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주어 고맙구나

 


  졸린 눈빛이 무엇인지는 큰아이가 태어난 2008년부터 깨달았다. 이무렵까지 어떤 얼굴을 놓고 ‘졸린 눈빛’이라 하는지 알지 못했고 헤아리지 않았다. 2008년에 큰아이가 우리한테 온 뒤 날마다 하루 내내 마주하며 지내고 보니, 이제는 아이 얼굴을 바라보지 않아도, 아이 말씨와 뒷모습과 느낌만으로도 얼마나 즐겁거나 졸립거나 기쁘거나 힘들거나 한가를 또렷하게 알아챈다. 아이가 언제 배고파 하는가를 굳이 말로 들려주지 않아도 안다. 아이가 얼마나 졸리는가를 애써 말로 밝히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한창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은 “얘야, 많이 졸립지? 자고 일어나서 또 놀자.” 하는 말을 한귀로 흘리려 한다. 재미있으니까. 신나니까. 즐거우니까. 잠을 쫓으면서 놀이로 빠져든다. 그래서 더 놀도록 물끄러미 지켜본다. 다시금 아이한테 묻지만,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놀도록 새삼스레 바라본다. 그러고 나서, 이제 더 아이 몸이 못 견디겠다 싶을 무렵 “쉬 하자, 쉬.” 하고 부른다. 그러면 문득 ‘아하, 내가 쉬가 마려웠구나.’ 하고 아이가 깨닫는다. 잠들기 앞서 쉬를 누이지 않으면, 자다가 쉬가 마려워 깨야 하니 아주 찡얼거린다. 한창 자다가 쉬를 누러 깨야 하면 아이로서 얼마나 부아가 날까. 놀이를 뚝 그치고 쉬를 누고 보면, 아이는 ‘어, 내가 몸이 좀 힘들구나. 졸립구나.’ 하고 알아챈다. 이때에 살살 달래고 다독이면서 품에 안는다. 무릎에 앉힌다. 섣불리 눕히지 않고 따사롭게 품에 안고 토닥토닥 노래를 부른다. 이러면 어느새 아이는 눈이 스르르 감기고 고개를 폭 떨군다. 꿈나라로 깊디깊이 날아간다. 살그마니 아이를 무릎에 누인다. 이렇게 한동안 있은 뒤에 비로소 잠자리에 눕힌다. 이불을 덮는다. 그러면 어느새 아이는 온몸을 쪽 펴고는 살그마니 돌아눕는다. 새근새근 나즈막히 숨소리를 내며 달게 잔다. 참으로 고맙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아이란, 더할 나위 없이 고맙지. 4346.12.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

 

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는 모습은 남이 사진으로 찍어 주지 않아,

아이가 놀다가 제풀에 지쳐 곯아떨어진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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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25 01:38   좋아요 0 | URL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아이~ 건강한 아이죠!
잠잘 때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죠.^^

숲노래 2013-12-25 01:48   좋아요 0 | URL
언제나 이 세 가지로 즐겁게 자랄 수 있기를 빌고,
어버이로서 이 세 가지를 즐겁게 돌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사람들이 묻는다

 


  면소재지를 가든 읍내를 가든, 또 서울까지 볼일을 보러 가든, 부산이나 인천으로 마실을 가든, 우리 식구 아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묻는다. “으째, 오늘은 안 보여으잉?” 네? 누가요? “아이들 어디 갔소?” 아하, 언제나 아이들을 쭐래쭐래 달고 다니더니 왜 아이들 떼놓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한테 아이들 어디 갔느냐고 묻기 앞서, 아이들을 시골집에 두고 혼자 돌아다니면 어딘가 허전하다. 홀가분하게 볼일이나 바깥일을 보기도 할 테지만,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 삶과 저 사람을 마주하도록 이끌지 못해 아쉽다.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리라 생각한다. 함께 다니면 함께 다니는 대로 삶을 배우리라 느낀다. 함께 못 다니고 시골집에서 저희끼리 놀도록 하면 또 이대로 아이들은 새로운 사랑과 꿈을 키우리라 느낀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이녁 아이들과 함께 할 만한 일을 하시고, 이녁 아이들과 함께 지낼 만한 일터에서 일하시고, 이녁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울 만한 일거리를 사랑해 주셔요, 하고.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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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23 13:5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참 많이 자란 것 같아요~
정말 이쁘고 귀엽습니다~!!!*^^*

숲노래 2013-12-23 15:10   좋아요 0 | URL
나날이 새롭게 자라지요.
참 아름답습니다.
 

