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시인선 15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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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6



시와 그물

―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글

 문학동네 펴냄, 2012.2.25.



  시골집에서 시골사람으로 지내면서 느끼지 못한 대목을 도시로 나들이를 와서 느낍니다. 시골집에서는 아이들더러 ‘얘들아, 마루에서 뛰지 말고 마당에서 뛰렴’ 하고 타이를 수 있으나, 도시에서는 아이들더러 바깥에 나가서 뛰놀라고 이르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골목이나 빈터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도 이웃 아이도 골목이나 빈터에서 뛰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야, 도시에 있는 외할머니나 이모나 큰아버지나 여러 이웃한테 찾아가니까, 골목이나 빈터에서 놀 겨를이 없기도 할 테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는데, 어느 골목이나 빈터에도 아이들 그림자가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골목에서 몰아냈습니다. 정치권력이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기자나 작가 같은 사람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어른이 똘똘 뭉쳐서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만 몰아넣으면서, 먼 옛날부터 마을과 빈터와 숲과 냇가에서 놀던 아이들한테서 놀이를 죄다 빼앗았습니다.



.. 갈대나 물결 / 새나 바람 / 평수 많은 밤 // 어디서 오는지 ..  (호수)



  도시를 거닐다 보면, 골목이나 빈터는 어김없이 주차장입니다. 좀 놀 만하다 싶은 자리는 으레 자가용이 차지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인라인조차 타기 벅찹니다. 자동차 때문에 아예 엄두를 못 냅니다. 자전거도 마음 놓고 타지 못합니다. 공원이라도 있으면 겨우 이런저런 끄트머리에서 바퀴를 조금 굴리다가 그칩니다.


  아이들이 몸을 쓸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숨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넋을 살찌울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꿀 바탕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며칠 지내면서 아이들한테 해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길에서 달리지 마라’와 ‘집에서 뛰지 마라’와 ‘전철에서 노래 부르지 말거나 목소리를 낮추어라’와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아라’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을 쉬잖고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잔소리뿐입니다.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이도 고달프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어버이도 고단합니다. 우리 아이들이야 며칠 머물다가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아이들은 하루 내내 잔소리에 시달리다가 아예 ‘뛰놀기’와 ‘노래하기’를 몽땅 잊거나 잃을밖에 없습니다.



.. 산 넘어온 비가 / 산 넘어간다 / 비단옷으로 와서 / 무명옷으로 간다 ..  (장마 끝물)



  장석남 님이 빚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인천을 거쳐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는 길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타이르다가, 어르다가, 미리 썰어서 통에 담은 감을 내밀다가, 한 쪽 두 쪽 읽습니다.


  장석남 님은 고요더러 내빼지 말라고 말하지만, 도시에는 고요가 없습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도시에는 시끄러움과 부산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도시에 개구쟁이 놀이나 말괄량이 노래가 있지는 않아요. 기쁜 노래라든지 즐거운 춤사위가 있지도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가수나 배우나 이런저런 전문가와 작가와 기자는 죄다 서울에 모여서 일하거나 산다지만, 막상 서울에서 노래나 춤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마주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마주하자면 ‘돈’을 들여야 합니다.



.. 옥수수밭가에 와 살고부터 / 나는 지금 옥수수밭가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  (옥수수밭의 살림)



  먼 옛날부터 놀이는 몸에서 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습니다. 먼 옛날부터 춤과 노래는 삶에서 삶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습니다. 먼 옛날부터 전문 노래꾼이나 춤꾼이나 이야기꾼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래꾼이면서 춤꾼이고 이야기꾼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림꾼이면서 사랑꾼이자 숲지기요 들지기요 집지기입니다. 예부터 모든 사람이 집과 옷과 밥을 손수 지어서 삶을 가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 거의 모든 사람은 집을 지을 줄 모르고, 옷이나 밥을 짓는 길을 모릅니다.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시멘트를 이기는 몸짓이 아닌, 수백 해를 이을 보금자리로 집을 짓는 몸짓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대단한 요리나 맛집이 아니라, 삶을 북돋우는 밥을 날마다 웃으면서 기쁘게 차리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밥을 지으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거든요. 쌀을 씻거나 밥을 안치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빨래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서 춤추거나 노래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노래를 즐기거나, 아이를 가만가만 재우면서 노래를 누리는 어버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 내 신발 속 파도 소리 / 내 단춧구멍 속 파도 소리 / 모든 풍문도 음악도 다 이긴 / 나의 파도 소리 ..  (파도 소리)



