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15.


진주마실을 하며 장만한 《박남준 시선집》을 군내버스에서 읽는다. 《박남준 시선집》은 얇다. 아주 가볍게 시를 느껴 보도록, 더없이 단출하면서 홀가분하게 시를 맛볼 수 있도록 엮었구나 싶다. 이 작은 시집 한 권은 참으로 작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그리는 마음을, 서로 아끼는 마음을, 서로 노래하는 마음을 들려준다. 작은 시집 한 권으로도 마음을 넉넉히 다스리는 길을 찾아볼 수 있다면 삶도 살림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테지. 젊은 사내한테 총칼이 아닌 시집하고 호미를 쥐어 줄 수 있다면,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입시교육이 아닌 살림노래를 부르는 즐거운 이야기꽃을 가르칠 수 있다면, 나라는 저절로 아름답게 나아가리라. 구월이 깊으면서 군내버스에서 에어컨을 안 켜니 아주 좋다. 시집을 살며시 덮고 창바람을 쐬면서 두 눈을 감아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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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의 비 오는 날 내 아이가 읽는 책 4
파멜라 R. 레비 그림, 나타샤 임 글, 김은정 옮김 / 제삼기획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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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놀고 함께 치우고 함께 살림해요

[내 사랑 1000권] 19. 나타샤 임·파멜라 T. 레비 《오토의 비 오는 날》


  사다리가 있으면 사다리를 타고 싶은 아이입니다. 외줄이 있으면 외줄을 밟고서 건너 보고 싶은 아이입니다. 곁에서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눈여겨보고는 따라서 해 보고 싶은 아이입니다.


  아이는 스스로 무엇을 잘 하거나 못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러 어른들이 다 하니까 저도 이럭저럭 할 만하리라 여깁니다. 즐겁게 맞아들여서 신나게 해 보려고 하지요.


  눈이 오는 날 눈밭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는 추위를 잊습니다. 비가 오는 날 웅덩이를 첨벙거리며 노는 아이는 온몸이 젖어도 하나도 안 느낍니다. 아이는 늘 놀이를 하는 마음 하나를 느껴요. 온몸을 움직이면서 온마음을 쏟는 놀이 한 가지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른은 으레 바빠요. 집에서는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고, 집 바깥에서는 집밖일을 하느라 바쁘답니다. 어른은 아이하고 놀 틈을 못 내기 일쑤예요. 아이가 혼자서 놀기를 바라고, 아이가 다른 또래나 동무하고 놀기를 바라지요. 또는 아이를 학교나 시설이나 학원에 맡기고서 어른 스스로 할 일에만 온힘을 쏟고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학교에 가라 하니까 갈 뿐이지 않을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스스로 가르쳐 주겠노라 말하면 기쁘게 배우지 않을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함께 놀자고 부르면 활짝 웃음꽃을 피우지 않을까요?


  그림책 《오토의 비 오는 날》에는 어머니하고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비가 오는 날 놀고 싶은데, 어머니는 비가 오건 말건 맡아서 할 일을 코앞에 두고서 끙끙거립니다. 아이는 아직 혼자 밖에서 놀 만한 나이가 아닙니다. 게다가 도시라면 아이를 섣불리 바깥에 내보낼 수 없을 테고요. 어버이는 아이 마음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일을 왜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일하느라 바쁜 나머지 아이하고 어울릴 틈이 없고, 아이한테 놀이를 물려주지 못하고, 아이하고 웃음을 짓는 하루를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 마음에서 어떤 씨앗이 싹틀 수 있을까요? 함께 놀고, 함께 치우고, 함께 살림하고, 함께 쉬기에 보금자리입니다. 2017.9.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삶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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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호의 옷감 - 생활 고구려 이야기 그림책
김해원 지음, 김진이 그림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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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4



사랑 담아 고이 물들인 옷 한 벌
― 매호의 옷감
 김해원 글
 김진이 그림
 창비 펴냄, 2011.11.1. 12000원


지밀이가 문을 빠끔히 열고 말했어.
“이제 어머니한테 길쌈 배우느라 너하고 못 놀아.”
매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텅 빈 마당만 바라보았어.
마당에는 달가닥달가닥 옷감 짜는 소리만 맴돌았지. (7쪽)


