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사진과 석류꽃 몽우리 (도서관일기 2012.6.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멧딸을 따며 놀다가 둘째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둘째 아이가 잠든 김에 수레를 끌고 도서관까지 가기로 한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깊이 잠들었고, 아주 살짝 도서관 넷째 칸 갈무리를 해 본다. 몇 해째 상자에만 박힌 채 햇볕을 쬐지 못하던 여러 가지를 들춘다. 내가 고등학생 적 모은 최진실 님 사진 여러 장 나온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들어간 대학교에서 오려모은 박재동 님 그림판도 몇 장 보인다. 다섯 학기를 다닌 대학교 학보가 여러 장 나오고, 이무렵 내 밥벌이를 하며 지낸 신문사지국에서 돌리며 드문드문 모은 신문이 나온다. 1995년에 1995년치 신문을 모으며 ‘이 신문이 언제쯤 낡은 신문이 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금세 낡은 신문이 되겠지.’ 하고 여겼는데, 몇 해 흐르면 벌써 스무 해나 묵은 신문이 된다. 헌책방에서 그러모은 1970년대 〈이대학보〉가 보이고, 197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꽤 재미나구나 싶다. 아무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그야말로 바지런히 오려모으거나 통으로 갈무리하던 신문꾸러미를 그냥저냥 꽂기도 하고 반듯이 눕히기도 한다.


  수레에서 자는 둘째한테 자꾸 모기가 달라붙는다. 도서관 갈무리는 그만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이는 마을 이웃집 석류나무 밑으로 들어간다. 떨어진 석류꽃을 줍겠단다. 몽우리에서 봉오리로 맺지 못하고 만 누런 석류꽃을 본다. 아이는 석류나무 옆 감나무에서 흙땅으로 떨어진 감꽃을 두 손 가득 주워서 보여준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도서관이니까 책이 있어야 할 테고, 이런저런 낡은 신문이 있어도 좋겠지. 그런데, 이런 책 저런 신문 못지않게, 나무가 있고 풀이 자라며 꽃이 피어야 도서관다우리라 느낀다. 아무래도 가장 좋다 싶은 도서관은 숲이 아닐까.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도서관은 어린이가 아닐까.

 

 

 

 

 

 

 

 

 

 

 

(석류꽃 몽우리 사진은 다른 글에서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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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 쓰는 책읽기

 


  이제부터 글씨를 쓴다. ‘ㄱㄴㄷ’부터 쓰고 ‘가나다’도 쓴다. 아이 이름 ‘사름벼리’도 써 본다. 슬슬 쓰다가 ‘어머니’로 넘어가 보기도 한다. 아이는 하나하나 아주 힘을 주어 또박또박 쓴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글씨를 쓸 때에 그닥 힘을 안 주고 쓰는구나 싶다. 이렇게 글씨 하나마다 힘을 꼬옥꼬옥 주면서 단단히 눌러서 쓰면 깊이깊이 사랑이 아로새겨지겠지.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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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6-07 10:37   좋아요 0 | URL
그마음이 느껴져요,,

숲노래 2012-06-07 12:13   좋아요 0 | URL
오오, 울보 님네 아이도
이런 나날을 즐겁게 거쳤겠지요 @.@
 


 사름빛 책읽기

 


  올여름에도 첫째 아이 이름이 된 ‘사름’을 맞이한다. 우리 집에는 논이 없으나 이웃 집에는 모두 논이 있으니, 날이면 날마다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반짝반짝 눈부신 논물이 푸른 숲 멧자락을 비춘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걸쳐 논물은 새삼스레 바뀌는 그림을 끝없이 그린다. 옮겨심은 모가 뿌리를 튼튼히 내린 논을 들여다보면 볏모 빛깔이 그지없이 푸르다. 그런데, 아직 옮겨심지 않은 모도 모판에 꽂힌 모습을 바라보면 가없이 푸르다. 마을 이장님 댁 모판을 나르는데, 모판 한복판에 참개구리 한 마리 떡하니 앉아 골골 노래를 부르던걸.


  다섯 살 첫째 아이 사름벼리는 제 이름 넉 자 가운데 첫 두 글자가 비롯한 ‘사름’을 날마다 마주한다. 날마다 마주하면서 아직 ‘낱말과 이름’을 서로 맞대어 헤아리지는 못한다. 한 해를 더 살고 또 한 해를 새로 살면 시나브로 알아채며 즐길 수 있겠지.


