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수저 가지런히

 


  밥상을 다 차린 뒤 아이들을 부른다. 어느덧 작은아이도 밥상에 수저를 착착 놓을 줄 안다. 누나 수저 어머니 수저 아버지 수저를 잘 골라서 놓는다. 그러고는 제 수저도 가지런히 놓으려고 두 손으로 모아서 추스른다. 4347.1.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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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52. 2014.1.7.

 


  아이들이 스스로 밥과 풀을 알맞게 집어서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머잖아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아이 입에 밥과 풀을 넣어 주거나 아이 숟가락에 올려 준다. 서두를 까닭이 없다. 찬찬히 함께 먹으면 된다. 즐겁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아이들과 즐겁게 밥을 먹을 때에 마음속에 고운 빛이 서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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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01. 2014.1.12.ㄴ 밥상맡 거꾸로 책

 


  밥상맡에서 만화책을 무릎에 펼치는 누나 흉내를 내는 작은아이. 늘 누나 흉내를 하는 따라돌이인데, 따라돌이로 놀면서 책은 으레 거꾸로 쥔다. 거꾸로 쥐어 넘기는 책은 어떤 재미일까. 나도 어릴 적에 작은아이처럼 거꾸로 책을 쥐며 놀곤 했을까. 거꾸로 본다지만 무엇을 거꾸로 볼까. 똑바로 보는 책은 무엇일까. 반듯하게 펴서 책을 읽는다는 이들은 참말 반듯하고 똑바르게 지구별 삶자락을 읽는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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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1-20 11:15   좋아요 0 | URL
거꾸로 보는 책, 너무 예쁘네요.

숲노래 2014-01-20 11:19   좋아요 0 | URL
네, 예뻐요.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글보다 아이가 늘 먼저가 된다. 한창 마감을 맞추려고 쓰는 글이 있어도, 아이가 배고프다고 노래하면 모든 일을 멈추고 밥을 차린다. 한창 힘을 쏟아 신나게 쓰는 글이 있어도, 아이가 “아버지 똥 다 눴어요. 똥꼬 닦아 주셔요!” 하고 부르면 두말 없이 아이를 안고 밑을 씻긴 뒤 똥그릇을 비워야 한다. 큰아이가 똥을 누고 나서 바로 작은아이가 눌 수 있고, 작은아이가 똥을 눈 뒤 큰아이도 똥을 누고 싶을 수 있으니까.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이래저래 쓸 글이 밀렸어도 아이하고 놀아야 한다. 밤을 밝혀 써야 할 글이 있어도, 아이를 다독이며 새근새근 재우고 나서 써야 한다. 그런데, 아이만 잠자리에 눕힌대서 아이들이 잠들지 않는다. 아이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자장자장 노래를 불러야 한다. 늘 이렇게 아이들을 재우는데, 아이들을 재우다가 으레 함께 꼬로록 곯아떨어진다. 등판이 따뜻하니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결에 먼저 잠들곤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잠들고서 한참 저희끼리 종알종알 떠들다가 곯아떨어진다.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아이들과 틈틈이 바깥바람을 쐬면서 마실을 다녀야 한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멋스럽게 마당에서 흙놀이를 한다거나 풀놀이를 하면 참으로 고맙다. 한겨울에도 손발이 얼면서 흙놀이를 하는 아이들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러니까, 이렇게 흙밭에서 뒹군 아이들이 마루로 올라서려고 하면 “안 돼!” 하고 막은 뒤, 섬돌에 서서 흙을 털도록 시키고,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으면 옷을 벗겨 씻기거나 옷만 갈아입히거나 해야 한다. 이러고 나서 샛밥을 주어야지.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밤과 새벽 사이에도, 쉬거나 깊이 잠들 틈이 없다. 밤에 쉬 마렵다 하면 함께 일어나고,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면 여미어 주어야 한다. 틈틈이 일어나서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는지 안 걷어찼는지 살펴야 한다. 두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밤오줌기저귀 가느라 삼십 분마다, 또는 십오 분마다 부시시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밤빨래를 하곤 했다.


