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거리 - 단편
카츠타 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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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18



새벽을 함께 열고 싶은 마음

― 새벽녘의 거리

 카츠타 분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5.25. 7000원



“음식은 생활의 기본이니까요. 자연 재료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먹는 것이 으뜸입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비싼 것을 사거나 먼 곳에서 조달해 올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느긋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12쪽)


“키나. 이 냄비 선생님 거지? 까맣게 태웠구나.” “응.” “오래 써서 길이 잘 든 편수냄비구나. 엄마도 툭하면 냄비를 태워먹었지. 이럴 때는 물을 끓여서 검댕을 부드럽게 만드는 거야.” (38쪽)


“선생님은 한심한 남자인 게 분명하니까,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진짜로 한심한 남자는 스스로를 한심한 남자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니, 말하는 것 같은데.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면 개선의 여지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45쪽)



  새벽녘에 길을 걸어 보았다면 여름에도 제법 스산한 듯하면서 조용하고 싱그러운 바람이 남다른 기운을 느껴 보았겠지요. 아무리 복닥이는 서울이라 하더라도 새벽녘에는 찬찬히 수그러들면서 바람 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이 바람을 가르며 신문이나 우유를 돌리는 사람들 소리, 밤새 잠들다가 깨어나려고 하는 작은 풀꽃 기지개 소리를 느낄 수도 있어요.


  새벽 다섯 시에 길을 나서려면 새벽 서너 시에 하루를 엽니다. 새벽 네 시에 길을 떠나려면 새벽 두어 시에 하루를 열어요. 누구한테는 두 시가 아직 한밤일 수 있고, 누구한테는 두 시가 하루를 여는 새벽녘일 수 있습니다. 시간은 같으나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요.


  하루를 두 시에 열기도 하지만 하루를 두 시에 닫기도 해요. 하루를 세 시 무렵에 열기도 하지만 하루를 세 시 무렵에 닫기도 합니다. 저는 예전에 자전거를 달리며 신문을 돌릴 무렵 언제나 서너 시 즈음 비로소 하루를 마감하고 잠드는 분한테 신문을 갖다 드리곤 했는데, 저로서는 이제 한창 움직이는 새벽녘이라면 그분으로서는 늘어지게 한잠을 자고 나서 신문을 펼치려고 하는 고단한 새벽녘입니다.


  만화책 《새벽녘의 거리》는 같은 때나 곳에 있지만 안 같거나 안 비슷한 마음인 사람들이 복닥이면서 빚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같은 때나 곳에서 한마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때 한마음이었으나 갈라선 마음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한마음이란 대수롭지 않다며 돈벌이에 마음을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살면서 재미나게 어우러집니다. 때로는 다툽니다. 때로는 손을 잡습니다. 때로는 나무랍니다. 때로는 울다가 웃습니다. 때로는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한 가지를 깨닫고 기운을 차립니다. 우리는 새벽녘에 어떤 하루를 그리면서 일어나는가요.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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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10.3.


시골에 살며 홀가분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시골에 사는 우리가 굳이 다른 시골에 안 가도 된다’이다. 우리 집이 시골이니까. 오늘날 한국에는 우리처럼 시골 보금자리를 누리는 분이 적으리라. 게다가 우리 집은 자동차조차 안 굴리지. 한가위를 앞두고 읍내를 다녀와서 먹을거리를 쟁여 놓았다. 오늘은 일부러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하고 가볍게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 마실을 다녀온다. 가을들이 샛노란 빛깔로 거듭난다. 이즈음은 마늘밭을 빼고는 농약을 치지 않으니 가을바람이 퍽 싱그럽다. 한가위에 시골로 걸음을 옮기는 분들은 샛노란 들길을 거닐어 보면서 나락이 익는 내음을 맡아 보시면 어떠할까 싶다. 껍질을 벗긴 쌀이 아닌, 흙에 뿌리를 박으며 햇볕을 쬐며 무럭무럭 익는 열매인 나락을 마주할 수 있다면, 책 여러 권을 읽었다고 할 만하지 싶다. 두 아이가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핀란드의 마음》을 읽는다. 이 책을 장만한 지 여러 달 되었는데 여태 한 쪽도 못 읽다가 오늘에서야 일흔 쪽 남짓 읽어낸다. 글결이 좀 공무원스러운 티가 날 만큼 딱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러 꾸민 글결이 아니라서 읽기에 나쁘지 않다. 핀란드라고 하는 마음을 나누려는 글이라면 공무원스러움보다는 핀란드스러움을 글에 담아 볼 수 있었을 텐데. 핀란드사람이 사랑하는 핀란드 옛이야기 숨결을 담아서. 그래도 이 책 하나는 꽤 좋다. 한 시간 남짓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들한테 얼음과자 하나씩 장만해 주고 자전거를 달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짓고서 씻는다. 찌뿌둥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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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34
김성미 글.그림 / 북극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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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5


