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11.4.

수다꽃, 내멋대로 52 병원을 안 가는



  이웃님 쇳덩이(자동차)에 같이타서 구례읍을 지나는데, 다른 쇳덩이가 뒤에서 꽝 들이받았다. 꽤 세게 받아서 덜컹 흔들렸고, 목이 삐끗했고, 왼무릎이 욱씬거렸다. 뒤에서 우리를 들이받은 이는 할아버지. 늙은 우리 아버지보다 조금 젊은 할아버지인데, 너무 서두르면서 빨리 몰더라. 왜 꽝꽝 치거나 부딪히겠는가? 느긋하게 안 달리니까 들이받는다. 차근차근 안 모니까 그들 스스로도 다치거나 죽고, 이웃도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아직 살던 무렵, 곧잘 두바퀴(자전거)로 서울 한가람길을 달렸는데, 숱한 ‘달림이(레이서)’가 그야말로 쌩쌩 바람을 가르는 소리까지 내면서 휘젓더라. 요새도 똑같으리라. 값나가는 두바퀴를 몰고서 자전거옷까지 차려입은 그들은 거의 다 쇳덩이도 몬다. 사람들은 쇳덩이나 두바퀴만 지나치게 빨리 몰지 않는다. 삶도 똑같이 지나치게 휘몰아친다. 책을 빨리 읽어치워야 할 까닭이 없고, 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글을 빨리 깨쳐야 하지 않고, 책을 빨리 많이 팔아치워야 하지 않고, 돈을 빨리 많이 쌓아올려야 하지 않고, 이름을 빨리 높이 날려야 하지 않고, 그러니까 빨리 달려서 빨리 살다가 빨리 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엊저녁에 들이받히고 나서 왼무릎이 내내 부어서 욱씬거렸고, 밤새 몸앓이를 했다. 그러나 돌봄터(병원)에 갈 마음은 터럭조차 없다. 나는 1992년에 마지막으로 돌봄터를 갔고, 이듬해 1993년에 발목이 접질려서 뼈맞춤을 하는 곳에 절뚝거리면서 한 달을 드나든 적이 있지만, 돌봄터에는 안 간다. 서른 해 넘게 돌봄터와 등진다. 그동안 나를 들이받은 쇳덩이가 여럿 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던 1998년에 뺑소니를 겪었고, 2003∼2007년에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며 두바퀴(자전거)로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에 석 판 뺑소니를 치른 적 있다. 뺑소니이든 끼어들기이든 뭐든, 길에서 벌어지는 모든 ‘들이받기(교통사고)’는 “서두르며 빨리빨리 달리는 버릇” 탓에 싹튼다. 다른 이를 들이받은 이는 하루빨리 쇳덩이를 버려야 한다. 종이(운전면허증)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분들은 걸어다녀야 한다. 걷기에 멀다면 택시를 타야 한다. “서두르며 빨리빨리 달리는 버릇”에 사로잡힌 이들은 쇳덩이를 몰아서는 안 된다. 30으로 달리는 길을 70으로 내달리거나, 100으로 달리는 길을 150을 밟거나, 120까지 달리는 길을 170으로 휘젓는 이들은 모조리 종이(운전면허증)를 걷어치워야 한다. 죽음길에 뛰어드는 바보짓을 멈추도록 옆에서 도와야 한다. 쇳덩이를 몰다가 말썽을 일으킨 사람은, 아무리 조그맣게 들이받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외판(원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끝맺고, 다시는 쇳덩이를 몰지 못 해야 맞다. 그래야 이 땅에서 어린이가 마음껏 걸어다니거나 뛰놀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시골이며 서울(도시)에서 할매할배가 느긋이 걸어다닐 수 있다.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웃기지 마라. ‘가벼운 교통사고’란 아예 없다. 그저 ‘말썽(사고)’이다. 가볍게 건드리거나 부딪혔어도 종이(운전면허)를 멈춰야 한다. 그만큼 쇳덩이는 길에서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총칼(무기)이 된다. 그나저나 나는 돌봄터에 안 간다. 여러 판에 걸쳐 뺑소니를 겪었어도, 달포쯤 앓아눕거나 끙끙대면서 나았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 풀꽃나무를 곁에 품노라면, 모든 몸앓이를 천천히 녹여서 풀어낼 수 있다. 한동안 다리를 푹 쉬어서 살리자고 생각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수다꽃, 내멋대로 51 책지게

