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싫으면 쓰면 안 된다

 


  옛사람은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누리를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 궁금하다. 오늘날은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서 그때그때 댓글이나 덧글을 달면서 노는 사람이 많다. 손전화를 켜서 바로바로 쪽글을 보내고 받는 사람이 매우 많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채 지내더라도 마치 옆에 있기라도 하는 듯이 사귄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곰곰이 돌아보면, 아주 멀리 있는 사람하고도 인터넷으로 사귀는 만큼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하고는 얼마나 이야기를 잘 나누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대한민국 주민 가운데 99퍼센트는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99퍼센트에 이르는 도시사람 가운데 1퍼센트에 이르는 시골사람 삶터와 삶자리를 살갗으로 느끼거나 마음으로 읽는 이웃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글을 쓰든 스스로 즐겁게 쓸 때에 글이 된다. 어떤 사진을 찍든 스스로 즐겁게 찍을 때에 사진이 된다. 문학이 되도록 쓸 수 있는 글은 없다. 예술이 되도록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없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댓글이나 덧글과 쪽글 모두 ‘글’이 될 수 있고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예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다르다.


  요즈음 사람들은 ‘예의를 차린다’면서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덧글을 달곤 하며, 손전화로 쪽글을 보내곤 한다. ‘스스로 쓰고프기에 쓰는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이 아니라, 누군가 나한테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을 보내거나 붙여 주었’기에, 예의를 차린다면서 이런 글을 붙이곤 한다.


  다시금 곰곰이 돌아볼 노릇이다. 예의를 차린다면서 붙이거나 보내는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은 참말 ‘예의를 차리는’ 셈일까? 마음을 기울여서 쓰는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이 아닐 적에는 ‘예의를 안 차리는 모습’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글 한 줄을 쓰든 댓글 한 마디를 붙이든,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느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기에 깊은 사랑과 짙은 꿈을 실어서 붙일 수 있는 댓글과 덧글과 쪽글이어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을 달거나 보낼 적에도 마음을 많이 쓴다. 마음을 안 쓰면 아무 글을 쓰지 못한다.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을 쓰기로 했다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우면서 밝고 착한 글을 이녁한테 선물하고픈 마음이 된다. 인터넷이나 손전화로 띄우는 짧은 글조각은 쉽게 써서 보낼 수 있다지만, 나는 언제나 손으로 종이에 편지를 써서 우체국으로 가져가서 우표를 붙여 띄운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내가 쓴 글에 누군가 ‘온마음 가득 실어서 손편지를 띄우듯이 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을 달아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는 바랄 까닭 없이 나 스스로 내가 살아가고픈 대로 살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글을 쓰는 마음이다. 원고지 100장짜리 글을 쓰든 한 줄짜리 댓글을 쓰든 모두 똑같은 글이다. 온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어느 글도 쓸 수 없다. 쓰기 싫은데 예의를 차리면서 쓰는 글이라면, 아무 마음이 깃들지 못한다. 아무 마음을 깃들이지 못하면서 쓰는 글(댓글이나 덧글이나 쪽글 모두)이라면, 서로 마음으로 사귀지 못하고,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다.


  짧은 글조각이라서 사랑꽃을 못 피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짧은 글조각에서 새로운 사랑꽃이 피어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글빛으로 삶을 가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서로 글 한 줄로 어여쁜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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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4-02-15 11:42   좋아요 0 | URL
제 맘을 들킨 것 같네요 *^^*
항상 고운 댓글을 올려주셔서 저도 답례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때가 있었거든요.
가식적인 거 같아 매번 공감만 누르고 있답니다. ㅎ

숲노래 2014-02-15 12:40   좋아요 0 | URL
굳이 댓글을 꼭 달아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함께 나눌 이야기를 적는 일이 댓글이니까요.
저도 모든 이웃님들 글에 댓글을 다 달지는 못해요.
모든 글에 댓글을 달자면...
하루가 모자라겠지요 @.@

공감하기를 누르는 일만으로도
'댓글쓰기'와 같다고 느끼기도 해요.
서로 마음이 닿았을 테니까요~ ^^
 

한국사람은 '동무'라는 한국말을

얼마나 제대로 살피거나 알면서

아이와 함께 '말'을 나눌까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

 

 

또래·동무·너나들이
→ 가까이에서 늘 보면서 어울리는 사람이 ‘동무’입니다. ‘친구(親舊)’라는 한자말은 한국사람이 거의 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녘과 북녘이 갈리면서 뜻밖에 ‘동무’라는 낱말이 따돌림을 받았어요. 몇몇 어른들이 ‘동무’라는 낱말은 북녘에서만 쓰는 낱말이라도 되는 듯이 몰아붙였습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동무’라는 낱말이 제법 쓰였지만, 새마을운동과 함께 싹 자취를 감추어야 했는데, 요즈음 다시 이 낱말이 살아납니다. 정치와 새마을운동이 크게 힘을 떨치던 때에도 아이들은 ‘소꿉동무’와 ‘어깨동무’ 같은 말을 잃지 않았고, ‘놀이동무’와 ‘책동무’와 ‘꿈동무’ 같은 낱말이 새롭게 나타나면서 차츰 제 빛을 되찾습니다. ‘또래’는 나이나 생각이나 마음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비슷한 사람들을 아울러 가리킵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만 비슷해도 되고 모두 비슷해도 돼요. 그래서, 나이가 한참 벌어져도 어느 한 가지를 좋아해서 마음이 맞으면 서로 또래가 됩니다. 또래가 되면서 늘 가까이에서 어울리면 ‘또래 동무’가 되지요. 또래 동무에서 한 발 나아가면 ‘너나들이’입니다. 서로 아무런 허물이 없이 가깝게 지내는 사이를 가리키는 ‘너나들이’이니, 또래와 동무를 더한 느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요.

