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空 -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 샨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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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6

 


늘 재미있는 삶
― 空,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샨티 펴냄,2013.12.10.

 


  이현주 님은 한자 ‘空’을 빌어 이녁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다른 어느 낱말보다 한자 ‘空’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로 ‘空’이라는 한자에서 꿈을 찾고 사랑을 느끼며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空’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낱말이 즐겁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열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고, ‘빚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어요. ‘살다’를 좋아하거나 ‘웃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스며드는 낱말에 마음을 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낱말마다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현주 님한테는 ‘空’이 된다면, 누군가한테는 ‘하늘’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해 줍니다. ‘바람’도 그렇지요. 바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도와요.


.. 자연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베푸는 모든 것이 공짜다. 빛, 공기, 물, 불, 흙, 바람, 나무열매 ……. 값이 없어서 공짜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그래서 공짜다 … 민들레가 해바라기만큼 크지 못한 것은 무능이 아니다. 그것이 무능이면, 해바라기가 민들레만큼 작지 못한 것도 무능이다 ..  (8, 150쪽)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늘 노래를 합니다. 길을 거닐 적에도 노래를 하고, 놀 적에도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하며, 잠자리에서도 곯아떨어져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를 해요. 버스에서도 노래를 하고, 기차나 전철에서도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목이 안 쉬나 봐요. 참말 거침없이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고뿔에도 안 걸리나 봐요. 참으로 그치지 않고 노래잔치입니다.


  나도 아이였으니 내 어릴 적에도 늘 노래였을까 하고 더듬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나 하고 곱씹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도 노래쟁이였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를 떠나 늘 노래였어요. 여기에서도 노래 저기에서도 노래입니다. 늘 놀면서 살던 어린 나날이니 늘 노래였습니다.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노래 어른노래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되새기지 않기도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건 길에서 흐르건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차근차근 외웁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모두 노래쟁이일 테지요.


.. 너를 천사로 만드는 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다 … 나 없으면 하느님도 사랑을 그리지 못하신다 … 모든 사람이 저마다 완벽하다. 하늘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60, 84, 159쪽)


  재미없는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며 재미없을 만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재미있고 저렇게 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호미질 한 차례가 재미있고 괭이질 두 차례가 재미있습니다. 이웃 아재가 선물한 홍합꾸러미를 물로 잘 헹구어 커다란 냄비에 수북하게 담아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도 홍합국물로 비빈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한테도 개한테도 홍합 껍데기를 잘 갈라서 속살을 한 점 두 점 떼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한테 따로 밥을 주니, 그동안 우리 집 언저리를 맴돌던 마을고양이가 샘을 냅니다. 왜 저희한테는 밥그릇 하나 없이 밥찌꺼기만 주고, 쟤한테는 따로 밥그릇까지 챙겨서 주느냐고 집 둘레에서 냥이냥이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냥이들아. 너희는 쥐를 잡아서 먹을 수 있잖아. 도시에 있는 어느 집에서 내내 사료만 먹었을 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르잖니. 게다가 우리 집에 눌러앉는 개가 밥을 먹다 남기면 어느새 다가와서 냠냠냠 너희도 나누어 먹잖아.


.. 저보다 어두운 빛 때문에 흐려지는 빛은 없다 … 참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  (93, 137쪽)


  이현주 님이 글과 글씨로 엮은 책 《空》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짤막하게 간추린 글과 알뜰히 그린 글씨를 한참 쳐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낱말 하나로 얼마든지 책 하나 태어납니다. 낱말 하나로 오래오래 이야기꾸러미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현주 님은 ‘空’ 하나로 이렇게 글과 글씨를 엮는데, 누군가 ‘사랑’ 하나로 글과 글씨를 엮을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엮는다든지 글과 사진을 엮을 수 있습니다. ‘꿈’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빛’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노래’로도 책이 태어나고, ‘흙’으로도 책이 태어나요.


  어느 책을 쓰든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때에 책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든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서 책이 됩니다. 하늘숨을 담는 책입니다. 하늘빛을 그리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눈과 같이 사뿐사뿐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비와 같이 싱그러이 내리는 웃음입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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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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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0

 


이 땅에 없는 노래를 부르다
―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글
 예담 펴냄, 2013.12.20.

 


  버스를 타고 달리면 버스 엔진과 차바퀴 소리에 묻혀, 버스가 지나가는 길에서 퍼지는 소리를 하나도 못 듣습니다. 버스가 멧자락을 가로지르든 바닷가를 달리든, 버스에서는 엔진과 차바퀴 소리만 가득해요. 게다가, 요즘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습니다. 바깥소리와 바깥바람 어느 것도 맞이하지 못합니다. 멀거니 유리창으로 쳐다보는 모습일 뿐입니다.


