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15.
 : 추워도 재미난 자전거

 


- 새해에 일곱 살을 맞이한 큰아이는 곧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까지 함께 다녀올 수 있을까. 큰아이는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다녀올 만큼 다리가 튼튼하기는 하지만, 자전거는 어떠할는지 아직 모른다. 새끼바퀴를 붙인 채 간다면 갈 수 있을는지 모르는데, 거의 걷는 빠르기와 같지 않나 싶기도 하다. 큰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도록 하자면, 샛자전거는 떼고, 작은아이 태울 수레만 붙인 채 달려야지 싶다. 아무튼, 아버지가 이끄는 자전거에 붙이는 샛자전거에서 내려 혼자 자전거를 달리자면, 한겨울에도 즐겁게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한다. 겨울에는 겨울바람 쐬는 재미를 누리고, 여름에는 여름바람 맞는 즐거움을 누릴 때에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덥다고 안 타거나 춥다고 안 타면 자전거를 못 탄다. 더울 적에는 더위를 잊는 자전거를 떠올리고, 추울 적에는 추위를 잊는 자전거를 헤아려야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 작은아이는 서재도서관에 들를 때까지는 씩씩하게 놀더니, 마을을 벗어날 무렵부터 수레에서 잠든다. 우체국에 닿으니 새근새근 잘 잔다.

 

- 바람이 세다. 우체국에 닿을 무렵에 모자를 벗은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워서 고개를 폭 숙이고 말이 없다. 호덕마을 지나서 자전거를 세운다. “벼리야, 추우면 모자를 써.” “응, 그런데 안 써져.” “그러니? 그러면 내려서 이리 와 봐.” 장갑 낀 손으로는 모자를 쓰기 힘든 듯하다. 자전거에 앉은 채 큰아이 모자를 씌워 준다. 머리카락으로는 귀를 덮어서 귀가 덜 시리도록 한다.

 

- 우리 마을로 돌아올 무렵 작은아이가 깨어난다. 애써 잠이 들었으나, 꼭 집에 닿으면 깬다. 그런데 오늘은 안아서 잠자리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니, 한 시간 남짓 더 잔다. 졸립기는 졸렸네. 아침부터 개구지게 놀았으니. 큰아이는 마당에서 제 자전거를 타며 빙글빙글 돈다. 슬슬 샛자전거를 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꽤 잘 하고 키가 제법 자랐으니 5킬로미터쯤 신나게 달릴 만하지 않으랴 싶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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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8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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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6

 


누가 우리를 키우나
― 은수저 8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아름드리로 큰 나무는 기나긴 해 뿌리를 내린 숨결입니다. 오백 해, 천 해, 이천 해, 오천 해를 살아가는 나무는 차근차근 자라면서 줄기와 가지를 굵게 뻗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툭하면 허물어서 다시 짓느라 바쁜데, 나무는 아무렇게나 베어 없앴다가 다시 심어서 키울 수 없어요. 모든 나무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천천히 자라고, 단단히 뿌리를 내립니다.


  가만히 살피면, 백 해쯤 이어가는 건물조차 드뭅니다. 이백 해나 오백 해를 잇는 집이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집을 짓는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돈이 될 집을 지어서, 돈을 모으는 동안 머물다가, 돈이 안 될 듯싶으면 허물어요. 돈으로 다시 짓고, 돈으로 다시 허문 뒤, 또 돈으로 새로 짓습니다. 앞으로 쉰 해가 지난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을까요. 앞으로 백 해가 흐른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나무는 쉰 해나 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사람들이 재개발을 한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으면, 나무는 백 해 뒤뿐 아니라 오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이런 집과 저런 건물로는 어떤 자취도 못 남기지만, 나무가 크는 모습은 오래도록 새로운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 “아아, 치즈는 송아지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거구나. 죄 많은 식품이여.” “곰팡이로 추출하는 레닛도 있지만.” “요즘은 유전자조작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지요?” (15쪽)
- “우유 수매가는 가공용이 리터당 80엔 정도라며? 치즈는 엄청 남는 거네! 다들 치즈 만들면 되겠다!” “참고로, 앞으로 5회, 압력을 바꿔 가며 하나하나 뒤집어 다시 압착. 그 후 10℃ 이하의 찬물에 하룻밤 담가 놓고, 손으로 소금을 비벼, 1주일 간 건조. 표면의 균을 안정시키기 위해 숙성 초기에는 주 3회, 안정되기 시작하면 주 2회, 브러시로 닦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죠.” (21∼22쪽)


