가 슬그머니 대문을 열고 바깥마실을 합니다. 마을 샘터를 다녀온다든지, 마을 샘터에서 물을 옴팡 뒤집어쓰면서 논다든지, 이웃집을 기웃거린다든지 하며 놀아요.


  아이들한테 우리 마을은 마을이면서 놀이터요 삶터입니다. 아이들한테 우리 집은 집이면서 마을이고 놀이터요 삶터입니다. 아이들한테 먼 이웃 고을이나 고장도 놀이터이고 삶터가 됩니다. 아이들한테 이웃 다른 나라도 이웃집이나 놀이터나 삶터가 됩니다.


.. 시골에서는 날씨의 변화나 우편물을 받는 일 정도가 고작이지, 갑자기 젊어진 기분을 느낄 일이 드물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그럴 기회가 수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패기가 넘쳐서 (고향 마을을 등지고) 뉴욕에 산다고들 생각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패기가 부족해서 여기에 산다. 뉴욕에서는 보호받는 느낌을, 또는 그게 아니어도 쉽게 다른 대용물을 찾을 수 있으니까 … 통근자들은 이 도시에 밀물과 썰물 같은 출퇴근의 번잡함을 주고, 본토박이들은 도시에 견고함과 연속성을 부여하지만, 정착민들은 도시에 열정을 불어넣는다 ..  (28, 29쪽)


  매화꽃이 모두 집니다. 매화꽃이 진 자리에는 꽃받침이 남습니다. 꽃받침이 천천히 시들면서 씨방이 굵겠지요. 머잖아 매화열매가 맺히리라 생각해요. 우리 집 매화나무 옆에는 감나무가 두 그루 있고, 감나무 한 그루 옆에는 무화과나무가 함께 자라며, 다른 감나무 옆에는 후박나무가 나란히 자라요. 처음부터 무화과나무와 후박나무가 감나무랑 얽히지 않았을 테지만, 새가 날라다 준 씨앗으로 마침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었지 싶습니다. 뒤곁 감나무와 후박나무 바로 앞에는 갯기름나물이 자랍니다. 해마다 조금씩 퍼집니다. 해마다 몇 잎만 톡톡 끊어서 먹습니다. 더 많이 퍼지면 실컷 즐기고 싶습니다.


  어제는 겨우내 마당에 쌓아 둔 쑥대와 가랑잎을 뒤꼍으로 치웁니다. 겨우내 눈비를 맞은 쑥대는 알맞게 삭은 내음이 납니다. 지난해에 뒤꼍에 심은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곁에 쑥대를 놓습니다. 알맞게 삭아 흙이 되는 가랑잎도 나무 둘레에 흩뿌립니다. 풀잎과 나뭇잎은 한 해 사이에 이렇게 삭으며 흙이 되는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습니다.


  숲에 깃들면 숲내음이 좋은 까닭도 해마다 풀잎과 가랑잎이 새롭게 흙으로 태어나면서 검고 보들보들한 빛이 환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가꾸는 들도 풀잎과 나뭇잎이 스스로 삭도록 더 마음을 기울이면 한결 기름지고 좋은 흙으로 가득하면서 고소한 내음이 퍼질 테고요.


..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뉴욕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무언가를 우연히 만날 일이 없다. 이들은 맨해튼의 지갑을 뒤져 돈을 낚아 왔지만, 맨해튼의 숨소리를 들어 본 적도, 맨해튼의 아침을 맞이한 적도, 맨해튼을 품고 잠이 든 적도 없다. 평일 아침이면 대략 40만의 남녀가 지하철과 지하도 출입구에서 쏟아져 나와 이 섬으로 돌진한다. 이들 가운데, 트레이에 책을 쏟아내는 (옛 물레방아처럼 생긴) 도서승강기가 있는 공공도서관 열람실에서, 참나무에 둘러싸여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근사한 고요 속에 나른한 오휴를 보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 맨해튼은 확장할 수 있는 다른 방향이 없기 때문에 하늘로 팽창할 수밖에 없었다 ..  (30, 33쪽)


  오늘 아침에 올들어 첫 거미줄을 봅니다. 나뭇가지나 전깃줄 사이로 집을 짓는 거미는 오늘 처음 보았어요. 풀거미는 한 달쯤 앞서부터 보았어요. 풀거미는 옆밭이나 마당이나 뒤꼍에서 풀을 뜯는 동안 자주 보았습니다.


  뒤꼍에 깔린 큰돌을 옮기려고 들었더니 큰돌 밑에서 개미가 와글와글 움직여요. 아차, 개미들이 큰돌 밑에 집을 지어서 살았구나 하고 느끼며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이 큰돌을 다시 그 자리로 놓지 못합니다.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미들아, 너희들은 너희 나름대로 너희 집을 잘 건사할 수 있겠니?


