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25. 큰아이―꿈꾸는 네 사람

 


  큰아이가 네 식구를 그린다. 네 식가 나란히 누워서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을 그린다. 자면서 저마다 무언가 하나씩 꿈을 꾼다. 무슨 꿈을 꿀까. 네 식구는 저마다 무슨 꿈을 꾼다고 생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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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사람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을 한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내가 없는 저곳으로 생각을 달린다. 책을 읽는 동안 오늘에서 어제로 여행을 한다. 내가 있는 오늘에서 내가 없는 어제로 마음을 움직인다. 새로 나온 책이라 하더라도 오늘을 말하지 못한다. 책은 오늘 나오지만, 책에 담을 이야기는 모두 어제 누린 삶이다. 오늘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담아도, 글을 쓰고 나면 모두 지나간 이야기가 된다. 지나간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아볼 수 있기에 책을 펼치는가. 어제 이야기에서 어떤 기운을 받을 수 있기에 오늘을 살며 책을 넘기는가. 내가 살아가는 이곳이 아닌 이녁이 살아가는 저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어떤 빛을 느끼기에 책을 손에 쥐는가. 삶을 여행하면서 삶을 읽고, 사랑을 여행하면서 사랑을 읽는다. 꿈을 여행하는 이는 꿈을 읽고, 평화를 여행하는 이는 평화를 읽는다. 4347.1.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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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자- 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김미라 지음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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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읍내 장보기

 


  설을 앞두고 읍내로 장을 보러 다녀온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읍내로 장을 보러 다녀오던 날을 돌이켜보면,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아이들한테 밥을 안 차려 준다. 능금 두 알을 썰어 나누어 먹고, 배 한 알을 깎아 함께 먹는다. 이렇게만 먹이고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군내버스를 탄다.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면 아이들은 배가 불러 느긋할 테지만, 작은아이는 으레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이다. 이러면 읍내마실이 꽤 고되다. 살짝 배고픈 채 마실을 한 뒤, 오늘 하루는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로 아침과 주전부리를 내주면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똥을 누고, 배를 알맞게 채운 뒤 작은아이는 느즈막한 낮잠을 잘 재울 만하다.


  읍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장만하는데 모두들 나를 보고 묻는다. “애 엄마는?” 나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아이들더러 “너네 엄마는 어디 있니?”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엄마는 집에서 자요.” 하고 말한다. 그래, 네 어머니는 집에서 주무시지. 네 어머니 몸이 튼튼하다면 읍내마실 함께 나올 테고, 한결 느긋하게 돌아다니면서 장을 볼 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를 부른다. 돌아가는 군내버스는 읍내에서 열두 시 반에 있는데, 읍내 버스역에 닿은 때는 열두 시 삼십팔 분. 다음 버스는 두 시 반에 있다. 이웃마을 지나가는 버스는 한 시 반인데, 한 시 반 버스를 타면 집까지 아이들과 삼십 분을 걸어야 한다. 버스역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삼 분쯤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할까. 가만히 헤아리니,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나랑 형을 데리고 신포시장으로 장보러 다녀오실 적에 가끔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를 탄다고 그저 좋아하기만 했는데, 그때 어머니로서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으셨지 싶다. 버스를 타면 돈이 얼마요 택시를 타면 돈이 또 얼마요 하고 생각하셨겠지. 생각을 하고 하다가 택시를 타셨겠지.


  큰아이가 앞으로 한두 살 더 먹으면 택시 탈 일이 줄어들까. 모르겠지. 그러나, 타야 할 때에는 타야겠다고 느낀다. 읍내에서 장을 보니, 어느 할매가 우리더러 “차에까지 짐 실어다 주마.” 하고 말씀하시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이 없다.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니까. 아무튼, 집까지 잘 돌아왔다. 택시 타느라 들인 돈은, 이것저것 더 일하면서 벌면 된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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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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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8

 


여행하는 삶과 여행하는 사랑
― 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06.5.15.

 


  아침 일곱 시 반에 자리에서 일어난 작은아이가 아버지를 부릅니다. “쉬 마려.” 쉬가 마려우면 혼자 가서 하면 되지, 뭘 부르니. 그렇지만 작은아이를 데리고 마루로 가서 쉬를 누입니다. 이제 네 살 어린이인 만큼 쉬를 누여 달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씩씩하게 혼자 쉬를 누지만, 깊은 밤에는 함께 마루에 서 달라고 부릅니다.


