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신화편 3 - 개정판 신과 함께 개정판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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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5



옛이야기 아닌 오늘이야기

― 신과 함께, 신화편 下

 주호민 글·그림

 애니북스, 2012.11.16.



천상에서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화액으로부터 지켜 주는 가택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여산부인과 일곱 형제를 신으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어머니 여산부인은 부엌을 권장하는 조왕신으로, 첫째부터 다섯째는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을 관장하는 오방신장으로 ……. (139쪽)


“넌 사람들 수명이 딱딱 정해져 있으면 좋을 것 같냐?” (152쪽)


“사람이 천상에 다녀온 사례도 있습니다. 할락궁이, 황우양, 녹두생이. 모두 천상에 다녀온 사람들이에요. 서방님도 분명히 다녀오실 수 있을 거예요.” “흥! 그런 건 다 옛날얘기 아니오?” (235쪽)



  만화책 《신과 함께》는 옛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런데 이 옛이야기는 꼭 옛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하루가 지나면 바로 어제가 되고, 어제란 언제나 옛날이에요. 더욱이 아침에 겪은 일은 낮이 되면 지나간 일이에요. 낮에 돌아보자면 아침조차 옛날이요, 저녁이 되면 낮에 한 일까지 옛날입니다.


  하늘나라에 다녀왔다는 옛사람 이야기는 참말 옛이야기이기만은 아닙니다. 옛날에야 하늘나라에 다녀왔을 뿐, 오늘 누가 다녀올 수 있겠느냐 여기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옛날에 하늘나라에 다녀온 사람들은 옛날이 아닌 오늘(옛날로서는 오늘) 새로운 길을 열었어요.


  옛이야기로 돌리면서 콧방귀를 뀐다면, 어쩌면 우리 스스로 오늘 할 일을 미루는 몸짓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 스스로 온힘을 다해서 맞닥뜨리려 한다면 오늘이야기는 앞으로 두고두고 되새길 옛이야기가 될는지 몰라요.


  다시 말해서 옛날부터 흐르고 흐른 이야기란, 오늘 우리가 즐기는 옛이야기란, ‘오늘 하루를 온힘을 다해 부딪히고 맞아들이면서 살아온 사람들 발자취’라고 할 만합니다. 오늘이야기가 옛이야기가 되고, 옛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오늘이야기를 짓는다고 할까요.


  신이라는 님, 하느님이라는 숨결은, 그야말로 저 높은 하늘에만 있는 넋이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이기도 하면서, 우리 이웃이기도 한 모습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잊거나 잃은 하늘넋을 되찾도록 북돋우는 옛이야기일 수 있어요. 2018.1.1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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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1.16.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

이우기 글, 부크크, 2017.11.16.



  다시 끙끙거리는 하루. 끙끙거리면서도 할 일은 하고, 밥은 짓는다. 매우 포근한 겨울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마당을 휘 둘러본다. 뒤꼍을 올라 나무마다 겨울눈이 얼마나 굵는지를 들여다본다. 이렇게 느긋하면서 조용한 하루란 참 곱다고 생각하지만, 끙끙거리는 몸부터 좀 다스려야지 싶다. 밥을 지어서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나면 자리에 누워서 숨을 몰아쉰다. 살짝 기운이 나면 모로 누워서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를 읽어 본다.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이 말이며 글을 엉망으로 내팽개치는 이야기가 흐르니 다시 덮는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새로운 사랑을 이 땅에 심으려고 모든 말을 휘젓는지 모른다. 또는 말이 만만하다고 여겨 마구마구 쓸는지 모르고, 왼날개이든 오른날개이든 이 날개도 저 날개도 아니든 학교에서 길든 대로 그냥그냥 아무 말이나 쓸는지 모른다. 곁님이 문득 경상도 고장말 높낮이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늘 들은 말 가운데 가장 재미나다. 빨대 하나가 없대서 말소리를 확 끌어올렸다가 내리는 경상말이란, 또 전라말이란, 얼마나 상큼한가. 노래로 부를 수 있기에 말이고, 노래로 부를 만하지 않으면 말하고 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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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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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0


“총을 버리고 책을 읽자”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글
 달 펴냄, 2017.3.31. 14000원


그날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아이들에게 제법 비장하게 말해 두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 달라고. 죽어서라도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의자가 따뜻할 것 같다고. (39쪽)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읊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자.’ 어버이로서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이 안 곱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지 않는다면 으레 힘들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입으로만 좋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입바른 말은 아이들한테 하나도 마음밥이 안 된다고 느낍니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즐거운 기운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하나씩 받아먹거나 받아들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외딴 갈대숲에서 추위를 견디며 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욱이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낯선 나라에 와서 두루미를 연구하는 외국인 여성의 모습에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새 한 마리가 하나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186쪽)


  나희덕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참으로 수수합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없고, 대수로운 줄거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이처럼 수수한 이야기가 모여서 태어나지 싶습니다. 우리 살림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손을 하나하나 여미면서 피어나지 싶고요.

  어쩌면 우리는 문학을 너무 거룩하거나 높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문학상을 타야 문학이 아닌걸요. 이름을 드날려야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닌걸요. 삶을 짓는 노래를 나눌 수 있으면 되고, 날마다 곁님이나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되는걸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되나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 달이 멀다 하고 문설주 옆에 아이의 키를 표시하며 “와, 이만큼 컸네.” 기뻐하곤 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자라지 말아라. 자라지 말아라.” 중얼거렸다. (65쪽)

연주를 들으며 나는 피아노가 흰건반과 검은건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흰건반 52개, 검은건반 36개, 총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141쪽)


  한 걸음씩 걸어서 그곳에 닿는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한 걸음이 모여 백 걸음이 되고 천 걸음이 됩니다.  옛말에 있듯이 천 리를 가는 길도 언제나 한 걸음부터입니다. 배고픈 이웃을 돕는 손길은 밥 한 술입니다. 열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들어요. 백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든다면 열 사람하고 밥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어요.

