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바라는 아이들



  두 아이가 퍽 예전부터 ‘기차’를 타고 싶다면서 노래를 불렀다. 고흥에서 기차를 타려면 순천까지 나가야 하는데, 기차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 사람들이 기차를 타는 때는 한가위나 설이니, 한 해에 두 차례쯤 탄다고 할까. 올해 설을 앞두고 인천과 일산으로 마실을 하기로 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 인천버스역에서 내려 전철을 탄다. 두 아이는 ‘전철 타러 땅밑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곧 알아보고는 소리친다. “보라야! 저기 전철 타는 구멍이야!” “응, 그래! 기차 타자!” 시골에서 도시로 놀러온 아이들은 전철을 타면서 아주 새롭다. 자리를 얻어 앉으면 창밖을 보느라 바쁘다. 땅밑을 달릴 적에는 새까만 것만 보이는데, 그래도 신난다. 새로운 전철로 갈아타니 빈자리가 없는데, 빈자리가 없어도 마냥 서서 전철과 함께 흔들리며 웃는다. 전철을 타면서 웃는 어른은 거의 볼 일이 없으나, 우리 집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큰소리로 웃는다. 날마다 지겹게 타야 해서 여느 어른은 전철에서 웃을 일이 없을까? 모두 손과 손에 전화기를 들고 무언가 꾹꾹 누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여덟 살과 다섯 살이어도 이렇게 노는구나. 앞으로 열 살과 일곱 살이 되어도 이렇게 놀까? 아무쪼록 언제나 어디에서나 재미있게 놀자.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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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07 06:30   좋아요 0 | URL
지하로만 달리는 지하철보다 바깥구경도 할수있는 전철이 저는 좋아요.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으면 바깥풍경볼일은 없겠지만요.
아이들 즐거움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파란놀 2015-02-08 04:11   좋아요 0 | URL
어제는 인천에서 일산까지 전철길에 아주 신나게 놀면서 잘 왔습니다.
웃을 줄 아는 아이들과 다니는 마실은 참으로 늘 즐거워요~
 
너는 1등 하지 마 크레용하우스 동시집 2
이묘신 지음, 박혜선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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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2



나는 재미있게 놀고 싶어

― 너는 1등 하지 마

 이묘신 글

 박혜선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2.10.30.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놉니다. 장난감을 손에 쥐어도 잘 놀고, 장난감이 손에 없어도 잘 놉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이렇게 놀지만, 나도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습니다. 장난감이 있으면 있는 대로 놀며, 장난감이 없으면 손가락을 장난감으로 삼고, 나뭇가지나 돌이나 가랑잎을 장난감으로 삼으며, 머릿속으로 온갖 장난감을 그려서 놉니다.


  우리는 손에 쥔 장난감으로도 놀지만, 마음속에 생각으로 그린 장난감으로도 놉니다. 손에 쥔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마음속으로 그린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습니다. 어느 장난감을 갖고 놀든, 마음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둘 수 있으면 됩니다.



.. 봉숭아 꼬투리에서 터진 씨앗들 / 바람과 술래잡기한다 ..  (나야, 나)



  시골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놉니다. 나무를 탈 수 있고, 나무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커다란 나뭇줄기에 귀를 가만히 대고 한참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 귀를 대고 눈을 감다가 깜빡 잠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 수 있어요.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운 날 풀밭에서 잠들면 아주 상큼합니다.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따사롭게 돌보는 손길을 실컷 누립니다. 우리 몸에 아픈 데가 있다든지, 우리 마음에 슬픈 데가 있으면,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곱게 어루만지면서 다독여 주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기를 즐겼습니다. 어쩐지 이렇게 잠들면 무척 달콤하면서 아늑했어요. 도시에서는 풀밭을 만나기 어렵고, 마땅한 풀밭을 찾기란 매우 힘들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풀밭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곳에 드러누웠어요.


  풀밭에 드러누우면 개미가 내 몸을 타고 기어다닙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가만히 있으면 메뚜기나 사마귀도 내 둘레로 지나갑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하늘을 가르는지 알아챕니다. 누워서 눈을 감으면, 풀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엄청난 노래잔치로 스며들고, 때때로 섞이는 멧새 노랫소리는 놀라운 숨결처럼 깃듭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풀밭에 누워서 노는 삶’을 누렸습니다. 누구나 풀밭에서 뒹굴고 풀밭에서 누우며 풀밭에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내가 기분 좋아 흥얼거리면 / 엄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 내가 아파서 기운 없으면 / 옆에 있는 엄마도 힘이 없는 거야 ..  (엄마와 이어진 줄)



  흙바닥에서 뛰어놀면 다치는 일이 없습니다. 물구나무를 서든, 구르기를 하든, 흙바닥에서는 아무도 안 다칩니다. 흙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음껏 달리고 뛰고 구릅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깨집니다. 더군다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은 거의 자동차가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놀 빈터가 없어요.


