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5.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무슨 사진을 찍으면 되는가를 스스로 환하게 깨닫습니다.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많이 찍을는지 모르나, 막상 어느 사진이고 따로 뽑아서 쓰기 어렵기 일쑤입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는 남이 골라서 나한테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는 늘 내가 스스로 찾고 생각해서 내가 나한테 말해 줍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스스로 말하지요. 내 사진이 무엇이고, 내 손길이 어떠하며, 내 눈빛은 언제 밝은가를 스스로 느껴서 언제나 새롭게 말합니다.


  밥을 먹을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밥을 먹지’ 하고 생각해야 밥맛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자전거를 달리지’ 하고 생각해야 어느 길을 어떻게 달리는지 기쁘게 깨닫습니다.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함께 놀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노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자꾸 생각해 내면서 환하게 웃고 노래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기 앞서 내 마음에 생각이 깃들어야 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기 앞서 내가 짓고 싶은 삶을 씨앗으로 빚어서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다면 아무런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사진기만 손에 쥘 적에는 ‘기계질’에 그치고 맙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한테 물을 일이 없고, 남한테 묻는들 실마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찾으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길을 찾을 때에, ‘나다운 사진’이 한결같이 샘솟습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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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4. 몸짓 하나마다



  몸짓 하나마다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마다 삶이니까요. 어떤 몸짓이든 기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몸짓이든 내 따사로운 손길이 닿으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삶이거든요. 글을 쓰고 싶으면 삶을 고이 바라보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삶을 가만히 마주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 삶이 내 사진이 되고, 내 사랑이 내 사진으로 드러나며, 내 꿈이 내 사진에서 피어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나를 마주하는 오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씁니다. 내가 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하루라면 늘 기쁘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작은 몸짓을 느낍니다. 큰 몸짓을 헤아립니다. 작은 몸짓에서 깨어나는 숨결을 느끼고, 큰 몸짓에서 일으키는 물결을 헤아립니다.


  커다란 종이에 뽑아야 더 커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종이에 뽑으니 더 작아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모두 사진입니다. 더 작게 쓰는 사진이 없고, 더 크게 쓸 사진이 없습니다. 모두 즐겁게 찍어서 다 같이 즐거이 누리는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를 읽으면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사진 한 장을 읽으면서 몸짓 하나를 다시 생각합니다. 몸짓 하나에서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몸짓 하나에 깃든 삶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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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뜯은 작은 풀



  아버지가 아침을 차리는 동안, 여덟 살 사름벼리가 마당에서 ‘풀’을 뜯었다. 사름벼리는 제 작은 손에 작은 풀을 얹고는 아버지한테 내민다. “자, 먹는 풀 뜯었어요.”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말이야, 다음에 아버지하고 함께 뜯어야겠네. 왜 그럴까? 나중에 함께 뜯으면 알 수 있어. 아무튼, 사름벼리가 뜯은 작은 풀을 작은 접시에 담아서 밥상에 올린다. 이 풀을 먹든 안 먹든 눈으로 바라보면서 배가 부르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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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



  뇌를 100퍼센트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여느 때에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뇌를 100퍼센트 쓰면 이녁은 곧바로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그러면, 누가 뇌를 100퍼센트 쓸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생각을 늘 마음에 심어서 새로운 길을 짓는 사람이라면 뇌를 100퍼센트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몸에서 스스로 막아서 뇌가 ‘더 많이 열리지 못하도’록 하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운을 마음이 시키려 한다면, 몸은 그만 터질 테니까요.


  몸이 ‘나는 터지고 말 테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몸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모두 다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마음만 혼자 ‘끝없는 끝’이나 ‘가없는 점’으로 간다면, 몸은 어떻게 될까요.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낍니다. 마음만 혼자 살 수 없고, 몸만 따로 살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살 때에, 제대로 기운이 샘솟아서 제대로 삶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수퍼맨’이나 ‘영웅’을 안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서 우리 지구별을 깨끗하게 씻어 줄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어요. 수퍼맨이나 영웅은 아무리 보아도 바보스럽기만 하고, 무언가 제대로 모르는 사람 같다고 느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요. 어떤 수퍼맨 하나가 모든 나쁜 것을 다 씻으면 삶이 재미있을까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아주 잘못 생각하는 대목이 있는데, 우두머리(지도자) 한두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를 이루자면, ‘내가 나를 다스려서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짓는 길’로 가야 합니다. 한자말 ‘민주’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임자’가 되는 길이 ‘민주’예요. “백성(서민·시민)이 주인 되기”가 ‘민주’가 아니에요.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 되어, 내 삶을 바로 내 손으로 짓는 삶”이 ‘민주’입니다.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손수 지어서, 밥과 옷과 집을 언제나 스스로 지어서 얻고 누릴 수 있을 때에, ‘홀로서기’요 ‘삶’이며 ‘민주’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뛰어나거나 훌륭하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이런 나라에는 끔찍함만 도사릴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나 ‘여왕’이나 ‘영웅’이 되어 지구별을 살릴 수 없어요. 어떤 사람도 이런 길을 안 바라요. 사람들 스스로 제 길을 찾고 살피고 알고 깨달아서 슬기롭게 삶을 지어야 합니다.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 나타나서 ‘나쁜 것’을 싹 쓸어서 없앤 뒤에 어떻게 되는가요? 사람들은 평화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싸움’을 자꾸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나쁜 짓’이나 ‘새로운 바보짓’을 자꾸 일삼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아서, 이를 스스로 바로잡거나 다스리거나 불태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만화책 《드래곤 볼》이라든지 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보아도, 이런 대목이 아주 잘 나와요. 사람들은 ‘평화’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질을 합니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스리면, 언제나 그때일 뿐, 모두 제자리(바보스러운 엉터리)로 돌아갑니다.