[아버지 그림놀이] 나 그려 주셔요 (2013.12.22.)

 


  큰아이 사름벼리가 문득 걸상에 앉더니 “나 그려 주셔요.” 하고 말한다. 종이와 연필까지 갖다 준다. 왜 제 모습을 그려 달라는 생각을 했을까. 걸상에 앉은 여섯 살 아이가 살짝살짝 웃음을 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들으면서 큰아이 앉음새를 그림으로 옮긴다. 다 그리고 보니 살짝 띈 웃음빛을 제대로 못 담았다. 이것 참 미안하네. 큰아이가 그림을 보더니 “아이, 아니잖아!” 하면서 방 한쪽 구석에 돌아앉아 그림을 지우개로 지운다. 입을 지우고 입꼬리 주욱 늘려 웃음입이 되도록 한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안 그린 제 바지 무릎 꽃무늬를 그리고는, 걸상 뒤쪽을 마저 그린다. 제 이름 넉자 ‘사름벼리’도 적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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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3 10:43   좋아요 0 | URL
"아이, 아니잖아!" ㅋㅋ
갑자기 어린왕자의 양그림이 떠오르네요~ㅎㅎ
참으로 어여쁜 어린이~사름벼리!~*^^*

숲노래 2013-12-23 11:05   좋아요 0 | URL
그림 함부로 못 그린다니까요 ^^;;;
아이가 보는 눈이 워낙 높아서요 ^^;;;;

후애(厚愛) 2013-12-23 13:59   좋아요 0 | URL
그림은 저보다 사름벼리가 잘 그리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3-12-23 15:10   좋아요 0 | URL
후애 님은 후애 님 삶빛을 즐겁게 그리시면 되어요~~ ^^
 

뛰고 달리고 놀고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야말로 쉬잖고 뛰고 달리고 논다. 이 아이들은 마당에서도 뛰지만, 마루에서도 방에서도 뛴다. 처음 두 다리로 서고, 걸음마를 하며, 달릴 줄 알던 날부터 거침없이 뛰고 달리고 논다.


  뛸 수 있는 아이는 얼마나 개운한가. 달릴 수 있는 아이는 얼마나 싱그러운가. 놀 수 있는 아이는 얼마나 홀가분한가. 아이들은 뛰고 달리고 놀면서 자란다. 뛰면서 튼튼하게 자라고, 달리면서 씩씩하게 자라며, 놀면서 아름답게 자란다. 뛰지 못하는 아이들은 튼튼하게 자라지 못한다고 느낀다. 달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지 못하는구나 싶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름다운 빛하고 멀어진다고 본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기쁘게 웃고 맑게 노래하며 사랑스레 일할 적에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빛을 누린다고 느낀다. 기쁜 웃음이란 신나게 뛸 적에 샘솟겠지. 맑은 노래란 기운차게 달릴 적에 피어나겠지. 사랑스러운 일이란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면서 노는 넋에서 태어나겠지.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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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3 10:16   좋아요 0 | URL
예~정말 아이들은 저렇듯 즐겁게 뛰고 달리고 즐겁게 놀아야겠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아주 애기때부터 어른들의 계획(?)아래 양육되는 듯 싶어요.
어른들도 몸과 마음을 스스로 즐겁게 움직이는 것 보다, 머리나 생각으로만 움직이니
사는 일이 고달퍼지는 것 같아요.
저도 새해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까운 산에도 가고, 몸도 마음도 즐겁게 하여
싱그럽고 기쁜 삶이 되어야겠어요~

숲노래 2013-12-23 10:23   좋아요 0 | URL
살림도 하시고 이것저것 하시는 일이 많으실 텐데,
그래도 산으로 숲마실 누리실 수 있으면
한결 따사롭고 넉넉한 푸른 빛이
appletreeje 님 마음속으로 곱게 스며들어
언제나 맑은 웃음과 노래가 흐르리라 생각해요.