  도시에서 흙이 사라지며 아이들은 놀이를 빼앗깁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를 도시로 빼앗겼고, 시골에서 아이를 도시로 빼앗기면서 농약과 비료가 춤추니, 시골은 도시 못지않게 풀밭도 빈터도 도시만큼 거의 없습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으며, 놀 생각마저 어른한테 빼앗깁니다. 아니, 학교와 학원으로 닦달하는 어른한테 모든 삶을 빼앗기는 아이입니다.



.. 할머니는 밥상을 가져와 /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 - 그래, 너하고 나하고 마주 보고 밥이나 먹자 ..  (할머니와 밥)



  이묘신 님 동시집 《너는 1등 하지 마》(크레용하우스,2012)를 읽습니다. 동시집 이름부터 축 처집니다. 1등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흐르는 동시라니, 이러한 삶이 오늘날 아이들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가슴이 시립니다. 왜 1등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왜 1등이 되면 서로 고단할까요. 어른이 세운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왜 서로 다투거나 옥신거려야 할까요.



.. 윗집 빨랫줄에 / 매달린 / 빨래집게들 // 빨강 / 노랑 / 파랑 // 봄바람에 / 흔들흔들 / 꽃잎 같아 ..  (빨래집게)



  놀지 못하는 아이는 배우지 못합니다. 학교에만 가면 배운다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인데,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만 시키는 학교는 참말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는 ‘공부’조차 아닐 뿐 아니라, 어떤 ‘가르침·배움’도 될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를 어디에 쓰나요? 시험공부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로는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로는 꿈을 꾸지 못합니다. 시험공부로는 동무를 못 사귀고, 어른을 섬기지 못하며, 여행이나 놀이도 누리지 못해요. 시험공부로는 오직 대학입시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공부를 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을 들이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어른이 할 일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아이와 사랑으로 삶을 지어야 할 뿐입니다.


  사랑스레 즐겁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책을 주지 말 노릇입니다. 독후감을 쓰거나 논술 훈련을 잘 하도록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삶에 빛이 되는 길동무로 삼도록 하는 책입니다. 사랑을 누리거나 나누는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 줬어요 / - 여우는 교활했어요 / - 엄마, 교활이 뭐야? / 엄마는 얼른 국어사전을 가져왔어요 / - 교활은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거야 / 꾀가 많은 건 알겠는데 간사란 말은 어려웠어요 / - 간사한 거는 뭐야? / 다시 사전을 찾는 엄마 / - 응, 간교하고 남을 잘 속이는 거야 / 속이는 건 알겠는데 간교가 뭔지 궁금했어요 / 엄마가 사전을 다시 찾았지요 / - 간교는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거야 / - 어? 교활이 또 나왔네 / 사전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엄마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말꼬리)



  동시를 쓰는 어른은 글줄에 꿈을 실을 수 있기를 빕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언제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인 동시이니, 아이들이 언제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꿈을 싣고 사랑을 담아 곱게 글을 쓰기를 빕니다. 노래가 될 만한 놀이를 어른부터 스스로 즐기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노래로 다시 태어날 만한 삶을 어른부터 스스로 가꾸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문학을 맛보거나 문화를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술을 알거나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면서 가슴에 사랑을 담고 마음에 꿈을 심어야 합니다. 동시가 나아갈 길은 ‘사랑을 노래하는 삶을 짓는 따사로운 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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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7 23:1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른이 할 일과 동시가 나아갈 길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겠어요.

파란놀 2015-02-08 05:10   좋아요 1 | URL
스스로 삶을 즐겁게 지으면
시는 노래가 되어 저절로 흐르니
굳이 동시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다 그렇답니다~~
 

바람이 불면서



바람이 불면서

나를 보라고

나를 보며 노래하고

나를 보는 눈으로 웃으라고

살랑살랑 춤춘다.


바람이 불면서

여기를 보라고

여기를 보며 노래하고

여기를 보는 눈으로 웃으라고

한들한들 춤춘다.


바람이 불면서

꽃이 춤추고

니뭇가지에 앉는 새가 노래하고

열매를 쪼는 다람쥐가 웃고


이곳에서

푸른 숨

함께 마신다.



4348.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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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91] 물결



  파랗게 오르락내리락 춤추면서

  해맑게 가슴으로 젖어드는

  물결 빛깔



  물에 결이 있습니다. 살에 결이 있고, 숨에도 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꿈에 결이 있어요. 이와 함께 마음결과 사랑결이 있습니다. 말에도 결이 있으며, 글에도 결이 있어요. 결을 헤아릴 수 있으면 우리 가슴으로 어떤 빛깔이 젖어들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4348.2.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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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13 바라보기·보기



  바라볼 때에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바라보지 않을 때에는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라보기에 내 앞에 무엇이든 있고, 바라보지 않을 때에는 내 앞에 무엇도 없습니다.