  새삼스럽지만, 아이와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글보다는 아이한테 훨씬 크게 아주 많이 참말 참말 대단하게 마음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글을 쓸 짬을 내기 매우 빠듯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있어 언제나 글감이 새로 샘솟는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늘 즐거우며 따사로운 글을 사랑스럽게 쓸 힘을 얻는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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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1-20 11:17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빠 덕분에 행복하게 자라는군요.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넘치는 사랑 나누는 일도 크게 하리라 믿어집니다.

숲노래 2014-01-20 11:30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리면서 잘 살자고
늘 새롭게 다짐을 하고 생각해요.
 
아빠가 되었습니다 - 초보 아빠의 행복한 육아 일기
신동섭 지음 / 나무수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22

 


어버이로 살아가는 길
― 아빠가 되었습니다
 신동섭 글
 나무수 펴냄, 2011.3.10.

 


  배고픈 아이를 보면 따스한 사랑이 피어나서 즐겁게 밥상을 차리는 넋이 바로 어버이로구나 싶어요. 바로 어머니 손맛과 아버지 손맛일 테지요. 다만, 예나 이제나 아직 ‘아버지 손맛’은 거의 없고 ‘어머니 손맛’만 넘치지 싶어요.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을 말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는 어버이 자리에서 성평등을 즐겁고 아름답게 이루는 분들은 드물지 싶어요.


  너무 길든 탓일까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도무지 성평등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일까요. 게다가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도시락을 싸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모두 급식을 합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도시락을 싸는 젊은이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돈을 치러 먹는 일’에 길듭니다. 스스로 밥을 차리지 않고, 스스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요. 스스로 밥차림을 살피지 않고, 스스로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않아요.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든, 노동자가 되거나 장사꾼이 되든, 어느 자리에서도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지 않습니다. 요새는 밥을 손수 지어서 먹는 회사가 조금씩 늘기는 하지만 아주 적어요. 관공서나 회사나 공장이 많은 곳을 보면 온통 식당들이 줄을 짓습니다. 낮밥 언저리에는 밥집마다 바글거립니다.


.. 병원에서도 제왕절개로 낳았으니 모유 수유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우는 은지에게 분유를 먹이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분유는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당신들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니냐. 모유 수유를 해야 하니 당분간 보리차를 먹여라.”라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신생아에게 보리차를 먹이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며 황당해 하더군요 … 정해진 시간밖에 아기를 못 보니 아기가 불편해 하든 말든 간호사가 통유리 앞에 들고 있었던 겁니다. 막상 경험해 보니까 ‘이건 너무 SF적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26, 29쪽)


  도시락을 싸는 겨를은 아깝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느라 들이는 품은 아깝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기까지 밥을 차리고 반찬을 마련하는 손길은 아깝지 않습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밥짓기를 배울 노릇입니다. 밥을 정갈하게 차려 맛나게 먹는 즐거움을 누릴 노릇입니다. 어릴 적부터 밥짓기를 즐겁게 누릴 적에 푸름이를 지나 젊은이 되어서도 밥짓기를 즐겁게 누립니다. 젊은 나날에 밥짓기를 즐겁게 누려야,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밥을 맛나게 차려서 베풀 수 있습니다. 손수 즐겁게 밥을 차린 적이 없이, 어떻게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젖떼기밥을 먹일 수 있겠어요. 스스로 즐겁게 밥을 차리는 매무새를 익히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밥을 어떻게 마련하겠어요. 우리 어버이가 나이가 들어 할매 할배가 되면, 우리가 어버이한테 밥을 사랑스레 차려서 나눌 수 있어야지요. 어린 아이와 늙은 어버이 모두 한테 따스한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는 몸가짐이어야지요.