  한 사람이 따로 밥 한 그릇을 챙겨서 이웃 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더라도 한 덩이씩 덜어서 한 그릇을 이룰 수 있어요. 아이들이 조그마한 과자조각이나 빵조각을 덜어서 나누는 손짓처럼 말이지요.

  날마다 꾸준히 피아노를 치다 보니 어느새 제법 피아노를 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준히 도마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썩 도마질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니 어느새 어버이로서 퍽 티가 날 만큼 부드러우면서 너그러운 품이 됩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 내전을 겪은 뒤에 군대를 폐지하고 주변국들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래 비무장 중립국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국방비로 쓸 돈을 교육과 복지에 투자해 중남미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다. “트랙터는 전차보다 쓸모 있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 “소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 이런 모토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아리아스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군대와 공장 없이도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나라. (143쪽)


  ‘세계 시잔치(국제시페스티벌)’를 여는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큰돈을 모을 만한 자리는 아닐 터이나, 큰기쁨이나 큰보람이나 큰웃음이나 큰얘기를 길어올리는 자리가 될 만하지 싶어요. 온누리 시인을 부르는 시잔치라면, 굳이 큰 경기장이나 호텔을 지을 일이 없을 테지만, 다 같이 골골샅샅 누비면서 새삼스레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우리도 총을 버리고 책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탱크나 미사일을 버리고 호미나 낫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리고 군부대를 박물관이나 도서관으로 바꿀 수 있다면, 갖은 첨단무기라든지 레이더라든지 군시설을 학교나 너른마당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아늑할까요?

  군대하고 공장이 없이도 넉넉한 숲을 누리며서 즐거운 살림을 꾸릴 수 있다면, 바로 이곳에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해요. 군인이 없고 정치인 숫자가 적어도 아기자기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림을 지피는 숨결이 흐른다면, 참으로 이곳은 민주하고 평등이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천 걸음을 내딛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에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날마다 소총하고 총알을 하나씩 녹이고, 이레마다 탱크하고 미사일도 하나씩 녹이다 보면, 남북녘이 이렇게 어깨를 맞대면서 사이좋게 나아갈 수 있다면, 이러한 길을 이제부터 걸을 수 있다면, 이러한 나라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지 싶어요. 수수한 이웃님 같은 분이 쓴 글줄을 읽으면서 꿈에 젖습니다. 2018.1.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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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3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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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은 안기고 싶은데 안아 달라는 말을 선뜻 못 한다. 아픈 사람 이야기를 듣거나 지켜보는 사람도 똑같이 아픈데 아픈 사람을 어떻게 안아 주면 좋을는지 잘 모르곤 한다. 서로 따스히 안아 주면서 달랠 수 있으면, 이리하여 눈물꽃을 피운 뒤에는 웃음노래를 부르는 길을 걸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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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름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6
박서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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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9



좋은 말을 구름에 실어서

― 좋은 구름

 박서영

 실천문학사, 2014.2.20.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

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

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 (손의 의미/16쪽)


좋은 노을이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들은 그런 걸 찾아 뛰쳐나간다고 했다. 다리 위에 서서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또 노을이 떠나버릴까 화장도 하지 않고 서둘렀다.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 노을 앞에 서자 사진작가는 또다시 화를 내며 떠나갔다. 좋은 노을이 떠나버려서, 좋은 노을이 강물과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버려서. (좋은 구름/58쪽)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관 뚜껑이 닫히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목 뒤 감췄던 주름살과 약점들 (목/70쪽)


기차 안에서 아이를 안고 잠든 여자

잠에 취한 채 침까지 질질 흘리며 그대로 굳어 있다

아이를 안고 잠든 어머니

삼백 년 후에 저 모습 그대로 발굴될 수 있을 것 같다

母子 미라 (미인도/116쪽)



  아이를 바라보며 넌지시 한 마디를 합니다. 얘야, 네가 네 입으로 내놓는 말은 모두 너한테 하는 말이란다. 네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너한테 들려주면 너는 즐겁니?


  아이는 아니라면서 고개를 젓습니다. 다시 아이를 마주보며 슬며시 한 마디를 합니다. 얘야, 네가 스스로 되고 싶은 모습이나 길이나 꿈대로 네 입에 말을 얹어서 내보내렴. 언제나 그 말대로 이룰 수 있단다.


  즐겁게 살고 싶기에 즐겁게 나눌 말을 헤아립니다. 노래하며 춤추고 싶기에 노래하며 춤출 말을 마음에 담습니다. 상냥하게 웃을 뿐 아니라, 신나게 손을 잡고서 들길을 달리고 싶으니 살림을 짓습니다.


  박서영 님 시집 《좋은 구름》(실천문학사, 2014)을 읽습니다. 시인이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시인이 아프게 여기는 삶이 있습니다. 시인이 만난 사람이 있으며, 시인이 고단하게 맞이하는 하루가 있습니다.

  좋은 구름이라면, 시인 스스로 좋은 말을 얹고 싶은 구름일까요. 좋은 구름을 타고서 멀리멀리 마실을 하는 꿈살림을 짓고 싶을까요.


  이 겨울에 포근한 비를 뿌리는 전라도 시골자락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포근한 고장에서는 겨울에 눈 아닌 비가 찾아들며 한결 포근합니다. 포근한 비를 뿌리는 구름은 그야말로 새하얗게 하늘을 덮습니다. 2018.1.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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