  아이를 이끌고 마루에 서서 쉬를 누이거나 오줌누기를 지켜보노라면, 어느새 바깥빛을 살핍니다. 한밤에는 한밤 빛깔을 살피고, 새벽에는 새벽빛 살피며 아침에는 아침빛 살펴요. 일곱 시 반에 작은아이 쉬를 누이면서, 일월 이십육일 아침해가 이렇게 일찍 뜨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겨울 한복판인 일월이지만 해가 꽤 길어졌다고 느낍니다.


  한겨울 지나 늦겨울이자 끝겨울이 되어도 추위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월에는 일월보다 해가 길 테지요. 일월보다 이월은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질 테지요. 엊그제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하는데, 저녁 여섯 시가 넘어도 해가 다 안 떨어집니다. 동짓날이 가까우면 낮 네 시를 지나도 곧 어둑어둑한데, 저녁 다섯 시에도 해가 안 떨어지고, 여섯 시에도 날이 밝은 빛을 바라보면서, 겨울과 봄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 이 땅에 문명이라는 것이 찾아온 뒤로 모든 게 변하고 있습니다 … “미래의 후손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아름다운 자연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봤자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 아마존의 밀림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아마존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표정이 담긴 한 장의 사진으로 얼마든지 아마존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입니다.”(친구 알두가 호시노한테 들려준 이야기) ..  (23쪽)


  겨울을 벌거숭이로 보내는 나무가 있습니다.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 고스란히 매다는 나무가 있습니다. 벌거숭이로 겨울을 보내는 나무라면 앙상하다 할 테지만, 가지마다 새눈이 대롱대롱 있어요. 가을잎 떨구면서 곧바로 새잎 틔우려고 힘을 써요. 겨우내 새눈에 온힘을 그득 모아요.


  겨우내 푸른 잎사귀 매다는 나무를 들여다보면 새봄에 피울 꽃봉오리를 단단하게 맺습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를 날마다 마주하면서 꽃봉오리를 으레 만집니다. 얼마나 야무지고 단단한지 살핍니다. 얼마나 멋스럽고 고운지 헤아립니다.


  두 눈으로 잎사귀와 봉오리를 만지고, 두 손으로 종이를 펼쳐 잎사귀와 봉오리를 그립니다. 두 귀를 기울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고, 코와 살갗으로 풀내음을 가득 마신 다음, 살며시 귀를 나뭇줄기에 대고는 나무 숨결 뛰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언제나 나무 곁에 있으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없다면, 언제나 나무 곁에 없을 뿐 아니라 나무가 노래를 들려준다는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입니다.


.. 밤이 깊어지자 하늘은 온통 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달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 푸른 열매송이가 보이면 무작정 자리를 잡고 앉아 손이 닿는 대로 블루베리를 따먹고 나서 잠시 누워버립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블루베리 색과 똑같습니다 … 이 조용한 세계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눈들의 외침뿐입니다 …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한 생명의 약동이야말로 자연의 위대한 힘입니다 ..  (32, 34, 50, 75쪽)


  바람은 늘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에 실린 꽃내음과 풀내음을 먹기에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람은 늘 웃음을 짓습니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웃음을 바라보는 논과 밭에서 새롭게 풀싹이 돋고 풀줄기 오릅니다. 우리들은 바람노래 듣는 풀잎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요.


  사진기라고 하는 물건이 태어난 지는 이제 백 해를 조금 넘으니, 사진을 찍은 발자취도 백 해 남짓입니다. 그렇지만, 사진기가 없었어도 사람들은 늘 마음속에 사진을 담았습니다. 따사롭게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담아요. 즐겁게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누려요. 한 번 들은 노래를 잊지 않고 새삼스레 흥얼거립니다. 한 번 본 모습을 잊지 않고 다시금 조잘조잘 이웃한테 알려줍니다.


  마음에 담기에 노래로 다시 부르고, 마음에 담으니 이야기로 다시 들려줍니다. 마음에 담으니 사진기 있을 적에는 사진기를 빌어 살포시 앉혀요. 마음에 담지 못할 적에는 사진기 있더라도 어떠한 모습조차 앉히지 못합니다.