  우리는 옷을 입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옷을 입습니다. 아기는 갓 태어날 적에 맨몸이에요. 아기만 처음에 옷을 안 입은 채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그런데 어버이는 아기한테 입힐 배냇저고리를 마련해요. 맨몸으로 태어난 아기는 어버이가 사랑으로 지은 첫 옷인 배냇저고리를 몸에 두르면서 따스하구나 포근하구나 좋구나 살갑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밀이도 자기가 지은 실이나 옷감을 꼭 매호에게 맡겼어.
매호는 지밀이 것은 더 정성스럽게 물들이고도, 말은 퉁명스럽게 이러지 뭐야.
“공 잘 찬다고 손 솜씨가 좋은 건 아니더라.”
지밀이가 눈을 흘겼어.
“칠석날 길쌈 겨룰 때 봐. 내가 으뜸일 테니.” (11쪽)


  우리는 옷을 언제부터 입었을까요? 우리는 옛날 옛적에 어떤 옷을 입었을까요? 요즈음은 옷집에 들러 옷을 돈을 치러서 장만할 수 있습니다. 길쌈이나 베틀이나 실잣기나 모싯잎 들을 하나도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옷을 장만하여 입을 수 있어요. 실을 한 올씩 짓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값싸고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옷이 참으로 많아요. 알록달록 이쁜 옷에다가 눈부신 옷도 있어요.

  지난날 고려라는 때에는, 고구려라는 때에는, 옛조선이라는 때에는, 또 나라로 적바림되지 않은 더 아스라이 먼 옛날에는 저마다 어떤 옷을 입었을까 하고 가만히 그리면서 그림책 《매호의 옷감》(창비,2011)을 읽어 봅니다. 이 그림책 숱한 옛사람 옷살림 가운데 고구려 옷살림을 다루어요. 고구려 옷살림 가운데에서 수수한 사람들 옷살림을 다루고, 이 가운데에서도 ‘수수한 옷에 물을 들이는 손길’을 다룹니다.


매호는 밤마다 지밀이에게 줄 옷감을 물들였어
꼭두서니로 꽃보다 붉은 색을
쪽으로 하늘보다 파란 색을
치자로 달님보다 노란 색을 물들였지.

하지만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았어.
“이런 빛깔은 흔하잖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만들어야 해.” (20∼21쪽)


  꼭두서니나 쪽이나 치자는 풀입니다. 들에서 흔하게 자라는 풀이에요. 옛사람은 흔한 들풀 가운데 천에 물을 들여서 곱게 누릴 만한 들풀이 무엇인지 알아냈어요. 꼭두서니물을, 쪽물을, 치자물을 다 다르면서 새로운 빛깔로 태어나는 결을 알아챘어요.

  옛사람은 옷이 되는 실도 풀에서 얻었습니다. 풀줄기를 가르고 다듬고 손질해서 실을 얻었고, 이를 물레로 잣고 베틀을 밟아서 천으로 짰어요. 옛날 옛적에는 모든 사람이 들풀을 잘 알고 다룰 줄 알아야 했어요. 그래야 저마다 옷을 지어서 입거든요. 그리고 옛날 옛적에는 모든 사람이 들풀이나 들열매를 제대로 알아야 땅을 일구거나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었지요.


싸움터에 나가는 날, 매호는 그동안 물들인 옷감을 지밀이에게 주었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야.”
매호는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길을 떠났어.
지밀이는 매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 (25쪽)


  그림책 한 권은 먼먼 옛날 어느 고장에서 옷감을 물들이던 사내하고 베틀을 밟던 가시내 사이에 애틋한 마음이 흘렀으리라 하는 생각을 그려서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 옛날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나 살림이나 삶이 있었는지 알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옷을 입었어요. 저마다 사랑을 담아 옷감을 다루어 옷을 지었어요. 서로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옷을 입었어요.

  가볍거나 손쉽게 돈만 치르면 사서 입는 옷이 아닌, 마음을 담아서 알뜰히 건사하고 살뜰히 보듬은 옷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옷살림이에요. 옷 한 벌을 고이 아껴요. 옷 한 벌을 지은 사람이 어떤 땀을 어떤 손길로 흘리면서 지었는가를 돌아보아요. 옷을 고이 차려입은 곁님이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버이로서 빙그레 웃음을 지어요.

  고구려 이야기 《매호의 옷감》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앞으로 다가올 즈믄 해 살림을 그려 봅니다. 앞으로 서기 3000년 즈음이 된다면, 그때 뒷사람은 2000년대 오늘날 우리 옷살림을 놓고서 어떤 이야기를 붙여서 헤아려 줄까요? 오늘 우리가 즐기거나 나누는 옷살림은 먼먼 뒷사람한테 어떤 그리움이나 사랑으로 읽힐 수 있을까요? 2017.9.1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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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9.13.


