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56. 저 구름이야



  함께 들길을 달리면서 구름을 바라봅니다. 나는 나대로 구름이 어떤 모습인가 하고 읽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구름이 어떤 무늬인가 하고 읽습니다. “저기 봐! 저기. 토끼 구름이야!” “저 구름은 고양이 같아!” 들바람을 마십니다. 푸른 빛깔이 차츰 빠지면서 노란 빛깔이 천천히 물드는 들에서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새파란 바탕에 하얀 구름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함께 들길에 서면 들을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하늘을 보면 하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마주하는 대로 우리 이야기가 되고, 함께 껴안는 대로 우리 삶이 됩니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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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5. 수박 한 조각이랑



  한창 무덥던 여름에 수박 한 통을 읍내에서 장만해서 낑낑거리며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올여름에 아이들한테 수박을 몇 번 못 먹여서 미안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올여름에는 여름 내내 집에서 얼음과자를 만들어서 먹었거든요. 후박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에 빨간 접이책상이랑 걸상을 놓습니다. 네모난 받침접시에 수박을 썰어서 올립니다. 수박 한 조각을 집기 앞서 이 멋지고 예쁘며 고마운 수박으로 우리 몸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지가 수박 노래를 부르는 사이 작은아이는 수박 속살에 살짝 손을 댑니다. 어서 먹고 싶지? 그래, 얼른 먹자.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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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꽃



봄에는 골짝마다

진달래꽃 물결


가을에는 마을마다

배롱꽃 너울


모두 내 동생이 좋아하는

분홍이야.


그래,

새봄에 돋는

코딱지나물꽃은


음,

그 꽃도 분홍이네.


그럼,

사월에 터지는

모과꽃은?


어,

그 꽃도 분홍이구나.


맞아,

코스모스에도 분홍꽃 있어.


그렇지,

접시꽃에도 분홍꽃 있고.


다 같이

곱디곱게 노래하자는

말간 분홍 바람이야.



2015.8.28.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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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4. 마당에서 책읽기


  마당은 우리 놀이터입니다.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한테도 놀이터입니다. 해바라기도 하고, 손님도 맞이하며, 때때로 책을 들고 평상에 앉아서 바람을 쐬는 쉼터입니다. 평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마당 한쪽에 그대로 둔 풀이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베푸는 노래를 듣습니다. 우리 집 마당이기에, 농약바람이 아닌 따사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마당이기에, 이 마당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다가 작은 그림책 하나를 들고 바닥에 털썩 앉아서 함께 들여다보면서 읽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맨발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다가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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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3. 서로 똑바로 바라보기



  작은아이가 나를 봅니다. 나도 작은아이를 봅니다. “아버지 어디 가?” “응,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 해.” “서울에?” “응.” “혼자 가?” “응, 오늘은 혼자 가.” “언제 와?” “하룻밤 자고.” “하룻밤 자고?” “응.” “알았어. 잘 다녀와.” “고마워. 보라도 누나하고 집에서 사이좋게 잘 놀아.” “응.” 새벽 일찍 짐을 꾸려서 조용히 집을 나서는데 작은아이가 부시시 일어나서 배웅을 해 줍니다. 배웅하는 작은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바깥일을 보는 동안 아이 얼굴빛과 마음을 내 가슴에 새기면서 기운을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 이 사진은 6월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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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20 10:52   좋아요 0 | URL
보라의 얼굴빛과 마음이 정말 숲노래님의 가슴에 새겨져~기운을 잘 내셨겠어요~
어느덧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이렇게 온마음을 다해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던 듯 싶습니다 ^^

숲노래 2015-09-20 12:12   좋아요 0 | URL
이런 사진을 찍은 날은
사진이란 참 뭔가부터 해서
아이와 지내는 삶이란 또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오래오래 가슴에 새기면서
힘들 적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면서
스스로 기운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