  텔레비전 유행노래가 아니라, 내 삶에서 저절로 샘솟는 춤과 노래를 아이한테 물려주는 어버이는, 참다운 어른은 이 땅 어느 곳에서 살림을 가꾸는지 궁금합니다. 돈이 아니면 시도 시집도 없는 오늘날이고, 돈이 될 만하지 않으면 시집을 낼 수 없는 오늘날이며, 돈을 벌지 않으면 시를 쓸 살림이 안 되는 오늘날입니다.


  예부터 모든 사람이 시골지기요 흙지기이고 삶지기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글을 알거나 한문을 익혀야 쓰는 시가 아니라, 삶을 짓는 사람은 누구나 ‘일하면서 스스로 노래를 불렀’고, 일하며 부르는 노래(일노래, 노동요, 민요)가 바로 시입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일하며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놀이노래를 짓고, 놀이노래를 부르며 놀던 아이들이 자라서 일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씩씩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흐름과 이음고리는 어느새 끊어졌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나 영어에 미친 정책이나 입시지옥 같은 핑곗거리(?)도 많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돈’만 바라보는 삶이 되면서, 모든 춤과 노래와 이야기를 텔레비전과 몇몇 전문가한테 떠넘기고 말았습니다.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무엇을 길어올리려는 그물일까요?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어떤 이야기를 손수 낚아서 이 땅 이웃한테 들려주려는 선물일까요?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글쓴이 장석남 님이 이녁 삶을 스스로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할 만할까요? 그러면, 장석남 님한테는 삶이 무엇이고, 어른 몸뚱이인 오늘날 어느 만큼 홀가분하게 이 땅에서 뛰노는 하루일는지요?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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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깎는 값



  바깥마실 사흘째 낮에 일산에 닿는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외삼촌을 먼저 만난다. 기쁘게 웃으며 서로 만나는데, 외삼촌이 머리를 깎으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종이돈을 꺼내서 건넨다. 만 원이면 되겠거니 여기면서 건넸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요즈음은 사내가 가볍게 다듬는 돈이 만 원이요, 가시내가 머리카락을 다듬으려면 이만 원 즈음 든다고 한다. ‘학생 값’이 만 원일 뿐, 어른은 더 든다고도 한다. 아이쿠, 그러면 만 원짜리를 두 장 주어야 했구나. 참말 하나도 몰랐다. 머리카락을 깎으려고 머리방에 마지막으로 간 지 열다섯 해인지 열여섯 해인지 된 터라, 머리방에서 값을 얼마나 치러야 하는지 몰랐다. 우리 집 아이들도 머리카락을 다듬으러 다니지 않으니, 머리 깎는 값을 알 길이 없었다.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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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읽기 (동시쓰기, 동시읽기)



  ‘시’라고 하는 글은 가장 쉬우면서 수수하고 꾸밈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이 쓰는 시이든 아이가 쓰는 시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시는 가장 쉬운 글이요, 가장 수수한 글이며, 가장 꾸밈없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를 시답지 못하게 꾸미거나 덧바르거나 치대는 사람이 있어요. 일부러 어려운 말을 섞고, 일부러 사상·철학·유행을 좇으며, 일부러 문학·예술이 되도록 덧바릅니다.


  ‘동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아이가 읽을 만한 시나 글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읽을 만한 시나 글 가운데 동시도 있을 테지만, 쉬우면서 수수하고 꾸밈없는 빛으로 가득하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참다울 때에 비로소 시나 글이나 동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나 동시는 모두 ‘글로 드러나는 내 이야기’입니다. ‘글로 나타나는 내 삶’이나 ‘글로 보여주는 내 사랑’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나 동시는 모두 ‘나를 숨길 수 없는 글’입니다. 꾸며서 쓴 시나 동시는 꾸밈이 곧바로 드러납니다. 말치레나 말장난도 시나 동시에서 막바로 드러나지요. 어설픈 교훈이나 훈계도 시나 동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요.


