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102. 2014.1.14.ㄱ 귤 먹는 손과

 


  책을 펼치기 앞서 귤을 깐다. 귤을 손에 쥔다. 천천히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으면서 책장을 살며시 넘긴다. 그렇지만 얘야, 이렇게 책을 보면, 귤물이 책에 밴단다. 너는 아니? 네가 아무리 안 묻히려고 해도 이렇게 귤 먹는 손으로 책을 보면 책에 귤내음이 배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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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허드슨

 


  노래를 듣는다. 밤하늘을 밝히는 수많은 별들과 같은 노래를 듣는다. 커다란 별이 있고 조그마한 별이 있다. 다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졌으면 조그맣게 보이고, 지구와 조금 더 가까우면 크게 보인다. 나는 어느 별이든 좋다. 이 별빛이 그득하여 시골집이 한결 포근하고 사랑스러운걸.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미리 본다. 미리보기를 하고서 보면 재미가 덜하지만, 아이들과 보는데 갑자기 뚱딴지 같은 모습이 나오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오늘 밤에 보는 〈드림 걸즈〉라는 영화는 퍽 남다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에피’라고 하는 배우가 누구인가를 찾아본다. 이름은 ‘제니퍼 허드슨’이라고 하는데, 얼마 앞서 무척 아픈 일을 겪기도 했단다. 영화 〈드림 걸즈〉로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단다.


  아이들 자는 곁에서 나지막하게 노랫말을 곱씹는다. 〈I am changing〉과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듣는다. 이 목소리는 무엇일는지, 이렇게 깊이 후벼파는 소리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가만히 헤아린다. 영화에서 제니퍼 허드슨이라는 분은 뒤로 밀렸고, 삶에서도 그러했다 하는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사람들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짝이는 별빛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삶도 글도 사진도 살림도 밥도, 여기에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도, 모두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4347.1.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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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27 08:09   좋아요 0 | URL
저는 두 노래를 이젠 고인이 된 Whithney Houston의 목소리로 들었었네요.
영화는 보지 않아서 어떤 대목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노래 가사에서, 그리고 가수의 목소리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숲노래 2014-01-27 08:42   좋아요 0 | URL
이 노래는 여러 사람 목소리로 나왔나 보군요.
휘트니 휘스턴 님 목소리도 궁금하네요.

노래에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저는 비욘세 님보다는 제니퍼 허드슨 님 목소리가
훨씬 마음으로 스며들더라구요...
 

[함께 살아가는 말 190] 아버지

 


  아이하고 지내면서 그림책도 읽히고 만화책도 읽힙니다. 만화영화도 보고 그냥 영화도 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집에 찾아갈 적에는 그곳에 있는 텔레비전도 함께 봅니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볼 적마다 아이는 영화나 방송에서 ‘아빠’라는 말을 듣습니다. ‘엄마’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4년부터 일곱 살입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만큼, 큰아이더러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를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로 부르도록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만화영화나 영화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젊거나 어리거나 늙거나 하나같이 ‘엄마와 아빠’라고만 해요. 그래서 오늘도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한 마디 묻습니다. “아버지, 왜 책이랑 컴터에선 ‘아빠’라고 불러? ‘아버지’라고 부르면 좋겠다.” 그래, 우리 예쁜 아이야, 다른 어른들이 말넋과 말빛을 한결 사랑스레 깨달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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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과 책

 


  아이들은 밥그릇을 놓고 다투지 않는다. 다만, 예쁜 밥그릇이 있으면 서로 차지하고 싶다. 그러니, 아이가 둘을 넘으면 똑같은 밥그릇을 아이들 머릿수대로 갖춘다. 다만, 똑같은 빛깔로까지 맞추고 싶지 않아 붉은 빛과 파란 빛으로 갖춘다. 처음에는 큰아이가 파란 그릇을 갖겠다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그동안 파란 꽃그릇 했으니 이제 빨간 꽃그릇 할래.”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빨간 꽃그릇을 누나한테 내줄 마음이 없다. 그러다 마침, 어머니 몫 그릇은 밥그릇과 국그릇 빛깔을 다르게 쓰는 모습을 깨닫는다. 동생더러 “보라야, 난 국그릇이 파랑이니까 너는 국그릇을 빨강으로 해. 난 밥그릇을 빨강으로 하고, 넌 밥그릇을 파랑으로 해.” 이렇게 하니 동생이 얌전히 따른다. 때로는 누나가 빨강 밥그릇을 쓰고, 때로는 파랑 밥그릇을 쓴다. 그날그날 바꾸어 본다.


  사이좋게 나누어 쓰기도 하지만,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는 두 아이가 개구지게 놀면서, 작은아이는 어느새 낮잠을 거르는 날이 있다. 그렇지만 누나만큼 힘이 닿지 않으니 저녁이 되면 이내 지쳐서 곯아떨어진다.


  두 놈이 같이 자면 한결 수월할 테지만, 한 놈이 자고 한 놈이 깨면 아이들 밥을 차려 주기 마땅하지 않다. 그렇다고 큰놈을 굶길 수 없으니 작은 밥상에 큰놈 몫을 차려서 준다. 큰놈이 밥을 다 먹을 즈음 작은놈이 늦은 낮잠에서 깬다. 큰놈이 먹던 밥상에 작은놈 밥그릇과 국그릇을 놓는다. 밥을 다 먹은 큰놈은 밥상맡에서 만화책을 펼친다. 작은놈은 누나가 무얼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늦은 낮잠에서 깨어나 한창 배고프다. 아무것도 안 쳐다보고 오로지 밥상에 척 붙어서 밥그릇 비우기에 바쁘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먹는다. 마음이 고픈 사람은 책을 읽는다. 꿈이 고픈 사람은 꿈을 키우고, 사랑이 고픈 사람은 사랑을 키운다. 아이가 읽는 책에는 어떤 빛이 있을까. 아이가 읽도록 어른들이 만든 책에는 어떤 빛이 서릴까.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빛을 누리고 살면서 아이한테 어떤 빛을 마음밥으로 내줄까.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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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53. 2014.1.25.

 


  밥을 거의 다 먹은 산들보라가 문득 손을 뻗는다. 곤약 담긴 접시에 손을 척 대고는 누나가 못 집게 막는다. 왜 그래? 누나하고 사이좋게 먹어야지. 먹느냐 못 먹느니 다투다가 하나씩 집으면서 논다. 너 이제 배부르다고 누나 못 먹게 막으면서 노는구나. 요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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