아이도 힘들지만 어머니도 힘들다
― 돼지꿈
 김성미 글·그림
 북극곰, 2017.8.28. 13000원


  아이는 학교에 꼭 가야 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 쉽게 놓치는데, 이 대목을 아이하고 곰곰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분도 아이들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른은 회사에 꼭 가야 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주 쉽게 잊는데, 회사에 꼭 가야 할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반드시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돈은 일찍 벌 수 있고, 다달이 벌 수 있으며, 나중에 벌 수 있습니다. 언제 벌든 모두 같은 돈인 줄 알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학교는 왜 가는 걸까? (1쪽)

  졸업장을 따는 곳이 학교일 수 없습니다. 마을도 집도 모두 학교입니다. 도서관도 놀이터도 학교입니다. 바닷가도 골짜기도 학교예요. 이 대목을 우리 어른들이 헤아릴 수 있다면, 아이는 저를 둘러싼 어디나 학교인 줄 알 테니, “학교는 왜 갈까?” 하는 물음에 스스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학교가 끝나면 더 바빠진다. (5쪽)

  그림책 《돼지꿈》을 보면 아이는 학교에, 아버지는 회사에 얽매이는데, 어머니는 집에 얽매여요. 아이랑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홀가분하고 싶습니다. 아이만 학교 짐에 억눌리지 않아요. 아버지만 회사 짐에 억눌리지 않지요. 어머니도 집에서 집안 짐에 억눌립니다. 이 대목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돼지꿈’이란 우리 모두 삶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배울 적에 비로소 즐겁게 열 수 있는 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림책 《돼지꿈》을 보면 아버지가 아이하고만 둘이 놀이공원에 가는데요, 집에 있는 어머니는 얼마나 고단한가를 놓친 모습입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풀려나고 싶은가를 헤아려야지요.

아! 불쌍한 내 인생! (8쪽)

  한가위에 우리 아버지들은 어떤 모습이 되려나요? 한가위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가시내는 부엌일’에 얽매이도록 하려나요? 한가위를 맞이하여 이날부터 ‘부엌은 밥 먹는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치우고 함께 쉬고 함께 노래하는 곳’으로 바꾸도록 소매를 걷어붙일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늘 어른들이 차려 주는 밥만 먹는 하루를 끝내고, 작은 심부름을 거들고 밥상을 함께 차리면서 설거지를 비롯한 비질이나 행주질을 도맡아 하겠노라고 씩씩하게 나서면서 어머니도 돼지꿈을 꾸도록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돼지꿈을 꿀 수 있기를, 이러면서 저마다 즐겁게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휘영청 밝은 달님을 보면서 빕니다. 달님 곁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별님을 보면서 함께 빕니다. 2017.10.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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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달인 39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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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6


한때 바지락을 한국·중국에서 사다 먹던 일본
― 맛의 달인 39
 테츠 카리야 글·아키라 하나사키 그림/이석환 옮김
 대원, 1999.8.3.


“난 이 하천의 은어가 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은어도 이제 곧 사라지고 말아요. 이 하천에서 천연 은어는 사라지고 방류된 은어만 활개치게 될 거예요.” “천연 은어가 사라져 버린다고요? 어째서 그런 일이.” “그건 이 하천이 이제 곧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136∼137쪽)


  한가위나 설 같은 때에는 그야말로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갓난아기까지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밥 한 그릇을 마주하지요. 밥 한 그릇을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마치고서 마루나 마당에 나란히 앉아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할까요? 한가위를 맞이하여 여러 나이에 걸친 온 식구가 모이는 자리에서 어쩌면 새로우면서 남다른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을 놓고서 저마다 뜻이나 생각을 밝혀 볼 수 있고, ‘4대강 사업’ 이야기를 나눌 적에 만화책 한 권을 앞에 놓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 말고도 강에서 잡히는 것들이 그렇게 많나?” “새우, 게, 자라 그리고 여러 가지 조개류.” “도시사람들은 죽은 강밖에 본 적이 없어서 강이 이렇게 풍요롭다는 것도 모르고 믿지도 않는다구요.” (146쪽)