  곧,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건사할 때에 삶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즐겁게 다스릴 적에 어버이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사랑스레 물려주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밥과 옷과 집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받기만 하다가, 차근차근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천천히 배웁니다. 아이들은 밥상에 수저를 놓습니다. 아이들은 빈 밥그릇을 치웁니다. 아이들은 접시를 들어서 나릅니다. 아이들은 행주질과 걸레질을 합니다. 아이들은 설거지를 거들고, 이런 심부름과 저런 집일을 돕습니다.


  즐겁게 도우며 즐겁게 웃어요. 기쁘게 거들며 기쁘게 노래해요. 하나씩 배우고 둘씩 사랑합니다. 셋씩 익히며 넷씩 꿈꾸지요.


.. 아기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은지는 넘어지면 바로 울지 않고 힐끗 엄마나 아빠를 쳐다보더군요. 이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은지야∼” 하면서 달려가면 은지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울음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켜보며 “어 넘어졌네. 손 털고, 무릎 털고.” 그러면 은지도 울지 않고 흙을 털어낸 뒤 다시 걸어갑니다 … 솔직히 말하면 아픈 은지를 데리고 연기 가득한 숯불구이 집에도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보다 가까운 사람은 부모입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가 그랬듯 감기나 복통, 설사, 열, 땀띠 등 비교적 가볍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증상은 아이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주치의가 돼서 다스리는 게 정말 아기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61, 81쪽)


  겨울밤이 고즈넉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앞서 오줌그릇에 눈 오줌을 마당 한켠 나무 둘레에 뿌립니다. 우리 집 나무들이 아이들 오줌을 틈틈이 받아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라기를 빕니다. 우리 집 나무들이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답게 뿌리내리기를 빕니다.


  푸른 바람은 나뭇가지를 스치고 마당을 감돕니다. 푸른 숨결은 풀잎마다 맺히고 풀숲에 깃든 풀벌레가 노래로 바꾸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 나무가 있어 즐겁고, 우리 집 나무를 누리면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으니 기쁩니다.


  깊은 밤에 고즈넉한 바람을 찬찬히 쐬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곁님과 함께 시골살이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골빛을 먹습니다. 나한테 아이들이 없을 적에 이렇게 씩씩하게 시골로 와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나한테 아픈 곁님이 없었어도 이처럼 다부지게 시골로 와서 살림을 꾸릴 만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있어 내 손은 늘 일하는 손이 됩니다. 네 식구 오순도순 지내는 시골집에서 내 손은 늘 물을 만지면서 쉬지 못하는 손이 됩니다. 그런데, 늘 일하고 쉴 겨를이 없는 터라, 이런 이야기와 저런 생각이 자꾸자꾸 샘솟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밥내음 이야기를 떠올리고, 빨래를 하면서 빨래빛 이야기를 생각해요. 걸레질을 하고 비질을 하며 이불을 털고 말리는 동안 하늘숨과 풀숨을 되새깁니다. 어떤 물을 마시고 어떤 바람을 들이켤 적에 몸과 마음이 튼튼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신동섭 님이 아버지로서 쓴 《아빠가 되었습니다》(나무수,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 한동안 이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요즘은 은지가 눈을 뜨고 있을 땐 딴 생각은 아예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저도 함께 ‘노니까’ 시간도 빨리 가고 놀이도 다채로워지더군요 … 그 뒤로 오이, 당근, 미역줄기 등을 치발기로 사용했습니다. 또 삼겹살 먹을 때 싸먹는 각종 쌈은 물론 냉이, 질경이, 쑥 등 길가에서 자라는 풀도 틈만 나면 먹어 보게 했습니다 … 은지는 동생을 반기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눈을 만지려고 하기에 “은지야, 눈 만지면 아파, 다른 데 만질 때도 살살 만지는 거야.”라며 최대한 부드럽게 설명했더니 은지도 알겠다는 듯 “살살” 그러며 쓰다듬고 뽀뽀를 하더군요 ..  (108, 119, 218쪽)


  《아빠가 되었습니다》는 ‘아빠 육아일기’라 할 만합니다. 또는 ‘아빠 육아 수필’이라 할 만합니다. ‘아빠 육아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글쓴이 신동섭 님은 아버지가 되었기에, 이 보람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차근차근 글과 사진으로 풀어냅니다.