― 쓰러지는 나날



  책으로 가득한 등짐을 짊어지고 한참 걷는다. 나는 왜 책짐을 이렇게 짊어지고서 한참 걷는가. 버스를 탈 수 있고, 택시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택시를 탈 만한 삯도, 버스를 탈 만한 삯까지도 몽땅 책값에 들이부었다. 2002년 10월 2일을 돌아본다. 워낙 날마다 여러 책집을 돌면서 책을 잔뜩 사들이는 탓에 ‘책값은 늘 맞돈(현금)만으로 치르기’로 다짐을 한다. 날마다 꼬박꼬박 돈터(은행)에 가서 조금씩 찾는다. 그리고 이 돈은 날마다 책값으로 송두리째 날아간다. 책 한 자락을 덜 사면 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다. 책 서너 자락을 덜 사면 집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 있다. 책 예닐곱 자락을 덜 사면 짜파게티 하나에 밥 한 그릇으로 하루 끼니를 채울 일이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날마다 책을 서른 자락이고 쉰 자락이고 사들여서 읽고 만다. 책을 서른 자락 사들이는 날은 책집에 서서 삼백 자락을 살폈다는 뜻이다. 책을 쉰 자락 사들이는 날은 책집에 서서 오백 자락쯤 헤아렸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살피고 헤아리고 읽느냐고 묻는 사람은 어리석은가, 아니면 어진가? 나는 나보다 책을 훨씬 많이 사들여서 훨씬 많이 읽는 책벌레를 여럿 안다. 나는 이 책벌레 어르신과 동무한테 “님은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삽니까?”라든지 “님은 왜 이렇게 책값에 살림돈을 몽땅 쏟아붓습니까?” 하고 여쭙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나한테도 딱히 묻지 않는다만, 나는 스스로 읊는다. 주머니에 100원조차 남지 않았으나 헌책집 일꾼은 내 손에 삼천 원이나 오천 원을 도로 쥐어 준다. “최종규 씨, 집에 걸어가지 말고 버스나 전철이라도 타고 가십시오.” 때로는 “최종규 씨, 집에 버스나 전철을 타고 돌아가서 라면이라도 하나 사서 끓여 드십시오.” 사랑스러운 책집지기님이 내 손에 도로 쥐어 준 삼천 원이나 오천 원을 쥐고서 버스도 전철도 안 타고서 한두 시간을 그냥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길불(가로등)에 기대어 서서 책을 읽는다. 등과 팔다리에서 흐르던 땀이 조금 식으면 다시 책짐을 지게처럼 짊어지고서 걷는다. 드디어 우리 집에 다다라 책짐을 모두 풀어놓고 나면, 어느새 홀가분한 차림새로 밤길을 나선다.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아저씨는 밤 열두 시에라야 비로소 가게를 닫는다. 〈골목책방〉 아저씨가 책집을 닫기 앞서 얼른 밤길을 달린다. 이러고는 마침내 삼천 원이든 오천 원이든, 남은 돈을 다 쓰고야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는가? 책에 적힌 이야기를 먹는다. ‘오롯이 나무로만 세운 나머지집(적산가옥)’은 골마루를 지나거나 디딤칸을 오르내리거나, 내가 사는 윗칸(2층)에 드러눕거나 책상맡에 앉을 적에도 늘 삐끄덕 소리를 낸다. 물꼭지를 틀어서 물을 마신다. 이튿날 일터(《보리 국어사전》 편집실)로 가면 낮밥이나 저녁밥을 얻어먹자고 생각한다. 책벌레는 밥을 먹지 않고 물을 먹고 바람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다. 책벌레는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자가용도 타지 않는다. 책벌레는 책짐을 이고 진 채 걷는다. 걷다가 팔뚝이 결리면 살짝 멈추어 땀을 훔치고는 또 책을 읽으면서 쉬다가 다시 걷는다.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기에 밤나절에 마지막 책집마실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오면, 더는 책을 펼 기운이 남지 않아 꼬르륵 쓰러지고야 만다. 날마다 쓰러진다. 날마다 까무룩 꿈나라로 간다. 밤이면 마치 죽은듯이 몸을 쉰다. 이른새벽이면 번쩍 눈을 뜨고는 어제 산 책을 되읽으면서 글을 쓴다. 어제 다녀온 책집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을 짓는다. 책벌레가 왜 책벌레인지 밝히는 글을 여민다. 책짐을 부여잡고서 서울 시내 골목골목 거닐면서 ‘아직 내가 찾아내지 못 한 마을책집이 틀림없이 어느 골목에서 고즈넉이 나를 기다릴는지 몰라’ 하고 혼잣말을 한다.