  기차를 타고 달리면 쇠바퀴 소리에 묻혀,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서 울리는 소리를 하나도 못 듭습니다. 기차가 깊은 두멧자락 구멍으로 가르지르듯, 예쁜 시골마을 곁을 달리든, 기차에서는 쇠바퀴 소리만 가득합니다. 더욱이, 오늘날 기차는 창문이 몽땅 통유리예요. 예전에는 기차에서도 창문을 열 수 있었지만, 이제 창문 여는 기차는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난 뭘까? 음식을 돈 주고 사먹으며 온갖 병명을 기억해야 하는 나는 뭘까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 서연이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처가에서 저녁을 먹고 좀더 시간을 보냈다. 아내의 과거를 듣고 질투하며 약이 오른 내 모습, 좀 어처구니없는 내 모습. 오늘은 갔다 … 기형도 산문집을 읽다. 짧은 여행의 기록. ‘짜쉭’ 스물아홉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목매다는 것인까. 다른 이들보다 좀 나은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 어느 삼류 극장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그 짧은 여행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을까 ..  (21, 32, 38, 40쪽)


  사람들은 여행을 다닙니다. 여행이 아닌 출장이든 무엇이든, 기차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돌아다닙니다. 옛날처럼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가까운 곳도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요. 가까운 곳이라 하더라도 자가용을 몰지요.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걸어서 다니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5킬로미터쯤, 또는 10킬로미터쯤 걸어서 다니려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두 시간이나 세 시간쯤 걸어서 마을과 마을을 지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찾아가는 이는 몇이나 될까요.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서 모든 소리를 잊습니다. 걸음과 등을 지고 자동차나 기차에 익숙하면서 봄내음과 여름바람과 가을빛과 겨울소리 모두를 잊습니다. 아니, 잃는다고 해야 할까요.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 가더라도, 점과 점 사이를 가로지를 뿐입니다. 서울과 여수 사이에 어떤 시골과 숲과 마을이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눈으로는 예쁜 들과 숲을 바라보더라도, 이 들과 숲에서 흐르는 바람과 소리를 하나도 맞이할 수 없어요.


  고속도로는 어떨까요. 고속도로가 아름다운 시골마을 가로지르더라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시골빛에 마음을 쓰지 못해요. 아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물결 사이에서 자동차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이러면서 남보다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데에 온마음 기울입니다.


.. 정말 힘들다.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이 돈을 버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 1985년 초에 나는 군에 입대했어요. 결혼을 이십 일 앞두고 군대에서 돌아가신 큰형님 덕택(?)에 6개월만 복무했어요. 방위보다 짧은 6개월. 남들보다 짧게 다녀온 셈이지요. 제대할 때까지 앞일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었습니다. 복학하니 친구들은 취업한답시고 풀숲에 머리 처박은 꿩처럼 도서관 책상ㄷ에 머리 숙이고 공부만 했고, 나 역시 앞일이 걱정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비로소 절박해진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문득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노래 부르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  (45, 77쪽)


  지게를 짊어지고 걸어서 숲에 깃들어 나무를 하고 장작을 모으던 사람은 두 다리로 흙과 나무와 풀을 느낄 뿐 아니라, 눈과 귀와 코와 살갗으로 숲과 바람과 하늘과 햇볕을 골고루 누립니다. 맨발로 고샅과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과 꽃을 고루고루 즐깁니다.


  꽃은 꽃집에 있지 않습니다. 꽃은 흙이 있는 들과 숲에 있습니다. 바람은 공기청정기에 있지 않습니다. 바람은 지구별 어디나 찬찬히 흐르면서 숲에서 싱그럽게 태어납니다. 물은 정수기나 물꼭지나 댐에 있지 않습니다. 물은 구름과 바다와 시내와 샘과 가람에 있습니다. 나무는 돈을 들여 척척 박을 때에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는 어미나무가 내놓은 씨앗이 흙땅에 떨어져 찬찬히 싹이 트고 줄기를 올려서 나무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와 학원을 잘 다니면 될까요.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한테서 사랑을 받아 사랑을 고이 품고는 사랑을 예쁘게 빛내어 펼칠 때에 아름다운 숨결이지 않나요.


  우리 어른은 어떤 목숨인가요. 오늘 바라보기로는 어른이지만, 우리도 아기로 태어나 갓난쟁이 나날을 거치고 어린이로 자라면서 이 땅에 섭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아기요 아이이면서 어른입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똑같은 사람이고 푸른 숨겨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물려받았듯이 고운 사랑을 물려줄 빛입니다.


.. 저는 집에서 용돈 받아서 친구들이랑 소주 먹고 책값 받아서 술 먹고 엠티비 받아서 그 다음 날 밤새 술 먹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근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이런 데도 관심을 가지고 가사를 쓰는구나, 뜻이 좋은 것 같아 관심을 가졌습니다. 몇 장을 더 넘기면서 보는데 제목이 아주 재미있는 게 또 있었습니다. 〈못 생긴 얼굴〉. 괜스레 동질감이 느껴지는 제목이었습니다 … 노래 가사 중에 욕 나오는 것도 처음 봤습니다. 오죽하면 욕을 했겠습니까마는, 그 다음 줄 가사는 더 놀라웠습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일터 나갔지 / 처음 잡은 삽자루가 손이 아파서 / 땀 흘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니까 / 나도 몰래 눈에서 눈물이 난다 / 하늘의 태양아 잘난 척 마라 / 자랑스런 우리 아버지” 갑자기 저희 아버님 생각이 나더군요. 그렇게 그 노래책에 빠져들었습니다. “서방님의 손가락은 셔섯 개래요……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서니 빈털터리래.” 그 노랫말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한편으론 기뻤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그런 기분이었죠.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라디오에서 나오거나 레코드판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전부 다이겠거니 했죠.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  (78∼81쪽)