아이도 어른도 함께 손잡고 놀아야
아름다운 나라 되리라 느껴요~
 

[시골살이 일기 37] 씨앗을 뿌리자
― 코스모스 꽃밭 되면

 


  마을 어르신들은 고샅이든 집이든 마당이든 풀빛이 없도록 애쓰십니다. 마을 빨래터에도 풀 한 포기 없도록 모조리 뽑으십니다. 참말 풀을 아주 삭삭 훑어서 없애십니다. 설과 한가위 찾아오면 마을마다 방송을 하면서 ‘도시에서 딸아들 찾아오니 큰청소 하자’고 부산을 떨어야 하지요. 왜 도시사람, 아니 도시로 떠난 딸아들 눈치를 보며 마을을 치워야 하는지 알쏭달쏭하지만, 새마을운동 때문에 이런 버릇이 몸에 배셨지 싶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풀을 미워하면서 모조리 없애려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요즈음 마을 어르신한테는 모시풀도 유채풀도 그저 잡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들빼기도 씀바귀도 번거로운 잡풀일 뿐입니다. 제비꽃이나 괭이밥을 알뜰히 건사할 일이 없습니다. 풀로 몸을 다스리지 않고, 다친 곳에 풀물이나 풀가루를 바르지 않습니다. 풀잎사귀를 알맞게 뜯어 나물밥이나 나물죽이나 나물무침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디에서든 풀만 보았다 하면 농약을 뿌리고 기계로 모가지를 자릅니다. 남김없이 뿌리를 뽑으려 할 뿐입니다.


  가을이 지나며 차츰 시드는 코스모스인 터라, 꽃이 지는 코스모스는 마을마다 모가지를 뎅겅뎅겅 잘라서 없애기 바쁩니다. 꽃이 필 무렵에는 그대로 두지만, 꽃이 질 적에는 씨앗을 맺기까지 놓아 두지 않아요. 괜히 성가시다고 여기시는구나 싶고, 지는 꽃을 예쁘게 마주하지 못하시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가으내 흐드러지던 코스모스 풀포기를 우리 마을에서나 이웃 마을에서 도무지 찾아보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마을하고 퍽 떨어진 어느 큰길사에서 씨앗을 매단 코스모스 풀포기를 보았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씨앗을 한 줌 건사했어요.


  그리고, 이 씨앗을 큰아이와 함께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솔솔 뿌립니다. 이 작은 씨앗이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마을 고샅 가장자리에서 잘 뿌리내려 이듬해에 예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요. 아무렴, 잘 피어나겠지요. 아쉽게 어느 씨앗도 피어나지 못한다면, 다시 코스모스 씨앗을 건사해서 뿌려야지요. 유채 씨앗과 고들빼기 씨앗도, 민들레 씨앗과 박주가리 씨앗도, 살금살금 건사해서 돌울타리 따라 흙바닥 살짝 드러난 자리에 뿌립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온갖 꽃이 돌울타리 따라 조물조물 올라올 적에도 그저 목아지 뎅겅뎅겅 자르실는지, 슬쩍 농약을 뿌려 모두 태워 죽이실는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시골은 시골답게 풀내음과 풀빛이 그득하면서 꽃내음과 꽃빛이 곱게 물들 적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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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모임에서 친구에게 받은 선물꾸러미 속에, 비닐팩에 들어 있는
'나팔꽃씨'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출근길마다 아파트 담장아래
피어 있던 나팔꽃이 너무 예뻐서 매일매일 "안녕!" 인사를 나누고 다녔는데, 어느날 바스라질 듯
씨방이 터져 떨어져 주워 왔대요.^^ 그리고 코스모스씨앗 보았니? 물으니 그럼 봤지, 내가 코스모스꽃을 너무 좋아해 한때는 코스모스밭을 갖는게 소원이었단다~ㅎㅎ
이 이야기를 듣고, 새삼 나팔꽃씨앗을 들여다 보는데...왠지 문득, 이 나팔꽃씨앗을 벼리와 보라에게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즐거웠어요~ㅎㅎㅎ

숲노래 2013-12-23 11:04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흥에서 나팔꽃씨를 이래저래 주워 모으기는 했는데, 뿌린 적 있는지 알쏭달쏭하네요 @.@

벗님이 나팔꽃한테 인사를 하고 다니셨다니,
참말 예쁘며 멋진 하루를 누리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