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미 고르기

 


  지난 구월에 집안에 들인 누런쌀에서 바구미가 나온다. 다른 쌀에서는 바구미가 나오지 않는데, 이 누런쌀에서만 바구미가 나온다. 다른 쌀을 섞어서 불리기 앞서 바구미부터 고른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찍어서 개수대에 톡톡 턴다. 이 바구미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이 누런쌀 틈바구니에서 깨어났을까.


  어릴 적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바구미 고르기를 으레 했다. 어릴 적에 툭하면 바구미를 고르면서 ‘바구미 고르지 않는 쌀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바구미 깃든 쌀푸대 주둥이를 열어서 바람을 쏘여 놓곤 했는데, 바구미가 볼볼 기어나와서 마룻바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바구미를 고르며 예나 이제나 생각한다. 바구미 먹는 쌀은 농약을 덜 친 쌀일까? 바구미가 깃들 만큼 농약은 적게 남거나 없다고 여겨도 될까?


  바구미 있대서 농약을 적게 치거나 안 쳤을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어릴 적이나 요즈음이나 바구미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잡은 다음 개수대에 톡톡 털며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 손끝에 붙잡히는 아주 작은 바구미인데, 이 작은 바구미와 개미를 나란히 놓으면 어느 벌레가 더 튼튼하거나 셀까? 손끝으로 누를 적마다 퍽 단단하며 야무진 벌레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고작 쌀속을 파먹으면서 이렇게 단단하며 야무진 껍데기와 다리를 내놓으며 살아간다니, 참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바구미들아, 너희는 쌀푸대 말고 풀숲으로 가서 너희 삶을 너희 깜냥껏 누리기를 빈다.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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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노래 부르기

 

 

  이오덕 님이 쓴 글에 백창우 님이 가락을 붙인 〈염소〉라는 어린이노래가 있다. 아이들한테는 살짝 길다 할 만한 노래이지만, 노랫말과 가락이 아름답다고 느껴 곧잘 이 노래를 자장노래나 놀이노래 삼아 불렀다. 보름쯤 앞서부터 이 노래를 종이에 반듯하게 옮겨적어 큰아이한테 보여주었다. 노래가 어느 만큼 익숙하니까 이 노랫말을 공책에 옮겨적으며 한글을 익히라고 했다.


  아이는 글씨놀이보다는 노래를 제대로 익히는 쪽에 더 마음을 쓴다. 그래서, 공책에 글씨는 더듬더듬 옮겨적고, 노래만 한참 부른다. 이렇게 보름쯤 흐르니, 큰아이는 노래를 한 군데도 안 틀리고 아주 잘 부른다. 어젯밤 잠자리에 큰아이가 〈염소〉를 아주 또릿또릿 맑으며 고운 목소리로 불러 주었다.


  잠자리에 들면, 작은아이가 먼저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누나랑 아버지더러 잘 자라며 부르는가 보다. 작은아이 조잘거림이 살짝 수그러들 무렵 내가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작은아이는 또 조잘조잘 따라한다. 내가 노래를 마치면, 큰아이가 살며시 큼큼 한 다음 노래를 부른다. 큰아이도 동생과 아버지가 잘 자기를 바라며 부르는 셈일 테지.


  서로서로 잘 자도록 노래를 불러 준다. 서로서로 마음 곱게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고운 마음이 된다. 자장노래가 아름다운 까닭이란,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 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아름다우며 뜻깊은 까닭이란, 바로 우리들 목소리에는 우리 스스로 살찌우면서 둘레 사람들을 따스한 빛으로 감싸는 사랑이 깃들기 때문이로구나 싶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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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두고 나온 아이들

 


  내가 왜 시외버스에서 이렇게 골골대면서 몸이 아팠는가를 돌아본다. 스스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일 텐데, 왜 나는 시외버스에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을까.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삶인데, 아이들을 시골집에 두고 나온 탓 아닌가. 아이들하고 함께 다닐 만한 곳에 다니며, 아이들이 곁에서 신나게 놀 수 있을 만한 데에서 일을 하려는 내 뜻과 길인데, 이런 흐름하고 엇나가면서 몸을 축냈기 때문 아닌가.


  아이들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아플 일이 없다. 아이들과 맛나게 밥을 먹으면 아플 일이 없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놀다가 어른인 내 일을 하면 힘들거나 고될 일이 없다.


  아이들이 위층 아래층 걱정하지 않고 개구지게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일 때에, 어른도 씩씩하고 아름답게 일할 수 있다. 아이들이 뭐 잘못 만질까 걱정할 일이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터전일 때에, 어른도 착하고 참답게 일할 수 있다.


  어른도 속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운 시외버스라면,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어른도 도시에서 자동차 소리로 귀가 아프고 매캐한 바람 때문에 재채기가 나오면, 아이들은 얼마나 고될까. 아이들이 즐겁게 다니면서 방긋방긋 웃을 수 있는 마을이 되어야지 싶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맑게 노래하고 뛰놀 만한 도시요 시고이 되어야지 싶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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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과 일곱 살

 


  일곱 살이 된 큰아이는 새해 첫날 아침에 “나 이제 일곱 살 되었어?” 하고 묻는다. 지난해에는 “나 여섯 살 아니야. 다섯 살이야!” 했고, 그러께에도 “나 다섯 살 아니야. 네 살이야, 네 살!” 하던 아이인데, 일곱 살이 되니 나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셈일까. 네 살이 되는 작은아이는 나이를 놓고 딱히 생각이 없다. 작은아이더러 세 살이라 하면 그러려니 네 살이라 해도 그러려니, 백 살이라 해도 그러려니 한다. 작은아이는 아직 스스로 몇 살이라고 말할 줄 모른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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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종이 살려쓰기 그림 (2013.12.28.)

 


  큰아이가 그림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가위로 오린다. 종이인형을 갖고 놀겠단다. 큰아이한테 “벼리야, 그림종이 그림은 오리지 말아야지. 따로 오리는 종이가 있잖아. 빈 우유곽을 오려서 쓰면 되는데, 왜 그림종이를 오리니.” 하고 이야기한다. 큰아이가 종이인형 자리만 빼고 버리려는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종이가 아깝다고 느낀다. 네 아버지 어릴 적에는 이만 한 종이조각조차 몹시 아끼면서 썼는데. 그래, 끄트머리를 살려서 다른 그림을 그려 볼까? 아이가 종이를 오려 종이인형 만들듯이, 나도 뭔가 오려서 쓸 그림을 만들어 보면 되겠네. 큰아이가 한손에는 연필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호미를 쥔 모습을 그린다. 종이가 작으니 웃몸만 그린다. 그러고는 종이배에 탄 모습으로 한다. 종이배는 하늘을 날고 무지개를 탄다. 별과 달이 반짝반짝 빛나며 우리 아이를 반긴다. 아버지가 쪽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던 큰아이가 ‘제 모습’을 그리니 거들겠다면서 예쁜 빛깔을 입혀 준다. 다 마무리를 짓고는 가위로 잘라, 벽에 붙인 아이들 그림과 사진 사이에 살짝 끼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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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1-01 21:39   좋아요 1 | URL
아니.. 정말로 저 그림을 따님이 그린거에요?? 와~ 그림 잘 그리네요..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자리가 모자라니까 저렇게 반짝거리는 생각을 하는군요~^^

숲노래 2014-01-01 21:57   좋아요 1 | URL
쪽그림은 제가 그렸어요 ^^
그 그림에서 종이배 자리만 큰아이가 빛깔을 입혔습니다 ^^

아이하고 곧잘 그림놀이를 하는데
그런 그림놀이 가운데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