  종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옷장이나 책꽂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는 늘 그대로 나무입니다. 죽은 목숨이 아닌 산 목숨인 나무입니다. 재료나 자원이 아닌 고운 숨결 깃든 나무입니다.


  아파트나 건물이나 공장이 없어도 사람은 안 죽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나무가 베푸는 푸른 숨결이 있기에 사람이 살아갑니다. 건물이나 공장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숨결을 베풀 수 없어요. 건물이나 공장으로는 사람이 살아갈 빛이나 밥을 내놓지 못해요.


  손전화기를 쥐지 말고 나뭇줄기를 쓰다듬어요. 셈틀을 끄고 숲으로 가거나 동네에 있는 나무한테 찾아가서 가만히 귀를 대요. 나뭇줄기를 흐르는 숨소리를 들어요. 나무가 읊는 노래를 들어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가 짓는 웃음과 눈물을 찬찬히 살펴요. 겨울눈을 들여다보고,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만지며, 어떤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고치를 만드는가 헤아려요.


- “뭐, 간단히 말하면 ‘농학은 즐겁고 맛있다.’” “하긴 농사짓다 보면 굶어죽을 일은 없지.” “그야말로 ‘은수저’구나.” “은수저?” “서양에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평생 밥을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30쪽)
- “그래도 모르겠어요. 친구를 위해 뭘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 그래도 알려 하는 노력은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113쪽)
- “고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들 순순히 차에 오르는구나.” “코마바 목장의 소들은 송아지 때부터 한 마리 한 마리를 아끼며 돌봐 와서 사람을 믿거든.” (119쪽)


  이 겨울에도 온갖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잎사귀가 알게 모르게 사라집니다. 갑자기 왜 잎사귀가 사라지나 하고 들여다보니, 나비로 깨어나려고 애쓰는 애벌레가 갉아먹었습니다. 바지런히 잎을 갉아먹고는 용케 눈에 덜 띌 만한 자리에 고치를 틉니다.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멧새가 꽤 많은데 참말 이 애벌레는 안 잡아먹히고 나뭇잎을 제법 갉아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이 나비를 꽤 많이 잡아먹을 텐데, 나비는 새들이 잡아먹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새로 깨어납니다. 애벌레는 다시금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새롭게 고치를 맺고 나비꿈을 꿉니다. 풀벌레와 새와 나비와 개구리 모두 저마다 먹이사슬 이루면서 풀밭과 숲에서 푸른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작은 목숨들이 얼크러지면서 흙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흙은 비료나 농약으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비료나 농약을 쓰는 흙은 나날이 허연 빛으로 바뀝니다. 도무지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만한 흙이 됩니다.


  흙이 싱그러이 숨쉬려면 지렁이가 있어야 한다 말하는데, 지렁이만으로는 흙이 싱그러이 숨쉬지 못합니다. 지렁이뿐 아니라 두더쥐가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들쥐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뱀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개구리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당벌레도 살고 개미도 살아야 해요. 개미집이 없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 무엇을 심어서 키울 수 있을까요. 메뚜기가 날지 않고 방아깨비가 춤추지 않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서 어떤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요.


  빗물이 드리우고 햇볕이 내리쬐며 바람이 살그마니 흐르는 흙이 천천히 살아납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우거지는 흙이 차근차근 기름집니다. 흙이 있어 문화가 태어나고, 흙이 있어 삶을 일굽니다. 흙이 있기에 마을이 생기며, 흙이 있기에 아이들이 자랍니다.


