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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빨래

 


  한가위를 맞이한 아침부터 부산스레 일손을 놀린다. 차례상을 어머니와 함께 살피고, 요모조모 바지런히 일손을 거든다. 큰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 “나도 하고 싶어.” 하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는 일손을 돕고 싶다 말한다. 큰아이더러 대추를 쌓아 보라고 시킨다. 다른 쌓을거리를 아이한테 맡겨 본다. 큰아이는 한 살 두 살 먹을 적마다 이런저런 일거리를 즐겁게 맡아 주리라 느낀다. 밖에 나와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이런저런 집일을 으레 지켜보고 으레 한손 거들곤 하니까, 즐겁게 놀이 삼아서 아이 삶을 빛내리라 느낀다.


  차례를 다 마치자마자 작은아이가 응애 하고 운다. 어쩜 이렇게 다 마치자마자 울까. 차례를 올리는 동안 조용하기도 했지만, 차례를 함께 지켜보았어도 좋았으리라 싶은데,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한가위나 설은 많으니까, 올 한가위에는 새근새근 달게 자며 맞이했어도 좋으리라 느낀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난 작은아이는 똥도 누고 엄마젖도 물고 오줌도 누고 온갖 치레를 한다. 나는 차례상을 치우면서 밥상으로 바꾸는 일을 함께한다. 한쪽에서는 이것저것 치우고, 한쪽에서는 요모조모 차린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빈그릇 치우고 이래저래 움직이는데,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저마다 한숨을 돌리며 커피를 마신다든지 짐을 꾸린다든지 할 적에, 두 아이는 고모 따라 어디론가 놀러 갔고,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아침나절 작은아이가 내놓은 똥바지 똥기저귀가 떠오른다. 나어린 ‘아이들 고모’가 머리를 감으며 내놓은 손닦개도 여러 장 있다. 빨래그릇에 빨래감 꽤 쌓였다. 빨래기계를 돌릴까 싶다가, 나중에 할머니더러 돌리시라 하고, 작은아이 똥옷 빨래 몇 점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똥옷을 빨다 보니 다른 옷가지도 한두 점 더 빨래할까 싶다. 다른 옷가지 한두 점을 더 빨래하다 보니 이 빨래 저 빨래를 더 해야지 싶고, 그예 모든 빨래를 다 해낸다. 수북하게 쌓여 엄두가 안 나던 빨래였으나, 한 점 두 점 하고 보니 훌쩍 사라진다.


  빨래대를 바깥에 내놓는다. 빨래를 하나하나 넌다. 나는 홀로 한가위 빨래를 즐긴다. 햇살아, 햇살아, 한가위 햇살아, 이 빨래들한테 네 고운 볕살을 살그마니 나누어 주렴. 따스한 가을볕 듬뿍 나누어 주면서 시골자락 찾아온 모든 이들한테 네 너른 사랑을 일깨워 주렴.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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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는 옷

 


  늘 입는 대로 입는 옷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입는 옷이다. 나는 다른 사람 눈치를 살피며 옷을 입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결에 맞추어 옷을 입는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옷을 입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바라보기를 바라며 저렇게 옷을 입지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고무신을 신지는 않았다. 다만, 양말과 운동신을 신으며 살아가던 때에는 발바닥에 땀이 많이 차고 힘들다고 느꼈는데, 서른 살짝 넘은 나이에 시골에서 처음 살림을 꾸리면서 고무신을 한 번 신고 보니, 내 몸에 참 맞는구나 싶어, 이때부터 고무신을 신는다. 게다가 고무신 한 켤레 값이 되게 싸다. 신기에도 벗기에도 가장 낫고, 고무신 차림은 발을 퍽 자주 씻고 해바라기를 시킬 수 있으니 매우 마음에 든다.


  혼자 살아가던 때에는 언제나 책방마실을 다녔기에 가방이 큼지막하고 무거워 단출한 옷차림이었다. 깡똥바지에 민소매 웃옷을 입었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아이들 옷가지를 늘 챙기며 다니니, 가방에 책을 넣지 않아도 으레 큼지막하고 무겁다 싶은 가방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자가용을 안 굴리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군내버스를 타며 돌아다니니까, 내 차림새는 예나 이제나 똑같다.


