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하는 글쓰기

 


  사진잡지에 보낼 사진비평을 드디어 다 쓴다. 아 홀가분하고 즐거워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내 누리집에 글을 올리려다가, 아차 하고 깨닫는다. 잡지에 실린 뒤, 이 잡지가 우리 집에 오는 날에 올려야 하잖아.


  여러 날에 걸쳐 찬찬히 쓴 글을 다 마무리지었지만 짠 하고 올리지 못한다니 서운하다. 그러나, 이 글이 실린 잡지를 기다리는 분들이 있는 만큼, 잡지가 나올 때까지 나 또한 기다려야지. 다른 글을 새롭게 쓰자. 그리고 오늘이 우리 형 태어난 날이니 축하한다고 쪽글을 보내자.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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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pek0501 님 때문에 씁니다. 겨울눈과 비닐농사와 농사꾼과 시골살이, 여기에 우리 사회와 문화와 문명과 도시 얼거리 모두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을 읽고, '삶을 밝히는 길'을 슬기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부터 '자연재앙'이란 없습니다. '자연재앙'이란 자연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세운 문명이 '자연 흐름'하고 어긋나다 보니, 스스로 불러들인 끔찍한 아픔입니다. 일본 후쿠시마가 왜 그렇게 되었겠어요? 스스로 자연을 거스르면서 문명으로 치달으면서 돈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지켜야 한다면서 온갖 전쟁무기와 군대에다가 핵무기까지 만드는 일을 찬성하는 사람은,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화를 바라면 참말 평화롭게 되도록 살아야겠지요. 겨울에는 마땅히 눈이 내려야 하고, 겨울에는 1미터이건 2미터이건 큰눈도 내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자연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잃겠지요 ..

 

 

비닐집에서 키우는 열매와 푸성귀

 


  비닐집에서 애호박을 키우는 오늘날이다. 비닐집에서 키우는 애호박은 비닐로 단단하게 동여매서 가게로 내보내고, 가게에서는 비닐에 단단히 붙들린 애호박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 그런데, 비닐집에서 애호박을 키우면서도 흙바닥에 비닐을 덮는다. 양파를 심건 마늘을 심건 흙땅에 비닐을 덮는다. 고추를 심건 무나 배추를 심건 감자나 오이나 토마토나 가지를 심건, 참말 오늘날 농사꾼은 모조리 언제나 흙땅에 비닐을 덮는다. 오늘날 이 나라 시골 농사란 죄다 ‘비닐농사’이다.


  비닐농사는 비닐농사일 뿐, 유기농이나 자연농이 아니다. 친환경농조차 아니다. 비닐집을 치는 이들은 숲이나 흙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오직 뜨거운 기운만 들어오도록 하고, 햇볕과 바람과 빗물은 하나도 못 들어오도록 막는다. 다른 풀씨가 날려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한다. 비닐집은 푸른 숨결이 살 수 없다. 비닐집은 감옥과 똑같다. 시멘트로 때려지은 건물에 아이들을 집어넣고는 열두 해에 걸쳐 대입지옥 수렁에 몰아세우는 어른들은, 시골에 비닐집을 잔뜩 지어서 한 해 내내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내놓는다.


  추운 고장이라면 비닐농사를 지을 만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에 비닐집이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도 누구나 맨땅에 씨앗을 심어서 푸성귀와 열매를 거두었다. 모든 푸성귀나 열매는 철에 따라 먹었다. 철이 없이 먹는 푸성귀나 열매란 없었다.


  딸기를 어째 늦봄이 아닌 한겨울에 먹는가? 참외와 수박을 어째 늦여름이 아닌 이른봄에 먹는가? 말이 되는가? 호박이나 무나 배추를 어째 한 해 내내 마트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사다 먹는가? 이렇게 철없이 살기에 모두들 하나같이 철없는 말을 일삼고, 철없는 짓을 저지르며, 철없는 글을 쓰다가는, 철없는 짓으로 아이들을 망가뜨리지 않는가?


