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12.


고흥에서 순천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단다. 오늘 처음으로 안다. 고흥에서 일곱 해 사는 동안 이런 시외버스는 참말 처음이다. 과역도 벌교도 안 거치고 곧장 순천 버스역에 닿는다. 다만 기차역까지는 안 간다. 그래서 순천 버스역에서 순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기차역으로 간다. 도시락 삼을 먹을거리를 몇 가지 장만하고 순천 갈대술 한 병을 산다. 수원에 닿으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마을책방에 가서 번개모임을 꾸릴 생각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라는 책을 놓고서 ‘국어사전과 말과 삶과 넋과 살림과 마을이란?’ 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이 길을 가는 기찻간에서 무릎셈틀을 꺼낸다. 새마을호는 자리마다 돼지코가 있다. 무선인터넷이 된다. 새마을호는 탈 만하구나. 한참 글을 쓰고 나서 손이랑 머리를 쉬면서 그림책 《파란 분수》를 읽는다. 분수에서 고래를 만나고, 고래 곁에서 바다를 만나며, 바다에서 새로운 바람을 만난다는 아이가 살며시 웃음을 짓는 이야기가 흐른다. 이쁘다. 그림도 이야기도 빛깔도 다 이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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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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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1



함께 삶을 짓는 어버이

― 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7.7.31. 5000원



‘나중에 스구루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동명의 여자가 작년 겨울 교통사고로 혼사상태에 빠졌는데, 딱 1년 뒤인 3주쯤 전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젊었을 때 남편을 잃어서 딸도 손녀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분을 만나고 싶어서 속으로 몇 번이나 불렀지만 그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2∼33쪽)


‘아직도 반에서 나와 미유는 따돌림당하고 있고, 노리카는 그 애 나름대로 친구가 있다. 나한테 학교는 전혀 마음 편한 곳이 아니지만 코타가 있으니까 괜찮아. 온 세상이 적이 된다 해도 코타가 옆에 있어 준다면.’ (48쪽)


‘이 사람(친어머니)과 이런 식으로 웃으며 얘기하는 날이 오다니.’ “시라베가 좋아해서 우리 집은 튀김을 꽤 하거든요.” “그럼 그때 불러 줘. 먹으러 갈게.” “하야카와 집안에?” “그래. 널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 준 감사인사를 아직 안 했잖아.” “응. 알겠어요.” (153∼154쪽)



  사귀는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귀기 때문에 이이를 꼭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이하고 꼭 사귀지는 않습니다. 사귀는 마음에서 살을 섞을 수 있을 테지만, 이때에 사랑이 흐른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이와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살을 섞지 않더라도 서로 아끼면서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를 낳아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어른인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에 머물 수 없습니다. 어버이라는 자리에서 아이를 돌보려는 마음이 흐른다면, 어른인 두 사람은 이제 사랑하는 숨결로 거듭나야 해요. 사랑일 적에 비로소 따스하면서 넉넉한 손길로 살림을 지어요. 사랑이기에 비로소 즐거이 노래하는 몸짓으로 삶을 가꿉니다.


  서로 사귀는 사이란, 서로 재미나게 어울리는 하루가 좋다고 여기는 마음이지 싶어요. 서로 사귈 적에는 한결 재미나게 놀거나 나들이를 다니는 하루를 누리려고 하는 마음이 될 테고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재미난 어울림을 넘어섭니다.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기쁨이 흐르는 보금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매만지려고 합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집안일만 해낸다고 해서 누구나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언제나 새롭게 꿈꾸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됩니다. 아이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을 만한 살림을 사랑으로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돼요. 《은빛 숟가락》 열둘째 권을 읽으면서 어버이라는 자리, 어버이라는 마음, 어버이라는 사랑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2017.9.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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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여행하다 - 한복여행가, 히말라야에서 스페인까지
권미루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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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2



우중충한 밀라노에서 해사한 한복 입는 즐거움

― 한복, 여행하다

 권미루 글

 푸른향기 펴냄, 2017.8.8. 15000원



“이탈리아에서 한복을 입으면 어떨까요?” “좋지! 우리 딸 한복 잘 어울리잖아.” 어머니의 대답은 매우 경쾌했다. (30쪽)