  김광석 님이 남긴 글조각을 그러모은 《미처 다 하지 못한》(예담,2013)을 읽습니다. 바깥일을 하러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읽습니다. 새해를 맞이해 일곱 살이 된 큰아이는 문간에서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아니 아빠, 어디 가요?” 얘야, 너 왜 갑자기 아버지 아닌 아빠라 하니? 부러 곰살궂게 부르고 싶니? “서울에 가.” “서울? 나도 가고 싶은데.” “그래, 너도 가고 싶지? 앞으로 같이 갈 수 있어. 오늘은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 때문에 가니까, 우리 집에서 동생하고 사이좋게 놀고 어머니하고 밥 맛있게 먹으면서 잘 놀아.” “칫. 응, 알았어.”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서 생각합니다. 바깥일 때문에 드나드는 곳이 여럿 있는데, ‘서울’이라는 이름을 아이한테 자꾸 이야기하면, 아이도 앞으로 ‘서울’을 자꾸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바깥일을 겨우 끝마치고 시골집으로 전화를 할 적에 아이가 다시 “아버지 어디 있어요?” 하고 물을 적에, “응, 한글문화연대에 있어.”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 “응? 응.” 하고만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움직이는 곳과 만나는 사람 이름만 알려주어야겠다고 느낍니다.


.. 녹음은 거의 끝날 무렵이었는데 심의를 못 받으니까 음반 발표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아침이슬〉 〈늙은 그대 노래〉 등 금지곡은 심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접수를 해야 되는데 심의위원회에서는 접수조차 하지 받지 않았던 거지요. 얼마 전 정태춘 씨가 ‘음반 파업’의 맥락으로 심의를 받지 않고 불법 음반을 만든 것도 다 그 맥락입니다. 개인의 사상물이나 머릿속에서 나온 결과물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말라는 의미죠 … 하지만 음반 심의가 끝이 아닙니다. 방송 심의가 또 있습니다 … 어느 모임에 갔을 때였습니다. 모임에 참가하신 칠순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우산도 없이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는데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비도 잊은 채 한참을 서 있으셨답니다. 그 노래가 〈사랑했지만〉이었답니다 …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반성을 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시도하지도 않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수동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할머니의 잊었던 감정을 되살려준 노래이기에 조금 더 열심히 부르고 좋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88, 99쪽)


  덜컹덜컹 흔들리고, 큼지막한 소리로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귀가 찢어질 듯하지만, 책을 손에 쥡니다. 모두들 텔레비전을 목을 빼고 쳐다보거나 손전화를 들어 뭔가 들여다보는 시외버스에서, 솜으로 귀를 막고 책을 펼칩니다. 서른 즈음을 살던 김광석 님이 조각조각 남긴 글을 차근차근 읽습니다. 멋모르고 살다가 한돌 님 노래를 처음 만나며 받은 놀라움을 퍽 길게 적바림한 글을 읽습니다. 백창우 님한테서 노래를 받은 이야기를 적은 글을 읽습니다.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동물원〉이라는 모임을 꾸리면서 음반을 하나 냈는데, 함께 노래하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듯이 ‘돈을 벌 회사’에 들어가고 혼자 남던 그무렵,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래를 부르면서도 돈을 벌 수 있어요. 노래를 짓고, 노래를 나누며, 노래로 이야기꽃 피우면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돈을 벌 수 있어요. 시골에서 흙을 파면서도 돈을 벌 수 있어요. 돈을 벌겠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어요. 곁님을 보듬고 아이를 보살피려 하면, 어디에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어버이로 살아가는 마음은 ‘내 한몸을 넘어서는 한솥지기’를 그리는 마음이니까요.


  아버지가 뚱딴지 같은 사람한테 고개를 숙여요. 어머니가 우악스러운 사람한테 고개를 숙여요. 회사에서 고개를 숙여요.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고개를 숙여요.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집안을 지키려고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일까요. 바보스러운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아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저딴 사람한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 돈은 안 벌어도 된다고 외칠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넌 아직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몰라’ 하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는 어버이는 어떤 마음일까요. 조용히 남몰래 울음을 삭히는 하루는 어떤 마음일까요.


.. 내 딸이 태어날 때 처음 본 얼굴은 의사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딸을 직접 받아냈기 때문이다. 의사는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내가 아이를 받아냈다. 아주 놀라웠다. 아!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그 놀라운 광경은 괴기영화보다 더했다. 참 신기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게. 놀라 가지고 멍청하게 있다가 밖에 나갔는데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도 쉽게 안 보였다. 잘생겼건, 못생겼건, 있는 자건, 없는 자건, 다 그렇게들 태어나는구나. 좀 없는 사람이다 싶으면 슬쩍 무시하고 좀 있는 사람이다 싶으면 괜히 쩔쩔매던 나 자신이 부그러워졌다 ..  (126쪽)


  이 땅에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땅에 사랑이 없기에,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 평화가 없기에, 평화를 노래합니다. 이 땅에 꿈이 없기에, 꿈을 노래합니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들여다보셔요. 아이들이 열두 해 동안 학교를 다니며 들추어야 하는 교과서에는 사랑도 평화도 꿈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열두 해 동안 오직 대학바라기를 해야 합니다.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한테 사랑이나 평화나 꿈을 들려주지 않아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 아이한테 사랑이나 평화나 꿈을 들려주려는 어른이 없어요.


