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똥

 


  읍내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더위에 아이들 무척 애썼구나 싶어, 마당에 마련한 큰 고무통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라고 말한다. 두 아이 모두 옷을 입은 채 고무통에 들어간다. 한참 노는가 싶더니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보라 똥 쌌어요!” 부엌에서 붉은 오얏알 물에 헹구다가 헐레벌떡 마당으로 내려선다. 작은아이를 본다. 물에 똥을 떨구었나? 아니네. 똥은 바짓가랑이에 걸려 출렁인다. 작은아이를 덥석 안아 바깥 수돗가로 간다. 바지를 벗기고 밑을 씻긴다. 작은아이는 웃도리만 입은 채 고무통으로 돌아가서 물놀이를 마저 한다.


  바깥마실을 오래 다니지 않으면,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집똥을 눈다. 작은아이가 바깥똥 누는 일은 퍽 드물다. 큰아이도 작은아이하고 비슷하다. 두 아이 모두 으레 집에서 집똥을 누지, 밖에 나가서 바깥똥을 잘 안 눈다. 바깥에서는 똥을 참을까. 바깥에서는 쉴새없이 뛰노느라 똥 마려운 줄 못 느낄까.


  아이들이 바깥에서 똥을 눌까 싶어 늘 옷을 넉넉히 챙기고 밑 닦을 종이도 가방마다 따로 챙긴다. 아버지가 가방에 챙긴 바지와 종이를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방에서 이 짐을 덜지 않는다. 아이들은 바깥똥을 눌 때가 더러 있지만, 참말 집똥을 잘 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새로 장만한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빨래 걷고, 햇볕에 말린 평상 들이고, 이럭저럭 집일 하다 보면 어느새 작은아이가 똥을 누고, 큰아이도 곧 똥을 눈다. 참으로 귀엽고 멋진 아이들이다.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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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고 싶어

 


  바닷가에 다녀온 이듬날, 큰아이는 “아,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말을 열 차례 남짓 꺼낸다. 바다에 그렇게 가고 싶니? 그래, 그러면 가야지. 아버지는 자전거 끌며 바닷가 다녀오면 이틀이나 사흘쯤 먼 마실은 쉬어야지 싶은데, 사흘에 한 차례씩 바닷가마실을 해 볼까. 택시를 불러 다녀오면 만사천 원이면 넉넉한 마실길이기는 한데, 택시로 달리면 여름날 푸른 숲과 나무를 한껏 누리지 못해. 그저 폭신한 걸상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에어컨바람을 쐬야 할 뿐이야.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달리고, 햇살을 쬐면서 자전거 발판을 구르지. 땀이 볼을 타고 흐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훅훅 가쁜 숨 몰아쉬면서도 고갯마루 오르면 쏴아아 내리막에서 신나게 휭휭 바람을 누리지.


  바다에 가면 무엇이 좋을까. 바닷가에 서면 어떻게 즐거울까. 가만히 바닷바람을 떠올린다. 곰곰이 모래밭을 되새긴다. 하얀 조개껍데기를 생각하고, 모래밭으로 밀려든 미역과 바닷말을 헤아린다. 바다에서 양식 하느라 바닷가로 밀려드는 온갖 스티로폼 쓰레기를 하나하나 곱씹는다.


  바다는 우리한테 어떤 품일까. 숲은 우리한테 어떤 가슴일까. 흙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일까. 얘들아, 우리 물빛 마음이 되면서 바다에서 놀자.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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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9 09:58   좋아요 0 | URL
아...정말..여름을 온몸과 마음으로 시원하고 즐겁게 누리시는군요.^^
항상 아침마다 함께살기님 올려 주시는 나무와 꽃 나비 길 바다...글과 사진 통해
제 마음까지 함께 기쁘고 시원하고 즐거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3-06-29 10:15   좋아요 0 | URL
바다빛도
함께 누리는 사람이 있을 때에
훨씬 환하답니다~~
 

[시골살이 일기 11] 늘 듣는 소리
― 맑은 노래를 누리는 삶

 


