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6.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글·그림/류승경 옮김, 수오서재, 2017.12.16. 



  ‘늦은 때’를 누가 말할까? 누가 늦었다고 따질까? 우리는 왜 늦었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푹 떨꿀까? 둘레에서 아무리 늦었다고 나무란다 한들, 우리 스스로 “아니야. 나는 바로 오늘이 제때야. 나는 바로 오늘부터 하려고 생각해.” 하고 말하면서 일어서면 될 노릇 아닐까. 그림할머니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스스로 기쁘고 이웃하고도 기쁘다. 언제나 오늘 하루를 알뜰히 살아가려고 한 발걸음이기에 늦은 나이란 없이 스스럼없이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다. 그림할머니는 대단한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림할머니는 그저 오늘 하루를 기쁘게 노래할 그림을 그리려 했다. 늦은 때란 있을까? 그래, 있기도 하다. 언제가 늦은 때인고 하니, 스스로 늦었다고 여기는 때가 바로 늦은 때이다. 그러면 언제가 가장 알맞은 때일까? 바로 우리 스스로 가장 알맞다고 여기는 때가 가장 알맞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달라진다. 바로 오늘 하루는 가장 늦은 때일 수 있고, 가장 이르거나 가장 알맞은 때일 수 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바로 나한테 달린 일이다.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선다. 대구로 이야기꽃을 펴러 간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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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1.5.


《미스터 초밥왕 전국대회편 8》

테라사와 다이스케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5.4.13.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은 아주 뻔히 보이는 마무리로 달린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이 만화책을 뜨겁게 사랑했다. 만화결이 좀 엉성하거나 일그러지더라도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이 만화책은 줄거리나 만화결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미스터 초밥왕 전국대회편 8》에서 드디어 맺음말을 들려준다. 쇼타라는 아이가 그토록 온몸을 갈고닦으면서 온마음을 쏟은 초밥이란, 아주 수수한 손길이 깃든 먹을거리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초밥’이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기쁜 웃음으로 어깨동하면서 노래하기를 바라는 초밥이다. 다만 쇼타는 ‘사람을 살리는 초밥’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쇼타는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는다. 쇼타는 뒷걸음도 하지 않는다. 쇼타는 고인 물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을 살리는 초밥’이라 하더라도 맛없거나 멋없지 않도록 힘을 쏟는다. 몸을 갈고닦으면서, 마음을 쏟으면서, 사람을 살리는 초밥에 땀방울하고 눈물방울을 들이고, 웃음하고 노래를 넣는다. 쇼타가 빚은 초밥을 입에 넣은 이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짓고 나서 웃음꽃을 피우는 뜻을 헤아려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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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구석에 - 상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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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으면서 안 아름다운 작품을 보기 어렵다고 여기는데, 테즈카 오사무 뒤로 아름다운 만화라고 손꼽을 만한 작품으로 《나츠코와 술》이 있었고,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나란히 들 수 있을 만큼 찌릿하다.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작게 그리는 작은 붓질이 참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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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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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7


똥 누는 아이 얼굴을 찍듯이 시를 그리는
―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창비, 2017.12.8.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입춘 부근/12쪽)


  아침이면, 아니 새벽이면 쌀을 씻습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고요히 하루를 헤아리면서 찬찬히 쌀을 씻어 불립니다. 아이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면 넌지시 말합니다. “우리 이쁜 아이들아, 누가 우리 아침에 맛있게 먹을 밥이 될 쌀을 씻어 볼까?”

  스스로 씻든 아이들한테 맡기든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침 아닌 새벽마다 쌀씻기가 번거롭거나 귀찮다면, 이런 마음으로 씻어서 불린 쌀로 지은 밥이 맛날 수 있을까 하고. 아이들한테 쌀씻기를 맡길 적에 낯을 찌푸리거나 성가시다는 말씨로 아이들을 부르면 아이들이 반길까 하고.


나는 꽃이 되어서 꽃집으로 들어가 꽃들 속에 섞여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오가는 사람들로 시들어, 시들어 (꽃집에서/23쪽)


  장석남 님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2017)를 읽습니다. 시집을 손에 쥐고서 살며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니, 어째서?

  봄이 와서 뒤꼍이며 마당이며 들이며 숲에 들꽃이 가득하면, 아이들 걸음걸이가 더디곤 합니다. 들꽃을 밟을까 자꾸 근심하지요. 이때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 꽃순아 꽃돌아, 들꽃은 한두 번 밟힌들 꺾이거나 눌리지 않아. 너희들이 근심하면서 그렇게 하면 외려 들꽃은 더 아프단다. 사뿐사뿐 걸으면 들꽃은 모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어. 가만히 앞을 보며 걸으렴.”