또래
: 나이나 생각이나 마음이 서로 비슷한 사람들
 - 이 자리에는 우리 또래가 없나 봐
 - 언니 또래는 모두 저쪽에 있어요
동무
1. 늘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
 - 옆집에서 찾아온 동무하고 놀았어요
 - 우리 마을에는 좋은 동무가 많다
2. 어떤 일을 함께 하는 사람
 - 함께 놀아 놀이동무, 이야기 나누니 이야기동무
 -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할 동무를 찾는다
너나들이
 :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사이
 - 너하고 나는 마음을 읽는 너나들이로 지내자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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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팔짱걷기

 


  산들보라는 팔짱끼기를 어디에서 보았을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팔짱을 끼는 일이 없는데. 만화에서 보았을까, 영화에서 보았을까. 마을 할매나 할배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려나. 팔짱을 낀 채 빈논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면서 논다. 팔짱을 낀 매무새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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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노래순이

 


  키가 자라고 몸이 여물면서 일곱 살이 즐거운 사름벼리는 마당을 넘어 대문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누구 들으라는 노래를 부를까. 대문더러 들으라는 노래일까. 우리 집을 바라보면서 부르는 노래일까. 대문 앞 고샅에서 부르는 노래는 마을 곳곳으로 울려퍼진다. 아이 몸에서 샘솟는 가락과 이야기가 이웃집으로 살포시 스며든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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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집 1 - 고은전집 5
고은 / 청하 / 1991년 4월
평점 :
품절


.. 고은 님이 내놓은 <나의 저녁>은 청하출판사에서 다시 나왔지 싶다. 청하 판 시집은 못 봤기에 얼마나 겹치거나 새 작품이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고은 님이 쓴 시 가운데 <서정시편>은 참 훌륭하고 예쁘다고 느낀다 ..

 

시를 노래하는 시 65

 


사랑하는 노래는 언제나 시
― 나의 저녁, 고은 서정시편
 고은 글
 한국문학사 펴냄, 1988.9.1.

 


  우리 집 둘레로 봄까지꽃이 올망졸망 피어납니다. 우리 집 둘레뿐 아니라 마을 논둑과 밭둑을 천천히 덮는 봄까지꽃입니다. 봄까지꽃이 피는 곁에는 별꽃이 피고, 별꽃이 피는 둘레에는 코딱지나물꽃이 핍니다. 냉이꽃이 나란히 자라고, 꽃마리꽃이랑 꽃다지꽃이 서로 얼크러집니다.


  봄을 앞둔 들판은 지난가을부터 시든 풀잎이 드리우는 누런 빛깔이 그득한데, 누런 빛이 그득한 사이사이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월은 군데군데 푸릇푸릇하고, 삼월로 접어들면 곱게 푸른 물결이 되겠지요. 사월에는 어느새 온통 푸른 바다가 될 테고요.


.. 얼음장 녹는 추운 날 / 녹다가 다시 어는 추운 밤 / 하필 이런 밤중에 찾아온 사람의 언 손 잡아줍니다 / 따뜻한 손으로 잡아줍니다 ..  (손님)


  아주 조그마한 봄꽃을 알아보자면 아주 천천히 들길을 걷거나 논둑이나 밭고랑에 쪼그려앉아 풀을 뜯어야 합니다. 눈이 밝으면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봄꽃을 알아볼 테지만, 자가용을 몰거나 기차를 달리면서 봄꽃을 알아채기는 몹시 어려워요. 자가용을 몰거나 기차를 달린다면, 봄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할 만해요. 도시에서 살며 지하철을 달릴 적에는 봄내음을 맡을 수도 없겠지요.


  봄은 봄을 바라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봄은 봄을 부르는 사람한테 젖어듭니다. 봄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기쁘게 해요.


  봄을 바라지 않았으니 봄이 온 줄 몰라요. 봄을 부르지 않았으니 봄노래를 듣지 못해요. 봄을 기다리지 않았으니 봄빛을 누리지 않습니다.


.. 긴 겨울 다하여 반드시 오는 봄바람이여 ..  (봄바람)


  사랑을 바라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사랑을 부르는 사람이 사랑을 꽃피웁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사랑을 가꿉니다.


  꿈을 꾸니 꿈을 이루어요. 꿈을 안 꾸면, 이룰 꿈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마음속에 어떤 빛을 담느냐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마음속에 고운 빛을 담는 사람은 고운 사랑이 되고, 고운 넋이 되며, 고운 이야기가 됩니다. 마음속에 고운 빛을 못 담거나 안 담을 적에는 무엇이 곱거나 밝은가를 알지 못해요.