  시나 동시를 쓰는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나 동시를 읽는 까닭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른과 아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세우지 않고, ‘다 함께 사람’이라는 대목을 바라보면서 깨달아 슬기롭게 사랑하는 삶을 지으려 하기에 시나 동시를 읽거나 씁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말입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삶이면서 놀이요 일입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사랑이자 꿈이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시나 동시를 쓰거나 읽을 적에는 ‘내 삶결’로 마주하면 됩니다. 온갖 이론이나 학문으로 바라보지 말고, 문예창작 이론 따위로 쓸 생각은 말면서, ‘내 숨결’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으려고 한다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쓰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늘 내 삶이자 이야기요 모습이니까요. 누구나 읽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언제나 내 사랑이자 꿈이며 노래이니까요. 작가나 문학가만 쓰는 시가 아니라 ‘사람’이면 쓰는 시입니다. 비평가나 평론가만 읽거나 말하는 시가 아니라 ‘사람’이면 읽거나 말하는 시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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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2] 똥손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무척 오래된 말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읊는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고, 입으로 읊지 않고 생각에 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 말이나 입밖에 내지 않도록 다스릴 삶이면서, 어떤 말이건 스스로 사랑스레 꿈을 짓는 말을 나눌 삶입니다. 내가 어떤 일이 서툴다고 할 적에 내가 스스로 ‘똥손’이라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언제나 어떤 일에 서툴면서 아무것도 못할 테지요. 내가 이제껏 어떤 일에 서툴었어도 ‘아, 이제부터 괜찮아. 다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참말 이제부터 다 괜찮으면서 씩씩하게 할 테지요. 손놀림이 서툴면 서툴 뿐입니다. 몸놀림이 익숙하지 않으면 아직 안 익숙할 뿐입니다. 즐겁게 하면서 기쁘게 누리면 됩니다. 내가 나한테 할 말은 ‘똥손’이 아닙니다. 더러 ‘똥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 똥처럼 흙을 살리고 풀과 나무를 가꾸는 손이네, 하고 스스로 새롭게 다시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내 손은 ‘별손’이고 ‘해손’입니다. 내 손은 ‘바람손’이고 ‘사랑손’입니다. 내 손은 ‘고운손’이면서 ‘밝은손’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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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0
폴 젤린스키 그림, 앤 이삭스 지음,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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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7



이 아이를 바라보셔요

―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앤 이삭스 글

 폴 젤린스키 그림

 서애경 옮김

 비룡소 펴냄, 2001.10.8.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워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자전거에 아이들을 싣고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거닐면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고, 저마다 즐거운 하루입니다.


  고흥에서 인천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옵니다. 버스삯만 겨우 마련해서 아슬아슬하게 옵니다. 나들이를 나오는 길에 주머니가 허전하니, 이 아이들과 택시를 탈 수 없고, 짐이 많아도 씩씩하게 짊어지거나 어깨에 끼고 두 아이 손을 잡으면서 걷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가방 하나씩 메고는 신나게 노래하면서 나들이를 즐깁니다.


  인천버스역에서 내린 뒤 택시를 타면 한결 수월하게 큰아버지 댁에 갈 만합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뒤 바로 택시를 타는 일은 없습니다. 버스에서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앉은 채 있어야 했으니, 다시 다른 자동차를 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기차(전철)를 타자고 노래합니다. 내 주머니에는 택시삯이 없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기차놀이(전철놀이)를 하고픈 마음이 큽니다. 아니, 내 마음에는 아이들한테 전철(기차)을 태워 주면서, 너희가 그동안 그토록 노래한 기차가 여기 있단다 하고 말할 생각입니다.



.. 테네시 주의 아버지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침대에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도끼 한 자루를 넣어 준대요. 아기가 가지고 놀 수 있게요. 안젤리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두 살밖에 안 된 안젤리카는 도끼로 뚝딱 아기 오두막을 한 채 지었어요 ..  (7쪽)



  두 아이는 전철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느라 바쁩니다. 이 사람도 살피고 저 사람도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그저 궁금하면서 재미있으니 깔깔 웃으면서 온갖 놀이를 즐깁니다. 나는 넌지시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그러지 말고 그냥 춤을 추면 어떻겠니, 하고.