  인천에서 살며 옆지기를 만나 짝을 짓고 아이를 낳아서 돌보던 어느 날, 옆지기가 ‘전철 복복선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도무지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을 넣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눈이 펑펑 쏟아진 날 ‘소음공해 측정’을 한다면서 공무원 두 사람이 왔어요. 어쩜, 다른 날도 아닌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가장 느릿느릿 지나가는 날 왔을까요. 그런데,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데에도 데시벨 측정으로 110이라는 숫자가 나왔지요. 이때 공무원들은 120인가 130을 넘어야 민원으로 받아들여 피해보상을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참 어이가 없었어요. 당신들 스스로 느끼지 않느냐고, 이렇게 눈 때문에 천천히 달리고, 눈에 소리가 묻히는 날 아닌, 여느 때에 소음측정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어요.


  여느 때라면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전철 복복선이니까, 두 대가 마주 지나갔을 적에, 또 빠른전철이 나란히 지나갔을 적에는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우리 식구는 인천을 떠났고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인천을 떠났어도 기차길 옆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식구가 나온 그 옥탑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더군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참으로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풀내음을 맡으면서도 즐겁고, 바람과 햇살로도 즐거운데, 다른 무엇보다, 귀를 시끄럽게 찢는 소리 아닌,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나뭇잎과 풀잎과 잠자리와 나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하루 내내 들으면서 지내니 즐거워요.


  이런 소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주파수를 똑같이 맞춘 소리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다 하더라도 이런 즐거움 누릴 수 있을까요. 마을 할매 할배 들은 손전화 아무 때나 터뜨리지 않으니, 손전화 기계로 시끄럽게 할 사람 없습니다. 장사하는 짐차 지나갈 적에 몇 분쯤 시끄럽지만 이내 사그라듭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몹시 적어요. 군내버스는 마을 어귀로 하루에 여덟 대만 지나갑니다.


  맑은 물과 싱그러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과 짙푸른 푸나무를 누릴 수 있는 데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데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운 소리 흐른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아니, 다른 것 모두 좋은데 시끄러운 소리로 귀를 찢는다면, 물이 맑고 바람이 싱그러우며 햇살이 따사롭더라도 살기 힘들리라 느껴요. 곰곰이 생각하면,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이나 푸나무 어느 한 가지가 없거나 모자라다 하더라도, 소리가 귀를 찢으면 사람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겹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소리를 들으며 삶을 생각합니다. 노래를 헤아리며 삶을 살찌웁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하루를 빛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어떤 말마디를 들려주는가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마디로 하루를 새로 짓는가 곱씹습니다. 며칠 앞서부터 저녁이면 마당에서 몹시 큰 개구리 울음소리 들려서, 설마 황소개구리인가 했는데, 저녁나절 보니, 그냥 참개구리였어요. 참개구리 한 마리 우리 마당과 텃밭 사이를 오가며 지냈더군요. 좋은 하루가 저물며 맑은 노래가 흐르고,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잡니다.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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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0] 바다에서 책을 읽는
― 마음을 쉬면서 다스리는 하루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 뒤 면소재지에 갑니다.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부칩니다. 면에 있는 빵집에 들러 빵 두 꾸러미를 장만합니다. 집에서 나올 적에 물을 넉넉히 챙겼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느덧 새근새근 잠들었어요.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씩씩하게 함께 갑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시골길 달리는 내내 이런 얘기 저런 노래 들려줍니다.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쉬잖고 조잘조절 떠들기 때문에, 고단하게 오르막을 오르더라도 새삼스레 힘을 내어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집에서 나와 이십오 분쯤 지나니 발포 바닷가에 닿습니다. 이 바다는 저 멀리 태평양 보이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입니다. 물결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큰아이는 낮잠을 건너뛰며 샛밥을 먹었지만,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아 자느라 샛밥을 안 먹었습니다. 두 아이를 부릅니다. “벼리야, 네 동생은 안 먹어서 배가 고파. 좀 무얼 먹고서 놀자.” 모래밭에서 흙 파고 뒹굴던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빵과 과자를 풀어 놓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나온 마실길이지만 두 아이 모두 바지런히 집어먹습니다. 아이들이 빵과 과자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책을 꺼냅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다문 한 쪽이라도 읽고 싶어 책 한 권 가방에 넣었어요.