  겨울은 시래기국이요, 봄은 냉이국이다. 겨울은 고구마밥이요, 여름은 보리밥이다. 철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철을 헤아리는 말빛을 밝혀야지 싶다. 흙땅에 비닐을 덮으니 농약과 비료를 쓸밖에 없다. 농약과 비료를 흙땅마다 뿌려대니,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실 수 없다. 이러니, 여러 시골마을을 댐에 가두게 해서 수도물을 마시는 문명 사회가 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을 즐겁게 맞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즐겁다고 할 만할까? 겨울에 내리는 눈이란 겨울가뭄을 막고 새봄을 한껏 빛내는 어여쁜 손길인 줄 깨닫지 못하는 우리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다고 할 만할까? 대통령이나 여러 썩은 정치꾼을 비판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스스로 철이 들어서 철에 맞는 밥과 집과 옷을 누릴 수 있어야,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자유와 평등이 사랑스레 뿌리내리면서 퍼질 수 있다. 철이 없으면 숲이 모두 죽고 만다. 숲이 모두 죽은 자리에 비닐집 지은대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숨을 쉬거나 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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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 적수공권 1

 

8·15 해방과 더불어 전주 감옥에서 출감한 부친은 해방 직후 혼란기에 함경도 고향에서 적수공권으로 월남한 친척들을 거느리고 장충동에서 살았다
《이순-제3의 여성》(어문각,1983) 88쪽

 

 적수공권으로 월남하다
→ 맨손과 맨주먹으로 월남하다
→ 맨손으로 월남하다
→ 맨주먹으로 내려오다
→ 맨몸으로 남녘에 오다
 …


  예전 어른들은 ‘적수공권’이라는 한자말을 익히 썼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쓴 예전 어른들은 글을 배운 분입니다. 글을 배우지 않은 여느 어른은 이러한 한자말을 안 썼습니다.


  한자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기 앞서를 돌아보면, 누구나 ‘맨손’과 ‘맨주먹’이라는 낱말을 썼겠지요. ‘맨몸’이나 ‘홀몸’이나 ‘빈몸’ 같은 낱말도 썼으리라 봅니다. ‘빈손’이나 ‘빈주먹’이라는 낱말도 알맞게 썼을 테고요. 4336.3.3.달/4347.2.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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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과 더불어 전주 감옥에서 나온 아버지는 해방 뒤 어지러울 적에 함경도 고향에서 맨몸으로 남녘에 온 친척들을 거느리고 장충동에서 살았다

 

“감옥에서 출감(出監)한”은 “감옥에서 나온”이나 “감옥에서 풀려난”으로 다듬습니다. ‘부친(父親)’은 ‘아버지’로 손보고, ‘직후(直後)’는 ‘뒤’나 ‘바로 뒤’로 손보며, ‘혼란기(混亂期)에’는 ‘어지러울 적에’나 ‘어수선할 때에’로 손봅니다. ‘월남(越南)한’은 ‘남녘에 온’이나 ‘남녘으로 넘어온’이나 ‘내려온’으로 손질해 줍니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은 “맨손과 맨주먹이라는 뜻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더 살피면, ‘적수(赤手)’는 “= 맨손”이요, ‘공권(空拳)’은 “= 맨주먹”으로 나옵니다.

 

맨손
1. 아무것도 끼지 않거나 감지 않은 손
2.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모습
맨주먹
1.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주먹
2.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모습

 

..

 


 살가운 상말
 - 적수공권 2

 

윤광모는 단신으로 월남해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다
《정운현-임종국 평전》(시대의창,2006) 103쪽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다
→ 그야말로 빈손이었다
→ 그야말로 빈털털이였다
→ 그야말로 알거지였다
→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 그야말로 가진 게 없었다
 …

 

  글쓴이는 ‘적수공권’이라는 낱말 뒤에 묶음표를 안 치고 ‘赤手空拳’이라는 한자를 붙입니다. 한글로 ‘적수공권’이라 쓰면 못 알아들을까 보아 그랬을까요.