- “어떻게 말해? 코마바 목장이라는 한 회사의 도산인데. 정식 절차를 밟을 때까지는 함부로 입밖에 내선 안 된다고. 게다가, 말한들 네가 어쩔 건데? 빚을 갚아 줄 수 있어?” (37∼38쪽)
- “무슨 방법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니?” “하치켄은 정말 마음도 좋아. 정말,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으니까. 하치켄까지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 (41쪽)
- “동생들은 대학까지 보내 주고 싶으니까. 학교 그만두고 일할 거야.” “꿈은 어쩌고! 포기할 거야?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래. 야구도 가업도, 모두 없어졌어. 하는 수 없어.” (55∼56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3) 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여덟째 권에서는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와 꿈을 새롭게 품는 아이가 나옵니다. 어느 아이는 집안이 폭삭 주저앉아서 시골 농장을 남한테 넘기고는 품팔이 일을 나갑니다. 어느 아이는 아직 집안이 주저앉지는 않았으나, 시골일을 잇기보다는 대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한테는 무엇이 꿈이 될까요. 이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꿀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마음밭 되어 어떤 생각을 곱게 품을까요.


- “사실은 억울하고 분해 미칠 것 같으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59쪽)
-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돈도 들고, 안 그래도 돈 때문에 회의 중인데.” “돈 얘길 하는 게 아니야! 네 장래 이야기를 하는 거다.” (153쪽)
- “아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단단히 공부하거라. 말이 너를 길러 주지 않았니? 어설픈 마음 먹고 덤비면 말에게 도리가 아니지.” (154쪽)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꼭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꼭 다닐 일이란 없습니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지 않을 뿐더러, 지식을 여러모로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논밭을 일구려는 사람은 논밭을 일굴 노릇이지, 책으로 흙일을 배울 수 없습니다. 몸으로 흙을 만지고 몸으로 흙을 느낄 때에 흙을 돌봅니다. 짐승을 키울 적에도 짐승과 함께 살아가야 짐승을 키우지, 책으로는 배울 수 없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어요. 밥짓기를 책으로 못 배웁니다. 옷짓기와 집짓기도 책으로 못 배웁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누구도 밥과 옷과 집을 책으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어요.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익혔어요. 삶으로 온통 누리던 밥과 옷과 집입니다.


  꿈이란 무엇인가요. 대통령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소설을 쓰거나 학자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운동선수가 되거나 가수가 되는 길이라면 꿈인가요. 꿈이라기보다 직업이요, 꿈하고는 다른 일자리 아닐는지요. 꿈하고는 먼 돈벌이요, 꿈이라 하기 어려운 겉치레 아닐까 싶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비를 대주는 것뿐이야. 네 꿈이 진심이라면 해 봐라.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네 진심을 믿고 의지가 되어 준 친구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161쪽)


  누가 우리를 키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키웠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자랐을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아무래도, 어버이가 낳아서 돌보았고, 학교나 동네나 이웃이 이모저모 가르쳐 주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밑힘이란, 무엇보다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나무와 풀입니다. 햇볕이 드리워 내 몸을 덥힙니다. 바람이 불어 내 숨결이 됩니다. 비가 내려 몸을 맑고 싱그럽게 채웁니다. 흙이 곱고 구수해 피와 살이 됩니다. 나무가 우거져 활짝 웃습니다. 풀빛이 환하면서 정갈하니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만화책 《은수저》는 여덟째 권에 이르러 책이름이 왜 ‘은수저’인가를 얼핏 보여줍니다. 흙을 일구고 살아가면 ‘굶어죽을’ 일이 없다는 얘기를 살짝 지나가듯이 들려주는데, 첫째 권부터 여덟째 권으로 오는 동안 내내 ‘먹는’ 이야기만 했어요.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서 먹을거리로 삼는지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먹을 밥이란 무엇이요, 이 밥을 어떻게 얻고, 이 밥이 나오는 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흙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한테 밥을 베풉니다. 흙은 내 어버이를 낳았고, 흙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 줍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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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판에서 날개 단 빅토르 안 (안현수)