  지난날에는 이 지구별에서 겨레마다 스스로 땅을 일구고 숲이나 들이나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몸소 얻으면서 집을 지으며 살림을 가꾸었어요. 지난날에는 지구별 모든 사람이 집이나 밥이나 옷을 언제나 손수 지었지요. 이런 살림살이에서는 어느 겨레나 저마다 짓는 옷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이 지구별에서는 어느 나라 어느 겨레를 보아도 옷차림이 비슷합니다. 요즈음은 도시문명 사회가 되면서 집이나 옷을 손수 짓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돈을 벌어서 가게에서 옷을 사다가 입는 흐름입니다. 이러면서 이제는 어느 나라 어느 겨레라 하더라도 갖춰서 입는 옷이라든지 일하며 입는 옷이 엇비슷해요.



아무렇게나 입어도 괜찮은 면 한복과 맨발은 아주 잘 어울렸다. 무명저고리에 구김이 갔지만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갑자기 한복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86쪽)


한복여행을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그 나라의 전통옷이었다. 이상하게 전통옷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과거의 역사, 가치관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66쪽)



  《한복, 여행하다》(푸른향기,2017)를 쓴 권미루 님은 세계여행을 나서면서 일부러 한복을 챙겨 입었다고 합니다. 세계여행이 아닌 한국여행을 할 적에도, 또 골목마실을 할 적에도 부러 한복을 차려 입었다고 해요.


  권미루 님은 어릴 적부터 한복을 즐겁게 입었대요. 이녁 어머니도 권미루 님한테 한복을 즐겁게 입히셨을 테고요. 늘 입는 옷이다 보니 여느 때에 번거롭다는 생각을 안 한다고 합니다. 곱게 갖추거나 차려서 입고 나들이를 가는 길이라면 으레 한복차림이 되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고운 빛깔로 지은 한복을 입고 골목이나 마을이나 여러 나라를 누비면서 ‘날개처럼 입은 옷’이 참으로 날개옷이 되는구나 하고 느낀다고 해요.



밀라노의 하늘은 금세 비가 올 것처럼 우중충하고 어두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의 도시이지만 사람들 대부분 어두운 색감의 옷을 입고 있었다. 무채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서 보라회색의 풍성한 한복치마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와 닿았다. (35쪽)



  지난날 지구별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겨레마다 옷을 손수 지어서 입을 적에는 참으로 해사하거나 눈부신 빛깔이 어우러지는 옷을 입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조그맣게 모여서 문명하고 많이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겨레는 해사하거나 눈부신 빛깔이 어우러지는 옷을 손수 지어서 입습니다.


  그래요, 옷을 손수 지어서 입는 겨레는 참말로 해맑고 환한 옷을 입어요. 이와 달리 도시문명으로 치달을수록 해맑거나 환한 옷하고는 퍽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입히는 옷이든, 공공기관이나 공장이나 여느 회사에서 어른들이 입는 옷이든, 으레 무겁거나 딱딱하거나 어두운 빛깔이나 결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더러 ‘학교옷’을 아이들이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입어 보라고 한다면, 공공기관이나 공장이나 여느 회사에서도 어른들이 일하러 다닐 적에 입을 ‘일옷’을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입자고 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도시문명 사회에서도 새롭게 눈부신 옷물결이 일렁이지 않을까요?



자신의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스타일도 존중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과 다른 점에 대해 토론하고 공감했다. (258쪽)



  《한복, 여행하다》를 읽으면서 글쓴이 발자국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고운 옷을 입으며 고운 마음을 여러 나라 이웃하고 나누고 싶은 뜻을, 또 옷만 고운 날개옷이 되기보다는 마음이 함께 고운 날개넋이 되어 다 다른 겨레나 나라가 서로 어깨동무하기를 바라는 뜻을 돌아봅니다.