  고마운 이웃한테서 아이들 옷가지를 얻어 물려입힌다. 이런저런 행사 자리에서 옷을 얻어 나와 옆지기 옷가지를 삼는다. 옷을 장만하는 데에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내 살림살이에서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는가 하는 대목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으니까, 따로 옷값을 마련하지 않고, 옷값을 쓸 일이 없으며, 옷차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아름답게 살아갈 날을 헤아리고, 즐겁게 누릴 하루를 돌아본다. 웃고 떠들 삶을 곱씹고, 사랑을 꽃피우는 꿈을 가눈다.


  내 마음에 따라 입는 옷이다. 내 삶에 따라 걸치는 옷가지이다. 내 마음은 맑은 햇살을 바라본다.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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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밀어내는 아파트

 


  사람들이 도시를 지으려고 숲을 밀어 아파트를 세운다. 사람들이 도시를 넓히려고 숲을 더 밀어 아파트를 더 세운다. 처음에는 숲이던 곳이 어느새 아파트 꾸러미가 된다. 온갖 모양 아파트로 무리를 이룬다. 널따란 숲이 이제 손바닥만큼만 남는다. 그나마 남던 손바닥 숲 또한 머잖아 새로운 아파트로 바뀌고, 널찍한 찻길이 된다.


  사람들이 도시를 짓고 아파트를 올리면서 나무가 몽땅 사라진다. 나무 없이 휑뎅그렁한 길가에 어린 나무를 몇 그루 줄줄이 심는다. 나무가 스스로 자라며 숲이 우거지던 곳인데, 따로 돈을 들여 나무를 심어야 한다. 스무 해쯤 지나야 겨우 나무그늘이 생긴다. 그러나 스무 해쯤 지나고 서른 해쯤 되고 나면, 아파트라고 하는 시멘트집은 목숨을 다해 헐어야 한단다. 이에 따라 겨우 나무그늘 조금 생기던 나무는 목숨 다한 시멘트 아파트하고 나란히 헐리고 만다. 조금 키 자란 나무를 캐서 옮기는 돈은 비싸고, 어린 나무를 사다 심는 돈은 싸다고 하니까.


  곧, 아파트를 지으려는 데에는 쉼터가 없다. 숲을 밀어 아파트를 지었으니 쉼터가 있을 수 없다. 도시에서는 숲이 사라지고 쉼터가 없기에, 새삼스레 돈을 들이고 땅을 비싸게 되사들여 공원을 지어야 한다. 새삼스레 돈을 들이고 땅을 비싸게 되사들여 짓는 공원에는 나무그늘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숲바람이나 나무바람이나 풀바람이나 꽃바람을 넉넉히 쐴 만한 자리가 되지는 않는다. 운동기가 몇 가지를 놓고, 걷거나 달릴 좁다란 길 몇 갈래 낸 터무니없이 작달만한 풀섶이 이루어진다. 애써 짓는 공원에서조차 흙을 밟지 못하고 흙을 만지지 못하며 흙을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이다.


  곰곰이 돌아보면, 맨 처음 숲을 밀 적부터 도시와 아파트에서는 푸른 숨결을 죽인 셈이다. 도시사람과 아파트사람 스스로 숲을 등진 셈이다. 도시에서는 푸른 숨결이 없어도 살아갈 만하다고 여긴 셈이다. 그런데, 숲이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숲과 들과 메와 냇물과 바다를 밀어 없애고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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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 잘하는 아버지

 


  한가위를 맞이해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가는 음성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온다. 내 어머니 일을 이모저모 거든다. 틈틈이 아이들을 보살핀다. 사이사이 빨래를 한다. 이부자리를 깔고, 아이들을 옆지기와 하나씩 재운다. 요즈음 이 나라가 이럭저럭 ‘성평등’을 이룬다고 말들 하지만, 내 보기에는 성평등은 허울뿐이요, 사내도 가시내도 저마다 스스로 맡을 집살림과 집일하고는 동떨어지지 싶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으레 늙은 어머니한테 살림과 일을 맡긴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 모두 살림과 일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는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니까, 오늘날은 사내도 가시내도 ‘집에서 다 같이 일도 살림도 안 하는 모습’으로 ‘성평등’을 이룬달까. 슬기로우면서 참답다 할 성평등이라 한다면, 저마다 즐겁고 기쁘게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림과 일을 함께 하는 모습이리라 느낀다. 반반씩 나누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힘이 세니까 더 하는 일이 아니다. 사내라서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가시내니까 해 주는 일도 아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사랑으로 누리는 살림이면서 일이다.