  책은? 책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나요? 노래는? 노래는 무언가 이야기를 하나요?


  오늘날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빛’을 그리는 이야기는 한 토막조차 안 실립니다. 어느 회사 역사 교과서가 역사를 비튼다고 말썽이 되는데, 다른 교과서라도 다를 대목 없다고 느껴요. 이 나라 모든 교과서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밀어넣어요. 이 나라 모든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지식과 정보만 집어넣어요. 삶을 보여주는 교과서가 없어요. 사랑을 속삭이는 교과서가 없어요. 평화를 바라고 꿈을 찾는 이야기를 담은 교과서가 없어요.


  역사 교과서 가운데 ‘시골에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이웃을 아끼며 조용히 흙을 일구던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교과서가 있나요? 지난날에는 시골 농사꾼이 99.9%였고, 한양 언저리 임금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권력자는 한 줌조차 안 되었는데, 모든 역사책은 고작 0.1%밖에 안 되는 사람들 이야기만 잔뜩 실어요. 역사를 비트는 교과서는 그 한 가지뿐일까요. 다른 역사 교과서는 역사를 제대로 담거나 보여주는가요.


  이 땅에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땅에 참다운 사랑이 없기에, 참다운 사랑을 노래로 부릅니다. 이 땅에 맑은 평화가 없기에, 맑은 평화를 노래로 부릅니다. 이 땅에 착한 꿈이 없기에, 착한 꿈을 노래로 부릅니다.


  일흔 할매가 비를 흠뻑 맞으면서 김광석 님 노래를 하염없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장대비 쏟아지는 새벽에 비를 오지게 맞으면서 신문을 돌리는 자전거에서 신나게 외치듯 김광석 님 노래를 불렀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홀딱 젖은 몸으로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벗고 빨래하고 새벽밥 안치고는 그대로 뻗어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를 틀어 놓고 곯아떨어지곤 했습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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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1-0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습니다. ^^
또 한명의 시인을 만난 기분이라, 자꾸 읽고 또 읽고 하네요.
인생을 수영장이라고 한 부분이 참 마음에서 이상하게 메아리치대요.
바닥까지 가면 다시 차고 올라온다는, 결국 이분은 바닥에서 다시 올라오시지 않았지만요.
참, 가슴 시린 책입니다...
느낌글 잘 읽고 갑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살기님 ^^

숲노래 2014-01-04 18:00   좋아요 0 | URL
드림모노로그 님 새해도
새로우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나날 될 테지요.

사랑스레 읽는 책 하나에서
아름다운 빛이 차츰 스며들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4-01-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아픔이 느껴지는 저자의 책을 읽으셨군요.
처음 공개되는 육필 원고엔 아픔과 슬픔이 녹아 있을 듯하네요.

아이가 ‘서울’을 자꾸 생각하게 될까 봐, 서울 대신 다른 이름을 댄다는 님의 말이 인상 깊네요.
이런 세심함이 아이들 키울 땐 꼭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

숲노래 2014-01-04 18:00   좋아요 0 | URL
아픔과 슬픔보다는
즐겁게 살가가고픈 '이야기'가 있어요.

저도 김광석 님 노래를 듣고 부를 적에
아픔과 슬픔 아닌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늘 느꼈어요.
 
검은 우산 아래에서 - 식민지 조선의 목소리 1910-1945
힐디 강 지음, 정선태.김진옥 옮김 / 산처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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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1

 


역사책에는 역사가 없다
― 검은 우산 아래에서
 힐디 강 엮음,정선태·김진옥 옮김
 산처럼 펴냄,2011.7.10./13000원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 식민지를 겪었습니다. 이 나라는 군사독재정권을 겪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찍어내리는 정치권력을 꾸준히 겪고, 계급과 학벌과 지연 따위로 사람을 내리누리는 사회권력을 꾸준히 겪습니다. 바보스럽다 할 정치권력자가 작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작은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거나 다투기까지 합니다. 정치권력자나 경제권력자나 문화권력자가 작은 사람들한테 저지르는 짓을 똑같이 이웃이나 동무한테 저지르곤 합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고작 백 해쯤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신분과 계급으로 빈틈없이 나누어 이웃을 섬기지 않는 정치·사회 얼거리였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을살이였지만, 양반 신분과 계급은, 또 임금 신분과 계급은, 또 사대부 같은 이들 신분과 계급은, 사람살이를 아름답게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언제나 작은 사람들을 얽매거나 가두거나 들볶습니다. 권력을 가로채려는 다른 이들도 똑같이 작은 사람들을 옭아매거나 숨통을 죄거나 괴롭힙니다. 이들은,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여기거나 권력을 가로채려고 생각하는 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요?


