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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1
작은책 편집부 엮음 / 작은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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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9

 


일하는 사람이 글을 쓴다
―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작은책 엮음
 작은책 펴냄,2010.4.20./9500원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일하는 사람이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린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쓸 때에 빛납니다. 시골마을 이야기는 시골사람이 쓸 때에 곱습니다. 골목마실 이야기는 골목동네 사람이 쓸 때에 아기자기합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는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 쓸 때에 즐겁습니다.


  글은 대단한 작가나 학자가 쓰지 않습니다. 글은 누구나 스스로 씁니다. 스스로 삶을 일구듯 스스로 글을 일굽니다.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듯 스스로 글을 살찌웁니다. 스스로 삶을 아끼듯 스스로 글을 아껴요.


  글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 살가운 동무하고 도란도란 말을 섞으며 들려주듯 차근차근 적바림합니다. 이렇게 쓰기에 글입니다. 이런 표현법이나 저런 재주를 부려야 글이 되지 않아요. 삼단논법이나 기승전결을 갖추어야 글이 되지 않아요. 문단을 나누고 문장을 손질해야 글이 되지 않아요.


  이야기로 태어나기에 글입니다. 이야기로 나누기에 글입니다. 이야기를 밝히기에 글입니다. 이야기를 쓰려고 글을 씁니다.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합니다. 이야기를 부르려고 노래를 불러요. 이야기를 추려고 춤을 춰요.


.. 왜 쓰는가? 한마디로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그 소중한 삶의 세계,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 삶을 지키고, ‘말’을 지키고, 겨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글도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방안에 앉아 밤낮 글만 쓰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 무엇을 얘기하고 무엇을 보여주겠는가 ..  (25쪽/이오덕)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를 넘어 2010대에 이르는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글을 씁니다. 1990년대까지는 몇몇 지식인이나 학자나 작가 아니라면 글을 써서는 안 되거나 글을 못 쓰는 줄 여기도록 꽁꽁 옭아맸습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울타리나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저마다 삶이 다르듯, 사람마다 글이 달라요. 다 다른 사람한테 똑같은 울타리나 틀에 매여 글에 매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빛내듯, 다 다른 글을 써서 다 다른 글빛을 나누지요.


  대학교에서 건축을 익힌 사람과 농업을 익힌 사람이 쓰는 글이 다릅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바라기만 한 아이와 취업을 준비한 아이가 쓰는 글이 다릅니다. 학원을 다니는 초등학생과 학원 안 다니는 초등학생이 쓰는 글이 다릅니다. 숲이나 들에서 노는 아이와 장난감 만지며 인터넷 누비는 초등학생이 쓰는 글이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글이 더 좋고 어느 글이 더 나쁘지 않습니다. 모든 글은 저마다 값이 있습니다. 어느 글이든 서로서로 뜻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까닭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는 까닭은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하나로 어깨동무를 하려고 글을 나눕니다.


.. 니 에미가 옆에서 쌀허고 김장김치 가질러 오니라고 쓰라고 성화다. 차비가 무서워서 못 오는지도 모르지만도 돈 애끼면 골병 든다. 방이나 뜨시게 해서 자거라. 시상이 아무리 고달프고 각박혀도 사람이 근본을 잊으면 안 되니라. 근본을 모르는 인간덜이 세도부리는 숭악한 시상이다만서도 느그는 항시 더 어려운 사람 보살피주고 올은 일에는 발벗고 나서는 씀새를 가져야 하느니라 ..  (34쪽/부산노동자신문)


  잡지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노동자)’ 삶과 꿈과 사랑을 담아서 엮습니다. 이 작은 잡지 《작은책》에는 수많은 사람들 일하는 삶이 조촐한 글로 실렸습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작은책,2010)는 작은 사람들이 작은 삶 일구면서 작은 글로 작은 사랑 나눈 작은 웃음꽃 같은 글을 갈무리합니다. 잡지 《작은책》에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실은 ‘작은 글’ 가운데 더 널리 읽히고 싶은 글을 알알이 그러모아요.