  적잖은 이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집안일 잘하는 아버지”라고 일컫곤 한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집안일을 모두 다 하는 일꾼”이랄까, 살림꾼이랄까,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가 집안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니 하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난 그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요, 내 온 사랑을 담아 보금자리를 아끼고픈 집식구 가운데 하나인데. (4345.9.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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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텃밭 - 초등학교에서 많이 심는 채소 9종과 곡식 3종 가꾸기 철수와영희 그림책 5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노환철 감수, 바람하늘지기 기획 / 철수와영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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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어떤 삶을 보여주는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8] 안경자·노정임, 《우리 학교 텃밭》(철수와영희,2012)

 


  한국에서는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한가위나 설날을 맞이해서 도시를 빠져나갑니다. 한가위나 설날을 맞이하고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일자리를 얻으며 지내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고 자란 시골을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고, 스스로 숲과 들과 메와 냇물과 바다를 잊거나 잃은 채 도시에서 일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찻길이건 바글바글합니다. 어느 찻길이건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뿐 아니라 자가용이 가득합니다. 여느 날 여느 때에도 한국에 자가용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다지만, 한가위나 설날을 맞이하면 더욱 또렷이 알 수 있어요. 참말 한국에는 자가용이 대단히 많아요.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자가용 물결을 바라보면, 이렇게 많은 자가용으로 온 땅덩이를 뒤엎는구나 싶으면서, 이렇게 자가용으로 온 땅덩이를 덮으면 한국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지구별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해요.


  시골집 어버이들이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마련합니다. 또한, 큰집 어버이들이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마련합니다. 자가용을 몰고 길을 나서는 이들은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따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시골집 어버이는 손수 일구거나 거둔 곡식과 열매를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립니다. 도시에서는 큰집 어버이들이 저잣거리나 가게를 찾아가서 곡식과 열매를 마련합니다.


  한국땅 모든 사람들이 같은 때에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올립니다. 똑같은 곡식과 열매가 한꺼번에 몹시 많이 쓰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올리자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참말 돈이 많이 드는 일인가 알쏭달쏭합니다. 지난날에는 차례상이나 제사상 먹을거리는 아주 마땅히 ‘어느 집이나 손수 일구거나 거둔 곡식과 열매’였겠지요. 흙을 일구는 이들은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를 올리고, 바다를 일구는 이들은 바다에서 거둔 먹을거리를 올리겠지요. 차례상이나 제사상은 여느 사람 여느 삶자락 누구나 여느 때에 즐기던 먹을거리일 테지요.


  흙일꾼은 한 해 곡식 가운데 가장 알찬 녀석을 가려서 이듬해 씨앗으로 남깁니다. 가장 곱고 튼튼하며 야무진 씨앗이 이듬해에 새 논밭에서 새로운 숨결이 되어 자라요. 가장 고운 손길을 들여 흙을 보살펴요. 가장 너른 사랑을 들여 아이들을 보살펴요. 가장 따스한 손길을 들여 밥상을 차리고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올려요.


.. 학교 텃밭에 무엇을 심어 볼까요?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게 고루고루 심을 거예요. 잎줄기채소, 열매채소, 뿌리채소, 그리고 곡식과 콩도 심어요 ..  (10쪽)


  찻길하고 제법 떨어진 집에서도 자동차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날 여느 살림집은 으레 찻길을 옆에 낍니다. 도시에서는 어느 집에서도 자동차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파트라고 다르지 않아요. 아파트에는 주차장이 널따랗게 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새벽이든 낮이든, 자동차 오가는 소리를 들어요.


