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04


《스탬프 군의 우표교실》

 데라오 도모후미 글·그림

 우문관 옮김

 한국우취출판사

 1980.2.16.



  이제 손으로 글월을 적어서 부치는 사람이 드물지만, 1995년 즈음까지는 셈틀로 누리글월을 주고받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으레 손으로 종이에 글을 적은 종이글월을 나누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길잡이로 오래 일했는데, 우리 집에 오는 글월이 퍽 많았어요. 웬만한 가게마다 나래꽃(우표)을 다루었고, 나래꽃을 사오는 심부름을 자주 했어요. 시나브로 나래꽃을 모았습니다. 글월 겉종이에서 어떻게 떼어내느냐를 배우려고 이모저모 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겉종이를 물에 푹 담가서 떼었다면, 나중에는 나래꽃 자리만 오리고 물에 담가서 떼었어요. 1984년 어느 날 나래꽃집(우표상)에서 《스탬프 군의 우표교실》을 빌려서 읽었어요. 해·달·날이 찍힌 테두리를 살려서 오리다가, 이렇게 나래꽃만 오리기보다 글월 겉종이가 통째로 있을 적에 삶자락 발자국을 헤아리기에 나은 줄 배웁니다. 어릴 적(1984년)에는 2500원이란 값이 엄두가 안 나서 빌려읽은 《스탬프 군의 우표교실》인데, 어른이 되어 헌책집에서 문득 보여 반가이 장만하고서 책자취(간기)를 보니, 쪽종이를 붙여서 책값을 올리고 ‘지은이’ 이름을 숨기는군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될 텐데. 머리말에는 일본에서 나온 책이라고 밝히면서 책자취에는 굳이 숨기는 모습이 오히려 창피합니다. 아니, 우리 손으로 우리 나래꽃 이야기를 수수하게 펼 줄 모르던 지난날 어른들 손길이 더 창피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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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8.29.

숨은책 835


《民族과 함께 歷史와 함께

 김종규 엮음

 서울신문사

 1978.8.15.



  어릴 적에 ‘지기(반장)’를 뽑을 적마다 괴로웠습니다. 저는 지기에 나선 적은 없습니다만, 동무들이 지기에 나서고, 한동안 갈가리 찢겨요. 이쪽을 뽑네 저쪽을 뽑네 싸우고, “넌 누구네야?” 하고 들볶아요. 어느 쪽에도 안 서면서 “반장선거도 비밀투표잖아. 누구를 민다고 말할 수 없어. 너도 쟤도 다 한동무야.” 하고 말하면 이쪽한테서도 저쪽한테서도 미움받습니다. 그러면 그러려니 입을 다물면서 달포쯤 시달립니다. 달포쯤 지나면 비로소 ‘갈라치기(편파)’로 싸우던 일이 사라지고 그냥 뒤섞여 놀아요. 《民族과 함께 歷史와 함께》에 서울신문사 우두머리 김종규 씨가 ‘육영수 오빠’한테 드리면서 손글씨를 적은 “陸寅修 議員 惠存”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1978년에 이 책을 얼마나 많이 찍어서 뿌렸는지 헌책집에 꽤 오래도록 넘쳤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졌는데 ‘박정희대통령―그 인간과 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해바라기를 노린 쓰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라나 겨레를 사랑한다면, 이웃이나 숲을 아낀다면, 힘바라기라는 허튼짓을 멈추겠지요. 나라사랑이라면 어느 길(사상)이건 나라사랑입니다. 홍범도 님이나 김좌진 님은 똑같이 나라사랑이에요. 길이 다르다며 자르는 놈이란, 바로 ‘사랑 아닌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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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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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8.29.

숨은책 856


《남북 공동성명은 무엇을 뜻하나》

 편집부 엮음

 문화공보부

 1972.



  어깨동무를 바란다면 어깨를 겯으면 됩니다. 손잡기를 바라면, 손에 쥔 모든 총칼을 내려놓고서 맨손을 맞잡으면 됩니다. 어깨동무나 손잡기는, 누가 먼저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싸움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 ‘함께 즐거이 하루를 짓고 나누면서 누리려는 꿈’이 있을 적에 어깨를 겯거나 손을 잡아요. 1972년에 나온 《남북 공동성명은 무엇을 뜻하나》는 우두머리가 앞장서서 하는 일이라면 모두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덧바르는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즈음 ‘어깨동무·손잡기’를 맨손으로 바란 숱한 사람들은 두들겨맞고 짓밟혔을 뿐 아니라, 사슬터로 끌려갔고 목숨을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예나 이제나 나라(정부)는 사람들 눈귀를 속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눈을 뜨려 하지 않기에 나라가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귀를 연, 어질고 슬기로우면서 참다운 사랑으로 하루를 지을 적에는, 아무리 나라가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밟고 속이고 닦달해도 참빛을 가리거나 감추지 못 해요. 하나되기는 ‘공동성명’ 따위로 못 이룹니다. 한길(통일·통합)을 이루려면, 수수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만나고 어울리는 열린마당을 펼 수 있으면 됩니다. 겉발림은 그저 허울에 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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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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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8.29.

