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感에 관한 사담들 문학동네 시인선 45
윤성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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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8



시인마다 다른 삶결

― 감(感)에 관한 사담들

 윤성택 글

 문학동네, 2013.6.27. 8000원



그 살아 있는 순간을 위해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다

알약 속에 켜져 있는 안개.

창틀에서 뻗어온 가장 시든 잎이 숨을 몰아쉰다 (안개)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간다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말 한 마디에서 결을 읽습니다. 결이란 말결일 수 있고, 말에 담은 삶결일 수 있습니다. 삶결이란 이제까지 살아오며 배우거나 겪거나 듣거나 보거나 읽은 모든 이야기입니다.


  결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옳은 결이나 틀린 결이란 없습니다. 그동안 겪거나 치른 삶은 같을 수 없으니, 삶에서 길어올리는 말 한 마디도 같을 수 없습니다. 누구는 자전거를 달리다가 손잡이하고 몸통이 떨어지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고도 빙그레 웃으면서 털고 일어납니다. 누구는 이런 일을 치르고 나면 자전거는 엄두를 못 냅니다. 누구는 이런 일을 맞닥뜨리고 난 뒤에 둘레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볼 적마다 그 자전거는 튼튼한가를 살피는 몸짓이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지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꾸밀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랄 수도 즐거움이 아니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리에서 멀거니 말 한 마디를 엮을 수 있습니다.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을 읽으면서 ‘결에 얽힌 한 사람 이야기’를 찬찬히 짚습니다. 시인 한 사람은 삶을 이렇게 읽어서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우리 시골집 지붕에 감 떨어지며 나는 쿵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엽니다. 지붕에 떨어지며 쿵 소리를 내고는 뒷밭에 안긴 감은 사람도 먹고 새도 먹으며 개미나 벌도 먹으며, 딱정벌레도 먹습니다. 달팽이도 지렁이도 먹으며, 때로는 모기하고 파리도 함께 먹습니다. 감 한 알로 숱한 목숨이 이 가을에 배부릅니다. 2017.10.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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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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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읽은 몇 안 되는 어린이문학을 서른 몇 해 만에 다시 읽다가, 홍당무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던 일이 하나둘 떠오른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도 아재가 말하지. “네 잘못이 아니야.” 프랑스 홍당무한테도 어린 옛날 나한테도 이 한 마디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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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3.


896쪽에 이르는 《현대 유럽의 역사》라는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몇 쪽짜리인가를 굳이 살필 까닭은 없지만, 요즈막 유럽이라는 고장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가를 다루는 책이니 896쪽이라는 두께가 될 만하겠지 싶으면서도 꼭 이렇게 써야 그들 발자국을 적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달리 보면 고작 896쪽으로 숱한 유럽 나라 이야기를 뭉뚱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숲집 한쪽에 얌전히 둔 채 한 달 즈음 지나고서야 비로소 이 책을 펼치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느낀다. 책이 잘 읽힐 적에는 글결이 좋아서일 수도 있으나, 이야기가 살뜰하다면 글결이 안 좋아도 얼마든지 잘 읽힌다. 나는 솜씨 좋은 글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 빼어난 글결이나 보기 좋은 글결로 책을 읽을 일도 없다고 느낀다. 삶을 이루는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배우거나 들여다보려고 책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현대 한국 역사’를 다룬 책이 꽤 많다. 어린이 역사책도 꾸준하게 새로 나온다. 다들 역사를 좋아할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 이제껏 이 나라는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쳤으니, 교과서를 벗어난 자리에서 역사를 배우자는 흐름일까? 가을비 내리는 소리하고 바람을 곁에 두면서 《현대 유럽의 역사》를 읽는다. 핀란드, 아일랜드, 카탈루냐, 터키 언저리를 살살 감도는 유럽이라는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발자국 이야기를 읽는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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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의 유산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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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7


흑인 할아버지한테서 배우는 평화
― 티모시의 유산
 시오도어 테일러 글/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7.10.1.


나는 겁이 나기는커녕 신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전쟁, 전쟁.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지금은 전세계가 전쟁 중인데, 이 따뜻하고 새파란 카리브 해에까지 그 여파가 밀려온 것이다. (10쪽)

파나마를 떠난 지 이틀째 되던 1942년 4월 6일 오전 3시경, 우리가 탄 배는 어뢰 공격을 받았다. 나는 위쪽 침대에서 튕겨져 나왔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34쪽)


  아이들이 즐기는 숱한 누리놀이(인터넷 게임)를 살피면 죽이고 죽는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가 잔뜩 나옵니다. 무기를 아주 쉽게 손에 쥐며, 이 무기로 다른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를 매우 쉽게 죽입니다.