  어느 집은 자동차 소리를 막으려고 유리를 두껍게 대겠지요. 참말 집안에서 집밖 소리가 안 들리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집안에서 집밖 소리가 안 들린다면, 자동차 소리만 안 들리지 않아요. 바람이 부는 소리, 풀잎이 흩날리는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 구름 흐르는 소리, 해가 기우는 소리, 달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 …… 온갖 소리 또한 들을 수 없어요.


  바깥 소리를 꽁꽁 틀어막은 집에서는 어떤 소리를 들을까요. 아이들 소리를 들을까요? 텔레비전 소리를 들을까요?


  아마, 아이들 소리도 없겠지요.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갈 테니까요. 학교와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집에서 새로운 학습, 이른바 영어 학습이나 동화책 학습이나 글쓰기 학습을 하겠지요. 위층과 아래층이 시끄럽다며 집에서 뛰거나 노래하거나 춤추지 못하겠지요. 피아노를 치거나 피리를 부는 일조차 살금살금 해야 할 테고요.


.. 포슬포슬 부드러운 흙에 씨앗을 뿌려요. 고랑으로 걸어 다니면서, 이랑에 씨앗을 뿌리지요 ..  (18쪽)


  도시를 벗어나 먼먼 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은 모처럼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적게 듣습니다. 어느 자동차라 하더라도 달리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자동차들 모두 굼뜨게 기어가기에,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를 톡톡히 맡습니다. 길마다 자동차로 꽉 찼을 때에는 유리창을 열기도 힘들리라 느껴요. 유리창을 열자면 자동차마다 내뿜는 배기가스를 고스란히 마셔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유리창을 닫으면 에어컨 바람을 몇 시간이고 쐬어야 해요.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또 열 몇 시간이고 자가용으로 달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닿은 이들은, 차에서 내리며 무척 시원하고 개운하리라 생각해요. 바람 맛을 달콤하게 느낄는지 몰라요. 바람 맛이 이토록 달콤하며 좋은 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자동차에서 너무 오래 시달리느라 바람 맛이 달콤하다고 느낄는지 모르는데, 다시금 시골을 떠나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도시에서 차에서 내릴 때 마시는 바람’ 맛이 시골에서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처럼 달콤하지는 않으나, 이제 기나긴 자동차 물결에서 벗어난다며 마음을 쉴 수 있겠지요. 다시금 도시에서 톱니바퀴가 되어 구르는 삶으로 젖어들면서 어딘가 아늑하거나 느긋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요.


  시골로 모인 도시내기들은 시골로 모여서 풀베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한가위에 모였으니 잘 익은 들판을 바라보다가 낫을 들고 벼베기를 할 법도 하지만, 한가위에 시골로 모인 이들이 다 함께 들판에 맨발로 서서 벼베기를 하는 일은 몹시 드물다고 느껴요. 인사하고 차례상 올리고 밥 한 그릇 나누고 술 한 잔 부딪히다가는 어느새 도시로 돌아갈 때를 어림해요. 늦게 떠나면 자동차가 많이 몰려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도시로 돌아가려 해요. 느긋하게 하루나 이틀을 더 묵지 못할 뿐 아니라, 넉넉히 한두 시간을 들판이나 멧골이나 바다에서 뛰놀지 못해요.


  애써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찾아왔어도 시골바람을 맛나게 마시지 못해요. 겨우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깃들었어도 시골내음을 듬뿍 들이키지 못해요.


  고향이란 무엇일까요. 고향내음이란 무엇인가요. 고향맛이란, 고향사랑이란, 고향꿈이란, 고향에 깃든 이야기와 삶이란 무엇일까요.


.. 학교 텃밭에 꽃들이 활짝 피었어요. 토마토와 오이 꽃은 노란색이고, 가지 꽃은 보라색이에요. 강낭콩 꽃도 참 예쁘지요? 벼와 옥수수는 작은 풀색 꽃이 피어요 ..  (34쪽)


  노정임 님 글과 안경자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우리 학교 텃밭》(철수와영희,2012)을 읽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마련한 텃밭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요즈음은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학교나 고등학교마다 운동장 흙을 갈아엎고는 인조잔디를 깔곤 하는데, 이런 흐름과는 달리, 인조잔디나 ‘트랙’이 아닌 ‘흙’을 예쁘게 살리며 텃밭으로 삼는 이야기를 다뤄요.