- 두 번째 큰 변화는 1900년에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새 며느리의 이름을 지은 다음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무개의 딸’이라고만 등록됐지요. (강병주,1910년 평북 출생/33쪽)


- 나중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또 일본놈들한테 여러 차례 얻어맞았지요. (박성필,1917년 경남 출생/135쪽)


- 그저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설, 모욕, 박해를 당해를 당하고도 그러려니 했지요. 그것은 조선인의 정서에 무척 큰 상처였어요. (최길성,1911년 경기도 출생/147쪽)


  권력을 거머쥐었건 권력을 가로채고 싶건, 모두 밥을 먹어야 목숨을 건사합니다. 밥 안 먹고 목숨을 건사하는 권력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흙에서 나오겠지요. 흙은 어디에 있나요? 시골에 있지요. 궁궐에는 흙이 없어요. 양반네 기와집에도 흙이 없어요. 흙은 시골에 있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이 있기에, 임금도 있고 권력자도 있으며 지식인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말없이 흙을 가꾸는 사람이 있으니, 대통령도 있고 시장이나 군수가 있으며, 의사이니 변호사이니 교사이니 연예인이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모두 죽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철철 넘쳐도 굶어서 죽겠지요.


  석유가 펑펑 솟더라도 맑은 물 한 줄기 없으면 목이 말라 죽습니다. 석유가 흐드러져 돈으로 밑을 닦고 집을 짓는다 하더라도 물 한 모금 없으면 목이 말라 죽어요.


  다이아몬드나 금을 잔뜩 짊어지면 부자가 될까요? 아마 부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었어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지 못하면 죽어요. 100억이든 10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싱그러운 바람이 없으면 곧바로 죽어요.


- 그때 나는 한복을 입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가난한 농부들은 9월 말쯤에 겨울옷으로 바꿔 입고는 이듬해 4월까지 밤낮 그 옷만 입고 지냈어요. 그동안에는 옷을 빨거나 목욕을 하지 않았지요. 알다시피 한복은 하얀색인데 봄이 되면 때가 타서 거의 시커멓게 됩니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 그랬어요. 그때가 1월이었으니까 석 달 이상 같은 옷을 입고 지낸 셈이지요. 신발은 짚신이었어요. 가죽신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더럽고 냄새나는 한복 차림에다 짚신을 신고서 일본 오사카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지요. (홍을수,1905년 경남 양산 출생/69쪽)


  제아무리 엄청나다는 권력이나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간다 한들, 이웃나라 사람들이 아무도 흙을 안 일구면 어찌 될까요. 채찍질을 해대며 흙을 일구라고 시킨들 될까요. 고문을 하고 살인을 하면 될까요. 맞아서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똑같다고 여겨 시골지기 모두 꼼짝않고 버티면 어찌 될까요. 대통령도 임금도 권력자도 살인마도 군인도 정치꾼도 재벌 우두머리도 연예인도 영화배우도 운동선수도 교사도 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과학자도 뭣뭣도 모두 굶어서 죽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왜 일본 군국주의 군화발에 짓밟혔을까요. 군대가 없어서? 임금과 신하가 바보스러웠기에? 양반네들이 바보짓만 일삼았으니? 여러 가지 골고루 섞였을 텐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셔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밥을 굶으면 죽어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물을 못 마시거나 바람을 들이켜지 못하면 죽어요. 나라가 버티는 까닭도 나라를 먹여살릴 뿐 아니라 튼튼히 받치는 시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나 과학 모두, 시골이 밑바탕이 되니 펼칠 수 있어요. 전쟁은? 전쟁도 똑같아요. 군인은 흙 먹고 전쟁을 하나요? 군인은 굶거나 숨 안 쉬면서 총을 쏘나요? 총알이 없어도 전쟁은 하지만, 밥을 굶고는 전쟁을 못해요. 적군이든 아군이든 밥때에는 밥을 먹느라 서로 쉬지요. 밤에는 잠을 자야지요. 안 먹이고 안 재우면서 전쟁을 하지 못해요. 그러면, 군인이 먹을 밥과 군인이 잠들 자리는 누가 마련해 주나요?


  오늘날 우리 사회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생각합니다. 밀양 송전탑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주 강정마을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평택 미군기지 말썽은 어떻게 되었나요? 크거나 작은 갖가지 말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길은 오직 하나예요. 모두 내려놓고 시골로 가면 돼요. 밀양도 시골 아니냐 하고 물을 텐데, 다 내주고 다른 시골로, 더 조용하고, 더 깊은 두멧시골로 가면 돼요.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차근차근 시골로 가면 돼요. 한국전력 사람들만 두고, 경찰과 공무원만 두고,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시장만 두고, 다들 시골로 가면 돼요. 시골에서는? 군청에 군수와 공무원만 두고서 읍내와 면소재지를 떠나면 돼요. 읍내에는 군수와 공무원만 있으라 하고, 모두 시골자락에서 흙을 만지면서 조용히 지내면 돼요.