현관에 벚꽃 잎들 날려오니 자주 와서 꽃을 쓰는 노파여
꽃을 쓸어 깨끗이 하려는가?
하늘을 쓰는 노파여
옛날을 쓰는 노파여
꽃 쓸어 감추는 노파여
얼결에 마침 노을도 쓸어내는 노파여
꽃을 쓸어 밤을 맞는 노파여
꽃에게 이기지 못할 노파여 (꽃을 쓰는 노파여/26쪽)


  한겨울에 꽃을 자꾸 이야기하는 시집을 읽으며 봄꽃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봄에는 여름이 멀지 않았다고 여기고, 겨울에는 봄이 멀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12월을 지나 1월 한복판에 선다면, 우리 집이나 마을에서는 언제쯤 동백꽃이 터질까 하고 손을 꼽아 봅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 차츰 맺는 동백꽃망울을 지켜보고 살살 만지면서 어쩜 이렇게 나날이 굵고 단단히 여무나 하고 설렙니다.

  추운 철이기에 따뜻한 꽃을 그립니다. 따뜻한 철이기에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그립니다. 열매가 익는 철이기에 온통 하얗게 덮는 눈을 그립니다. 돌고 돌면서 새로운 살림과 길을 그리는 하루입니다.

  골목에서 꽃이며 잎을 쓰는 할머니는 예부터 익힌 몸짓대로 정갈하게 보금자리를 가꾸는 모습이지 싶어요. 꽃을 한 군데에 모으면서 꽃이 더 도드라지게 한달 수 있고, 꽃을 가만히 쓸면서 꽃내를 한몸에 맞아들인달 수 있고요.


각색 양말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고
나도 모르게 짝을 맞춰 그리해놓고
나는 그리해놓았다
전에는 없는 일이라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나는 흐뭇하다 (다섯켤레의 양말/44쪽)


  시인은 모처럼 양말을 빨아서 짝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런 집안일을 곁님(가시내)한테만 도맡겼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집안일을 살짝 거들면서 스스로 대견하구나 싶을 만합니다.

  참말 그래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도 이 대목을 느껴요. 아이들은 심부름이 때로는 벅차다고 여기면서도 끝까지 해내면 얼마나 해맑게 웃으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리면서 춤추는지 몰라요.

  스스로 한다는 보람이란 놀라운 기쁨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해내면서 온몸에 흐르는 짜릿한 기운이란 우리를 새롭게 살리는 웃음이지 싶어요. 스스로 잔빨래나 잔심부름을 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더 손을 뻗어 이 일 저 살림 건사해 본다면, 우리가 쓰는 시 한 줄은 한결 싱그러이 피어날 만합니다.


놀던 카메라를 팔고
눈이 멀었네
내 푸른 피의 사치였던 물건

첫아이의 똥 누는 표정을, 그 동생의 부러진 앞니의 웃음을,
그 에미의 아직 밝던 고단을 찍던 (카메라를 팔고, leica m6/82쪽)


  꽃이 고와 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아이들이 고와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삶이 고와 삶을 시 한 줄로 여밉니다. 하늘이 고와 하늘을 고요히 노래 한 마디로 부릅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이란, 시를 쓰는 마음이란,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 마음이란, 빨래를 하고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는 마음이란, 모두 한동아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오니, 겨우내 아무리 추워도 봄꽃은 찬바람을 머금으며 피어나니, 오늘 하루를 더욱 씩씩하게 열자고 다짐합니다. 마음 한켠에 시 한 줄을 살며시 놓으면서. 2018.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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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1.4.


《포토닷》 49호(2018.1.)

편집부 엮음, 포토닷, 2018.1.1.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고양이를 살피고 하늘을 보다가 생각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살짝 쌀쌀하구나. 그러나 이런 쌀쌀한 바람도 다른 고장에서는 봄 날씨라고 여길 만하다. 나는 이런 날에도 반소매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평상에 앉았다가 마루에 앉아서 사진잡지 《포토닷》을 펼친다. 예전에는 이 사진잡지를 누리책방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리책방에 안 들어가는구나 싶다. 누리책방에조차 안 들어가면 새로운 이웃을 찾기 더 어려울 텐데 싶으면서도, 외려 새로운 팔림새를 찾아보는 일도 좋으리라 본다. 알차고 재미있으면 누구라도 스스로 찾아내어 볼 테니까. 《포토닷》은 첫발은 뜻있었으나 ‘사진 아닌 디자인·건축’을 하는 젊은 분들이 한동안 이 잡지를 쥐고 흔들면서 매우 빛이 바랬다고 느낀다. 그 ‘디자인·건축’ 젊은 분들은 이 잡지를 ‘사진잡지 아닌 디자인·건축잡지’로 뒤흔들다가 모조리 나가서 다른 잡지를 내던데 그분들은 왜 처음부터 사진잡지에 끼어들었을까? 아무쪼록 사진잡지가 사진잡지로 고이 남기를 빈다. 이 잡지에 사진비평을 다시 보내 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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