  겨레마다 고유한 옷(텃옷·전통옷)을 입을 적에는 제 겨레를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 겨레를 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겠구나 싶어요. 겨레나 나라마다 고유한 말(텃말·겨레말·나라말)을 아끼거나 북돋울 적에는 제 겨레나 나라를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 나라나 겨레가 서로 다른 대목을 높이 사면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북돋울 만할 테고요.


  겨레마다 옷차림이 달랐습니다. 겨레는 어느 한 터에 뿌리를 내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이름이니, 아무래도 어느 한 터에 뿌리를 내릴 적에는 이 터마다 날씨가 다르고 철이 다르며 숲이나 살림이 달라서 옷차림이 모두 달랐겠지요.


  다른 이웃을 헤아리면서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길에 서는 걸음걸이로 한복을 입는다는 마음이란 한복처럼 곱겠지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웃을 아끼고 싶은 마음으로 한복을 갖추어 입는 몸짓이란 한복마냥 따사롭겠지요. 옷을 곱게 갖추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곱게 가꾸는 살림살이가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9.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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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12.


고흥읍으로 나가는 길이다. 나는 오늘 순천 기차역으로 가서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에, 수원에 있는 마을책방 〈노르웨이의 숲〉에서 번개모임을 한다. 낮 두 시부터 너덧 시까지 모임을 한 뒤에 서울로 다시 기차를 달려 저녁 일곱 시 책모임으로 간다. 새벽바람으로 짐을 꾸려 길을 나서는데 고흥읍에 일곱 시 삼십칠 분에 군내버스를 내리고 보니, 곳곳에 할머니가 많이 보인다. 우리 마을 할머니 한 분도 새벽바람으로 병원에 간다며 길을 나서셨다. 우리 마을에서는 고흥읍 가는 첫 버스가 아침 일곱 시 오 분. 다른 마을에서는 첫 버스가 새벽 여섯 시나 여섯 시 반도 있는데, 이 첫 버스 다음으로 지나가는 버스가 으레 한두 시간 뒤이기 일쑤요, 때로는 군내버스가 하루에 두어 대만 다니는 마을도 있으니, 시골 할머니가 읍내 병원에 가려고 해도 무척 일찍 길을 나설 수밖에 없지 싶다. 병원이 문을 열 때까지 병원 문턱에 털썩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신다. 나는 마실길을 나오며 책을 여러 권 챙기는데, 먼저 《한국의 악기》 둘째 권을 읽는다. 지난번에 첫째 권을 읽었으니 이제 둘째 권이다. 한국 악기를 다룬다는 대목에서 무척 돋보이는 책인데, 첫째 권도 둘째 권도 말씨가 매우 어렵다. 수많은 악기가 예부터 궁중에서뿐 아니라 여느 시골사람 살림살이로도 늘 곁에 있었다는데, 왜 수수한 사람들 악기를 다루는 글은 이토록 딱딱하면서 한문 말씨여야 할까. 그래도 이 책은 악기를 어떻게 짓거나 깎는지를 찬찬히 짚어 주어서 여러모로 좋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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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온 편지 삶창시선 49
김수열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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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5


보말죽 냄새가 고소한 시집
― 물에서 온 편지
 김수열 글
 삶창 펴냄, 2017.7.25. 9000원


  시 한 줄은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 가볍게 마주하면 술술 읽습니다. 우리는 평론을 하려고 시를 읽지 않기 때문에, 이웃마을에 사는 시인이 가만히 읊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면서 이웃마을 살림살이를 헤아릴 만합니다.


출근길
허리 잘린 어린 국화
박카스병에 담아 책상 위에 놓으니
보라색 향기 교무실에 그윽하다 (예감)


  허리가 잘린 국화는 길바닥에 있습니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면 길바닥을 볼 까닭이 없고, 길바닥에서 갈 곳을 모른 채 쓰러진 국화 한 송이를 바라볼 수 없어요. 곁을 지켜볼 수 있기에 허리 잘린 어린 국화를 보고, 작은 들풀을 보며, 해마다 조금씩 줄기가 굵는 나무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작은 이웃살림을 글 한 줄로 담을 수 있습니다.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 수수한 말로 빚는 이야기입니다. 돋보이는 말이 아니라 잔잔한 말로 일구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선 자리를 생각하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자리를 알아보면서 말 한 마디를 건네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가 피어나는 글이 바로 시가 된다고 느낍니다.