  처음 본 모습이기에 찍지 않아요. 마음속으로 그리던 모습이기에 찍어요.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마음이란, 처음부터 그리고 기다리면서 품습니다.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한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기다렸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속으로 그리거나 기다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어미는 영하 50도의 추위를 뚫고 갓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열심히 핥아 주다가 젖을 물릴 준비를 했습니다 … 카리부 사슴의 새끼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한 마리의 검은방울새가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것도 단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깜짝 놀라서 목화밭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배낭을 벗어버리고 그 위에 누웠다. 여름철에만 맡을 수 있는 툰드라의 흙내가 싱그러웠다. 맑게 갠 백야의 푸른 하늘이 한없이 펼쳐졌다. 그대로 가만히 누워 있으면 카리부 사슴떼가 머리 위로 소리 없이 지나갈 것만 같았다 ..  (44, 46, 138쪽)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책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이야기책’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알라스카를 온몸으로 누비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호시노 미치오 님이 ‘무엇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느냐’ 하는 이야기를 읽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호시노 미치오 님이 ‘사진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이야기를 아로새깁니다.


  사진기를 빌어 찍은 모습만 담아야 사진책일까요? 사진 작품만 그러모아야 사진책일까요?


.. 우리가 진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 많은 그림자를 인간에게 드리웁니다. 그리고 지금 그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한 인류를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멍하니 서 있습니다 … 린드버그가 알래스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니, 몰랐던 사실이다. 게다가 이렇게 헌책방의 낡은 앨범 속에 귀중한 자료가 잠들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 정보가 적다는 사실은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힘을 만들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그만큼 인간은 더 많은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 편대를 이뤄 창공을 날아가는 오리떼가 내겐 아름다운 자연의 광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에스키모 사냥꾼들에겐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일 뿐이었다 ..  (84, 116, 153, 243쪽)


  사진 몇 장 안 실은 《여행하는 나무》이지만, 그동안 호시노 미치오 님이 사진으로 담은 ‘이웃들’ 살림살이와 빛깔과 무늬와 그림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사진 몇 장 안 실어도 좋은 《여행하는 나무》를 읽으면, 사진이 없어도 머릿속으로 그림을 또렷이 그릴 수 있습니다. 이녁이 만난 사람들 낯빛과 웃음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녁이 디딘 땅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녁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알라스카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진이란 그예 사진입니다. 작품으로도 사진을 느끼며, 말로도 사진을 느낍니다. 이야기로도 사진을 누리며, 눈빛으로도 사진을 누립니다.


  알라스카하고 한몸이 되면서 사진하고 한마음이 되는 호시노 미치오 님은 알라스카에서 만난 이웃들하고 ‘사진’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사진’ 하나로 알라스카 사람이 되어요. 사진을 드리우면서 삶꽃을 피웁니다.


.. 나는 이곳에서 사람이 따스한 햇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매일 밤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별빛은 우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페이지인 셈이다 …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아도 좋다. 빙하 위에서 밤을 지새면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계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인생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 지금 얼마나 멋진 풍경 속에 자신들이 서 있는지를 아이들은 알고 있는 걸까. 이렇게 대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 사회의 척도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은 더육 자유로워진다. 인생의 척도가 오직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  (139, 148, 149∼150, 151, 233쪽)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나 춤추고 싶어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추렴. “노래 틀어 주셔요.” 하고 덧붙입니다. 그래,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고 싶구나. 그러면 틀어야지.


  큰아이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춤을 춥니다. 혼자서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춥니다. 어깨를 흔들고 발장구를 칩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이리저리 뜁니다. 스스로 즐거운 춤입니다.


  스스로 즐거울 때에 삶이 되고, 스스로 즐거운 삶일 때에 이야기 되며, 스스로 즐거운 삶으로 빚는 이야기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솜씨는 없습니다. 삶을 가꾸는 솜씨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재주란 없습니다. 삶을 꾸미는 재주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돌볼 적에 이런 솜씨나 저런 재주를 부리지 못합니다. 아이는 오로지 사랑으로만 돌봅니다.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도 사랑을 받아먹을 뿐, 과자나 밥이나 주전부리를 받아먹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사랑스레 내미는 넋을 받아서 즐겁게 먹고 즐겁게 놀아요.


  사진을 아름답게 찍는 넋은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고픈 꿈을 품으면서 하루하루 사랑스레 일구면, 사진은 저절로 태어나요.


.. 나는 혼자였고, 많은 위험도 겪었다. 그러나 위험한 순간들을 무사히 넘길 때마다, 또 내가 혼자라는 고독을 체감할 때마다 마음이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그날그날 내가 선택하는 일상이 대본 없는 연극처럼 새롭기만 했다. 내 평생 처음 겪어 보는 신비로운 감정이었다 … 어제까지 알래스카의 여행자였다면 오늘부터 한 사람의 당당한 주민이 된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다짐한 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예를 들어 간혹 벌판에서 마주치는 늑대조차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 전에는 늑대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은 내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  (222, 226쪽)


  여행하는 나무란, 나무가 여행한다는 뜻일까요. 여행하는 나무란, 나무가 여행하는 꿈을 품는다는 소리일까요.


