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바람의 빛》은 아버지와 오빠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어 앙갚음을 하려는 열다섯 살 가시내가 겪는 삶을 들려준다. 그런데 둘째 권에서 벌써 ‘원수’를 만나고 ‘앙갚음’을 한다. 아니, 앙갚음이라기보다 훨씬 깊고 큰 ‘무언가’를 한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올 적에 이 대목을 보았다면, 아니 이야기를 이렇게 빨리 펼치면 일찌감치 연재를 끝낼 셈인가 하고 생각했을 텐데, 2014년 1월까지 34권째 나온 이 만화를 헤아린다면, 바로바로 새 이야기를 엮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빛과 넋과 사랑과 꿈’을 더 넓게 건드리고 싶은 뜻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무렴, 그렇겠지. ‘앙갚음’ 하나만 갖고 만화를 그리는 일은 그닥 재미있지 않다. 짤막하게 마무리를 짓든 오래오래 이야기를 잇든, 만화뿐 아니라 소설과 시와 수필과 예술과 인문과 철학과 과학, 어느 자리에서건 ‘사랑’을 바탕으로 그릴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겁다. 4347.1.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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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빛 2
와타나베 다에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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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9∼2000년에 한국말로 나온 《누나는 짱!》이라는 열다섯 권짜리 만화책이 있다. 이 만화책을 그린 와타나베 타에코 님 다른 작품인 《바람의 빛(風光る)》(일본 책이름에는 ‘の’가 안 붙었으나 한국 책이름에는 뚱딴지처럼 ‘-의’가 붙었다)이 일본에서는 34권째 나오고 한국에서는 30권까지 나오는데, 이제서야 1권을 읽기로 한다. 퍽 더디 읽는 셈이라 할 텐데, 천천히 읽어 즐겁기도 하다. 《바람의 빛》 1권이 한국말로 나온 지 열세 해가 되는데, 열세 해 지난 오늘 찬찬히 돌아볼 적에도 ‘재미나게 읽을 만하다’면 앞으로 열세 해 더 지나 2027년이 되어도, 또는 열세 해 더 흘러 2040년이 되어도 재미나게 읽으며 즐거운 빛을 가슴에 품을 만하지 않겠는가. 칼로 베어 죽이거나 목이나 팔이 잘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오기도 하는 만화책인 만큼, 일곱 살과 네 살밖에 안 된 우리 집 아이들한테는 아직 보여줄 수 없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열네 살쯤 되거나 열아홉 살쯤 되면, 또는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쯤 되면 비로소 이 만화책에 서린 넋과 빛을 짚을 만하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즐길 만하고, 어버이로서 오늘 즐길 만한 만화책을 차곡차곡 건사하는 일이란 참 기쁘다. 4347.1.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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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빛 1
와타나베 다에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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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풍선 분도그림우화 15
알베르 라모리스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8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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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5

 


아이한테 들려줄 사랑이란
― 빨강 풍선
 알베르 라모리스
 이미림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2.3.1.

 


  1956년에 34분 길이로 나온 〈Le ballon rouge〉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찍은 ‘알베르 라모리스(Albert Lamorisse)’ 님은 ‘빨강 풍선’ 하나와 어린이가 서로 어떻게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 ‘여느 어른’이라 하는 분들 눈길로 본다면, 학교로 가다가 가로등에 묶인 풍선 하나를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를 알쏭달쏭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뭔 풍선을 갖고 버스를 타려 하느냐고 윽박지를 수 있습니다. 학교에 왜 풍선을 갖고 오느냐고 나무랄 수 있습니다. 그깟 풍선은 내다 버리라고, 풍선을 갖고 다녀 보았자 공부와 시험과 성적에는 도움이 안 된다 말할 만합니다.


  풍선이 아닌 들고양이나 딱정벌레를 건사할 적에도 이와 똑같이 여기리라 느낍니다. 돌멩이를 줍는다든지, 나뭇잎을 주울 적에도 이와 똑같이 여길는지 몰라요. 나비 한 마리를 바라보거나 개구리 한 마리를 만나 하염없이 들여다볼 적에도 똑같이 여길 수 있겠지요.


  영화 〈Le ballon rouge〉는 조그마한 사진책 《빨강 풍선》으로도 태어납니다. 영화에 나오는 몇 대목을 간추리고, 이야기를 붙여요. 영화에서는 딱히 ‘말로 이런저런 모습’을 알려주지 않지만, 조그마한 사진책에서는 틈틈이 말을 넣어서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이 어떤 이야기인가를 밝힙니다. 이를테면, “파스칼은 풍선을 가지고는 버스를 탈 수 없는 그 바보 같은 규칙 때문에 집에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선이 젖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8쪽).”와 같이 밝혀 주어요.

 

 

 

 

 

 

 


  그래요. ‘여느 어른’들은 풍선을 갖고 다니는 아이를 바보처럼 여깁니다. 온갖 규칙을 내세워 아이를 나무라기만 합니다. 아이를 규칙에 따라 길들이려고 합니다. 규칙에 맞추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기만 합니다.


