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제비 책읽기

 


  봄을 맞이하던 올 사월에 우리 시골집 처마로 찾아든 제비들이 알을 까고 새끼를 먹여살린 지 두 달이 지납니다. 두 달이 지나며 새끼들은 어엿하게 자라고 이제 날갯짓을 익힐 무렵입니다. 날갯짓을 즐거이 익혀 마음껏 날 수 있을 때에는 어느새 가을이 찾아들 테고, 가을이면 제비들은 하염없이 먼길을 날아 태평양을 건너 따스한 새터로 가겠지요.


  날마다 제비 노랫소리를 듣고, 제비 밥차림을 바라보다가, 이제 어미 제비 두 마리가 갈마들며 빨랫줄에 앉는 모습을 누립니다. 두 달째 날마다 서로 바라보고 지냈기 때문인지, 그동안 조금 떨어진 전깃줄에만 앉던 제비들인데, 요즈음은 머리 위로 뻗으면 손이 닿을 만한 가까운 빨랫줄에 앉아 저희 둥지를 바라봅니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아서 널며, 부엌에 앉아 밥을 먹으며, 마루에 앉아 아이들과 복닥이며, ‘빨랫줄 제비’를 바라봅니다. 얼굴과 입과 꼬리와 깃과 몸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날씬하고 갸름하며 다부진 제비를 곁에서 지켜봅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를 바라보고, 나는 어미 제비랑 새끼 제비를 나란히 올려다봅니다.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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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자꽃 책읽기

 


  지난 2011년 가을, 전남 고흥 시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얻어 들어오면서,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던 밭에서 자라던 치자나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치자나무가 어느 나무인 줄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했어요. 뒤꼍에 치자나무를 스무 그루쯤 심었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지, 스무 그루쯤 되는 치자나무가 어느 녀석을 가리키는지 몰랐습니다.


  한 해를 지나 여름을 맞이하니,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는 밭에서 자라는 나무에 하얗게 꽃망울 맺힙니다. 참으로 하얀 조각과 같다고 느끼며 바라보다가, 문득 이 꽃망울 맺히는 나무가 그 치자나무였다고 깨닫습니다. 소담스레 큼지막합니다.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늦봄에 피어 이른여름에 지는 찔레꽃은 올망졸망 앙증맞은 하양이라면, 이른여름에 피는 치자꽃은 한 떨기 햇살 같은 하양이로구나 싶어요.


  여름바람이 치자꽃 하얀 꽃망울을 가볍게 스치며 온 들판을 두루 감돌아 갓 심은 볏모마다 사름빛을 반짝이며 시원스레 붑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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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어,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

 


  오래도록 살까 말까 망설이던 〈미래소년 코난〉 디브이디 일곱 장을 장만했다. 오늘 드디어 첫째 아이하고 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기 앞서 디브이디에 적힌 풀이글을 읽는데,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쓴 글을 바탕으로 빚은 만화영화가 아닌 줄 처음으로 깨닫는다. 원작은 ‘알렉산더 힐 케이(Alexander Hill Key)’라는 미국사람이 쓴 《The Incredible Tide》라 하고, 1970년에 나온 청소년 장편 과학소설이라 하는데, 일본에는 “殘された人びと”라는 이름으로 옮겨졌다 한다. “남겨진 사람들”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이름이라는데, 아직 한국에는 안 옮겨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르리라. 한국에도 어느 날 어떤 이름으로 조용히 옮겨졌다가 조용히 사라졌을는지. 그나저나, 이 원작소설을 한국에서 장만할 수 있을까 알아보니, 한국에 있는 책방에서는 장만할 길이 없는 듯하고, 아마존이라 하는 데에 알아보니, 자그마치 144달러. 게다가 일본 번역책 또한 장만할 길이 까마득한 듯싶다. 참말,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은 읽을 길이 없을까. 참말,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은 앞으로 한국말로 옮겨질 일이 없을까.