ㅅㄴㄹ


2002년 10월 2일 일기를 옮겨놓는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50 고양이와 개



  고양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많다. 개를 가리키는 이름도 많다. 개는 열두띠에 들어가고, 고양이는 열두띠에 안 들어가는데, 열두띠에 들어가는 범은 ‘범 갈래’가 아닌 ‘고양이 갈래’이다. 이렇게 보면 고양이도 범하고 한동아리로 열두띠에 깃든다고 여길 만하다. 온누리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이에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온누리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 틈바구니에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고양이나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가까이하지도 멀리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부터 따로 가까이하고프거나 멀리하고픈 것이 드물었다. 그러나 몸에 안 받는 것은 많았다. 김치도 치즈도 소젖(우유)도 요거트도 찬국수(냉면)도 동치미도 시큼이(식초)도 하양이(크림)도 달콤이(케익)도, 몸에서 안 받아 몽땅 게워내기 일쑤였다. 혀짤배기에 말더듬이라서 못 읽거나 못 읊는 소리가 있고, 못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내 몸에 안 받거나 내 몸이 못 받아주더라도 싫어하거나 멀리할 마음은 없다.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픈 사람들은 그들대로 즐기는 삶일 테니까. 곰곰이 보자면, ‘나로서는 몸에 안 받지만, 둘레에는 다들 몸에 잘 받는 살림이나 밥이나 옷’이 퍽 많기에, 어려서부터 ‘좋고 싫고’를 가를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함부로 ‘좋다 싫다’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배웠다. 어려서부터 못 읽는 소리에 못 부르는 노래가 넘치다 보니 ‘말을 잘 못 하거나 글을 잘 못 쓰는 이웃’을 마주할 적에는 이웃님 마음속을 헤아리고 읽는 데에 스스로 더욱 기운을 들였구나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숲노래 씨를 처음 볼 적에 팔뚝이나 허벅지에 힘살(근육)이 많아서 “어디서 운동하셨어요?” 하고 묻는데, 숲노래 씨는 집안일과 손빨래를 하고, 아이를 업고 안고서 돌보았으며, 지게처럼 책짐을 짊어지고 나르기를 1982년 어린이일 적부터 했다. 어린이로 살던 때부터 어머니하고 저잣마실을 함께 가서 두 손하고 등짐에 살림거리를 이고 지고 들면서 날랐고, 겨울에는 땔감도 언니하고 두 손으로 낑낑낑 나르면서 보냈다. 그저 손으로 일하고, 발로 걷고, 등으로 지고, 몸으로 맞아들여서 하노라니, 힘살이 저절로 팔다리에 붙을 뿐이다. 덧붙인다면, 쇳덩이(자동차)를 안 몰기에 두바퀴(자전거)를 몬다. 언제나 신나게 두바퀴를 달리기에 힘살이 또 붙을 수 있다. 이러저러하다 보니, 누가 이쪽을 좋아하든 저쪽을 좋아하든 언제나 시큰둥하게 사이에 서서 지켜보았다. 누가 저쪽으로 몰리든 이쪽으로 쏠리든 늘 심드렁하게 가운데에 서서 어느 길에도 끼지 않았다. 스스로 어느 하나를 좋아하려 한다면, ‘나를 뺀 숱한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어느 하나를 싫어하려 한다면, ‘나를 뺀 숱한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안 싫어할 수 있다’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용·중도’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자. 그저 ‘가운데·복판·사이’라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서 생각하자. ‘가슴 = 가운 몸씨’이다. 우리 가슴이란 ‘가운데에 있는 씨앗을 이루는 몸’이다. ‘가슴 = 마음’이다. ‘복판 = 봄을 이루는 즐거운 수다판’이다. ‘사이 = 새’이다. 이쪽이나 저쪽으로 쏠리면서 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결이 되면, 누구나 어느새 ‘가슴·마음’을 등지고 ‘복판·봄·보다’를 등돌리고 ‘사이·새로움·멧새노래’를 잊어버리더라. 숲노래 씨는 책을 허벌나게 읽지만, ‘좋아하는 책이나 글님’이 아예 없다. 숲노래 씨는 어느 책을 읽든 ‘살펴보고 지켜보고서 배우는 책이나 글님’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안 좋아하고 안 싫어한다. 다만, ‘사랑하는 책이나 글님’은 있다. 하려면 사랑을 할 일이요, 하려면 살림을 할 일이며, 하려면 노래를 하고 놀이를 하면서 별빛잔치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다룬 만화책이나 개를 담은 사진책을 으레 장만하지만, 고양이도 개도 안 좋아하고 안 싫어한다. 이웃 숨결을 포근히 담아내는구나 싶으면 장만해서 읽을 뿐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2023.9.22.