  아이들은 먹느라 모래밭에 내려갈 생각을 안 합니다. 스무 쪽 즈음 읽고서 자전거수레에 책을 올려놓습니다. 함께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나뭇가지를 셋 줍습니다. 아이들한테 하나씩 건네고, 나도 하나를 쥐어 모래밭에 그림과 글씨를 그립니다. 한참 그림놀이 글놀이 하다가 서로 손을 잡고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물결이 밀려들어 발가락을 간질입니다. 물결은 내 무릎 언저리를 맴돌지만, 이 물결은 아이들 옷자락을 모두 적십니다. 아이들은 옷자락 젖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천천히 걷고, 다시 이쪽으로 천천히 걷습니다. 한참 거닐며 물결하고 놉니다.


  바닷가를 스치는 자동차 더러 있고, 두어 대쯤 발포 바닷가에 서지만, 물결소리만 귀로 들어옵니다. 두 눈은 물결만 바라보고 온몸은 물결을 느낍니다. 크게 기지개를 켭니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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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함께 그린다

 


  세 살 산들보라가 크레파스로 죽죽 금긋기를 하다가 내팽개친 종이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종이는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리라. 그렇다고 여섯 살 사름벼리가 이 종이에 그림을 그릴 듯하지는 않다. 깨끗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 할 테지.


  큰아이가 그림 그리는 곁에 ‘작은아이가 죽죽 금을 그은 종이’를 펼치고는 우리 집 후박나무를 그려 본다. 잎사귀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모두 동글동글 하나씩 그려 넣는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싶어 바지런히 동글동글 잎사귀 넣는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여기는 왜 다 안 그려?” 음, 그게 다 그린 그림인데?


  후박나무 위쪽을 그린 다음 하늘빛을 입히는데, 노랑나비 네 마리 그리고, 고추잠자리 세 마리 그린다. 노랗게 맑은 해님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크레파스를 쥐더니 해님 둘레를 죽죽 긋는다. 작은아이 딴에는 그림을 함께 그리겠다는 뜻이다. 좋아. 네 마음대로 죽죽 그어 주렴.


  이윽고 후박나무 아래쪽 그릴 때. 무얼 그릴까 하고 1초쯤 생각하다가 나무뿌리를 그리기로 한다. 나무뿌리를 죽죽 잇다가는, 몇 가지 글씨를 넣는다. 맨 먼저 나무. 작은아이가 곁에서 자꾸 ‘나무’라고 말하기에 나무를 적는다. 그러고서 뿌리를 쓴다. 그러고서 잎을 쓰고 꽃을 쓰고 열매를 쓴다. 마지막으로 씨앗을 쓴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무는 뿌리와 잎과 꽃과 열매에 씨앗, 이렇게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만하네.


  아래쪽 빛깔을 입힌다. 이야, 여러 날 걸려 그림 한 장 다 그렸네. 큰아이도 제 그림을 다 그리고는 아버지 그림을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어, 아버지 그림 잘 그리네.”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그림을 왜 잘 그린다고 생각하니? 알겠니?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니까 잘 그려. 아버지가 언제나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니까 잘 그린단다. 사름벼리 너도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마음속 이야기를 늘 그리니까, 너도 그림을 잘 그리지. 그래서 네 그림을 온 집안에 잘 보이도록 붙인단다. 4346.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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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7 08:42   좋아요 0 | URL
그림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나무 나비 잠자리 해님 뿌리
땅 위의 푸르름과 땅 아래의 따뜻한 흙 색감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는군요..
이 그림 한 장 벽에 붙여 놓으면 매일 우주와 함께 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
그림이 무척 탐이 납니다. ㅎㅎ

숲노래 2013-06-27 08:58   좋아요 0 | URL
이번 그림은 나뭇잎 동글동글 하느라 좀 오래 걸렸는데,
아이들과 또 다른 그림을 하나 그리면
선물할게요.

어떤 그림 그리면 좋을는지
3초 생각하니 떠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