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꽃 책읽기

 


  이오덕 님이 쓰신 시요 1960년대에 내놓은 시집이기도 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나는 이오덕 님 남은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여러 해 하기도 했지만, 탱자나무로 이룬 울타리를 막상 제대로 들여다본 일이 없었다. 내 어버이들 시골집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지 모르나, 내 어린 날 이런 울타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막상 《탱자나무 울타리》를 읽으면서도, 또 지난날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도 탱자나무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인천에서 살며 골목마실을 하던 때, 주안2동 골목집 한 곳에서 탱자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 소담스레 열매가 달렸을 때에 비로소 알아보았다. 그러고는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하며 살아가는 동안 제대로 탱자나무를 보고 탱자꽃을 본다. 면내에 있는 중학교를 지나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탱자나무 가지들이 얼키고 설킨 작은 울타리 비슷한 녀석이 있는데, 누군가 탱자나무 가지 사이에 빈 깡통을 여럿 찔러 넣었다.


  단단하고 굵직해 보이는 탱자나무 가시는 촘촘하다. 나뭇가지 사이에 박힌 빈 깡통을 빼낼 길이 없어 보인다. 팔을 뻗어 꺼내자면 팔뚝이 가시에 죽죽 긁혀 찢어지겠다 싶도록 아주 촘촘하다.


  4월 한복판 봄날, 탱자나무에 핀 하얗게 눈부신 꽃송이를 본다. 탱자나무를 가시와 열매로만 알다가, 이제 꽃으로 새삼스레 안다. 탱자꽃을 처음 보며 으아리꽃하고 살짝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으아리꽃을 먼저 보았으니 탱자꽃이 으아리꽃하고 살짝 닮았다고 생각할 뿐, 거꾸로 탱자꽃을 어릴 적부터 익히 보다가 어느 날 멧골짝에서 으아리꽃을 보았다면 으아리꽃이 탱자꽃을 살짝 닮았네 하고 생각할 테지.


  한참 탱자꽃을 바라보며 헤아린다. 모과꽃은 참 작으면서도 커다란 열매를 맺는다면, 탱자꽃은 알맞춤하다 싶은 크기에 알맞춤하다 싶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면, 귤꽃이나 유자꽃은 얼마쯤 되는 크기일까. 가만히 보니, 감꽃도 꽤 작은데 감알은 그리 작지 않다. 능금꽃이나 배꽃도 퍽 작지만 능금알이나 배알은 퍽 크다 할 만하다. 복숭아꽃도 제법 크다 싶은 열매를 맺는다.


  더 곱씹는다. 나뭇가지에 달리는 열매를 모두 따고 보면 몹시 묵직하다. 나뭇가지 하나 무게는 얼마 안 되는데, 가냘프다 싶은 나뭇가지에 묵직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곤 한다. 더 돌이키면, 모질게 비바람이 불어도 웬만한 나무는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이들 나무가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나무 없는 사람살이를 생각할 수 있을까. 책을 빚는 종이는 탱자나무로 만들지 않는다지만, 탱자나무 없이 사람살이를 꿈꿀 수 있을까. 사람들은 탱자나무를 잊거나 모르더라도, 탱자나무는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지구별을 지키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장미꽃 팬지꽃 국화꽃 튤립꽃에 넋이 나가더라도, 탱자꽃은 언제나 고요히 제 흙땅에 뿌리내리며 지구별을 돌보지 않았을까. (4345.4.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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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 때에 만화책

 


  만화책 《치하야후루》 1권과 2권을 읽는다. 온몸이 뻑적지근 힘들기에 일찌감치 잠들까 하다가 살짝 들여다보기라도 하자 생각하다가 그만 1권이랑 2권을 내처 읽고 만다.


  만화책이기에 사람을 더 잡아끌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좋고, 줄거리가 아기자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마음에 품는 좋은 기운을 잘 풀어내니 반갑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부터 내 삶을 좋은 기운으로 풀어내어 내 몸을 따스히 돌보고,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따사로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지 않은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부터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예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생각한다. 옆지기와 아이들이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나날을 누리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서로 북돋울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


  다섯 살 첫째 아이 오줌그릇을 섬돌에 놓은 까닭을 헤아리자. 아이 쉬를 누이며 마루문 열고 바깥으로 나가도록 하려는 까닭은, 밤에 논자락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가 쉬를 눌 때에 나도 함께 일어나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나란히 듣다가 다시 즐겁게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바깥바람 살짝 쐬며 밤별을 느끼고, 밤새 노래하는 소리도 함께 듣고 싶기 때문이다.