“저게 이 하천의 바지락을 전멸시킬 거예요.” “뭐라구요? 저게 이 하천의 바지락을?” “바지락뿐 아니라 은어도 방어도 오월 송어도, 이 하천의 생물을 남김없이 멸종의 길로 몰아넣고 있죠. 이 하천은 죽게 돼요.” “저건, 저기에 보이는, 저 거대한 악의 요새처럼 보이는 건?” “저게 바로 이 하천을 죽이는 원흉이에요. 이 하천 하구 제방!” (158∼160쪽)


  4대강 사업 첫삽을 뜨던 무렵, 이 일을 해야 나라가 살아난다고 여기는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거나 말거나 너무 바빠서 마음을 못 쓴 분도 무척 많습니다. 이런 일은 예나 이제나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긴 분도 많았고요.
  오늘날에는 어떠할까요? 2017년을 넘어서려는 이무렵에도 4대강 사업을 ‘잘한 훌륭한 일’이라고 여기는 분이 있을까요?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나무랍니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은 왜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잘못된 일일까요. 이 대목을 얼마나 짚거나 살피는가를 헤아려 보아야지 싶어요.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기도 하겠으나, 이보다는 ‘냇물을 흐름을 바꾸거나 막으면서 시멘트를 들이부어 보·제방·둑을 쌓는 일’을 함부로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제대로 알아야지 싶습니다.


“하천이 죽는다고 하는 걸 보니 그 반대운동과 연관 있는 거 아닌가?” “하긴, 세상에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죠.” “우린 반대를 위한 반대 따위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과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162쪽)


  만화책 《맛의 달인》(대원 펴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권을 1997년에 옮겼고, 2015년까지 111권을 옮겼습니다. 무척 오랫동안 사랑받으면서 깊고 너른 숱한 맛을 다루는 만화책입니다. 그런데 1999년에 한국말로 옮긴 《맛의 달인》 39권을 보면 겉에 “하천을 구하라!!”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맛을 찾는 만화에서 뜬금없이 ‘냇물(하천)을 살려라!’ 같은 이름을 왜 붙이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맛을 찾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 한다면, 마땅히 냇물 한살이를 짚을 수밖에 없어요.

  냇물이 죽으면서 냇물에서 살던 모든 목숨붙이가 죽는다면, 냇물고기도 바지락도 민물새우도 모조리 죽을 뿐 아니라, 냇가에서 먹이를 찾는 새도 죽고, 들짐승도 죽습니다. 나무도 함께 죽겠지요. 이때에 사람은 살아날 수 있을까요? 죽은 냇물이 옆에 흐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목숨을 제대로 건사할 만할까요? 죽은 냇물에 죽은 목숨인데, 죽은 맛 아닌 산 맛을 찾을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어디를 어떻게 보든 막대한 돈이 들 것 같지 않나. 목적이 없어졌으면 당연히 중지해야지.” “보통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관청의 나리님들은 달라요. 그들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움직이지 않죠. 그들을 움직이는 건 선례와 습관, 체면, 그리고 이권입니다. 30년 전 세운 계획이 현 상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어도 일단 결정한 계획을 실행 않는 것은 관습에 위배되니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에 없는 일을 하면 안 되니까 하지 않죠.” (172∼173쪽)

“이 하구 제방 건설이 강행되어 그 추악한 몰골을 남기면, 후세 사람들은 경멸과 분노를 담아 건설에 관계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테죠. 봐요, 아직 갈대가 우거진 섬이 남아 있습니다. 야유코 씨, 저건 아주 중요한 것이죠?” “그래요. 갈대섬은 강에 사는 생물들에게 아주 소중한 곳이에요. 새도 물고기도 곤충도 저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둥지로 삼죠.” (174∼175쪽)


  만화책 《맛의 달인》이 오래도록 숱한 사람들한테서 사랑받는 밑바탕은, 참맛을 찾으려는 살뜰한 마음이나 몸짓이 밴 줄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맛을 찾으려고 하면서 참맛에 서린 ‘바람맛·물맛·흙맛·풀맛’을 살피는 손길하고 눈길이 함께 있습니다. 여기에 참맛을 가꾸는 사랑이나 꿈이나 땀방울을 나란히 짚어요.

