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렴

 


  큰아이는 새벽 다섯 시부터 깨어 함께 짐을 꾸린다. 작은아이는 여섯 시 반부터 일어나서 뛰어논다. 이 아이들 데리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아침 일곱 시 오 분에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첫 군내버스를 타려고 한다. 마을 할매 세 분과 할배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린다.


  읍내에 닿아 시외버스로 갈아탄다. 시외버스로 순천 기차역까지 달린다. 순천 기차역에 퍽 일찍 닿았기에 미리 끊은 기차표를 물리고 일찍 가는 기차표로 바꾼다. 시외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아이들은 개구지게 놀고 싶어 한다. 소리를 지르고 싶고, 뛰거나 달리고 싶다.


  아이들로서는 어디에서든 마음껏 소리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몸도 굴리고 싶다. 기쁘게 노래하면서 까르르 웃고 싶다. 그렇지만, 시외버스나 기차에서는 ‘다른 사람을 헤아려야’ 한다는 도덕이나 예절이 있다. 곰곰이 생각한다. 먼먼 지난날에는 시외버스도 기차도 없었다. 먼먼 옛날 아이들은 마실을 다니거나 나들이를 다니거나 개구지게 뛰고 구르고 놀고 노래하고 소리질렀으리라 생각한다.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누리며 살았다. 그래, 문명이나 문화라고 하는 어른 사회 울타리는 아이들을 옥죄고 얽매는구나. 아이들이 한결 씩씩하거나 튼튼하게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고, 자꾸 누르면서 가두는 틀이로구나.


  이른새벽부터 개구지게 놀며 소리지르고픈 아이들을 달래고 타이르고 나무라고 토닥인 끝에 큰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운다. 아버지 무릎에 눕자마자 큰아이가 잠든다. 이렇게 졸리고 힘들었으면서, 그렇게 참고 더 놀겠다며 소리지르고 그랬니. 작은아이는 이십 분쯤 더 종알종알 떠들며 걸상에서 일어서서 앞뒤를 구경하고 창문가에 올라서려 하더니, 어느새 고개를 폭 떨군 채 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잠든다.


  얘들아, 잘 자렴. 이곳에서건 저곳에서건 아름다운 너희 숨결 고이 건사하면서 뛰놀렴. 바깥마실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누리는 너희들 노래와 웃음과 춤과 발장구와 날갯짓으로 신나게 뛰놀렴. 4346.7.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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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

 


  아이들아, 너희는 아니? 오늘날 이 나라 남녘땅, 한국에서 집에 에어컨 들이지 않는 집이란 거의 없단다. 게다가 선풍기조차 갖추지 않는 집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까지 할 수 있어. 바로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가 없지. 시골 아닌 도시에서 살 적에는 냉장고조차 없었단다. 너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여름에 창문바람과 부채바람으로 지냈어. 너희가 태어난 뒤에는 너희가 여름밤에 땀 적게 흘리고 자도록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마들며 부채질을 했는데, 너희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은 줄 알지? 너희 아버지는 너희와 너희 어머니 더위 타지 말라며 밤새 부채질을 하며 여름을 났단다. 올여름도 이와 같지. 들바람이나 숲바람이 분다면 홀가분하지만, 들바람도 숲바람도 없는 날에는, 너희가 자면서도 콧등과 이마에 땀방울 송송 솟으니, 너희 아버지는 자다가 일어나서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부채질을 한단다. 너희 아버지는 잘 떠올리지 못하지만, 너희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너희 아버지나 어머니가 여름날에 잘 자라고 언제나 똑같이 부채질로 밤을 지새우셨는지 몰라.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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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13 00:0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잘 자도록 옆에 함께 누워 부채질을 해주는 일. 선풍기 대신 굳이 부채질을 해주는 마음. 아이 키우는 사람이라면 모두 통하는 마음 아닐까 싶네요.

내일, 서울 잘 다녀오세요.

숲노래 2013-07-13 06:08   좋아요 0 | URL
큰아이도 아버지 따라 밤새 부채질을 거들며
어제는 참말 잠을 못 이루네요.
시골에서도 어제오늘은 바람이 안 부는군요 @.@
 

[아버지 그림놀이] 예쁜 돈 벌겠어 (2013.7.11.)

 


  나라밖으로 배움길 떠난 적 없기에, 한 사람이 나라밖에서 배우는 동안 돈이 얼마나 들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 올해에 옆지기가 미국으로 가서 여러 달 배우는 동안 이제껏 겪지 못한 돈가뭄을 뼛속 깊이 느낀다. 그렇구나. 나는 여태 ‘예쁜 돈 그득그득 벌어 즐겁게 아름다운 곳에 쓰는 길’을 생각한 적이 없구나. 이리하여, 오늘은 “예쁜 돈 그득그득 벌어서 집숲 마련하자”는 꿈을 그림으로 그린다. 아빠 나비, 엄마 나비, 벼리 나비, 보라 나비, 이렇게 나비 넷을 그리고는 큰 잎사귀 하나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고운 빛깔로 큰 잎사귀를 포근히 감싸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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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익는 아이들

 


  아주 무덥지 않다면 바깥에서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날마다 살결이 까맣게 탄다. 아버지도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닌다든지 바깥에서 함께 놀거나 걷고 보면 살결이 나란히 탄다. 아이들 살빛은 흰종이 공책을 펼쳐 글씨놀이를 할 때에 새삼스레 느낀다. 얘야, 너희 손이며 얼굴이며 다리이며 참 까맣구나. 좋아, 어릴 적부터 이렇게 햇볕 잘 받고 햇살 즐겁게 먹으면, 너희 몸은 튼튼하게 클 테고, 너희 마음도 몸과 함께 씩씩하게 자라겠지.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놀이가 아주 반가우며 고마운 삶이란다. 4346.7.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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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쌀씻기

 


  한여름이 되고 보니, 누런쌀 씻어 물에 담그면, 아침에 담근 쌀이 낮에도 살짝 쉰내 돈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 물갈이를 자주 하지만, 엊저녁에 밥을 지어서 차린 뒤에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어차피 아이들 모두 재운 깊은 밤에 글을 쓰니까, 글을 쓰다가 쌀을 씻어서 불리자 하고.


  한밤이랄까 새벽이랄까, 세 시 반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이렇게 불린 쌀은 아침이나 낮에 새밥을 지어서 먹겠지. 엊저녁 밥이 조금 남았으니, 이렇게 남은 밥은 옥수수랑 다른 여러 가지 섞어 볶음밥을 하고, 저녁밥을 새로 지을까 생각해 본다.


  쌀을 씻을 때마다 우리 식구 모두 밥 맛나게 먹을 수 있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모두 맛있는 밥 즐겁게 먹으며 사랑스러운 기운 얻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맑은 물 서린 밥을 기쁘게 먹으며 고운 노래 부르는 하루 누리기를, 하고 빈다.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던 열 살 때부터 내 꿈을 ‘가정주부’라고 적으면서 살았는데, 참말 열 살 적 꿈처럼 서른아홉 살 오늘, 집살림꾼 되어 밥을 짓고 아이들 돌보는 나날을 누린다. 얘들아, 우리 함께 고소한 밥 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꽃노래 부르자.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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