  집에서도, 길에서도, 전철에서도, 우리는 홀가분하게 춤을 추며 놀 만합니다. 다른 사람 눈길은? 우리가 즐겁게 노는데 다른 사람 눈길을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전철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길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큰아이는 전철길에서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빨간머리 앤〉을 부릅니다. 그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살짝 나즈막하면서 호젓한 목소리라, 아이더러 소리를 줄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나도 우리 집 큰아이 노랫소리를 가만히 귀여겨듣습니다. 기쁜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멋진 노래를 빙그레 웃으면서 듣습니다. 어디에서나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니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새롭고 새삼스러우면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 아이한테 노래를 한 가락 들려줍니다. 큰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에 목청을 뽑아 골목길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 사람들은 안젤리카를 ‘늪의 천사’라고 불렀어요. 봄날 꽃가루가 날리듯이, 마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늪의 천사에 관한 이야기가 쫙 퍼졌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었지요 ..  (10쪽)



  앤 이삭스 님이 글을 쓰고, 폴 젤린스키 님이 그림을 그린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비룡소,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큰 가시내라는 ‘안젤리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안젤리카는 퍽 옛날에 살던 사람인 듯합니다. 안젤리카를 낳은 어버이는 여느 몸집이지만, 안젤리카는 아기 적부터 몸집이 무척 큽니다. 게다가 두어 살부터 제 보금자리를 뚝딱뚝딱 손수 지어요. 새들과 놀고, 바람을 가르며, 냇물을 휘젓습니다. 온누리가 안젤리카한테 놀이터요 삶터이며 일터입니다.



.. “이봐, 늪의 천사 아가씨! 집에 가서 이불이나 꿰매지 그래?” “이불을 꿰매는 건 사내들이나 할 짓 아닌가요?” 안젤리카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러면 빵이나 굽는 것은 어때?” 안젤리카는, “그렇지 않아도 곰 빵을 구울까 하고요.” 하고 대답했어요 ..  (15쪽)



  안젤리카는 ‘가시내’일까요? ‘힘 좀 쓴다는 가시내’일까요?


  안젤리카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바느질도 할 줄 알고, 빵도 구울 줄 알며, 나무를 하거나 장작을 팰 줄 압니다. 안젤리카는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놀이를 즐겨요. 잘 놀고 잘 일하며,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안젤리카입니다. 그러니까, 안젤리카는 홀가분하게 우뚝 선 멋진 ‘사람’입니다. 안젤리카는 바로 ‘나’를 찾은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 안젤리카는 (큰곰) 벼락과 뒤엉켜 씨름하다가 녀석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어요. 땅거미가 질 무렵에도 벼락은 여전히 공중을 날고 있었지요. 첫 별이 떴을 때에도 벼락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안젤리카는 하늘 어딘가에서 녀석을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했지요 ..  (21쪽)



  이 아이를 보셔요. 이 아이를 바라보셔요. 이 아이를 가만히 마주하면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셔요.


  내가 낳은 아이도 좋고, 이웃집 아이도 좋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아이를 가만히 보셔요. 아이들은 어떤 넋일까요? 아이들은 가슴에 어떤 꿈을 품는가요?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받으면서 하루를 누리는가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가르칠 적에 아름다울까요?


  밥짓기와 옷짓기를 가시내한테만 맡긴다면, 사내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셔요. 예나 이제나 사내는 집 안팎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삶을 지으면서 사랑을 가꾸는지 헤아려 보셔요. 우리는 언제나 아름답거나 즐거운 하루를 누리는지, 아니면 따분해서 재미없는 틀에 박힌 하루를 겨우 붙잡는지 곰곰이 살펴요.


  어른을 둘러싼 아이를 보고, 어른 마음속에서 조용히 숨죽이는 아이를 보셔요. 할머니 가슴속에도 아이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마음밭에도 아이가 있습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노래하고픈 아이가 바로 우리 숨결입니다. 마음을 읽을 때에 삶을 읽고, 마음을 알 때에 삶을 압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큰 아이라는 안젤리카는 ‘몸만 큰’ 아이가 아닙니다. 몸집보다 ‘마음이 훨씬 큰’ 아이요, 사랑이 크고 꿈이 큰 아이 안젤리카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커다란’ 숨결이요 넋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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