수다꽃, 내멋대로 49 민소매 강사



  1991년에 들어간 푸른배움터(고등학교)에서 힘든 한 가지는 배움옷(교복)이었다. 나는 ‘폴리(플라스틱 화학섬유)’ 옷을 못 입는다. ‘폴리’로 짠 옷은 200만 원짜리이건 이천 원짜리이건 살갗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난다. 그런데 푸름배움터에서 입히는 배움옷은 ‘100퍼센트 폴리’였다. ‘폴리·아크릴’ 같은 죽음실(화학섬유)이 살갗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 꽤 있고, 멀쩡한 사람도 많다. 자, 그러면 그대는 ‘죽음실이 살갗에 닿으면 소름이 돋고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한테 ‘100퍼센트 폴리’나 ‘50퍼센트 폴리’나 ‘20퍼센트 폴리’ 옷을 건네면서 입으라고 하겠는가? 그대는 죽음천을 이웃한테 뒤집어씌울 셈인가? 이웃을 옷으로 죽일 셈인가? 달걀이나 치즈가 몸에 안 받는 사람한테 달걀이나 치즈를 억지로 먹이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김치가 몸에 안 받는 사람한테 김치를 마구 먹이려 하면서 “어떻게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어?” 하고 다그치면, ‘죽임질(살인)’하고 같다. 나는 집에서건, 저잣마실을 가건, 두바퀴(자전거)를 달리건, 이야기꽃(강의)을 가건, 가시아버지(장인)한테 찾아가건, 4월부터 11월 사이에는 민소매옷을 걸친다. 살갗이 바람을 쐬도록 틔워 놓는다. 1986년에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로 우리나라에 ‘방사능 오염 분유’가 잔뜩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우리나라 ‘유제품’은 ‘체르노빌 방사능 오염 분유’로 만들어서 팔기 일쑤였다. 나는 어릴 적에 왜 살갗에 그렇게 두드러기가 돋으면서 부풀었는지 몰랐다. 우리 언니도 마을 아이들도 죄다 살갗에 두드러기가 돋고 부풀면서 몇 해를 앓았다. 1986년 ‘체르노벨 방사능 오염 분유로 만든 유제품’을 잔뜩 먹고자란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딸아들을 낳아 돌보는 살림으로 나아갔는데, 그런 ‘방사능 오염 분유 유제품’을 먹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을 테지만, 두드러기에 몸앓이로 애먹은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도 요새 태어나서 자라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살갗앓이(아토피)’로 시달린다. 공공기관이건 학교이건, ‘강사’라는 이름인 사람이, 더구나 ‘국어사전 편찬자’라는 사람이, ‘자가용을 몰지도 않고 자전거를 달리면서 강의를 하러 찾아가는’ 줄, 썩 달가이 받아들이지 않더라. “적어도 반소매에 긴바지를 입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눈을 흘기거나 따지는 관리자나 교감·교장이 수두룩하다. 그들 가운데 “강사님은 왜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습니까?” 하고 궁금해서 묻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는 뜻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옷차림을 놓고서 배우려’는 마음은, 이 나라 벼슬아치나 길잡이(교사)한테 없을까?