서울에서 두 군데 출판사에 들러 책을 산다. 서울서 진주로 가려는데, 진주에 닿아 만날 분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책을 산다. 이 책 저 책 챙기다 보니 가방이 묵직하다. 시외버스가 이 짐을 잘 실어 주겠지. 19시 30분 진주 가는 시외버스표를 미리 끊고 고속버스역에 닿는다. 버스역 맞이방에서 기다리려다 보니 19시 5분 버스에 아직 자리가 있다. 어라? 삼십 분 더 일찍 갈 수 있나? 표파는곳에 여쭈니 자리가 있단다. 얼른 표를 바꾼다. 맨 앞자리를 얻어서 앉는다. 가방을 모두 풀어 내려놓고서 노래를 듣는다. 눈가리개를 하고서 한참 노래만 들으며 몸을 쉰 다음에 《시인의 마을》을 손에 쥔다. 나한테 “시인의 마을”이란 이름은 정태춘·박은옥 두분이 부른 노래에 붙은 이름인데, 이 이름으로 책이 한 권 태어났다. 시인이 사는 마을, 시인이 사랑하는 마을, 시인이 그리는 마을, 시인이 머물다 간 마을, 시인이 태어난 마을, 시인이 자란 마을, 시인이 그리는 이웃님이 살아가는 마을 …… 수많은 마을이 있다. 수많은 마을에는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삶을 짓는다. 이렇게 지은 삶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싹이 트고, 이 다른 이야기를 시인이 살며시 들여다보더니 살그마니 시 한 줄로 옮긴다. ‘시인마을’이란 시인이 살거나 좋아하는 마을일 수 있으면서, 시가 태어나는 마을이요 시가 샘솟는 마을이다. 시가 태어나고 시가 흐르며 누구나 시인이 되어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우리라. 마을은 시인마을 되고, 나라는 시인나라 되어, 이 지구라는 별이 시인별, 이른바 ‘노래별’로 거듭나기를 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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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13.


수원에 닿아 번개모임을 했다. 번개모임을 마치고 사당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넘어서는 버스도 시외버스라고 해야 할까. 마을책방 〈노르웨이의 숲〉은 전철역으로는 ‘성균관대역’에 내려 걸어서 찾아간다. 그러니 사당역으로 버스를 타고 갈 적에는 이 역 둘레로 돌아가는데, 이 자리가 “대학교 앞”이라는 대목을 버스를 탈 적에 새삼스레 느낀다. 앳된 젊은이들이 버스에 가득하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가는 대학생일까? 어쩌면 그렇겠지. 사당역에서 버스를 내리는데 참말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어마어마한 물결이다. 그런데 말이지,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버스에서도 사당역 언저리에서도, 또 전철을 갈아타고 내방역으로 가는 동안에도, 앳된 젊은이들 얼굴에 웃음이 안 보인다. 거의 모두 손전화기를 바라보며 재미난 영상을 보거나 놀이를 할 텐데, 활짝 웃음지으면서 다니는 젊은이를 만나기 어렵구나 싶다. 왜? 왜 이렇게 즐거운 웃음이 없이 영화나 연속극이나 누리놀이에 빠지지? 방배동에 있는 마을책방 〈메종 인디아 브러블 앤 북스〉에 들러 이야기꽃을 피운다. 밤 열한 시가 넘어 공덕역 쪽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간다. ㅈ출판사 대표님하고 ㅌ디자인회사 대표님을 함께 뵙는다. 새벽 한 시까지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룻밤 묵을 곳으로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메이즈》를 마저 읽는다. 나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다. 지난 스물 몇 해 사이에 읽은 소설책을 다섯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렵다. 어쩌다가 얼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이즈》를 손에 쥐고 말았는데,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소설이란 이런 맛을 사람들한테 들려주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책이름으로 붙은 말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 길을 찾기 어려우리라 느낀다. 어디로 가야 즐거운 삶이 될는지 저마다 늘 헤매면서 다리가 아픈 사회라고 느낀다. 그러나 길이란 늘 있다. 남들이 내는 길이 아닌 내가 스스로 내는 길이라면 늘 있다. 사회가 내주는 길이 아닌, 우리가 씩씩하게 걸어가며 내는 길이라면 언제나 환하게 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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