  “교회는 풍선이 갈 곳이 아닙니다. 모두들 풍선을 쳐다보았고, 아무도 예배에 마음을 쏟지 않았습니다. 파스칼은 교회 수위 아저씨에게 쫓겨 서둘러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풍선은 어떤 일이 맞갖은 것인지 모르는 게 틀림없습니다(25쪽).”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빨강 풍선은 학교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버스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빨강 풍선》에 나오는 ‘파스칼’이라는 아이 어머니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영화에서나 사진책에서나 ‘빨강 풍선’을 받아들이는 ‘여느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와 사진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칙칙한 옷을 입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도 칙칙한 옷을 입힙니다. 시커멓거나 잿빛인 옷만 입고 입혀요. 어른들이 이룬 도시도 우중충한 빛입니다. 밝거나 환하거나 고운 빛깔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빨강 풍선’처럼 새빨갛거나 눈부신 빛깔로 옷을 차려입는다든지 집을 짓는다든지 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 영화와 사진책에 나오는 ‘빨강 풍선’은 ‘빨강’이라는 빛깔과 ‘풍선’이라는 대목에서 무언가를 넌지시 빗댄다고 할 만합니다. 빛깔이 없거나 잃은 ‘여느 어른’들 사회와 삶자리와 문화와 교육과 정치를 이야기한달 수 있어요. 빛깔을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여느 어른’들 생각과 마음과 매무새를 보여준달 수 있어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누리는 하루를 보낼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사랑을 속삭이거나 어떤 꿈을 꾸면서 삶을 즐길까요.


  어머니가 입힌 ‘잿빛 옷’을 입은 어린이 파스칼은 ‘빨강’ 풍선을 언제나 들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파랑’ 풍선을 들고 다니는 가시내를 만납니다. 살가운 동무를 만난 셈입니다. 그렇지만, 살가운 동무보다는 짓궂은 동네 아이들한테 시달려요. 동네 아이들은 파스칼을 따사로이 보듬지 않습니다. 괴롭히고 놀리고 못살게 굽니다. 이리하여, “‘날아가, 풍선아 날아가!’ 파스칼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친구를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돌 하나가 풍선을 맞혔고 풍선은 터졌습니다(37쪽).” 하는 대목처럼, 빨강 풍선은 그만 뻥 하고 터지고 말아요. 어린 파스칼은 슬픔에 젖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왜 파스칼이랑 빨강 풍선을 괴롭힐까요. 빨강 풍선을 괴롭히려는 마음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아이들 마음속에서 이런 모습이 자랐을까요. 둘레 어른한테서 배운 모습일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사랑과 꿈과 평화를 가르치지 않고, 지식과 규율과 규칙을 먼저 가르치거나 길들이려 하나요.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답고, 어른들은 어떤 삶을 일굴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사진책 《빨강 풍선》은 “파리의 모든 풍선들이 파스칼에게 내려와 빙글빙글 춤을 추며 튼튼한 줄을 꼬아서는 파스칼을 하늘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스칼은 온 세계를 구경하는 멋진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43쪽).” 하고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조그마한 아이가 빨강 풍선을 아끼던 마음을 다른 모든 풍선들이 읽어 주었어요. 작고 여린 아이가 사랑을 담아 돌보면서 보듬은 넋을 다른 풍선들이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아이한테 들려줄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은 어떤 삶을 가꾸면서 어떤 사랑을 속삭일 때에 기쁘게 웃을 만한지 헤아려 봅니다. 무지개빛이 곱다고 여긴다면,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맑으며 푸른 삶터가 되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입는 옷이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집과 마을이 무지개빛이 되도록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읽는 책에 무지개빛이 감돌고, 우리 이웃하고 무지개빛으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이라면, 무지개빛을 찍을 때에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흑백사진이든 칼라사진이든, ‘무지개빛’을 담아야지요. 무지개처럼 곱게 어우러지는 빛과 넋과 삶을 찬찬히 엮어야지요. 무지개처럼 환하면서 맑게 드리우는 빛살과 마음과 사랑을 따사로이 보여주어야지요.


  간장종이 하나에 식은밥 한 덩이 있어도 사랑을 담아 건네면 맛있게 먹는 한 끼니입니다. 온갖 반찬 푸짐하게 차렸어도 사랑을 담지 않으면 맛있게 누리지 못하는 한 끼니입니다. 알록달록하게 꾸미기에 무지개빛이 아닙니다. 무지개빛은 알록달록이 아닙니다. 무지개빛은 사랑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무지개빛이란 사랑빛이요, 아이와 나눌 즐거운 삶이란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영화는 유투브에서 찾아보면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albert+lamorisse&page=1

감독 이름을 넣으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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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1

 


꽃아,
너를 머리에 꽂아도 돼?

 

고맙,
아이 예쁘다.

 

노란빛
내 가슴속까지 스며드네.

 

 
4346.6.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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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바지저고리 좋은걸

 


  두살배기일 적에는 바지저고리를 그닥 안 좋아하다가, 세살배기일 적에는 이럭저럭 바지저고리를 입더니, 네살배기 된 뒤에는 바지저고리를 좋아한다. 다섯살배기가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이제 산들보라도 새 바지저고리를 맞추어야겠구나. 작네. 4347.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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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24 22:16   좋아요 0 | URL
아유~~너무나 예쁘고 참~! 잘생겼습니다~!!^^
산들보라의 티없이 환하고 즐거운 얼굴을 보니~ 저까지
절로 행복해지네요~*^^*

숲노래 2014-01-25 00:34   좋아요 0 | URL
이웃한테 웃음을 나누어 주는
우리 아이들이로구나 하고 느끼곤 해요.

다른 집 아이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사랑과 웃음을 나누어 주면서
무럭무럭 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