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씨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삶을 배우고 살림을 익히며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줄 깨달으려는 벼슬아치나 길잡이는 없을까? 없지 않으리라. 있으리라. 그저 아직 거의 못 만났을 뿐이리라. 재미있게도, “선생님! 반소매에 긴바지를 입어야지요!” 하고 따진 어린이나 푸름이는 아직 한 사람도 못 만났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으레 “선생님! 선생님은 어른인데 왜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어요? 왜 운전면허를 안 따고 자전거를 타요?” 하고 묻더라. 그래서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로 들려주니, 귀기울여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웃더라. 요새 난 관리자나 교감·교장한테 슬며시 되묻는다. “우리 관리자(교감·교장) 선생님은 왜 이 한여름에 구태여 긴팔에 긴소매인 양복을 차려입으시나요? 양복은 서양옷이잖아요. 서양옷이 나쁠 일은 없지만, 서양옷을 갖추어야 예의일까요? 저는 겨울에는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습니다. 사람마다 몸도 마음도 다른 줄 안다면, 겉모습이나 옷차림이 아닌 숨결을 바라보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3.9.12.

숨은책 862


《とりぱん 26》

 とりの なん子 글·그림

 講談社

 2020.3.23.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어느 날, 구정물터(폐수처리장)에서 흘러나오는 구정물로 범벅이면서 코를 찌르는 도랑에 내려앉은 하얀새를 자주 보았습니다. 둘레에 물으니 ‘백로(白鷺)’라 한다는데, 깃빛이 하얗다면 ‘하얀새·흰새’라 하면 될 텐데 싶더군요. 무엇보다도 끔찍한 구정물이 흐르는 저 냇물에서 저 하얀새가 걱정스러운데, 하얀새를 바라보는 저를 지켜본 동무들은 “야, 저 새는 어쩌다 내려앉았잖아? 우리는 날마다 구정물 옆을 지나다니고, 하루 내내 구정물 곁에서 살잖아?” 하더군요. 화학공장 곁에 있던 구정물터는 이제 흙이랑 잿더미(시멘트)로 묻혔고, 여기에 잿집(아파트)을 올렸더군요. 우리는 집터에 무엇이 있었는지 몰라도 될까요? 풀조차 안 돋던 죽음터를 덮으면 감쪽같이 잊힐까요? 《とりぱん 26》은 첫걸음이 나온 지 열다섯 해 만에 나왔다고 합니다. 한글판 《토리빵》은 2012년에 일곱걸음까지 나오고 끝이지만, 일본판은 2023년까지 서른한걸음이 나옵니다. 새바라기를 하면서 새를 그림꽃(만화)으로 담아내는 꾸러미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나오리라 봅니다. 인천 골목집을 떠나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 살며 하루 내내 새를 만나고 새노래를 듣는데, 새를 마주하면 마음부터 새롭고, 모든 말이 노래처럼 흐르더군요. 새를 품을 줄 알아야 사람도 사람다웁지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