  이월 끝무렵이나 삼월 첫무렵에 나비를 보았을 적에는 나비가 너무 일찍 깨어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사월 문턱에 깨어난 온갖 나비를 보면서 이 나비들은 알맞게 잘 깨어났다고 느낍니다. 겨울을 잘 견디고 씩씩하게 깨어난 나비는 새롭게 사랑을 속삭이고는 저희가 좋아하는 나무에 살며시 알을 낳겠지요. 알에서 깬 애벌레는 먼먼 옛날부터 즐기던 나뭇잎을 아삭아삭 갉아먹으면서 푸른 몸을 키울 테고, 멧새는 애벌레를 찾아 나무마다 내려앉아 여기저기 살필 테고요.


  해마다 보아도 질리지 않습니다. 해마다 보면서 새롭습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햇살도 날마다 새삼스럽습니다. 날마다 마시는 바람도 날마다 싱그럽습니다.


.. 도시 안에 도시가 있고 그 안에 또 도시가 있다. 그러므로 뉴욕 어느 곳에 살든 한두 블록 안에서 식료품점, 이발소, 신문가판대, 구두닦이점, 얼음·석탄·장작 지하저장고, 세탁소, 빨래방, 델리, 꽃집, 장의사, 영화관, 라디오수리점, 문구점, 잡화점, 양복점, 약국, 차량정비소, 찻집, 술집, 철물점, 주류판매점, 구두수선점을 찾을 수 있다 … 각 동네에는 있을 건 다 있고 소속감도 아주 커서, 많은 뉴요커들은 시골 마을보다도 더 한정된 작은 지역 안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 모퉁이에서 두 블록만 걸어가면 모든 것이 낯설어 집에 돌아갈 때까지 불안해 할 것이다 ..  (37∼38, 39쪽)


  엘윈 브룩스 화이트 님이 쓴 짧은 수필 《여기, 뉴욕》(숲속여우비,2014)을 읽습니다. 이 책은 1949년에 미국에서 처음 나왔고, 한국말로는 2014년에 처음 선보이지 싶습니다. 엘윈 브룩스 화이트 님은 이녁이 되돌아보는 미국 뉴욕 이야기를 더 길게 쓸 수 있었을 테지만, 꼭 이만큼 조그맣게 쓸 만하기도 하겠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녁이 바라보는 뉴욕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뉴욕이 아니라, 큰 뉴욕에 작은 도시가 있고, 작은 도시에 또 작은 도시가 있으며, 또 작은 도시 사이에 수없이 작은 마을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모인 삶터이거든요.


  작은 책에서 숨쉬는 ‘마을’ 이야기입니다. 작은 책으로 들려주는 ‘마을’ 노래입니다.


.. 이 도시는 관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증오와 적의와 편견이라는 방사능 구름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 … 뉴욕이 가까워지는 웨스트사이드 도로에서 운전자는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마치 물레방아에 끼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나무조각처럼, 뒤에서 몰아대고 양쪽에서 꼼짝 못하게 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 이전의 덜 복작거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뉴욕은 불쾌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뉴요커들은 기질적으로 편안하고 편리한 것을 갈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 살 테니까 ..  (50∼51, 56, 57쪽)


  《여기, 뉴욕》과 같이 ‘여기, 서울’을 누군가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 골골샅샅 저마다 새로운 빛과 넋을 담아 ‘여기, 이곳’을 쓸 수 있어요. 1980년대 첫머리에 태어난 《한국의 발견》은 1980년대 눈썰미로 바라본 이 나라 이야기예요. 다만, 《한국의 발견》은 이 나라 모든 시와 군 발자취와 모습을 골고루 담으려 하면서 ‘여기, 이곳’ 이야기보다는 문화와 역사와 경제 이야기로 기울어집니다. 문화도 역사도 경제도 모두 우리 삶인 줄 헤아린다면, 우리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를 조촐하게 적바림하면서 조그마한 책으로 꾸미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서울사람은 부산사람 이야기를 듣고, 밀양사람은 장흥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강릉사람은 연천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오늘 여기 이곳에서 누리는 삶을 어깨동무하면서 나눈다면 어디에서나 평화와 민주와 자유가 살가이 춤추도록 북돋울 수 있지 싶어요.


  나는 《여기, 뉴욕》을 읽으며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느꼈습니다. 4347.4.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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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화) -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봄
김용택 지음, 주명덕 사진 / 늘푸른소나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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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6

 


봄에 읽는 꽃
― 花,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봄
 김용택 글
 주명덕 사진
 늘푸른소나무 펴냄, 2004.11.5.