  나무는 언제나 여행합니다.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만, 나무꽃은 온 숲과 마을 새와 벌레와 사람을 부릅니다. 머나먼 곳에서 나무꽃을 보려고 모여요. 그러고는 나무한테 저마다 어디에서 왔고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조잘조잘 떠듭니다. 나무는 한 곳에 가만히 서서 온누리 이야기를 모조리 듣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앗이 깃듭니다. 나무한테 찾아온 새가 열매를 먹고 멀리멀리 날아가서 똥을 뽀지직 누면서 어린 씨앗이 새로운 터에서 뿌리를 내려요.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가 된 나무는 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두루 누빕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온갖 고을과 고장을 돌아다닙니다.


  나무는 빙그레 웃습니다. 씨앗으로서 여행을 다니고, 책이 되어 나들이를 떠납니다. 때로는 책상이나 걸상이 되어 여행을 해요. 때때로 배가 되기도 하고 기둥이 되기도 합니다. 온갖 모습으로 몸을 바꾸면서 여행을 하는 나무입니다.


..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이런 광경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살아남은 생명은 오직 빛과 그림자뿐이다 … 아내는 이곳의 자연에 흠뻑 반한 눈치였다. 겨울이 긴 북쪽은 상대적으로 여름이 짧다. 이런 곳에서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다. 만일 이 땅에 겨울이 없었다면, 그리고 일 년 내내 꽃이 피었다면 사람들은 지금처럼 생명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내 덕분에 알래스카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항상 거대한 자연만 관찰하던 내게 땅에 핀 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 이곳에서 만난 꽃과 바람은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  (285, 295, 297쪽)


  오늘 이곳을 찍는 사진입니다. 어떤 사진도 어제나 모레를 찍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찍은 사진 하나는 모레가 되고 글피가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랜 나날 지구별에서 푸르게 흐르며 살아온 이야기를 오늘 이곳에서 모조리 보여주어요.


  얼마나 많은 나날이 흘러서 지어낸 멋진 모습일까요. 오늘 이곳에 찾아왔기에 찍은 이 사진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었을까요. 사진 하나 들여다보는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까요.


  긴긴 겨울이 있어 봄꽃을 기다린다면, 긴긴 삶이 있기에 오늘 사진 한 장 찍겠지요. 긴긴 겨울을 보내며 봄꽃을 흠뻑 누린다면, 긴긴 삶을 숱한 사람들이 누리며 오늘 이곳까지 왔으니, 이 모습을 즐겁고 고마웁게 찰칵 한 장 찍겠지요.


  여행하는 나무이고, 여행하는 사진입니다. 나무는 여행을 하고, 사진은 여행을 합니다. 여행하는 삶이고, 여행하는 사랑입니다. 삶은 여행을 누리고, 사랑은 여행을 꽃피웁니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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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6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1-26 19:15   좋아요 0 | URL
이분 책은 하나하나 참 멋져요.
한국말로 옮긴 책은 아직 몇 가지 안 되고,
이분 사진책은 아직 한국에 소개도 못 되었는데,
저는 일본판으로 이분 사진책을
하나하나 장만하면서 즐겁게 누린답니다~
 

아이와 함께 '한글 배우기'를 하는

[한글노래]를 쓰기로 한다.

 

[한글노래]는 진작부터 썼다.

다만, 아이가 글을 익히며 노는 공책에

그냥저냥 적어 주었을 뿐이다.

 

이제 따로 글판을 마련해

두꺼운종이에

아이한테 띄우는 글월을

[한글노래]라는 이름으로

건네려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한글을 익힐 적에

다른 사람이 만든 '한글 교본'을 줄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막상 다른 사람이 만든 '한글 교본'을 들여다보니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배우도록

못 이끈다고 느꼈다.

 

천자문 책처럼

아이가 글뿐 아니라 온누리 빛과 노래를 배우고

지구별 사람들 사랑과 꿈을 맞아들이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어야

비로소 참답고 제대로 된

'한글교본'이요 [한글노래'가 되리라 생각한다.

 

집집마다 어버이 스스로

이녁 아이한테 가장 알맞춤하고 아름다울

다 다르며

새롭게 빛나는

[한글노래]를 지어서 함께 부를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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