  어쩌면, 거꾸로 가는 그림책이라 할 테지요. 참말, 현대 물질문명이 치솟는 사회에서 거꾸로 가는 그림책이라 할 만해요. 자유무역협정까지 맺는 판에, ‘왜 푸성귀를 학교 아이들이 손수 일구어 먹느냐?’고 따질 수도 있어요. ‘이 아이들이 책상맡에서 영어를 더 배우고 시험공부를 더 해서 서울 쪽 이름난 대학교에 가도록 가르쳐’야지, 왜 밭에서 힘들게 땀을 흘리도록 하느냐고 나무랄 수도 있어요. 돈 내고 사다 먹으면 될 푸성귀를, 굳이 학교 옆 땅뙈기를 밭으로 바꾸어 쓰느냐 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누구라도 밥을 먹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들 누구라도 밥을 먹어요. 스스로 먹는 밥이니까 스스로 일구어요. 스스로 삶을 짓는 길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 흙을 보살펴요. 내가 먹는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몸소 살피고, 내가 먹는 밥이 몸속에서 삭혀지며 똥오줌 되어 흙으로 다시 돌아갈 때에 어떻게 되는가를 하나하나 톺아봐요.


.. 텃밭 농사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예요. 손수 기른 채소와 곡식으로 차린 밥상이라 더욱 맛있고요, 친구들과 같이 먹으니까 더욱더 맛있어요 ..  (50쪽)


  그리 멀지 않던 옛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시골에서 살아가던 그닥 안 먼 옛날, 한가위나 설날이 되면 마을마다 잔치가 벌어졌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놀이를 즐기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새로운 일과 놀이를 누렸어요. 저잣거리는 하얗게 빛나고, 마을길은 푸르게 빛났어요. 하늘은 맑고 들판은 밝았어요. 구름은 하얗고 달빛도 하얗게 환했겠지요.


  이제 한가위가 되든 설날이 되든, 모두들 네비게이션을 바라볼 뿐이에요. 창밖으로 펼쳐진 들판조차 바라보지 않아요. 다른 자동차 물결만 하염없이 바라봐요. 들판을 가로지르는 우람한 송전탑을 바라보거나 느끼는 사람도 드물어요. 시골에서는 전기 쓸 일이 거의 없는데, 발전소는 몽땅 시골에 지으면서, 도시로 송전탑을 끝없이 세우는 모습을 살갗으로 느끼는 도시내기는 거의 없어요.


  송전탑 밑에서 자라는 벼는 얼마나 맛날까요. 고속도로 곁 논밭에서는 푸성귀가 얼마나 푸르게 자랄까요.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곁 과수원에서 능금이나 배는 얼마나 잘 익을까요. 공항 언저리, 공장 둘레, 발전소와 짐승우리 곁 논밭에서는 시금치나 대추나 감이나 콩이 얼마나 알차게 여물까요.


  아이들은 집에서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아이들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삶을 짓거나 일구는 이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유치원과 어린이집조차 영어 과외와 같은 얼거리요, 대학입시로 가는 징검돌 가운데 하나로 여기거든요. 참말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꿈을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라야 아름다울 텐데,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삶을 못 배우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삶을 못 배우고, 사랑도 꿈도 못 배우면 어떤 어른으로 클까요.


  그림책 《우리 학교 텃밭》은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른들한테 삶을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다만, 삶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어디에 있고 어떤 모양과 무늬와 내음인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삶을 느끼며 사랑을 꽃피우고, 사랑을 꽃피우며 꿈을 그려요. 꿈을 그리는 아이들은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사랑스럽게 살아갈 때에 씩씩하고 튼튼한 슬기나무와 같은 숨결이 되리라 믿어요. (4345.9.29.흙.ㅎㄲㅅㄱ)

 


― 우리 학교 텃밭 (안경자 그림,노정임 글,철수와영희 펴냄,2012.9.30./13000원)

 

(최종규 . 2012)

 

..

 

한가위 맞이해 음성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왔기에 사진은 못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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