 


  봄에는 봄을 읽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을 읽고, 가을에는 겨울을 읽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읽어요. 빗물을, 빗방울을, 빗소리를 읽지요. 빗내음과 빗빛을 읽습니다.


  아이들 곁에서는 아이들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를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을 읽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를 읽어요.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읽습니다.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꿈을 읽습니다.


.. 내가 말을 하기 전에 꽃은 피고, 내가 꽃이다 꽃 봐라 저 꽃 좀 봐라, 라고 말을 하고 나서도 꽃은 핀다 ..  (16쪽)


  꽃은 철마다 피어납니다. 봄에는 봄꽃이고, 가을에는 가을꽃입니다. 풀과 나무는 저희 삶에 맞추어 꽃대를 올리거나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일찌감치 꽃빛이 맑기도 하고, 느즈막하게 꽃빛이 밝기도 해요.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빛을 마음속에 담습니다. 꽃을 가꾸는 사람은 꽃넋으로 살아갑니다. 꽃을 즐기는 사람은 꽃말을 도란도란 속삭입니다. 바라보는 대로 스스로 삶이 되거든요.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를 마음속에 담고, 숲을 바라보면 숲을 마음속에 담습니다. 별이 마음속에 깃들 수 있고, 구름과 새가 마음속에 깃들 수 있습니다. 스스로 바라는 대로 바라보고, 스스로 바라보는 대로 마음속에서 피어납니다. 어느 삶터를 보금자리로 삼느냐에 따라 삶과 생각과 사랑이 달라집니다.


.. 언젠가 아내가 학교에 왔다. 아내는 2층 2학년 교실인 내 교실에 오더니, 창문 밖으로 펼쳐진 앞마을, 앞강, 그리고 앞산을 보더니 감탄을 했다. 참 좋은 곳이다. 당신은 참 좋겠다. 사계절이 나날이 변하는 아름다운 병풍 안에서 사니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복 받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 나는 아내에게서 여자를 배웠다. 아니, 사람을 배운 것이다. 아내는 내가 무슨 일로 몹시 흥분하고 우왕좌왕하면 그 당시에는 절대 그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흥분이 가라앉으면 그때사 가만가만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를 해 준다 ..  (60, 71쪽)


  김용택 님이 쓴 글과 주명덕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花,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봄》(늘푸른소나무,2004)를 읽습니다. 꽃과 봄을 말하는 글과 사진을 읽습니다. 꽃이 피어나는 들과 봄이 찾아오는 마을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꽃은 어디에서나 꽃이기에 누구나 꽃을 만납니다. 바쁜 사람 곁에도 꽃은 피고 한갓진 사람 곁에도 꽃은 핍니다. 아픈 사람 곁에도 꽃은 피며 씩씩한 사람 곁에도 꽃은 피어요. 웃는 사람 곁에도 피는 꽃이요, 우는 사람 곁에도 피는 꽃입니다. 남녘에도 북녘에도 찾아드는 꽃이에요.


  전쟁무기가 그득한 곳에도 조그마한 꽃이 씨앗을 드리웁니다. 시골 들에도 온갖 꽃이 씨앗을 흩뿌립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찬 곳에도 갈라진 틈이 있어 앙증맞은 꽃이 씨앗을 떨굽니다. 바닷가에도 숲속에도 이 꽃 저 꽃 알뜰살뜰 씨앗을 퍼뜨립니다.


.. 늘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자연과 그리고 하얀 운동장에 나뭇잎 같은 아이들. 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시가 있었다. 내 몸을 빛내 주는 시, 내 암울한 청춘을 훤하게 뚫고 지나 온 그 빛나는 시 ..  (127쪽)


  우리 집 마당 한쪽은 쑥밭입니다. 아침마다 쑥을 한 바구니 뜯어서 국을 끓입니다. 쑥밭에는 제비꽃이 함께 피고, 민들레꽃도 함께 핍니다. 쑥이 쑥쑥 올라온 자리에 쇠별꽃도 함께 돋으며 꽃마리꽃도 같이 자라요. 흙으로 된 논도랑에는 미나리가 올라오고, 미나리 곁에서 별꽃이 하얗게 눈부시기도 합니다. 모든 봄꽃은 봄빛이면서 봄나물입니다. 봄나물은 봄밥이면서 봄넋입니다. 봄을 먹으면서 봄마음이 되고 봄노래를 부릅니다. 봄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은 봄놀이를 즐기고 어른들은 봄일을 합니다.


  꽃이 피어나는 따사로운 바람을 쐬면서 개구리와 맹꽁이가 하나둘 깨어나요. 개구리와 맹꽁이가 깨어나는 둘레로 커다란 새가 찾아듭니다. 커다란 새가 탁탁 날갯짓 소리를 내는 둘레로 유채 물결이 입니다.