  보고 싶다. 이 원작소설을 보고 싶고, 우리 아이들이 이 원작소설을 한국말로 읽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하기를 빈다. 뜻있는 출판사에서 이 청소년문학을 한국말로 옮겨 펴내 주기를 빈다. (4345.6.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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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내린밤 2014-12-03 16:50   좋아요 0 | URL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영어판)은 웹에서 PDF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아래 주소입니다.
http://hinomaru.megane.it/cartoni/Conan/Tide.pdf
또는 http://www.highharbor.net/en/divers.html

함께살기님 말씀처럼 어디선가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햇살을 먹는 책읽기

 


  마을 비탈밭이 있는 뒷산으로 네 식구 함께 오른다. 비탈밭은 어디에서 끝나고 뒷산은 어떻게 이어질까 생각하며 이리저리 다니다가 딸밭을 한 번 보고는, 곧잘 이곳으로 찾아가 딸먹기를 한다. 다른 데에서는 딸을 따면서 모기에 물리지만, 이곳에서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 다른 데에서는 딸을 따며 딸만 딸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딸을 따고는 땅바닥에 풀썩 앉아 마을을 널찍하게 바라보며 쉴 수 있다.


  새빨갛게 익은 딸을 따서 병에 담는다. 첫째 아이랑 옆지기가 병 하나씩 들고 둘째 아이한테 틈틈이 먹이면서 맛나게 딸을 먹는다. 딸을 먹는 입은 빨간 물이 든다. 손도 빨간 물이 들고, 딸내음 밴다.


  들딸이든 멧딸이든 어느 누가 풀약을 치거나 비료를 주지 않는다. 오직 햇살이 딸밭을 돌본다. 오로지 빗물이 딸밭에 물을 준다. 그예 바람과 흙이 딸밭을 살찌운다.


  딸을 먹으며 햇살을 함께 먹는다. 딸을 먹으며 바람을 함께 마신다. 딸을 먹으며 내 몸으로 흙기운이 스며든다. 읍내 저잣거리에 나가 보면, ‘딸기’는 벌써 예전에 들어가고 안 보인다. 요즈음은 참외랑 수박이랑 곳곳에 널린다. 그런데, 오이도 참외도 박도 수박도 이제서야 꽃이 필 때인데, 어떻게 벌써 나올 수 있을까. 모든 저잣거리 모든 가게에 나온 참외나 수박이란 온통 비닐집에서 풀약과 비료로 키웠을 테지. 오월 끝무렵이나 유월 첫머리에 참외나 수박을 사다 먹는 사람은 햇살이나 바람을 먹지 못한다. 오직 풀약과 비료를 먹을 뿐이다. 지난 사월과 오월 첫머리에 가게에서 딸기를 사다 먹은 사람 또한 풀약과 비료를 먹었을 뿐, 막상 햇살과 바람은 못 먹었으리라 느낀다. 딸밭은 오월 한복판부터 유월 한복판까지 흐드러진다. 딸은 이무렵 새빨갛게 익으며 우리 몸과 마음을 새빨간 꽃빛과 햇빛으로 물들인다. (4345.6.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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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 책읽기

 


  해거름에 뒷밭에 물을 주다가 뽕나무에서 까만 오디가 떨어진 모습을 본다. 바람이 그닥 안 불었는데 오디가 떨어지네 하고 생각하며 한 알 두 알 줍는다. 뽕나무 가지가 퍽 높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오디를 따겠거니 싶더니, 이렇게 한 알 두 알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고 문득 깨닫는다. 안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달린 오디가 훨씬 많겠지. 날이 밝으면 오디를 더 줍고, 사다리를 챙겨서 신나게 오디를 따자고 생각한다. 들딸이랑 멧딸을 배부르도록 따먹으니, 이제 오디철이 되는구나 싶다. 식구들 모두 오디를 맛나게 먹으니 좋다. 말랑말랑한 오디는 흙과 햇살과 바람과 비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나무 한 그루를 살찌운 푸른 맛이다. (4345.6.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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