  만화책 《치하야후루》를 읽기 앞서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을 천천히 조금 읽는다. 아침저녁으로 고정희 님 시를 몇 꼭지씩 읽는다. 며칠에 한 차례쯤 호시노 미치오 님 글이랑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 글을 몇 쪽씩 읽는다. 요즈음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글도 며칠에 한 차례씩 열스무 쪽씩 읽는다.


  엊저녁부터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도 읽는다. 하루만에 백서른 쪽이나 읽는다. 세 식구 잠든 밤나절 나도 곧 자리에 누워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오늘 하루 책을 얼마나 읽었나 하고 돌아보았더니 꽤 많이 읽었다. 이밖에 ‘빛깔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인 《울릉도》도 마저 다 읽었다. 《일본의 작은 마을》이라는 책도 오늘 아침에 일흔 쪽쯤 읽었다. 그림책 몇 권 살짝 읽기도 했고, 이렁저렁 다른 책도 꽤 손에 쥐었다.


  첫째 아이 밥을 차리고 둘째 아이 죽을 먹이고 빨래를 하고 개고 이것저것 하느라 부산하다 여겼는데, 뒷간에서 똥을 눈다든지 살짝 숨을 돌리며 등허리 펴려고 자리에 누운 때라든지, 이래저래 틈을 쪼개어 펼친 책이 꽤 된다 싶어 놀랍다. 어쩌면, 내 몸이 차츰 제자리를 찾으며 책 한 권 손에 슬쩍 쥐어도 금세 마음을 잘 가다듬어 꽤 많이 읽는 노릇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음모으기가 잘 된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둘째 죽을 먹이고 나서 토닥토닥 재우느라 마당에 앉아 해바라기를 할 때에 책을 퍽 읽기도 했다. 첫째 아이 노는 모습을 마당에서 바라보는 한편, 제비가 제비집 손질하는 모습을 살피다가 책을 제법 들추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고 했다. 오늘은 뒷밭 돌고르기를 조금만 했다. 이듬날에도 조금만 할는지 꽤 할는지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마무리짓자. 뒷밭 돌고르기를 마치면, 뒤꼍 땅뙈기를 빙 돌며 돌을 골라 보자. 빙 두르며 흙을 갈아 이곳부터 무언가를 심자. (4345.4.23.달.ㅎㄲㅅㄱ)

 

 

 

 

 

 

 

 

 

 

 

 

 

 

 

 

 

 

 

 

 

 

 

 

 

 

 

 

 

 

 

 

 

 

 

 

 

 

 

 

 

 

 

 

 

 

.. 그러고 보니, 요즈음 <숲 유치원>도 읽는데, 미처 얘기하지 않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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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제비 책읽기

 


  봄제비를 만난 지 이레쯤 됩니다. 엊그제부터 마을에서도 제비를 알아봅니다. 무섭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멎은 이듬날 우리 집 마당뿐 아니라 온 마을 곳곳에 제비가 무리지어 날아다닙니다. 아이들과 너른 들판을 걷자니 자그마치 백 마리가 훨씬 넘는 제비들이 이리저리 날고 춤춥니다.


  제비 날갯짓과 함께 달리고 뛰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합니다. ‘(중국)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온다’고 하는데, 제비가 남녘땅을 떠나 중국 강남으로 가는 멀고먼 바닷길은 쉴 수 없는 길입니다. 중국 강남에서 남녘땅으로 돌아오는 제비는 남녘땅에서 가장 끝자락 남녘에 맨 먼저 깃을 들입니다. 태평양을 건넌 제비는 해남이나 장흥이나 진도나 고흥 언저리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날갯짓을 쉴 수 있어요. 아마 어떤 제비는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금자리를 틀겠지요. 어떤 제비는 따사롭고 포근하며 들판과 멧자락 넉넉한 고흥에 그대로 눌러앉아 보금자리를 틀겠지요. 애써 북쪽으로 올라간 제비들은 더 넓게 도시가 펼쳐지는 곳에서 그만 먹이를 못 찾다가 더더 북쪽으로 올라가며 사람들끼리 그은 삼팔선을 넘을는지 몰라요. 공장 아닌 숲을 찾고, 커다란 아파트 아닌 작은 시골집을 찾겠지요. 고속도로나 기찻길 아닌 오솔길이나 고샅길을 찾겠지요.