  왜 요리사가 대통령한테 밥을 차려 주어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손이 없나요? 왜 운전사가 대통령을 자가용으로 실어 날라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발이 없나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도록 해야 대통령이 달라지지요. 스스로 집을 짓고 이부자리 깔며 빨래를 손으로 하도록 해야 대통령이 거듭나지요. 한국전력은? 우리들이 전기를 안 쓰면 돼요. 우리 모두 전기를 스스로 뚝 끊고 안 쓰면 되지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 없어요. 면접서류나 이력서가 있어야 할 일 없어요. 삶을 밝히고 사랑을 꽃피우는 길에는 아무것도 쓸데없어요. 우리들이 스스로 도시로 몰려들어 어떤 권력이나 콩고물이나 떡고물을 바라기 때문에, 온갖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아요. 온갖 정치 말썽·경제 말썽이 불거지기만 해요. 


- 뭐라고요? 서당에 다녔냐고? 여자는 그런 델 다니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바느질하고 밥 짓는 거나 배웠지요. 그 나머지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들은 모두 소학교에 다녔지요. 나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오빠들이 말했지만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여자들은 그런 거 배울 필요가 없다. 모두 쓸데없는 짓이야.”라고 말했어요. (이옥분,1914년 충남 출생/93쪽) 

 


-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 마을의 신분 질서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음을 알아차렸어요. 우리 삼촌네는 하인이 많았고 그들은 모두 제 직분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모든 젊은이들이, 하인이고 양반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일본군에 징병되자 위계가 불분명해졌어요. 누구나 같은 운명이었고, 그러니 다들 평등해진 거지요.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많은 하인들이 삼촌네 집을 나와서 다른 도시로 이주했어요. 구질서가 붕괴된 거지요. (유덕희,1931년 충남 출생/256쪽) 


  힐디 강 님이 엮은 《검은 우산 아래에서》(산처럼,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힐디 강 님은 한국(남녘과 북녘)을 떠나 미국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이녁이 한국전쟁 언저리, 또는 일제강점기에 겪은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인문책 《검은 우산 아래에서》는 어쩌면 ‘이름난’ 사람들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으레 ‘이름 안 난’ 채 조용히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역사책에 안 나오는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역사학자는 눈여겨보지 않는 이야기가 이 책을 그득 채웁니다. 왜냐하면, 그예 삶이니까요. 그저 삶으로 누리던 하루하루이니까요.

 

- 이곳 감방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었어요. 왜 수감됐는지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저항운동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죠. 고문실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선생님은 거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하전,1921년 평남 출생/173쪽) 

 


- 경비병들은 우리를 고베 교외에 있는 기다란 막사 안으로 몰고 갔어요. 우리 그룹에는 조선인이 6천 명 있었어요. 3천 명은 미쓰비시, 3천 명은 가와사키. 모두 그 막사에 수용됐어요. 상상이 가세요? 식사는 콩, 콩, 또 콩이었어요. 흰 쌀밥은 한 번도 안 나왔어요. 그런 게 아예 없었지요. 이따금 작은 국그릇을 줄 때도 있었어요. 그런 때에도 적은 양만 나눠 줬어요. 우리는 젊고 배고프고 식욕이 넘쳤어요. 겨우 21살인데 어떻게 그런 음식으로 버틸 수 있겠어요? 견디다 못한 어떤 사람들은 몰래 음식을 조금 더 챙기려다가 얻어맞았어요. 아주 호되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지요. (정재수,1923년 전북 출생/223쪽) 


  역사를 배우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할까요. 역사를 말하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말해야 할까요. 정치를 말하거나 경제를 말할 적에도, 인문학이나 문학이나 문화를 말한다 할 적에도 ‘어떤’ 이야기를 말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보금자리를 ‘어떤’ 마을에서 가꿀 때에 스스로 사랑스러운 하루 될까요.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면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텐데, 우리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문화나 다른 모두, 오늘 이 모습대로 흐른다면 밝거나 맑은 앞날이 없습니다.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고서 무슨 정치 개혁을 읊나요.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고 교과서 지식 외워서 시험경쟁만 하는데 무슨 경제개발을 외나요.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고서, 신분과 계급과 돈에 따라 가르던 한국 사회였으니 식민지살이를 겪을밖에 없었습니다. 사람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갈 길에서 자꾸 벗어나고 끌려다니니 군사독재가 으르렁거렸어요. 오늘은? 모레는? 글피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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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4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면
―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글
 이룸 펴냄, 2001.9.3.

 


  글지기 김별아 님이 쓴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를 읽습니다. 어느새 새책방에 사라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한 줄 두 줄 찬찬히 읽습니다. 김별아 님 글 한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생각합니다. 김별아 님 글 두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참 읽는 동안, 또 책을 다 읽고 덮은 뒤로도, 오래도록 책이름을 떠올립니다.


  톨스토이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 빛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빛이기에, 러시아에서 먼 한국땅 글지기까지 이녁 이름을 빌어 책을 한 권 내놓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누군가,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쓸까요? 열 해쯤 뒤에, 서른 해쯤 뒤에, 쉰 해나 백 해쯤 뒤에,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뿐 아니라 “권정생처럼 죽고 싶다”라든지 “전우익처럼 죽고 싶다” 같은 이름을 붙여 책을 내놓을 글지기 있을까요?