 


  올해 2014년에 러시아에서 겨울올림픽을 연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며칠 앞서 독일에서 열렸다는 어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빅토르 안’이라는 선수가 금메달을 넷 한꺼번에 목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러시아 국가대표라고 하는 ‘빅토르 안’인데,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누구도 이 선수를 따라잡거나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빅토르 안’이라는 선수는 함께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가운데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에도 아주 잘 한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삶일까. 얼마나 즐겁게 경기를 뛸까. 얼마나 온힘 다해서 날마다 새롭게 맞이할까. 이녁은 ‘빅토르 안’이기에 ‘안현수’라는 이름으로는 만날 수 없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넋과 빛으로 살아가겠지. 이곳에 있어도 저곳에 있어도 이녁은 언제나 똑같은 숨결이다. 서른에도 서른을 넘긴 뒤에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빈다. 얼음판에서 날개를 단 ‘빅토르 안’한테 아름다운 사랑과 이야기가 그득 넘칠 수 있기를. 4347.1.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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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갖추는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4.1.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리 서재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이다. 우리 집 서재이면서 도서관이기에, 우리 식구들이 즐기는 책을 갖추는 한편, ‘사진책’을 남달리 살피며 갖춘다. 사진책은 새로 나오는 책도 갖추지만,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을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둘 찾아내어 갖추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새로 나오는 사진책 가짓수부터 그리 안 많고, 헌책방에서 찾아볼 만한 사진책 가짓수도 그리 안 많다. 새로 나오는 사진책부터 안 많은데다가 잘 안 팔리니, 헌책방에 사진책이 들어오기도 어렵다. 곰곰이 돌아보면, 예나 이제나 헌책방에서 만나는 사진책을 보면 ‘작가 드림책’이 제법 많다. 누군가 스스로 장만해서 내놓은 사진책보다는 누군가 선물로 받은 사진책을 조용히 내놓는 흐름이라고 할까.


  서울 종로 한켠에 있는 사진전시관 ㄹ에서 전화가 온다. 새해부터 전시관 한쪽을 ‘사진책 도서관’이 되도록 꾸미려 한다면서 도움말을 여쭌다. 우리 서재도서관에 있는 책을 그곳에 보낼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동안 하나둘 갖춘 사진책 가운데 두 권 있는 책은 몇 가지 나누어 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서재도서관에 가서 책꽂이를 돌아본다. 두 권 있는 사진책이라 하더라도 섣불리 뽑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 권 있더라도 판 끊어진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찾아내어 갖출 적에는, 두 권마다 다른 이야기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두 권을 갖춘 까닭은 한 권은 ‘누구나 마음껏 읽도록’ 하려는 뜻이요, 다른 한 권은 ‘곱게 건사해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 뒤까지도 남기도록’ 하려는 뜻이다. 그러니, 두 권이 있대서 쉬 빼내지 못한다.


  이 책들을 갖추려고 꽤 긴 해를 들였고 퍽 많은 돈을 바쳤다. 도서관 하나를 이루자면 돈뿐 아니라 긴 나날을 들여야 한다. 새로 나오는 책만 갖추려는 도서관이라면, 건물 짓고 책 살 돈만 있으면 되겠지. 그렇지만 전문 도서관으로 하자면, 건물이나 새책 살 돈으로는 꾸릴 수 없다. 그동안 나온 판 끊어진 책을 퍽 오랫동안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하나씩 찾아내어 갖추어야 한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 서재도서관에 누군가 사진책 100권이나 200권쯤 선물한다면 우리 서재도서관 책살림이 나아질까 하고. 틀림없이 나아질 테지. 이런 고마운 손길이 있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100권이나 200권이 찾아들기 앞서, 한 달에 다문 한 권이라도 아름다운 사진책을 찾아내어 갖출 수 있기를 바라곤 한다.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국립중앙도서관이건 지역도서관이건 안 갖추는 사진책 한 권을 만만하지 않은 값을 치르면서 천천히 갖춘다. 2007년 4월에 서재도서관 문을 처음 연 뒤부터 사진책 갖추느라 돈을 얼마나 많이 썼고, 품을 얼마나 많이 들였는지 돌아본다.