예순 살짝 넘긴 며느리가 여든 훌쩍 넘긴 시어매한테 어무이, 나, 오도바이 멘허시험 볼라요 허락해주소 하니 그 시어매, 거 무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얼릉 가서 밭일이나 혀!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 그리 아소,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떠듬떠듬 연필에 침 발라 공부를 허는데, 멀찌감치 앉아 시래기 손질하며 며느리 꼬라지 쏘아보던 시어매 몸뻬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 읍내 나가 물어물어 안경집 찾아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다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 사 들고 며느리 앞에 툭 던지며 허는 말, 거 눈에 뵈도 못 따는 기 멘허라는디 뵈도 않으믄서 워찌 멘헐 딴댜? 아나 멘허! (고부)


  제주서 제주사람으로서 제주말을 짓는 김수열 님이 들려주는 《물에서 온 편지》(삶창,2017)를 읽습니다. 물에서 온 글월을 읽는 시인은 뭍에서 오는 글월도 읽습니다. 바람한테서 오는 글월도, 구름이나 빗물한테서 오는 글월도 읽어요.

  여든 넘은 시어매한테서 이야기꽃으로 날아오는 글월을 읽고, 해짓골 올빼미 형한테서 이야기밭처럼 다가오는 글월을 읽어요.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글월이 아닌, 곁에서 물끄러미 마주하는 글월입니다.


해짓골 올빼미 형은
멜철 들어 물이 싸면 탑바리 원담에
족바지 들고 멜 거리레 갔다

이레 화르르륵 저레 다울리라
저레 화르르륵 이레 다울리라

작대기 들고 바당물 탕탕 치당보민
팔딱팔딱 족바지에 멜이 가득 (원담)


  시집 《물에서 온 편지》에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웃님들 살림이란 노래하고 같지 싶습니다. 대중가수나 유행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 수수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살림지기나 살림꾼으로서 나긋나긋 부르는 노래이지 싶어요.

  허리 잘린 국화를 주워서 새롭게 밝히는 손길이 노래입니다. 여든 넘은 시어매가 예순 넘은 며느리한테 안경 한 벌 마련해 주려고 부산스레 읍내를 누비는 발길이 노래입니다. 멜을 훑으러 족바지 들고 다녀오는 해짓골 올빼미 형 몸놀림이 노래입니다. 여기에 이 모든 살림살이를 살포시 안아서 글꽃이라는 숨결을 담아내니, 시집 한 권이란 노래책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보말이 보말이주, 보말을 뭐셴 고라?
고메기? 난 몰라, 우리 동네선 그자 보말 (보말죽)


  노란 꽃송이인 민들레를 ‘노란꽃’이라고만 해도 되고 ‘노랑둥이’라든지 ‘노랭이’나 ‘누렁이’라 해도 됩니다. 어떤 말을 붙여서 마주하든 따사로운 눈길이면 곱지요. 하얀 꽃송이인 민들레를 ‘흰꽃’이라고만 해도 되며 ‘하양둥이’라든지 ‘하양이’나 ‘허영이’라 해도 됩니다. 어떤 말로 불러서 맞이하든 넉넉한 손길이만 곱습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마주하기에 글월을 받습니다. 냇물도 글월을 띄우고, 골짜기도 글월을 띄워요. 종가시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아 볼까요? 후박나무나 동백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아 볼까요? 자귀나무나 가문비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으면 어떨까요?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우리한테 글월을 띄웁니다. 다만 우리가 이들 작은 이웃이 띄우는 글월을 못 알아챌 뿐입니다.

  작은 마을이나 작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이웃도 늘 글월을 띄워요. 작은 연립주택이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웃도 노상 글월을 띄우고요. 우리는 어떤 글월을 알아채면서 기꺼이 받는 삶일까요? 우리는 누구를 이웃으로 삼아서 글월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살림일까요? 제주에서 날아온 시집을 덮으니 보말죽 냄새가 고소하게 퍼집니다. 2017.9.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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