.. 그런데 삶의 영원한 맞수인 아내가 요즈음 어깨와 팔목이 시고 아프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아내에게 진짜 가슴으로 덕담을 해야겠습니다. “당신 건강했으면 좋겠소.” ..  (53쪽/대원강업노동조합 조합원)


  문법을 모르거나 띄어쓰기를 몰라도 됩니다. 글을 쓰면 됩니다. 맞춤법을 모르거나 정서법을 몰라도 됩니다. 말을 하면 됩니다. 표준화법을 모르고 표준어를 몰라도 됩니다.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사진기술을 알아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그림기법을 알아야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문장술을 알아야 글을 쓰지 않아요. 이 대목을 저마다 잘 깨달아야 해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직 두 가지 마음, 사랑과 꿈으로 엮어야 해요. 사랑과 꿈으로 엮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글도 그림도 사진도 뜻이나 값이나 보람이 없어요.


..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 배고파 밥 달라고 하는 우리들한테 / 회사를 말아먹을 나쁜 놈들이래. / 우리가 일해놓으면 / 알맹이는 깡그리 챙겨가고 / 우리에게는 빈 껍데기만 남겨주면서 / 주는 대로 받고 고분고분 일하지 않는다고 /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  (160쪽/대우기전노동조합 조합원)


  할 말을 한다고 할 때에는, 할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입니다. 할 일을 한다고 할 적에는, 사랑할 삶을 사랑하고 꿈꾸는 삶을 꿈꾼다는 소리입니다.


  써야 할 이야기를 쓸 뿐입니다. 밝히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빛내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즐기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쓸수록 기쁜 이야기를 쓰고, 쓸수록 마음을 포근히 달래는 이야기를 써요.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밑거름 될 이야기를 쓰지요. 글을 쓰면서 새삼스레 웃습니다. 글을 읽으며 새롭게 눈물짓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면서 좋은 삶 일굽니다. 이 아름다운 하루와 이 좋은 삶을 이 어여쁜 글 하나로 빚어 나누어요. 삶빛을 글빛으로 밝히고, 글빛이 삶빛으로 태어나도록 북돋아요.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읽기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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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그리는 마음

 


  큰아이가 그림놀이를 하는데 작은아이가 자꾸 누나 곁에 달라붙으면서 ‘같이 놀자’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말이 아주 많이 더뎌 제 마음을 말로 제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나도 큰아이도 작은아이 ‘마음은 알’지만, 때때로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합니다. 작은아이 스스로 말문 트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녁 열 시 가까운데 두 녀석 모두 잠들 낌새 없이 노닥거립니다. 이러다가 둘이 다투겠구나 싶어, 작은아이한테 종이 한 장 내밉니다. 여기에 네 마음껏 그리렴. 작은아이는 그림 그리는 시늉을 안 하고 죽죽 긋기만 합니다. 음, 그래, 너는 누나보다 훨씬 더 오래 아기로 지내고 싶구나.


  작은아이가 그저 죽죽 그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이 종이를 이대로 두면 버려지리라 느낍니다. 색연필을 듭니다. 작은아이 얼굴을 그립니다. 아, 작은아이 얼굴 참 오랜만에 그렸네. 연필을 쥡니다. 큰아이 얼굴을 옆에 그립니다. 큰아이가 문득 말하네요. “나도 보라처럼 까만 걸로 그려 줘요. 나도 보라처럼 까만 얼굴 해 주세요.” 동생은 색연필로 그려 주고 왜 저는 가느다란 연필 금으로 그렸느냐며 투정을 부립니다.


  응? 벼리야, 연필로 그린 네 그림을 훨씬 찬찬히 예쁘게 그렸잖니? 1분쯤 큰아이 투정을 듣다가, 까만 색연필을 쥐고 큰아이 그림을 다시 하나 그립니다. 큰아이는 까만 색연필 그림을 보며 방그레 웃습니다. 그래, 너희 웃음 보자며 함께 살아가는데, 너희 바라는 대로 그리고 놀고 구르고 뛰어야지.