  서울 종로 한켠에 있는 사진전시관 ㄹ에서 앞으로 꾸준히 헌책방 나들이를 하시기를 빈다.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서울 용산 〈뿌리서점〉, 서울 노량진 〈책방 진호〉, 서울 창천동 〈글벗서점〉,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서울 연신내 〈문화당서점〉, 이렇게 여섯 군데 헌책방을 틈틈이 찾아가서 아름다운 사진책을 찬찬히 만나시기를 바란다고 편지를 띄운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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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1-2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진책을 갖추고 싶네요.ㅎㅎ
역시 책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4-01-20 19:53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책을 곁에 두면
참으로 즐겁지요.
곧 잘 갖추시리라 믿어요.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81) -화化 181 : 체화

 

아시아는 다양성의 대륙이었고 사람들은 관용을 체화하며 살고 있었다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127쪽


 관용을 체화하며 살고 있었다
→ 관용을 몸으로 받아들여 살았다
→ 관용을 온몸으로 살아냈다
→ 관용을 온몸으로 익히며 살았다
→ 관용을 널리 나누며 살았다
→ 관용을 스스럼없이 나누며 살았다
 …


  ‘체화(體化)’라는 한자말은 “물체로 변화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뜻 그대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어요. 이 한자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몸으로 겪’거나 ‘몸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몸으로 삭히’거나 ‘몸으로 녹여내’거나 ‘몸으로 살아내’는 모습을 나타내요.


  관용을 체화한다 할 적에는 “관용이 몸으로 스며든다”는 뜻입니다. “관용을 몸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는 소리입니다. “온몸이 관용덩어리가 된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 ‘관용’이란 ‘너그러움’이에요. “너그러움을 온몸으로 깊이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무척 너그러운 매무새”라는 말이 되겠지요.


  한자말 ‘관용’을 그대로 둔다면 “관용을 널리 나누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만, ‘관용’이라는 한자말을 쓰니, 이런 낱말 뒤에 ‘체화’가 들러붙는구나 싶어요. ‘너그럽다’ 같은 낱말을 넣을 적에도 “너그러움을 체화하며”처럼 글을 썼을까요? 이를테면, “사랑을 체화하며”나 “믿음을 체화하며”처럼 글을 쓸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은 자꾸 한자말을 부르고 영어는 다시 영어를 부릅니다. 알맞고 쉬우며 바르게 글을 쓰면 새롭게 알맞고 쉬우며 바른 낱말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4347.1.2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시아는 다양함이 가득한 땅이었고, 사람들은 매우 너그럽게 살아간다
아시아는 무척 다양한 땅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너그럽게 살아간다


‘대륙(大陸)’은 지구를 여섯 땅덩이로 나누는 뜻으로 쓸 만하지만, 이 글월에서는 굳이 안 써도 됩니다. ‘땅’이라고만 해도 됩니다. ‘다양성(多樣性)’은 “여러 가지 모습”을 뜻해요. 곧, “아시아는 무지개빛 땅”이라는 소리입니다. “아시아는 온갖 빛깔이 어우러진 땅”처럼 찬찬히 풀어서 손질할 수 있고, “아시아는 다양함이 가득한 땅”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관용(寬容)’은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은 ‘너그러움’입니다. 이런 낱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지만, 자꾸 이런 낱말을 쓰는 탓에 말뜻이 흐리멍덩해질 뿐 아니라, 쉽고 바른 한국말을 잊어버립니다. “살고 있었다”는 “살았다”나 “살아간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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