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전화 여론조사

 


  저녁에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재운다. 작은아이는 먼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곧 잠들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가 울린다. 집전화 소리이다. 뭔가? 받을까? 받고 싶지 않으나 자꾸 울리니 받아야 한다. “아버지, 전화야? 받아.” 그래, 받아야겠네. 네가 잠들지 못하게 시끄러우니까. 이불을 걷고 옆방으로 간다. 수화기를 든다. 자동응답 목소리가 흐른다. 뭔가, 하고 한 마디를 들으니 여론조사를 한단다. 그렇구나. 고흥군수나 전남도지사 여론조사인가 보네. 그런데, 이런 저녁에 하나? 도시라면 저녁 아홉 시 반이 그리 늦지 않다 할 만하지만, 시골에서는 여덟 시만 넘어도 거의 다 잠자는 때인데. 시골에서 할 여론조사라면 차라리 새벽 여섯 시나 아침 일곱 시에 해야 하리라. 그나저나 자동응답 여론조사는 수화기를 내려놓아도 전화가 안 꺼진다. 전화줄을 뽑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시 자동응답으로 걸라면 걸라지. “이제 됐어. 자자.” “응.” 마당에서 흐르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4347.2.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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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4. 아이를 기다리는 길 2014.2.9.

 


  마을 한 바퀴를 돌든, 우리 서재도서관을 다녀오든, 아이들은 시골길을 걷는다. 아이들이 걷는 이 길에 걸리적거릴 것은 없다. 때때로 마을 할배 경운기가 지나가지만, 경운기는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는다. 아이들 걸음처럼 느린 경운기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토바이나 자가용이나 짐차는 아이들을 윽박지른다. 이런 자동차는 모두 빵빵거리면서 아이들이 비키도록 내몬다. 차츰 따스한 빛이 감도는 겨울바람을 쐬면서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작은아이가 잘 따라오기를 기다린다. 네 발걸음에 맞출 수도 있지만, 네가 다리힘을 키우도록 누나랑 아버지는 살짝 앞장서 걷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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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생각한다

 


  떠돌이 개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이레가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떠돌이 개가 어디론지 마실을 가고는 저녁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어디를 돌아다닐까. 엉뚱한 사람을 잘못 따라가다가 붙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저녁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문득 큰아이가 “보라야, 누나가 개 이름 ‘아오’라고 지었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름을 지어 주네 하고 생각하다가 왜 ‘아오’라고 지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온갖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기에 가만히 귀여겨듣기만 한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떠돌이 개한테 이름을 지어 주었니? 너는 어떤 눈길로 떠돌이 개를 바라보니? 너는 어떤 사랑으로 떠돌이 개를 쓰다듬고 안으며 아껴 주니?


  떠돌이 개가 따뜻할 때에 먹기를 바라며 밥 한 그릇 덜었지만, 밥이 식도록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밤이 깊어 비가 그치면 슬그머니 찾아오려나. 아무쪼록 어느 곳에서든 따사로이 잠을 자고 배부르게 밥을 먹으면서 시골자락 밤과 아침과 낮을 고이 누릴 수 있기를 빈다. 한참 떠들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하다. 잠들었구나.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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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55. 2014.2.15.

 


  토마토를 얻었다. 풀무침을 하고는 토마토를 잘게 썰어서 꽃접시에 빙 두른다. 다른 접시에 담을까 하다가 함께 담아 보기로 한다. 이렇게 하니 눈으로 보기에도 한결 예쁘다. 몇 가지 못 차리는 밥상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눈으로 보는 맛이 달라지지 싶다. 당근과 무를 썰어서 나란히 놓으니 빛깔이 괜찮네. 아이들 없이 혼자 살던 지난날에는 이런 밥상을 차린 적이 없다. 나 혼자 차려서 나 혼자 먹던 밥상에 고운 빛이 흐르도록 한 적이 없다. 아이들이 있으니 밥상 빛깔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밥상 빛깔을 더 손질하고 가다듬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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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걷는 재미

 


  산들보라야,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으니 늘 걷지. 군내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며, 가끔 이웃이 자가용에 태어 줘곤 하지. 너희들은 늘 두 다리로 이 땅을 밟아. 이 땅을 밟으면서 하늘숨을 마시지. 하늘빛 닮은 노래를 듣고, 하늘무늬 닮은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간다.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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