  그러면, 신동섭 님이 아이하고 보낸 나날은 오직 아이만 생각하던 삶이었을까요? 갓난쟁이 입에 당근과 오이와 미역줄기(미역귀 아닌 미역줄기를 주었다는군요)를 물렸다고 하는데, 아이 입에만 당근과 오이와 미역줄기가 들어갔을까요? 아이가 없던 삶에서도 이렇게 하루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 아기를 재우다 보면 세상이 얼마나 소움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층간 소음부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까지 모든 소리가 평소와 달리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제가 걸을 때 발바닥과 장판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발에 찍찍이를 붙이고 다니는 것 같더군요 … “그럼 악어가 무서워 붕붕이가 무서워?” “붕붕이가 무서워.” “아빠 차도 무서워?” “응” 악어는 은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입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나 봅니다 ..  (140, 263쪽)


  아이한테도 부드럽게 말할 적에 즐겁고, 어른한테도 부드럽게 말할 적에 즐겁습니다. 자동차는 아이들도 무서워 하고, 어른들도 무서워 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아이들도 싫고 어른들도 싫어요. 전쟁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싫어요. 사랑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반겨요. 평화와 평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합니다.


  어른인 우리들이 즐겁게 살아갈 적에 아이들한테도 즐거운 삶 물려줍니다. 어른인 우리들부터 사랑을 꽃피울 적에 아이들한테도 사랑스러운 삶 이어줍니다.


  아이키우기는 힘들지 않습니다. 어른인 내 삶을 아름답게 꾸리면 되는 일이 아이키우기입니다. 아이가 있기에 대단하게 무엇을 더 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를 바라보면서 어른인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게 가꾸어야 하는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눈치 아닌 마음을 읽는 삶이듯, 아이 마음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아이하고 나누는 삶이 아이키우기입니다.


  곁님은 회사로 돈을 벌러 가고, 신동섭 님은 집에서 아이하고 살림을 누렸기에 《아빠가 되었습니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책을 덮으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육아 수필’도 좋고 ‘아이 사진’도 좋은데, 조금 더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더 깃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아이와 지내며 누리는 즐거움이란 ‘그때는 그랬지’ 하고 뭉뚱그려서 들려주는 ‘좋아 좋아 수필’이 아닌, 아이하고 날마다 지지고 볶거나 웃고 떠든 ‘수수한 이야기’에서 피어나지 않나 싶어요.


  아이가 우는 사진을 책에 꽤 많이 실었는데, 아이가 왜 이렇게 자주 울어야 했는지를 더 낱낱이 적으면 훨씬 빛이 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부쩍 큰 뒤를 헤아린다면 이런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되겠지요. 아이가 웃는 사진과 얽혀, 아이가 언제 어떤 말빛을 터뜨리면서 웃음보따리가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수수하고 투박하게 더 들려준다면 훨씬 재미나겠지요. 무엇보다 ‘아이가 살아가며 읊은 말’이 이 책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이와 부른 노래도 그렇게 도드라지지 못합니다. 아이와 먹은 밥도, 아이와 함께 누린 옷과 이불과 집살림도, 이런저런 자잘하거나 자질구레한 삶빛이 바로 아이와 지내는 어여쁜 삶노래가 된다고 느껴요.


  아버지는 혼자서 될 수 없어요. 어머니가 있기에 아버지가 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이 함께 있으면서 다 같이 어버이가 되어요. 아이는 아버지 사랑과 어머니 꿈을 함께 먹으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아버지 노래와 어머니 눈빛을 같이 먹으면서 큽니다. 어버이로서 일구는 삶과 사랑과 꿈을 조금 더 또렷하게, 차근차근 깊고 넓게, 도란도란 사랑스럽게 들려줄 수 있으면 이 책이 그야말로 알찬 육아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벼운 ‘육아 수필’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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