  자동차 넘실대는 곳에서 제비가 살지 못합니다. 흙길이나 논밭이 있더라도 풀약을 치며 풀을 잡는 시골에서 제비가 살 수 없습니다. 제비는 조용하며 깨끗한 곳에서 둥지를 틀 수 있습니다. 제비는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곳에서 알을 까며 새끼를 돌볼 수 있습니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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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책꽂이 옮기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19.

 


  아주 커다란 책꽂이를 스무 개쯤 얻은 지 석 주가 지났다. 혼자서 이 책꽂이들을 나르고 자리잡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잡고 들면 그리 어렵잖이 나르거나 자리잡을 수 있지만, 혼자서 하자니 힘이 무척 부친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더러 도와 달라 할 만한 무게가 아니다. 혼자서는 등짐을 질 수 없을 뿐더러, 너비와 길이 모두 참말 크다. 두 짝을 맞붙여 세우면 책을 신나게 꽂을 만큼 좋은 녀석인데, 들어 나르기 참 버겁다.


  줄자로 길이와 너비를 잰다. 교실 문을 지나갈 수 있겠다고 느끼며 혼자 나른다. 골마루 한쪽에 세운 녀석을 십 미터 남짓 끌다가는 한쪽으로 눕히며 낮은 문턱 사이를 지나 밀어넣는데, 이동안 등판과 이마에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머리와 등짝과 두 손을 몽땅 써서 무거운 책꽂이를 밀어넣고 나서 한숨을 돌린다. 눕혀서 넣었기에 천천히 일으켜세운다. 그냥 일으켜세우면 천장에 닿는 만큼 옆으로 돌려 눕히며 세운다. 이러다 책꽂이 무게에 그만 손을 놓쳐 쿠웅 하고 넘어진다. 아래쪽 뒷판이 조금 깨진다. 마지막에 놓치다니.


  하나를 들였으니 다른 책꽂이도 이처럼 들이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높고 넓어 먼저 들인 책꽂이 자리하고 어떻게 어울리도록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창문 쪽에 맞붙이면 해가 너무 잘 들어오니 책이 바래어 안 된다. 창문을 좀 가릴 테지만, 돌려서 붙여야 할까.


  책꽂이 사이를 지르는 나무 한쪽으로 천장하고 이어 보는데, 이렇게 해서는 무게를 못 버틴다. 작은 나무토막으로 네모상자를 만들어 책꽂이가 천장하고 꽉 끼도록 넣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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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씨 날리는 책읽기

 


  아버지랑 둘이서 뒷밭 돌을 고르던 아이가 힘들다고 호미를 내려놓더니, 이내 다시 뒷밭으로 오며 풀꽃 따기를 한다. 다섯 살 어린이더러 몇 시간 밭일을 함께하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곁에서 거들며 놀다가 쉬다가 되풀이해야 하겠지. 뒤꼍 땅뙈기에 흐드러지려는 풀마다 꽃을 피운다. 들풀은 아이 키만큼 높이 자란다. 아이는 풀숲에 깃들어 꽃을 딴다. 풀씨를 맺은 송이를 입에 바람을 넣고 후후 분다. 꼭 민들레가 아니더라도 후후 불며 날릴 풀씨는 많다.


  누런 빛과 푸른 빛과 파란 빛 사이에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모든 빛깔이 또렷하고 맑다. 아이가 두 발로 서는 땅과 아이가 두 눈으로 바라보는 풀과 아이가 몸이며 마음으로 받아들일 하늘이 나란히 얼크러지는 곳이 아이한테 가장 아름다운 터전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한다면 세 가지 빛깔 사이에서 가르칠 때에 즐거웁겠다고 느낀다. 이제부터 흙땅 밟는 겨를을 차츰 늘려야겠다.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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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4-21 01:10   좋아요 0 | URL
류는 민들레씨만 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는데,,ㅎㅎ
살이 좀 오른것같네요, ,,너무 귀여워요,,

숲노래 2012-04-21 01:18   좋아요 0 | URL
키카 나날이 크면서 아주 듬직한 시골 어린이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류 어린이가 컸어도 풀씨 날리기는 늘 즐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