  해가 길어집니다. 두꺼운 옷을 벗습니다. 겨우내 덮던 이불을 빨래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바깥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옹크리던 몸은 기지개를 켭니다. 모두들 까무잡잡한 얼굴과 손발이 됩니다. 볕바른 곳은 동백꽃이 송이송이 떨어지고, 볕이 덜 바른 곳은 한창 동백잔치가 벌어집니다. 봄은 삼월에 이어 사월로 접어듭니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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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空 -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 샨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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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6

 


늘 재미있는 삶
― 空,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샨티 펴냄,2013.12.10.

 


  이현주 님은 한자 ‘空’을 빌어 이녁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다른 어느 낱말보다 한자 ‘空’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로 ‘空’이라는 한자에서 꿈을 찾고 사랑을 느끼며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空’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낱말이 즐겁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열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고, ‘빚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어요. ‘살다’를 좋아하거나 ‘웃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스며드는 낱말에 마음을 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낱말마다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현주 님한테는 ‘空’이 된다면, 누군가한테는 ‘하늘’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해 줍니다. ‘바람’도 그렇지요. 바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도와요.


.. 자연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베푸는 모든 것이 공짜다. 빛, 공기, 물, 불, 흙, 바람, 나무열매 ……. 값이 없어서 공짜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그래서 공짜다 … 민들레가 해바라기만큼 크지 못한 것은 무능이 아니다. 그것이 무능이면, 해바라기가 민들레만큼 작지 못한 것도 무능이다 ..  (8, 150쪽)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늘 노래를 합니다. 길을 거닐 적에도 노래를 하고, 놀 적에도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하며, 잠자리에서도 곯아떨어져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를 해요. 버스에서도 노래를 하고, 기차나 전철에서도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목이 안 쉬나 봐요. 참말 거침없이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고뿔에도 안 걸리나 봐요. 참으로 그치지 않고 노래잔치입니다.


  나도 아이였으니 내 어릴 적에도 늘 노래였을까 하고 더듬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나 하고 곱씹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도 노래쟁이였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를 떠나 늘 노래였어요. 여기에서도 노래 저기에서도 노래입니다. 늘 놀면서 살던 어린 나날이니 늘 노래였습니다.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노래 어른노래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되새기지 않기도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건 길에서 흐르건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차근차근 외웁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모두 노래쟁이일 테지요.


.. 너를 천사로 만드는 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다 … 나 없으면 하느님도 사랑을 그리지 못하신다 … 모든 사람이 저마다 완벽하다. 하늘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60, 84, 159쪽)


  재미없는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며 재미없을 만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재미있고 저렇게 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호미질 한 차례가 재미있고 괭이질 두 차례가 재미있습니다. 이웃 아재가 선물한 홍합꾸러미를 물로 잘 헹구어 커다란 냄비에 수북하게 담아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도 홍합국물로 비빈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한테도 개한테도 홍합 껍데기를 잘 갈라서 속살을 한 점 두 점 떼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한테 따로 밥을 주니, 그동안 우리 집 언저리를 맴돌던 마을고양이가 샘을 냅니다. 왜 저희한테는 밥그릇 하나 없이 밥찌꺼기만 주고, 쟤한테는 따로 밥그릇까지 챙겨서 주느냐고 집 둘레에서 냥이냥이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냥이들아. 너희는 쥐를 잡아서 먹을 수 있잖아. 도시에 있는 어느 집에서 내내 사료만 먹었을 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르잖니. 게다가 우리 집에 눌러앉는 개가 밥을 먹다 남기면 어느새 다가와서 냠냠냠 너희도 나누어 먹잖아.


.. 저보다 어두운 빛 때문에 흐려지는 빛은 없다 … 참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  (93, 137쪽)


  이현주 님이 글과 글씨로 엮은 책 《空》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짤막하게 간추린 글과 알뜰히 그린 글씨를 한참 쳐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낱말 하나로 얼마든지 책 하나 태어납니다. 낱말 하나로 오래오래 이야기꾸러미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현주 님은 ‘空’ 하나로 이렇게 글과 글씨를 엮는데, 누군가 ‘사랑’ 하나로 글과 글씨를 엮을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엮는다든지 글과 사진을 엮을 수 있습니다. ‘꿈’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빛’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노래’로도 책이 태어나고, ‘흙’으로도 책이 태어나요.


  어느 책을 쓰든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때에 책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든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서 책이 됩니다. 하늘숨을 담는 책입니다. 하늘빛을 그리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눈과 같이 사뿐사뿐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비와 같이 싱그러이 내리는 웃음입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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