  아이들 눈빛을 바라봅니다. 기쁘게 놀며 노래하는 눈빛을 바라봅니다. 어버이로서 마음속에 기쁜 노래가 있을 적에 아이들 마음속에서 기쁜 노래가 자랍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삶을 아끼고 사랑할 때에 아이들 마음속에서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빙그레 짓는 웃음꽃이 싹틉니다.


.. 오래 함께 일하며 살면 / 두런두런 말소리도 같아져서 / 어디 그뿐이겠읍니까 / 마음씨도 손톱 발톱도 같아져서 / 저만치 지나가면 누가 누군지 모릅니다 ..  (하룻밤)


  사랑하는 노래는 언제나 시입니다. 시는 언제나 사랑하는 노래입니다.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언제나 맑게 웃습니다. 맑게 웃으며 언제나 사랑하는 노래를 지어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뜻은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가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가 하는 넋은 어떻게 꿈꾸고 싶은가 하는 빛으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꿈꾸고 싶은가 하는 빛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숨결로 이어집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두 손 가득 평화로운 이야기를 담으니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전쟁무기를 두 손 가득 담아 보셔요. 평화가 아닌 전쟁이 판쳐요. 탱크와 미사일과 총과 칼이 평화를 부르는 일은 없습니다. 두 손 가득 오직 평화를 보듬으며 아낄 때에 평화가 깃들어요.


  참다운 가르침과 배움을 바란다면, 두 손 가득 사랑과 꿈이 넘실거리겠지요. 입시교육과 시험성적은 가르침이나 배움이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도록 내모는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도록 등을 떠미는 제도권학교는 붕어빵을 찍는 기계와 똑같습니다.


  어떤 목숨이든 언제나 배웁니다. 사람도 예순이나 여든 나이에도 배우고, 짐승도 새끼일 적이나 어미일 적이나 배웁니다. 풀과 나무도 늘 새로 삶을 배우면서 뿌리를 뻗고 잎사귀를 내놓습니다.


.. 오랜 마을에는 / 오랜 팽나무가 있읍니다 ..  (팽나무)


  고은 님이 지은 사랑노래로 엮은 시집 《나의 저녁, 고은 서정시편》(한국문학사,1988)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이기에 사랑시가 되고, 사랑빛이 됩니다. 사랑을 꿈꾸는 시이기에 사랑이야기가 되며, 사랑삶이 됩니다.


  오랜 마을에는 오랜 팽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느티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동백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잣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뽕나무와 대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매화나무와 벚나무가 있어요. 오랜 마을에는 오랜 살구나무와 참나무가 있어요.


  오래도록 마을을 지키거나 돌보는 나무가 있습니다. 오래도록 우리들과 함께 살아온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기에 마을입니다. 나무가 푸르게 숨쉬기에 마을입니다. 나무가 아름드리로 뻗기에 나무입니다.


.. 숲으로 가십시요 / 행여나 마을 가까이 / 숲이 있거든 / 얼마나 기쁨이겠읍니까 ..  (숲)


  나무에는 온갖 풀벌레가 함께 깃들어 살아갑니다. 나무에는 온갖 멧새가 둥지를 틀며 함께 살아갑니다. 나무에는 온갖 벌나비가 날개를 쉬며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무 둘레로 사람들이 집을 지어 마을을 이룹니다. 저마다 함께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멧짐승도 나무를 둘러싸면서 살아가요. 나무가 없는 숲이나 들이라면, 어떤 목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발전소가 있어야 살지 않아요. 공장이나 골프장이 있어야 살지 않아요. 고속도로나 제철소가 있어야 살지 않아요. 정유공장이나 대학교가 있어야 살지 않아요.


.. 모 심고 난 들 바라보시지요 / 날마다 눈에 다르매 / 그 성긴 연초록 아기 / 벌써 진초록으로 나아갑니다 / 가슴 부풀어 / 어디 하나 빈 데 없이 / 푸른 들이 말합니다 / 어서 오라고 ..  (초록 3)


  생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청와대가 없어도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병원도 법원이 없어도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놀이공원이나 관광단지가 없어도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대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유치원조차 없어도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숲이 없다면 나라는 무너져요. 들이 없으면 나라는 무너져요. 맑은 골짜기와 멧자락과 냇물이 없으면 나라는 망가집니다. 바닷물이 더러우면 나라는 망가지지요. 하늘이 파랗게 빛나지 못할 적에도 나라는 흔들려요. 빗물을 마실 수 없고, 들풀을 뜯을 수 없을 때에도 나라는 기우뚱합니다.


  시는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사랑노래는 어느 자리에서 샘솟을까요? 시는 누가 어디에서 지어서 나누는가요? 사랑노래는 어떤 삶을 바라는 꿈으로 부를 수 있는가요?


  사랑하는 노래는 언제나 푸릅니다. 꿈꾸는 노래는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착하고 참다이 흐르는 아름다운 노래는 언제나 따사로우면서 너그럽습니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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