  나는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남도 나를 도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도울 뿐입니. 우리는 이웃이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하고, 우리는 동무가 되어 돈을 보태어 준다든지 일손을 함께 맞잡는다든지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엮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잘 알아야 할 대목은, 내가 스스로 우뚝 서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폭삭 주저앉으면 아무도 나하고 어깨동무를 못 합니다. 나부터 우뚝 서야, 내 이웃과 동무랑 어깨동무를 합니다.


  ‘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제3의 눈을 떠서 뇌를 100퍼센트 쓰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라고 느껴요.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삶을 제대로 지으면 됩니다. 새로운 눈을 뜬 뒤 다른 사람을 도울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지으면, 내 동무와 이웃은 나를 바라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나도 눈을 새롭게 뜨면서 즐겁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를 도우려 한다면 ‘이렇게 해야 돕는 일’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면, 내 이웃과 동무도 이녁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아요.


  가만히 보니, 내가 ‘새로운 눈’을 뜰 때마다 하는 일은 수수합니다. 이를테면, 밥을 새롭게 짓습니다. 또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짧은 노래(시)’를 기쁘게 짓습니다.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서 풀을 뜯어서 나물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새로운 눈’을 안 뜰 적에는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거나 골을 부리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해요.


  나는 내 ‘새로운 눈’을 뜨면서 스스로 웃습니다. 나는 일어서면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눈을 뜨기에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기에 웃습니다. 일어서기에 웃으면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눈(제3의 눈)’을 뜨고서 우주혁명이나 지구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됩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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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오줌방울



  기침이 멎지 않고 몸이 아픈 작은아이가 저녁을 거르고 내처 잔다. 퍽 오랫동안 잠자리에만 누웠구나 싶어서, 밤 열한 시에 일으켜서 쉬를 누인다. 쉬를 누이기 앞서 “쉬 할래?” 하는 말을 여러 차례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는 없으나, 쉬가 마려워서 몸을 자꾸 비튼다고 느낀다. 살며서 안아서 마루로 나와서 쉬를 누이려는데, 작은아이 고추가 뭉쳤다가 풀리면서 내 뺨에 오줌방울이 튄다. 아, 오랜만이로구나. 네 오줌을 얼굴에 맞는 일 말이야. 작은아이는 오줌그릇이 가득 차도록 쉬를 눈다. 무척 오래 참았구나. 국물과 물을 몇 모금 마신 작은아이는 다시 잠자리에 눕고, 몇 번 기침을 하다가 조용히 곯아떨어진다. 밤새 잘 자렴. 아침에는 말끔한 몸으로 일어나렴.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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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11 05:19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어제 병원에서 독감검사하고 독감판정되어 일주일간 학교 가지말고 있으라는 진단서를 주더라구요.
큰병원인데 독감환자로 병실이 모자라서 입원도 안되고요.
일단 집에 데려왔는데 집에서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출근해야하네요. ㅠㅠ

파란놀 2015-02-11 05:54   좋아요 1 | URL
아이가 병원에 안 가고 어머니하고 함께 다녀야 하는 한 주라면,
어쩌면 아이한테는 무척 뜻깊은 한 주가 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는 스스로 튼튼하니, 독감이라 하더라도
씩씩하게 지내면서 말끔히 털리라 생각해요.
콜록거리는 사람만 가득한 병실보다는
어머니 곁이 한결 포근하면서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오늘 하루 열어 보셔요.
아이도 하양물감 님도 믿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도 오늘은 기침을 털고 씩씩하게 놀리라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