.. 여성은 동물이 아ㅣㄴ고 가축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남성의 중간자도 아니고 말을 알아듣는 꽃이나 인공지능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를 낳아 길렀으며, 그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생을 이겨낸 존재에 대한 애정이다. 그것은 남성 자신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 나는 결국 극기 훈련을 통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맹수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나를 이겨야 한다지만 사실은 결국 나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여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  (40, 48쪽)


  김별아 님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가만히 읊습니다. 김별아 님이 쓴 글에 깃든 빛을 누리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이러다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톨스토이 평전을 헤아립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글을 읽으면 톨스토이 님이 스스로 마무리지은 삶자락이 잘 나옵니다. 그래, 그런 죽음을 떠올릴 만할 테지만,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삶이라면, 내 즐겁고 아름다운 삶이라면, 나는 “톨스토이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하겠어요.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무개처럼 죽고 싶다” 하는 노래가 아닌, “아무개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개처럼 사랑하고 싶다, 아무개처럼 꿈꾸고 싶다, 아무개처럼 춤추고 싶다,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나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아름답게 살고 싶다”예요. “사랑하며 살고 싶다”예요. “노래하며 살고 싶다”입니다.


.. 나는 남자로 살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좋은 제자, 좋은 부하, 좋은 후배, 좋은 친구와 동료를 왜, 얼마만큼 성적 대상으로 보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평소에 그 마음을 표현하거나 고백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여 여성을 사로잡는 대신 어쩌다가 상명하복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을 이용하여 여성을 강제로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숱한 의문 중에 가장 풀리지 않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정말 남성으로서 여성을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85쪽)


  글 한 줄에는 삶이 드러납니다. 글 한 줄에는 삶이 묻어납니다. 웃음을 꽃피운 삶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 고스란히 글 한 줄에 스며듭니다. 기쁘게 노래한 빛이 글로 다시 태어나요. 고달프거나 고단했던 지난날이 글로 거듭 태어나요.


  어떤 글을 쓸 적에 스스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써서 이웃한테 선물할 적에 서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쓰면서 삶꽃 피울 적에 우리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이 샘솟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내 글은 나한테 어떤 빛이 되고, 내가 적은 글 한 줄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어떤 꿈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먼저 나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한다면 내 글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을 때에, 이 글을 내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부터 맛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살붙이한테 차려 줍니다. 나부터 기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시골집으로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놓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을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 살며시 건넬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이 드러난 사진으로 골라서 건네요.


.. 오로지 누군가의 ‘삶’ 그 자체인 삶을 소설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했던 나의 치기 어린 시도가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 느껴졌다 … 아이를 통해 나의 결점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나의 무지, 나의 이기, 나의 나약함과 철없음, 의존성과 무책임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듯 깨달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를 키우고 있구나 ..  (212, 218쪽)


  우리 아름답게 살아요. 우리 아름답게 노래해요. 우리 아름답게 어깨동무해요. 즐겁게 죽어도 될 테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해요. 톨스토이처럼 살고, 김별아처럼 살며, 나답게 살아요. 사랑스레 살고 눈빛 밝히며 살고 노래 부르면서 살고 알콩달콩 이야기빛 누리면서 살아요.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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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흙이 가르쳐주네 - 네이버 인기 블로그 '풀각시 뜨락' 박효신의 녹색 일기장
박효신 지음 / 여성신문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5

 


시골에 살면 모두 시인이다
―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
 박효신
 여성신문사 펴냄, 2007.7.10.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 시인인 어린이로 살며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도 모두 시인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시인 옷을 벗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시인하고 아예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문학을 해야 시인이란 뜻이 아닙니다. 삶을 늘 새롭게 맞아들이고 누리고 즐기면서 빛낼 때에 비로소 시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 손길이 시를 짓는 손길입니다. 호미를 쥐어 흙을 다루는 손길이 시를 다루는 손길입니다. 풀내음을 맡고 꽃송이를 보듬는 손길이 시를 보듬는 손길이에요. 하늘을 읽고 별과 달을 읽는 눈길이 곧 시를 읽는 눈길입니다.


  오늘날에는 “시인이라 할 어린이가 자취를 감춘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이 시인답게 숲과 들과 냇물과 멧골을 누리지 못하거든요. 아이들이 모조리 도시로 휩쓸리면서 시멘트바닥과 아스팔트땅에서 자동차와 전철에 시달리기만 하거든요.


..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것 거의 다하며 살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해 본 것 중 씨 뿌리고 거두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었다. 매일매일이 기다려지고 새롭고 긴장되고 그렇다 … 지난 3개월 동안 자연이 내게 준 기쁨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씨앗을 파종하고 첫 번째 싹이 흙을 뚫고 뾰족이 올라왔을 때의 그 감격이란 … 난생 처음 내 손으로 장을 담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건 아니다. 단지 우리네 음식은 정성이 없으면 백발백중 실패라는 걸 알았다 ..  (9, 25, 176쪽)


  나는 “시골에 살면 모두 시인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시골에 살면 어른도 아이도 모두 시인입니다. 흙을 만지든 면사무소 일꾼으로 지내든 모두 시인입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살면서도 자동차로만 움직이고 기계만 만지려 할 적에는 시인하고 멀어집니다. 농약과 비료에 기대기만 하면 시인을 잊습니다.