  아주 오랫동안 은어 방어 송어를 비롯한 숱한 물고기를 맛볼 수 있도록 해 준 냇물이라고 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현대 문명이 들어서고 온갖 공장을 세우며 갖가지 보나 제방이나 둑을 섣불리 쌓으면서 이 모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일본이나 세계 여러 나라는 한때 함부로 시멘트를 들이부으면서 망가뜨린 냇물을 살리려고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가까운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냇물을 망가뜨렸다가 큰 생채기를 입고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냇물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몸짓은 안 쳐다보려 했어요.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 같은 이름을 함부로 썼고, 공무원하고 건설업자가 하는 짓을 사람들한테 거꾸로 알렸습니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여요.


“물고기도 조개도 사라져 버린다면 그야말로 죽은 강이야.” “무슨 감상적인 소릴 하는 거요! 은어가 대수야! 바지락이 대수냐고! 그까짓 은어야 얼마든지 인공번식 할 수 있잖소! 바지락이 먹고 싶으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구! 그런 것보다 국가의 백년지대계가 중요하잖소! 강의 치수, 수자원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구!” (177쪽)


  만화책 《맛의 달인》 39권은 일본에서 1993년에 나왔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이나 1990년대 첫무렵 일본에서 냇물을 함부로 망가뜨리던 어설픈 행정을 나무라는 이야기를 낱낱이 다루는데요, 건설업자 대표는 사람들 앞에서 “바지락이 먹고 싶으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구!” 하고 외칩니다. 우리는 이 비슷한 외침을 어디에선가 누구한테선가 익히 들었습니다.

  자, 일본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바지락을 사오면 되겠지요. 그러면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중국에서 바지락을 사올까요? 아니면 베트남에서? 이다음에 중국이나 베트남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냇물을 정갈하게 건사하는 살림이야말로 나라하고 마을을 백 해뿐 아니라 천 해나 만 해나 십만 해나 백만 해를 아름답고 돌볼 줄 아는 몸짓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바로 이 오늘을 앞으로 아이들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백 해도 천 해도 만 해도 정갈하고 사랑스러운 냇물이랑 숲이랑 들이랑 시골이 되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지 싶어요.

  숱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골골샅샅 시골로 아이들을 이끌고 찾아갑니다. 모처럼 온 나라 시골마다 북적입니다. 한가위나 설에 즐거이 찾아갈 시골이 한결같이 정갈하며 아름다울 때에 서울사람도 맛나면서 좋은 먹을거리를 넉넉히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한가위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서 만화책 한 권이 스무 해 앞서 ‘냇물 막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다룬 줄거리를 놓고서 이야기꽃을 피워 보면 좋겠어요. 정갈한 시골하고 아름다운 서울로 나아가는 어깨동무를 슬기롭게 이야기해 볼 수 있기를 빕니다. 2017.10.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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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1.


시월로 접어들면서 모기는 줄어드는가? 그렇지만 새벽이나 밤에도 모기를 볼 수 있고, 낮에는 꽤 돌아다닌다. 여름처럼 자주 보지 않으나 고흥 같은 따스한 고장은 겨울에도 어쩌면 볼는지 모르리라. 마당에 앉아서 시월을 맞이하고 싶으나 시월 첫날부터 비가 쏟아진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치지 않는다. 대단하네. 바람까지 드세다. 시골에서 살며 한가위에 비바람이 세차게 찾아오는 모습을 볼 적마다 늘 다르게 느낀다. 나무랑 나락이랑 남새가 이 비바람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새삼스레 지켜본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눈이라면 한가위 비바람이라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나, 코앞에서 나락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거나 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사뭇 다르다. 마루에 앉아서 《모기가 궁금해?》를 읽는다. 모기를 다룬 아주 드문 인문과학책이다. 이 책을 쓰신 분은 곧 ‘모기 도감’까지 써낸다고 하니, 모기를 다룬 도감에 흐르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모기가 궁금해?》는 무척 단출하다. 이렇게 단출하게 모기 이야기를 써도 될까 싶으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글을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인다. 자잘한 덧말 없이 더없이 깔끔하게 모기 한살이를 비롯해서 모기하고 지구라는 별하고 사람이 얽힌 이야기를 살뜰히 들려준다. 아주 멋지다. 이 책을 읽기 앞서까지 2017년 ‘올해책’으로 《한국 개미》를 뽑으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을 바꾼다. 앞으로 11월하고 12월에 어떤 책을 만날는 지 아직 모르나, 이제까지 읽은 2017년 책 가운데 《모기가 궁금해?》를 나로서는 ‘2017년 으뜸 올해책’으로 삼는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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