숨은책 855


《補身强精 急所指壓療法》

 조규봉 엮음

 범진사

 1971.1.5.



  ‘지압·지압요법’은 우리말이 아니고, 우리말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거나 문지르면서 몸을 푸는 길이라면,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거나 풀거나 나타낼 적에 어울릴까요? 여태 이 대목을 헤아리면서 이름을 붙인 일꾼은 몇쯤 있을까요? 《補身强精 急所指壓療法》은 1971년에 나온 조그마한 꾸러미입니다. 엮은이는 일본책을 고스란히 훔쳤습니다. 일본책을 오려붙였고, 일본글을 슥슥 한글로 바꾸었습니다. ‘손누름’을 하는 돌봄터를 차리면서 ‘손누름 길잡이(지압요법 강사)’를 하셨을 듯싶습니다. 그때에 판 꾸러미일 테지요. 예전에는 배움터(학교)에서 길잡이(교사) 노릇을 하는 분들이 하루 내내 서서 일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참 길었어요. 어린배움터 길잡이였던 우리 아버지는 1982∼87년 사이에 막내아들한테서 손누름을 받았습니다. 막내아들인 저는 그무렵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녔고, 아버지가 밤늦게 또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면 구두를 벗기고 한 시간 남짓 온몸을 주물렀어요. 푸른배움터(중학교)에 들고부터 똑같이 한밤에 들어오느라 그 뒤로는 손누름을 안 했는데, 쑤시고 결리고 뭉친 아버지 온몸을 여섯 해에 걸쳐서 주무르니 저절로 길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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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42


《조선일보 100% 활용하기》

 편집팀 엮음

 조선일보사

 2003.4.30.



  이 나라에서 ‘조중동’은 사라질 뻔했습니다. 1997년에 김대중이 나라지기로 뽑히면서 힘을 확 잃는 듯했고, 2002년에 노무현이 나라지기로 뽑히면서 수그러드는 듯싶었어요.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이 나라지기를 맡는 동안 온갖 말썽·잘못이 잇달으면서 ‘조중동’은 새삼스레 힘을 받아 살아났습니다. 《조선일보 100% 활용하기》는 몇 해 동안 숨죽이면서 틈을 노리던 ‘검은붓’이 다시 활개를 치면서 내놓은 꾸러미입니다. 이제 예전처럼 검은붓을 놀리면서 눈가림을 할 수 없는 줄 크게 깨닫고는 ‘문화·예술·스포츠·여가·교육’으로 붓길을 넓히면서 목소리를 키우려 했어요. ‘조중동’ 붓꾼(기자)이 글(기사)로는 거의 안 쓰지만, ‘일제강점기 조중동 친일부역’하고 ‘박정희 군사독재 부역’은 버젓이 드러났고 똑똑히 남은 자취입니다. ‘조중동’은 지난날을 깨끗이 뉘우치고서 다시설 수 있었습니다만, 뉘우침·돌아봄 없이 일어섰어요. ‘조중동 꾸지람’을 하던 이들이 스스로 저지른 말썽·잘못을 보고는 “너희는 깨끗하니?” 하면서 콧대를 세웠거든요. 바르게 일하며 돈을 벌면 되고, 착하게 살림하며 이름을 얻으면 되고, 아름답게 숲을 품으면서 힘을 베풀면 됩니다. 우리나라 새뜸(언론)은 언제 철이 들까요?


조선일보가 두려워하는 것에 관해서입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입니다. 특히 독자들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나는 아무도 더 이상 욕을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무도 조선일보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 아무도 욕을 하지 않을까요. 그때그때의 대중정서만을 따라가면 욕을 먹지 않습니다 … 조선일보는 한국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변함없이 ‘욕하면서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신문’을 걸어갈 것입니다. (이한우 논설위원/268,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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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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