  우리 눈은 ‘몸에 달린 눈’만 있지 않습니다. ‘몸에 달린 눈’은 지구라는 별에 사는 이 몸에 맞게 있는 눈입니다. 우리는 이웃이나 동무와 사귈 적에 ‘몸으로 사귈’ 수도 있으나, ‘몸이 아닌 마음’으로 사귈 때에 참다운 이웃이나 동무라고 말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겉모습으로 사귈 때에는 ‘겉사귐’입니다. 마음으로 사귈 때에 비로소 ‘속사귐’이면서 ‘참사귐’입니다. 이웃이나 동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다른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함께 지내는 사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음으로 사귄다고 한다면, 우리한테는 ‘몸에 달린 눈’ 말고 다른 눈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눈일까요? 바로 ‘마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눈은,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떤 마음인지 읽는 눈입니다.


  왜 우리한테는 ‘마음으로 보는 눈’이 있을까요? 우리 몸뚱이는 ‘몸에 걸치는 옷’처럼 ‘넋이 깃들 수 있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기운은 바로 넋한테서 비롯합니다. 넋이 생각을 지어서 마음에 심으면, 마음에서 새로운 기운이 솟아서 몸이 움직입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한 사람’으로 오롯이 섭니다.


  ‘보다’는 “눈을 뜰 적에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헤아려서 알다”를 가리킵니다. ‘바라보다’는 “눈을 떠서 내 앞에 있는 것을 내 마음에 따라 헤아려서 알다”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에는 그냥 ‘봅’니다. 처음에는 그냥 눈을 뜨니까요. 처음에는 그냥 눈을 떠서 이것저것 두루 봅니다. 그저 봅니다. 그저 보다가 비로소 생각을 처음으로 합니다. ‘아, 나는 무엇을 볼까? 이 많은 것 가운데 내가 보려고 하는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 ‘삶짓기(현실 창조)’로 나아갑니다. 그저 내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모습을 ‘쳐다보기’만 하겠는지, 이 모습을 내가 바라는 대로 마주하면서 새롭게 짓는 ‘바라보기’를 하려는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떤 길로 가겠노라 하고 다짐을 합니다. 생각을 맺으면 씨앗이 나옵니다. 풀과 나무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 열매와 씨앗을 맺듯이, 사람도 생각을 맺으면 씨앗이 나오고, 이 씨앗을 바람(숨결)에 얹어 마음에 심으면, 이제 내 둘레가 차츰 달라집니다. ‘보기’에서 ‘바라보기’로 나아갑니다.


  한자말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먼저, ‘관찰(觀察)’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을 뜻한다 합니다. ‘관찰 = 주의하여 살펴봄’입니다. ‘자세(仔細)히’는 ‘낱낱이’를 가리킵니다. 한국말 ‘살펴보다’는 “낱낱이 보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한국말사전에서 풀이하는 “자세히 살펴보다”는 겹말입니다. 잘못된 풀이입니다. 이 같은 잘못된 말풀이를 깨닫는 국어학자가 없어서 아직도 한국말사전은 엉터리이고, 이런 엉터리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는 사람도 제대로 말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주의(注意)’는 “1.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함 2. 어떤 한 곳이나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임”을 뜻한다 합니다. ‘주의 = 마음을 기울임’입니다.


  ‘조심(操心)’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씀”을 뜻한다 하고, ‘집중(集中)’은 “1. 한곳을 중심으로 하여 모임 2.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부음”을 뜻한다 해요. 그러니, ‘조심 = 마음을 씀’이요, ‘집중 = 마음을 모음’입니다. ‘주의·조심·집중’은 뜻이 조금씩 다르니, 다 다르게 써도 되는데, 한국말로는 “마음을 기울이다·마음을 쓰다·마음을 모으다”인 줄 알면 됩니다.


  우리는 한국말로 생각하면서 보는 몸짓을 거의 못 익힌 채 어른이 됩니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한국말을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느 어른이라면 ‘관찰·주의·조심·집중’ 같은 한자말을 익히 쓸 텐데, 이런 한자말을 쓰든 말든, 말뜻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합니다.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채 이러한 한자말을 쓰면, 그만 스스로 말길이 막혀서 마음길을 열지 못합니다.


  ‘바라보기’를 할 수 있을 때에 ‘살펴보기’를 합니다. 나 스스로 마음을 모아서 하나를 똑똑히 마주할 수 있을 때에 둘레를 두루 볼(살펴보기) 수 있습니다. 둘레를 두루 볼 수 있으면, 이제 ‘올려다보기·내려다보기·둘러보기·되돌아보기·돌아보기·뒤돌아보기·톺아보기’ 같은 여러 가지 ‘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면서 보아야 됩니다(해 봐 돼). 하면서 보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바라보기’란 사람이 사람으로 서는 길에서 맨 먼저 하는 일입니다. 밥을 차리려 하든, 나들이를 나서려 하든, 사랑을 꽃 피우려 하든, 씨앗을 심으려 하든, 옷을 입으려 하든, 내가 나를 바라보아야 실마리를 엽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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