  모 심는 기계에 모판을 실을 때에 일손을 살짝 거들며 어린 볏모가 얼마나 보드라운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이 보드라운 볏모가 보드라운 논흙에 뿌리를 내리고 보드라운 햇살을 먹는 한편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면서 보드라운 꽃을 피우고 보드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름빛은 사름빛이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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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두알 책읽기

 


  멧딸을 따러 네 식구 멧길을 오른다. 멧길은 밭둑을 따라 차츰차츰 비알이 진다. 먼먼 옛날부터 이곳 멧자락에 밭을 일구며 돌 쌓아 밭둑 이룬 분들 손길이 얼마나 깊이깊이 배었을까. 멧길을 올라 멧딸을 따기 앞서 마을 이웃집 앞을 지나가는데, 앵두나무 밑에 경운기를 대고 앵두알 따는 이웃 할매와 할배를 만난다. 우리더러 같이 먹자며 앵두알을 한 아름 따서 베푸신다. 나누어 받은 앵두알을 아이들도 어른들도 함께 먹는다. 둘째 아이는 한손에 한 알씩 쥐고는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이리 빨고 저리 빨고 하면서 논다. 작은 손에 작은 알 하나씩 조물딱조물딱 빨간 물 들으며 아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앵두씨를 심어 앵두나무 키우고 싶다 생각한다. 앵두씨 하나 우리 마당 가장자리에 심는다. (4345.6.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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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제비 책읽기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나라밖 동화책 번역이 꽤 많다. 이 가운데 하나로 《미운 새끼 오리》가 있다. 나는 아마도 어릴 적 이 책을 학교 학급문고에서 빌려 읽었을 텐데, 책이름이 ‘오리 새끼’ 아닌 ‘새끼 오리’인 줄 참 늦게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 헌책방에서 낡은 동화책 하나 찾아서 다시 읽기 앞서까지 으레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름이 내 혀와 입과 귀에 익숙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한국말로 옳고 바르고 알맞으며 살가이 이야기하자면 “새끼 아무개”이다. “아무개 새끼”라 하지 않는다. “아무개 새끼”처럼 읊는 말은 모조리 막말이다. “새끼 아무개”라 하면서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좋거나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리킨다. “소새끼 말새끼 닭새끼 개새끼”처럼 읊는 말은 몽땅 막말이다. 소도 말도 닭도 개도 사람한테 깎아내리는 말을 들을 까닭이 없지만, 사람 스스로 못난 바보가 되면서 이런 막말을 일삼는다. 곧,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며 여느 말을 보드라이 읊을 때에 “새끼 사람, 새끼 소, 새끼 말, 새끼 닭, 새끼 개”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나라밖 동화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붙인 《미운 새끼 오리》라는 이름 하나만 올바르다.


  할머니들은, 또 할아버지들은, 요즈음 도시에서는 듣기 어렵다 할는지라도 시골에서는 아주 홀가분하면서 넉넉하게 으레 듣는데, “아유, 귀여운 내 새끼, 왔니?” 하고 말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귀여운 내 새끼”이다. 왜냐하면 “새끼 사람”이니까.


  사람도 짐승도 ‘새끼’와 ‘어미’가 있다. “어미 소, 어미 닭, 어미 개”이듯 “새끼 소, 새끼 닭, 새끼 개”이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착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슬기롭게 할 수 있다. 조금조차 생각하지 않고, 조금조차 사랑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람은 거의 모두 엉터리로 한국말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앞뒤로 우리 집 처마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알에서 깬 새끼 제비들은 어미 제비가 바지런히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 둥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 만큼 컸다. 제비들이 놀랄까 봐, 또 우리 식구 고흥 시골마을로 옮긴 지 첫 해인만큼, 섣불리 제비집 안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올해가 가고 이듬해를 맞이하며 다시 새해를 맞아들이고 나면, 이제 제비들도 우리 식구하고 낯을 트고 한결 살가이 지낼 테니까, 그때에는 제비집 둥지를 살그머니 들여다보며 제비알도 보고 새끼 제비도 볼 수 있을까 하고 꿈꾼다.


  새벽 다섯 시 반, 첫째 아이가 쉬 마렵다며 일어나기에 손을 잡고 섬돌에 놓은 오줌그릇으로 내려와 오줌을 누인다. 오줌을 누이며 제비집 새끼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좋은 새벽이고 좋은 하루이다. 좋은 새날이고 좋은 아침이다. 쉬를 눈 아이를 자리에 다시 눕혀 재운다. 둘째 아이는 자꾸 뒤척여 무릎에 누여 토닥인다. (4345.6.4.달.ㅎㄲㅅㄱ)

 

 

 

 

.. 먹이 주는 제비 모습 사진으로 잘 보셨으면 추천 눌러 주셔요~~~ ㅋㅋㅋ ..

.. 요새 이런 모습 어디서 '돈 주고도 볼 수 없'어요~~~ ^^ ..

 

 

.. 새끼들 밥먹는 동안

   다른 어미 제비는 코앞 전깃줄에 앉아 지켜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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