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휘청휘청



  여덟 살로 접어드는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발판을 구르면 힘을 제법 잘 받는다. 이제는 큰아이 다리힘이 크게 보탬이 되어 세 식구 자전거마실이 퍽 수월하다. 큰아이가 뒤를 돌아보면서 동생하고 수다를 떨며 놀 적에는 자전거가 휘청휘청 흔들린다. 앞으로 큰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혼자 따로 두발자전거를 탈 테지. 언제쯤일까. 앞으로 언제쯤 큰아이는 자전거 홀로서기를 할까. 큰아이가 홀로서기를 한다면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벗어나 샛자전거 자리를 물려받을 테지. 4348.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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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1-06 14:01   좋아요 0 | URL
영화한장면 같아요

숲노래 2015-01-06 23:59   좋아요 0 | URL
삶은 날마다 영화와 같구나 싶어요~

수이 2015-01-06 15:5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닮았을 거 같아요_ ^^

숲노래 2015-01-06 23:59   좋아요 0 | URL
아이는 아이답게 멋있게 크리라 생각해요~
 

우리집배움자리 3. 학교 잘 다녀올게요



  큰아이는 학교에 보낼 뜻도 없고, 큰아이 스스로도 학교에 갈 뜻이 없다. 서류로 이 일을 꾸미자니 여러모로 번거롭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의무교육만 외치기 때문에 ‘학교 안 다닐 자유나 권리’가 아예 없다. 집에서 지내면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누릴 자유나 권리가 없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이제껏 퍽 많은 이들이 이녁 아이를 입시지옥 의무교육에 집어넣지 않았다. 오십 분 앉히고 십 분 움직이도록 하는 꽉 막힌 틀이 아닌, 몇 가지 교과서 지식만 머리에 집어넣는 틀이 아닌, 시멘트 교실에 가두어 하루 내내 보내도록 하는 틀이 아닌, 홀가분하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을 배우도록 하는 길을 아이한테 보여준 어버이가 퍽 많다. 오늘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학교에 갈 짐을 챙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맞추어 ‘우리 집 아이’는 ‘학교에 안 보냅니다’ 하는 뜻으로 서류를 쓰러 가는 길이다.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버스가 안 온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서 자전거를 탄다. 바람이 모질게 분다. 한참 자전거를 달리는데,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한 마디 한다. 바람소리에 묻혀 잘 안 들리지만, “아버지, 바람이, 벼리, 학교 잘 다녀오라고 해요.” 하고 말한다. 그래, 잘 다녀와야지. 너한테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 문턱에 발을 디디는 날이란다. 아니, 서류 때문에 한 번 더 학교 문턱을 밟아야 할는지 모르지만.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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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연다



  대문을 열려면 키가 커야 한다. 키가 작으면 문고리에 손이 안 닿는다. 문고리에 손이 안 닿으면 방문도 대문도 혼자 못 연다. 키가 자라고 까치발을 할 수 있으면 문고리에 손이 닿는다. 문고리에 손이 닿으니 혼자 씩씩하게 문을 연다. 문을 열고 대문을 나선다. 대문을 나서서 고샅을 달린다. 마을 어귀 빨래터까지 달린다. 빨래터에 손을 담그다가 샘터에 고개를 박고 물을 마신다. 빨래터와 샘터 둘레에서 돋는 꽃과 풀을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이윽고 다시 달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볕은 곱게 드리운다. 언제나 맑으면서 밝은 기운이 퍼진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두 어버이도 날마다 새롭게 자란다. 4348.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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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수 있는 날



  네 살에서 다섯 살로 넘어서는 작은아이는 혼자 잠옷으로 갈아입을랑 말랑, 또 혼자 잠을 벗을랑 말랑 하면서 하루하루 보낸다. 가만히 지켜보면 혼자 얼마든지 할 만하구나 싶지만, 작은아이는 어버이나 누나 손길을 기다리곤 한다. 조금만 울면 으레 도와주겠거니 여긴다고 할까. 그렇지만 아이야, 네 옷은 네가 입으렴. 네 옷은 네가 벗으렴. 네가 옷을 벗고 갈아입을 적에 안 도와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네 팔힘을 기르고, 네 몸놀림을 가꾸렴. 네가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너 스스로 한 꺼풀을 벗고 활짝 웃을 수 있어. 잘 보렴. 네 어버이나 누나가 거드는 손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살며시 옷자락 소매만 잡을 뿐이야. 너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단다. 네 아버지가 네 옷자락 소매만 잡으니 아주 수월하게 너 스스로 팔을 빼고 목을 뺄 수 있지? 나머지는 네가 혼자 해내니 그리 기쁘지? 이 느낌과 기쁨을 네 가슴에 깊디깊이 새길 수 있기를 빈다. 네 웃음이 네 삶을 밝힐 수 있는 줄 알아채기를 빈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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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2. 학교에서 온 전화


  큰아이를 제도권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다.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생각했다. 나와 곁님은 한마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보금자리를 배움자리로 지어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기로 했다. 우리 집이 곧 학교이고, 우리가 가꾸는 도서관이 바로 학교이며, 우리가 깃든 마을이 언제나 학교이다. 그리고, 우리 땅을 앞으로 마련해서 우리 땅을 숲으로 일구어 이곳에 한결같이 학교가 되도록 누릴 생각이다. 이런 뜻에서 ‘초등학교 입학거부’를 하는 셈인데, 관청에서 행정서류를 꾸리는 자리에서나 이런 이름일 뿐, 우리 집 네 사람은 늘 ‘삶을 읽고 지으면서 쓰는 하루’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민등록을 하고 행정서류에 몸이 매이는 터라, 큰아이를 놓고 관청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두 군데를 놓고 얘기를 하는데, 면사무소 일꾼은 얼마나 답답한지 말이 안 나온다. 그렇다고 이런 공무원하고 싸울 마음이란 없다. 뭣하러 싸우는가. 즐겁게 아이와 삶을 배우려는 뜻인데. 그래서 초등학교에 새롭게 전화를 걸어서 차분하게 말을 여쭈었고, 우리 아이는 ‘정원 외 관리’가 되도록 처음부터 신청서류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고서 이틀이 지나니 면소재지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입학유예’만 말했으면 이쪽에서 아마 ‘왜 학교를 안 보내느냐?’ 하고 따졌을는지 모르나, 서울에 있는 민들레 출판사 분한테 먼저 여쭌 뒤 행정사항을 모두 꿰고 나서 초등학교로 차분하게 물으니, 초등학교에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준다. 우리 집에서는 일찍부터 이렇게 하려고 모든 것을 챙겼고, 이곳 고흥 시골에서 도서관을 열어서 꾸리면서 차근차근 배움길을 닦았다고 말했다. 아무튼 1월 6일에 예비소집일이 있다고 하니 그날 일찍 오시라 하기에, 그날 일찍 가서 서류를 쓰고 돌아와야지. 초등학교에 아이를 맡길 다른 어버이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용히.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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