  누리놀이가 퍼지기 앞서는 오락실에서 죽이고 죽는 놀이를 하던 아이들입니다. 왜 누리놀이를 하나같이 죽이고 죽는 얼거리로 짜는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쩌면 아이들을 죽음에 무디게 길들이는 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인 군인도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단추를 누르면 미사일이나 총알을 멀리 쏘아서 눈에 안 보이는 자리에서 숱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짓을 해도 가슴에 아무 느낌이 없도록 할 수 있어요.


“나이는 몇 살이야, 티모시?” “그게 참말로 아리송한 건데 말이죠. 아마 육십은 더 됐을 겁니다. 이놈의 다리 근육이 늘 말을 안 듣고 말썽만 피우니까 그건 잘 알죠. 하지만 정확히 몇 살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53쪽)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데?”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내 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듯했다. 그는 팔꿈치를 받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살아남는 거죠, 도련님. 바로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54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뜨인돌, 2007)은 196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거의 마흔 해 만에 나온 셈인데, 이 책은 1942년 어느 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전쟁바람이 휘몰아치는 유럽이지만 전쟁바람이 거의 안 불던 한갓진 섬에서 지내는 아이들 모습을 그려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날마다 전쟁 이야기가 흐른다지만, 외딴섬이라 할 만한 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미사일도 총도 전차도 잠수함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 아이들하고 다르게 평화를 누리는 아이들이지만, 평화보다는 전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는 바다 한복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쟁’을 만나요. 더 근심이 없을 만한 곳으로 아이를 보내려던 어른인데, 그만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고 배가 가라앉는다지요. 이러면서 ‘전쟁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는 큰 배에서도 구명 배에서도 어머니 손을 놓칩니다.


“나 티모시하고 친구 하고 싶어.” 내가 티모시에게 말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 우리야 지금껏 쭉 친구 아니었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도련님이라고 하지 말고 필립이라고 부를 거야?” (98쪽)


  겪어 보지 않을 적에는 너무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더러 전쟁을 겪어 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더러 총알에 맞아 보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더러 미사일이나 폭탄이 마구 터지는 데에서 살아남아 보라 할 수 없어요. 총알이 빗발칠 뿐 아니라 핵폭탄이 떨어져서 한꺼번에 죽어 버리고 마는 끔찍한 삶을 아이들더러 겪어 보라 할 수 없지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전쟁무기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우리 삶터하고 마을하고 보금자리를 가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봅니다. 죽이고 죽는 짓은 멈추고서, 서로 살리고 도우며 보살피는 몸짓으로 거듭날 적에 다 함께 즐거우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요.

  전쟁이 아닌 평화일 적에는 웃사람하고 아랫사람을 가르지 않아요. 오로지 평화일 적에는 종을 부리지 않아요. 참말로 평화로 나아갈 적에는 신분도 계급도 인종도 없이 서로 동무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요.


“왜, 물고기도 색깔은 전부 제각각 아니냐. 꽃도 그렇고 말이야. 안 그래? 물론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지, 필립. 하지만 내 생각에 피부색만 다르지 그 속의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야.” (102쪽)

“알았지, 필립? 이젠 너도 눈이 필요없어졌어. 눈이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131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은 아이들이 전쟁을 한낱 놀이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1960년대에 한창 피어나던 흑인 인권을 함께 건드립니다. 배가 가라앉아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작은 섬에 닿았다고 하는데, 이때에 이 두 사람은 백인인 어린이하고 흑인인 할아버지요, 흑인인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노예하고 엇비슷한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철없는 아이가 철든 할아버지 곁에서 삶을 하나하나 배우고 사람을 새롭게 배운다고 해요. 여기에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림을 짓는 손길을 나란히 배운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앞으로 꼭 살아남아서 전쟁 아닌 평화로 사랑스레 나아가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고 해요. 이 마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따사롭게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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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비룡소 클래식 4
요한나 슈피리 지음, 폴 헤이 그림,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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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완역판을 읽은 지 반 해 즈음 된다. 완역판은 무척 고마우면서도 한 가지가 아쉽다. 번역 말씨이다. 이 엄청난 문학을 어른도 읽을 테지만 아이들도 읽지 않겠나? 글손질에 마음하고 돈을 쓰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말’로도 아름답게 받아들여서 고운 꿈을 북돋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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