  시집을 사거나 원고지에 시를 써야 시인이 아닙니다. 땅을 읽고 풀을 읽을 때에 시를 읽습니다. 논밭에 괭이 자국을 낼 적에 시를 씁니다. 시는 저 먼 데에 있지 않아요. 풀이름을 짓던 옛 시골마을 사람들 말마디가 싯말입니다. 꽃이름과 나무이름을 짓던 머나먼 옛날 시골마을 사람들 눈썰미가 시노래입니다.


  창작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에요. 삶이고 노래이며 빛입니다. 문학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에요. 사랑이고 꿈이며 이야기입니다.


.. 내가 관찰한 바로는 시골에서 정말 농사꾼은 여자들이다. 대개 아저씨들은 자기네들은 ‘큰일’이라고 하는 힘쓰는 일, 땅 갈고 경운기 운전하며 무거운 짐 나르는 일을 주로 하는 반면, 아줌마들은 갈아 놓은 땅에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잔일을 거의 혼자 다한다. 그러니 씨앗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속속들이 잘 알 뿐만 아니라 … 아끼고 덜 쓰기로 작정하고 가능한 한 실천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때문이다. 땅과 함께 살다 보니 쓰레기 문제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  (48, 79쪽)


  ‘풀각시뜨락’ 박효신 님이 쓴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여성신문사,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이 나오던 2007년은 내가 이오덕 님 ‘유고 갈무리’를 마치고 도시인 인천으로 돌아가던 해입니다. 충청도 멧골자락에서 이오덕 님 글을 만지며 시골빛 누리다가,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골목동네 한복판에 너비 70미터 산업도로 밀어붙이려는 개발정책’에 맞서 함께 싸웠어요. 터무니없는 개발행정하고 개발권력하고 맞서는 틈틈이 고향 골목동네를 돌아보았어요. 갓난쟁이를 안거나 업으며 날마다 너덧 시간씩 골목마실을 했어요. 도시 한복판 골목동네는 숨은 꽃밭이자 나무숲이었고, 이곳에 드리운 꽃빛과 나무내음 맡을 수 있어 즐거웠어요.


  사람은 누구나 시골에서 살아가면 시인이 되는데, 시골 아닌 도시에서 살더라도 이녁 보금자리를 꽃밭과 나무숲으로 일굴 수 있다면, 도시에서도 시인이 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시골에서 살면 시인이 되는 까닭은 꽃과 풀과 나무하고 어깨동무를 하기 때문이에요. 어린이가 모두 시인이 되는 까닭도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하면서 언제나 동무로 삼아 함께 놀기 때문이에요. ‘풀각시뜨락’ 박효신 님은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 하고 노래하시는데, 참말 바람과 흙한테서 배우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노래가 되요. 손에 연필을 쥐어 무언가 끄적이면 고스란히 시가 됩니다. 연필 아닌 호미를 쥐어 밭을 일구면? 이때에 밭은 멋들어진 ‘작은 숲’이 됩니다.


.. 나 역시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거였다. 아니,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함’이라고 해 둬야 정확하겠다 …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기만 하며 산다.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닐 터인데, 식물에 대해 늘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도시에 살면서는 느끼지도 알지도 못했다 … 퇴비 만드는 법을 배운 후로는 짚과 왕겨와 쌀겨를 적당히 섞어 거름으로 쓰고 있다. 이러자면 그야말로 똥을 떡 주무르듯 해야 한다. 그것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절대 못한다. 땅에서 취한 것을 땅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  (96, 146, 188∼189쪽)


  그런데, 이 책에서 박효신 님은 “‘개불알풀’은 이름이 흉하다고 해서 요새는 ‘봄까치꽃’으로 바꿔 부른다지만, 난 개불알풀이란 이름이 더 좋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마치 동네 어슬렁거리는 수캐의 뒤꽁무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딱 그 모양이다(114쪽).” 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2007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을 고쳐서 다시 낸 적 있는가 궁금한데, ‘개불알풀’은 한국에서 자라는 봄꽃하고 아주 다른 갈래입니다. 일본에서 자라는 풀이에요. 일본 학자는 일본에서 자라는 ‘한국 봄꽃과 다른 풀’을 보고 이런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을 일제강점기에 한국 식물학자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에서 저절로 돋는 봄꽃한테도 이 이름을 잘못 붙였어요.


  ‘봄까치꽃’은 몇몇 시인이 잘못 퍼뜨린 이름입니다. 제 이름은 ‘봄까지꽃’이에요. 겨울이 지나갈 무렵에 피고 꼭 봄이 끝날 무렵까지 핀대서 ‘봄까지꽃’입니다. ‘까치’가 아닌 ‘까지’예요. 갓난쟁이 새끼손톱보다 조그마한 봄까지꽃 송이송이는 일본에서 나는 개불알풀하고 너무 다릅니다. 이런 대목을 조금 더 슬기롭게 읽고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에서 살면 모두 시인이 되지만, 이 땅과 마을과 보금자리를 내 눈빛과 손빛과 마음빛으로 살뜰히 가꾸려는 넋을 건사할 수 있어야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요.


  풀노래 부르면서 풀밥을 먹고, 풀말을 할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사람답게 시골말 쓰고 시골노래 부르면서 시골빛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모두 시인인걸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랑을 나누며 평화를 꿈꾸는 멋진 시인입니다.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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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1-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숲노래 2013-11-27 22: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