  아이들 그림을 그린 둘레로 이런 빛 저런 빛 입힙니다. 오늘은 바탕빛만 살짝살짝 입혀 봅니다.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투정 부린 말을 큰아이 그림 밑에 적습니다. 이제 그림 다 되었구나, 벽에 붙여야겠네. 아이들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이고, 아이들 불러 손발 씻깁니다. 두 아이 잠자리에 눕히고 불을 끕니다.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한참 부르니 두 아이 모두 새근새근 곯아떨어집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두 차례 깨어 물을 마시고 무언가 허전한지 더 놀고파 하는 눈치입니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늦은 밤에 일어나서 놀려고 하면 몸이 힘들어, 또 코피가 터지잖니, 오늘은 이만 자고 이듬날 즐겁게 일어나서 신나게 놀자, 알겠지?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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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9 04:52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이 그리신,
벼리의 얼굴이 참 예뻐요~ 보라도요~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이네요. ^^

숲노래 2013-06-19 07:25   좋아요 0 | URL
예쁘니까 예쁘게 그릴밖에 없답니다 ^^;;;;
 

고양이 꽃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오려고 아이들 데리고 마을 어귀로 간다. 버스때에 늦었나 싶었지만, 군내버스는 으레 몇 분 늦게 오기 마련이라 안 놓친다. 큰아이는 “아버지 잠깐만 기다려 봐.” 하더니 마을 꽃밭에서 노란 꽃, 아마 금계국 같은데, 꽃송이를 똑 따서 군내버스에 오른다. 이윽고 읍내에 닿아 내릴 무렵, 어느새 큰아이는 노란 꽃송이를 제 신에 꽂았다. 어라, 네 신은 꽃신이네.


  “벼리야, 네 신 한번 사진으로 찍자.” “응, 고양이 꽃신이야.” 옳거니. 네 신은 고양이 무늬 들어갔으니까, ‘고양이 꽃신’이로구나. 한참 읍내를 ‘고양이 꽃신’ 신고 걷다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뭐 줄게요.” 하면서 제 신에 꽂은 노란 꽃을 뽑아 내 가방에 꽂는다. 쳇. 이제 꽃이 시들 만하고, 너는 가볍게 뛰어다니고 싶어 아버지한테 넘기는구나. 꽃을 주려면 처음부터 줘서 ‘꽃아버지’로 삼아 주어야 하지 않니.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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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9 04:58   좋아요 0 | URL
앗, '고양이 꽃신'.
벼리의 예쁜 행동도
'고양이 꽃신' 사진도 정말 좋네요~^^
노란 꽃을 단 고양이가 "야~옹~" 하는 것 같아요. ㅎㅎ

숲노래 2013-06-19 07:24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처럼 놀았구나 싶어요... @.@
 

후쿠오카 마사노부 할아버지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생명의 농업과 대자연의 도>라고 하는 절판된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서 살피니,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은 2011년에 새로운 판으로 나왔구나. 몰랐다. 새로운 판으로 이 책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면서도 '자연농법'이 무엇인지 생각을 안 하는 젊은 귀농인이 퍽 많은데, 젊은 귀농인들께서 부디 다른 책 말고, 이 책이라도 좀 읽으면서 '비닐농사'와 '돈 되는 농사'에서 벗어나 '삶을 누리는 흙삶과 숲살이'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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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9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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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집 책읽기

 


  영화 〈스윙 걸즈〉를 보면, 날라리처럼 나오는 어느 사내아이가 ‘온누리에는 두 갈래 사람이 있다’고 두 차례 말하는 대목이 있다. 온누리 사람들을 두 갈래로 나누는 모습이 살짝 재미있다고 느끼다가는, 나도 내 나름대로 온누리 사람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볼까 하고 헤아려 본다.


  다른 무엇보다, ‘제비집을 아는 사람’과 ‘제비집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어 본다. 또, ‘제비집을 본 사람’과 ‘제비집을 못 본 사람’으로 나누어 본다. 그리고, ‘처마에 제비집 건사하는 사람’과 ‘처마도 없고 제비집도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을 나누어 본다.


  전남 고흥 읍내 제비집마다 새끼 제비 짹짹 노래한다. 어미 제비더러 얼른 먹이 물어 달라며 짹짹 노래한다. 조그마한 제비집마다 너덧 마리 새끼 제비가 노래한다. 조그마한 제비집이 터질 듯하다.


  머잖아 새끼 제비들 모두 날갯짓 익혀 훨훨 노닐겠지. 부디, 이 깊디깊은 고흥 읍내에서도, 또 고흥 시골마을에서도, 자동차에 치이지 말고 농약 마시지 말며 씩씩하게 잘 살아남아 가을 끝자락에 중국 강남으로 돌아가서 이듬해에 즐겁게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빈다. 제비와 이웃이 되고, 제비집 아끼는 사람 해마다 하나씩 둘씩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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