  한글로만 적을 때 못 알아들을 만하다면, 처음부터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찾아서 적어야 옳습니다. 뜻을 또렷하게 나타내고 싶다 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뜻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말을 찾아서 알맞게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글로만 적어서 알아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쓸 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한글로 적어서 즐겁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글잣수를 살펴도, ‘빈손’이나 ‘맨손’은 두 글자요, ‘적수공권’은 네 글자인데, 여기에 한자까지 붙이면 여덟 글자가 됩니다. 4340.3.1.나무/4347.2.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윤광모는 홀몸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그야말로 빈손이었다

 

‘단신(單身)’은 ‘홀몸’으로 고치면 됩니다. ‘월남(越南)해’는 ‘남쪽으로 내려와’로 고칠 수 있습니다.

 

..

 


 살가운 상말
 622 : 적수공권 3

 

이 적수공권(赤手空拳) 하나 / 늦지 않았어
《고은-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2011) 77쪽 

 

 이 적수공권(赤手空拳) 하나
→ 이 맨주먹 하나
→ 이 맨몸 하나
→ 이 빈손 하나
→ 이 빈몸 하나
 …


  ‘적수공권’이라는 낱말은 이 낱말대로 뜻과 느낌이 있습니다. 영어로 ‘empty hands and naked fists’라 적으면, 이러한 말대로 뜻과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말로 ‘빈손’이나 ‘맨주먹’이라 적으면, 이러한 말대로 뜻과 느낌을 들려줍니다.


  한자말로는 ‘赤色’이요, 영어로는 ‘red’이며, 한국말로는 ‘빨강’입니다. 나라와 겨레마다 달리 쓰는 말입니다. 시를 써서 문학을 하는 분들이 쓰는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나 영어에는, 이러한 말대로 뜻과 느낌을 담으리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러한 한자말이나 영어에는 어떠한 뜻과 느낌이 깃들까 궁금합니다. 한글로 적은 시를 읽을 한국사람은 ‘적수공권(赤手空拳)’ 같은 싯말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느껴야 할는지 궁금해요. 4347.2.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맨주먹 하나 / 늦지 않았어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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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잔치에 담배꽁초

 


  읍내마실을 하던 어제 낮, 군청에서 읍내 한쪽에 놓은 꽃그릇에 그득 돋은 별꽃을 본다. 군청에서는 패튜니아라든지 팬지 같은 서양꽃을 이 자리에 심었을는지 모르는데, 겨우내 모두 얼어죽었다.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려는 새봄을 앞두고, 빈 꽃그릇에 별꽃이 어느새 줄기를 올리고 꽃송이까지 틔웠다.


  이 작은 꽃송이를 알아보는 읍내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얗게 빛나는 별빛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읍내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담배꽁초를 이 자리에 버린 손은 어떤 마음일까. 작은 봄꽃과 봄나물이 담배꽁초를 좋아한다고 여겼을까. 담배를 피우고 나서 꽁초를 버릴 데로는 조그마한 봄꽃이 송이송이 하얗게 터진 이 자리가 가장 알맞다고 여겼을까. 사람들 마음속에는 언제 봄이 찾아들까.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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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시선 332
고은 지음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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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49

 


시와 언저리
― 내 변방은 어디 갔나
 고은 글
 창비 펴냄, 2011.7.11.

 


  우리 집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이웃 할매와 할배는 젊은 사람과 아이가 마을에 있어 좋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젊은 사람과 아이가 왜 이런 깊디깊은 두멧시골로 와서 살려 하느냐고 물으시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 퍼지고 만 얄궂은 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처럼, 서울로 가야지 왜 시골로 오느냐고 한 말씀을 합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 군과 읍과 면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내보내기에 바쁩니다. 군수님과 초·중·고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까지 한목소리로 ‘아이들은 서울(또는 서울과 가까운 도시)로 가야 한다’고 외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도록 북돋우는 여느 어버이를 만나기 아주 어렵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시골바람을 쐬고 시골내음을 맡으며 시골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치거나 이끄는 어버이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 함박눈이 내리나부다 / 울음에 / 함박눈이 내리나부다 ..  (대설주의보)


  시골에서 고즈넉하게 생각에 잠깁니다. 눈은 하늘에서 내립니다. 비는 하늘에서 내립니다. 하늘이 없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두 메말라 죽습니다.


