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233] 책을 기다리며



  풀내음 땀내음 섞인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풀내음이랑 땀내음이 섞이면 흙내음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흙내음에 살내음이 섞이면 볕내음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볕내음에 비내음이 섞이면 밥내음이 나는구나 싶고, 밥내음에 노래와 웃음이 섞이면 이야기꽃으로 거듭나지 싶어요. 책 한 권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삶내음이 풀내음하고 땀내음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고이 풀어내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은 뒤 책을 묶는구나 싶습니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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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37. 저만치 멀리 가는구나



  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뗀 뒤부터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떼기 앞서 바닥을 볼볼 기듯이 다닐 적에도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이 땅에 태어난 날부터 언제나 앞을 바라봅니다. 한 걸음을 딛고 두 걸음을 딛으면서 늘 새로 나아갑니다. 몸이 자라고 키가 크면서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내딛습니다. 어느새 저 앞으로 달려가니 개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 앞으로 멀리 내달린 뒤 돌아옵니다. 제 어버이 품을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 여깁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나는 아이들이야말로 나한테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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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삶노래 94. 서울마실



아버지는 서울에

으레 혼자서

일하러 마실을 간다.


“나도 데려가요.”

“넌 여기서 놀아.”

쳇 쳇 쳇

같이 가고 싶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서울에 같이 가면


거기에서는

전철에서 뛰어도 안 돼

버스에서 큰소리로 노래해도 안 돼

길에서 신나게 달려도 안 돼


‘안 돼’투성이

서울서는 얌전만 떨어야 한다.



2015.6.19.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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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36. 제비하고 사는 집


  우리 고장에는 삼월 끝무렵부터 제비가 찾아듭니다. 새끼 제비는 두 달 남짓 처마 밑 둥지에서 자란 끝에 어미 제비를 따라서 날갯짓을 익히고, 이때부터 하늘을 가르느라 신이 나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싱싱 가르는 기쁨을 맛본 제비는 처마 밑 둥지는 까맣게 잊습니다. 하늘을 날며 먹이를 잡아채는 솜씨까지 갈고닦으면 이제 ‘제비집’은 너른 들과 숲입니다. 기쁨이 어린 신나는 날갯짓으로 이곳저곳 마음껏 누비는 제비는 이윽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이듬해에 다시 찾아와 주렴 하고 손을 흔듭니다. 제비집(제비가 사는 집)을 떠나려는 새끼 제비가 빨랫줄에 앉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봅니다. 4348.8.1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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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32] 설거지하기



  힘든 날은 다 힘들고

  즐거운 날은 다 즐거워

  바람 같은 이 마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힘들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고 느껴요. 그때그때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사뭇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나 스스로 오늘 참 힘드네 하고 느끼면 설거지도 힘들고 밥짓기도 힘들 뿐 아니라, 밥술 들기도 힘듭니다. 나 스스로 오늘 참 즐겁구나 하고 느끼면 설거지나 밥짓기뿐 아니라 삽질도 낫질도 톱질도 괭이질도 모두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참말 바람처럼 쉬 달라지면서 싱그러이 흐르는 마음입니다. 4348.8.1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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