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달랜다



  내가 나한테 기운을 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적에 힘이 든다. 내가 먼저 뻗어서 자리에 누우니, 두 아이도 슬슬 눕고, 내가 스스로 자장노래를 부를 만한 힘을 길어올리지 못하니,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민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자면서 이불을 뻥뻥 걷어찬다. 나는 어버이인 까닭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어 준다. 아이들은 아이인 터라 어버이가 여미는 이불깃을 잡고 길게 하품을 하면서 다시금 포근한 얼굴이 되어 냠냠 입맛을 다시고는 느긋하게 두 다리를 뻗는다.


  내가 나를 달랜다. 지난 하루를 돌아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어떻게 마주했는지 찬찬히 짚은 뒤, 새롭게 찾아올 하루는 어떻게 열면서 보낼 때에 즐거울는지 생각한다. 새 하루는 그야말로 새롭게 살자고 다짐한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달래고 타이르며 다독여야 한다고 느낀다. 내 얼굴에 웃음이 돌고 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려면, 내 몸에서 맑은 기운이 흘러야 한다. 아이들이나 곁님이 내 몸에 기운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터이나, 누구보다 내가 스스로 내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팔다리와 등허리 모두 결려 꼼짝을 못하겠구나 하고 느끼며 잠자리에 드러누워 그야말로 죽은듯이 몇 시간 잤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니 온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다시 깨어나자는 소리이다. 나도 기지개를 켜자는 소리이다. 오늘은 오늘 노래를 새롭게 부르자는 소리이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하자.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이 기운이 나를 따사롭게 보듬어 내 둘레로 고이 흘러넘칠 수 있기를 빈다.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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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씻기면서 나눈 말



  아침을 먹이고 나서 씻긴다. 아침을 차리면서 두 아이한테 먼저 알린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씻자고. 밥을 다 먹으니 두 아이가 쪼르르 달라붙으면서 “씻어? 씻어?” 하고 부른다. “응, 기다려. 다른 일 좀 끝내고 씻자.”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 끝이지만, 아버지는 밥을 먹고 밥상을 치우고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운다. 두 아이를 씻기려면 이제 큰아이는 스스로 ‘갈아입고 싶은 옷을 골라서 가져오도록 할’ 수 있지만, 작은아이는 아직 아버지가 ‘갈아입힐 옷을 골라서 챙겨야’ 한다. 이것저것 다 마친 뒤 보일러를 돌린다. 작은아이가 뽀르르 달려온다. “보라는 내가 벗을래!” 용을 쓴다. 그렇지만 혼자 못 벗는다. “안 벗겨져!” “천천히 하나씩 벗으면 되지. 팔부터 빼고.”


  먼저 작은아이를 씻긴다. 작은아이가 다 씻을 무렵 큰아이가 씻는방으로 들어온다. 작은아이는 다 씻었으니 물기를 훔치고 옷을 입혀서 내보낸다. 이제 큰아이와 둘이 남는다. “등 다 밀었는데 왜 또 밀어?” “응, 더 시원하라고.” 한참 씻기면서 큰아이 다리를 문지르고 때를 벗기는데, 복숭아뼈가 제법 굵다. 이제 내 손아귀로 꽉 잡힌다. “벼리는 복숭아뼈도 많이 굵었네. 이것 봐. 앞으로 더 크겠는걸.” “아버지, 벼리는 이제 아기에서 벗어났어?” “응, 이제 벼리는 더 크려고 아기에서 벗어났지.” “벼리는 아기에서 왜 벗어났어?” “벼리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니, 아기에서 벗어났지.” “아, 그렇구나. 그럼 보라는 왜 아직도 아기야?” “보라는 아직 네 살밖에 안 됐잖아. 보라는 앞으로도 더 자라야 아기에서 벗어나지.” 일곱 살을 마치고 여덟 살로 접어들 큰아이는 ‘아기에서 벗어난 나이’를 차츰 느끼는 듯하다. 서운해 할까? 기쁘게 여길까? 새롭게 맞이할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지. 그러나 큰아이는 스스로 안다. 날마다 몸이 자라서 이제 ‘큰아이가 좋아하던 옷’을 더 못 입고 동생한테 물려주어야 하는 줄 알아차린다. 자라고 다시 자라는 줄 언제나 느낀다.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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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놀이인 줄 안다면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이 집 바깥으로만 나돌면서 돈벌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까닭은 ‘아이키우기가 언제나 놀이’와 같은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더군다나, 놀이는 돈으로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놀이를 돈으로 사려고 하면 지구별을 통째로 살 만한 돈을 들여도 모자란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어느 누구도 ‘노는 아이 웃는 얼굴’을 돈으로 살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노는 아이 노래하는 목소리’를 돈으로 살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노는 아이 맑은 몸짓’을 돈으로 살 수 없다.


  돈벌이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돈을 벌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러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돈을 언제까지 벌 생각인가? 아이와 놀지 않으면서 돈만 번다면, 이녁(아버지)은 아이한테 무엇인가? 아이와 놀 수 없다면, 나중에 돈이 잔뜩 있더라도 ‘아이는 다 커서 이제 이녁(아버지)하고 놀 마음이 없’다. 곁에 아이가 없고 돈만 있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깨달을 텐가.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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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낯을 씻기



  아이가 손수 낮오줌을 가리고 밤오줌을 가리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가. 아이가 손수 수저를 밥상에 놓고 밥그릇을 치우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가. 아이가 손수 걸레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가. 아이가 손수 낯과 손을 씻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가. 하나씩 떼어서 보면 기나긴 해가 걸린다 할 만하지만, 하나씩 떼어서 기나긴 해가 걸린다 하더라도 아이는 한 가지씩 이루기까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준다. 하루아침에 이루지 않고 차근차근 이루는 걸음걸이를 멋스럽고 상냥하게 보여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버이 손을 빌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가 손수 하는 삶이란, 도톰한 책 한 권이로구나 싶다. 하루하루 지켜보았으면 도톰한 책 한 권이 가슴에 깃들고, 아이가 다 커서 손수 이것저것 하는 모습만 본다면 가슴에 아무것도 깃들지 않겠구나 싶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는 어버이도 언제나 무럭무럭 자란다. 4347.12.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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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나란히 앉은 군내버스



  2014년 12월 11일 낮, 마을 어귀를 지나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는데, 두 아이가 나란히 앉는다. 어라, 너희끼리 앉게? 괜찮겠니? 큰아이 일곱 살에 작은아이 네 살인 올겨울, 곧 한 살씩 더 먹을 이즈음, 두 아이가 처음으로 따로 앉는다. 큰아이가 바깥쪽에 앉고 작은아이가 안쪽에 앉는다. 큰아이는 내내 손잡이를 잡으면서 작은아이가 밀리지 않도록 하는구나 싶다. 뒤쪽에 앉아서 20분 동안 지켜본다. 이쯤이라면 앞으로도 두 아이가 따로 앉을 만하겠다고 느낀다. 살짝 서운하지만, 두 아이는 두 아이대로 즐겁게 노닥거리면서 누릴 이야기가 있으리라 본다. 새로운 놀이를 빚고, 서로 아끼는 마음을 한껏 키우면서 더욱 야무지고 똘똘하게 클 테지.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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