  도시에서는 물꼭지 틀면 물이 콸콸 나오니, 아마 비 없는 가뭄이 어떤 끔찍함인지 잘 모를 텐데, 하늘이 이 땅을 돌보지 않으면 누구나 살아남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돌고 도는 흐름이 사라지면, 아무도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 푸른 숨결 내뿜어 주기에 짐승과 벌레와 사람이 숨을 쉬어요. 풀과 나무가 자라 숲과 들을 이루어 주기에, 짐승도 벌레도 사람도 밥을 얻어요. 풀과 나무가 자라 숲과 들을 베풀어 주기에, 숲과 들을 가로지르며 냇물이 흐르고 바닷물이 파랗습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비가 내릴 적마다 숲이나 들에서는 흙이 쓸려 냇물로 모이고, 냇물은 흙을 온통 바다로 보내요. 바닷가 갯벌은 숲과 들에서 흘러온 흙이 쌓이면서 새롭게 빛납니다. 그렇지만 비가 오고 또 온대서 멧봉우리가 깎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흙이 빗물에 쓸려서 내려가더라도, 풀과 나무가 새로운 흙이 되어 주거든요. 그러니까, 풀과 나무가 없는 멧자락이 되면, 멧봉우리는 곧 허물어지고 사라집니다.


.. 나무 없는 / 나뭇잎새 없는 저녁이었다 / 나는 일어서서 / 멀리멀리 / 저물어버린 하늘을 쳐다보았다 ..  (어떤 동시)


  시골마을과 숲과 멧골 한쪽에 시멘트로 높다란 둑을 쌓아 댐을 지었기에 도시사람은 언제나 물꼭지 틀어서 물을 씁니다. 그런데, 이런 물조차 가뭄이 길어지면 말라서 사라져요. 더군다나, 댐에 가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닌 고인 물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썩은 물로는 목숨을 살리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나면 도시로 보낸다’는 소리란, 문명과 물질과 기계가 춤추는 곳에서 문명과 물질과 기계에만 기대어 살도록 길들인다는 뜻입니다. 문명과 물질과 기계는 ‘자연과 동떨어져’도 살아갈 수 있는 듯 눈속임을 하지만, 비가 한 번만 몰아쳐도 도시가 흔들려요. 땅이 한 번 쩍 갈라지면 엄청난 문명도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바닷물이 한 번 철렁 넘치기만 해도 수십만 사람이 한꺼번에 죽습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와 제철소와 화학공장과 정유공장을 비롯해 온갖 공장이 바닷가에 있어요. 후쿠시마뿐 아니라 포항에, 울산에, 울진에, 광양에, 여수에 …… 큰 물결 몰아친다고 생각해 보셔요. 어찌 될까요. 모조리 다 죽겠지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다 같이 죽음길로 가도록 하는 짓이 바로 문명입니다. 하루아침에 모조리 사라지도록 하는 짓이 곧 문화입니다.


  도시 한켠 조그마한 골목동네 할매와 할배가 왜 꽃그릇과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퍼담아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는지를 헤아려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켠 골목동네가 어쩜 그렇게 푸른 숲과 들처럼 빛나는가를 돌아봐요.


.. 혜화동에 눈이 내립니다 / 명륜동에 눈이 내립니다 / 삼선교에 눈이 내립니다 // 코엑스에 눈이 내립니다 / 모랫말에 눈이 내립니다 ..  (눈 오는 날)


  고은 님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고은 님네 ‘언저리’는 어디일까요?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 지구별 언저리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로 가지도 않습니다. ‘지구본’을 장만하거나 만들어서 콕 찍어 보셔요. 지구별 어느 나라 어느 시골 어느 마을도 ‘언저리(변방)’가 아닙니다. 안쪽도 바깥쪽도 없는 지구별입니다. 한복판도 테두리도 바깥도 구석도 없는 지구별입니다.


  모두 똑같은 삶터입니다.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모두 똑같은 숨결이요 꿈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복판이면서 언저리요, 한복판이나 언저리라고 금을 그을 까닭 없이 아름다운 숨결이자 꿈이고 사랑입니다.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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