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개기와 책읽기

 


  빨래를 갠다. 갤 빨래가 참 많다. 궂은 날씨에 제대로 안 마른 빨래를 해가 쨍쨍 난 날 말리는 한편, 새 하루에 새롭게 한 빨래가 모이니 얼추 사흘치 빨래쯤 되는 듯하다. 그래도 이럭저럭 둘째 바지를 입힐 만큼 옷이 된다. 지난달 즈음, 둘째 옷을 한 상자 얻지 못했으면 아마 둘째 바지를 제대로 못 입혔을는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아니, 이렇게 옷을 못 얻었으면, 둘째 오줌가리기를 늦추면서 낮에도 늘 기저귀를 대야 했겠지. 오줌가리기를 하는 때라 낮에는 기저귀를 푼 채 두니 둘째 바지 빨래가 날마다 수북하게 나온다.


  개야 할 빨래를 방바닥에 죽 펼친다. 첫째 아이는 아버지가 빨래를 개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도 “나도 갤래.” 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동안 으레 “나도 개야지.” 하면서 옆에 달라붙더니, 개야 할 빨래가 수북하게 쌓여서 한숨을 쉬는 아버지 옆에 오늘 따라 안 달라붙는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왜 한숨을 쉬니. 집에서 집일 거들 사람이 없어서? 천천히 개면 되잖아. 빨래 개는 데에 한 시간이 걸리니? 한 시간 걸리면 어떠니? 느긋하게 하면 되잖아.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즐겁게 옷을 개지 못하면, 이 옷을 입을 사람한테도 좋지 못한 마음이 스며들잖아.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예쁘게 옷을 갤 때에, 이 옷에도 좋은 숨결과 예쁜 손길이 깃들 수 있잖아.


  빨래를 개는 아버지 곁에서 첫째 아이가 작은 책을 펼친다. 손으로 인형 만드는 이야기가 실린 일본 손바닥책이다. 얼추 마흔 해 남짓 묵은 오래된 책이다. 아이는 이 책에 실린 사진이 예쁘다면서 엎드려서 읽는다. 처음에는 엎드려서 읽더니, 곧 드러누워서 읽는다. 참 좋구나. 참 느긋하구나. 그래, 책은 좋은 몸과 느긋한 마음으로 읽어야 몸과 마음에 새록새록 스며들겠지.


  나는 빨래를 개고 아이는 책을 읽는다. 나는 빨래를 차곡차곡 개다가는 사진 몇 장을 찍고 아이는 책을 읽는다. 나는 빨래를 다 개고 아이는 책을 읽는다. 이제 나는 등허리가 쑤시고 결려 옆방으로 건너가 자리에 드러눕는다. 아이는 내도록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 (4345.7.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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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테이프 꽂기 (도서관일기 2012.7.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노래테이프 두 상자를 끌러서 꽂는다. 노래시디 한 상자도 꽂았다. 마땅한 자리가 생각나지 않기에, 빈 책꽂이 자리에 꽂는다. 두 겹으로 꽂는다. 어쨌든 자리를 적게 차지하도록 두 겹으로 꽂는데, 빈 책꽂이 자리가 아직 널널할 때에는 한 겹으로만 꽂고, 앞에 비는 데에는 다른 자잘한 것을 놓아 꾸며도 좋겠구나 싶기도 하다. 나중에 틈이 나면 더 손보기로 한다. 노래테이프도 한 해 넘게 상자에 갇힌 채 있다가 풀렸는데, 물기를 얼마나 먹었을까 모르겠다. 나중에 늘어지거나 해서 못 들을까 걱정스럽다만, 노래테이프를 들을 수 없다면, 이제는 이 테이프는 유물처럼 덩그러니 놓아야겠지. 참 오랫동안 나한테 고운 노래를 들려주던 테이프이니까, 앞으로는 곱게 쉬어도 좋으리라.


  내 옛 물건 상자를 끌르다 보니, 내 국민학생 적과 중학생 적과 고등학생 적 공책도 나온다. 어느 공책은 스멀스멀 곰팡이가 피려 한다. 눅눅한 공책이든 안 눅눅한 공책이든 해바라기를 시킨다. 둘째 아이가 서재도서관 안밖을 돌아다니다가 쉬를 누는데, 마침 내 공책들 옆에서 눈다. 애써 눅눅한 기운을 말리려 하다가 오줌을 뒤집어쓸 뻔했다.


  책꽂이 자리를 잡고 책을 꽂을 때에는 ‘서재도서관을 치우고 꼴을 갖춘다’는 모습이 환히 드러나는데, 자질구레한 짐을 치우고 바닥을 닦으며 사진을 곳곳에 붙일 때에는 ‘무언가 움직인 티’가 잘 안 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나날이 예쁘게 거듭난다고 느끼니까 이렇게 조금씩 손질하는 맛으로 살자. 큰아이는 사다리를 타고, 작은아이는 누나를 올려다본다. 둘 모두 널따란 서재도서관 골마루를 마음껏 달리거나 기거나 뛰면서 잘 논다. 사람들 살림집도, 사람들 마당도, 사람들 삶터도, 이렇게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거나 기거나 달리며 놀 만한 곳이라면, 따로 책이나 신문이나 영화나 무엇이 없더라도 사랑과 꿈이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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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악 테이프를 몇 년 전에 모두 정리해버렸어요. 비디오 테이프도 이번에 버릴거 같아요. 저렇게 꽂혀있는 테이프들을 보니, 아련하네요.

그런데 보라가 이제 잘 서는군요! 이뻐라...
(보라가 맞죠? 벼리가 따님이죠? 제가 40이 넘어간 이후로 기억력이 영..)

숲노래 2012-07-10 03:03   좋아요 0 | URL
둘 다 씩씩하게 잘 놀아요.
둘째도 한창 잘 걸어다니며 논답니다~

저는 노래테이프를 틈틈이 더 모으기도 해요~ ^^
 


 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일기 2012.7.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첫째 아이하고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지난해 십일월부터 책꽂이 자리를 잡고, 모자란 책꽂이를 새로 들인 다음, 상자에 담기거나 끈에 묶인 책을 거의 다 풀었다. 책꽂이 놓고 책 꽂는 데에 여덟 달을 들인 듯하다. 이제는 자질구레한 짐이랑 내가 어릴 때부터 쓰던 물건을 갈무리한다. 이 일까지 마치면 제법 도서관 꼴을 낼 만하리라 본다. 2007년 4월에 인천에서 서재도서관을 처음 열던 때에는 한 달 만에 우지끈 뚝딱 하듯 책꽂이와 책을 갈무리하고는 퍽 엉성한 대로 문을 열고는 조금씩 치우고 갈무리해서 이태쯤 지나서야 이런저런 꼴을 갖추었다. 모양새가 나기까지는 아무래도 이태는 걸리리라 생각하면서, 앞으로 언제까지나 이 터에서 예쁘게 책삶을 이루도록 좋은 꿈을 꾸어야겠다고 본다.


  아이는 집에 있어도, 서재도서관에 가도, 마실을 다녀도 좋다. 어버이가 즐거이 놀아 주면 어디에서라도 좋다. 어버이가 즐거이 놀아 주지 못할 때에는 어디에서라도 안 좋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란, 아이가 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찾도록 곁에서 이끌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일이라고 느낀다. 차근차근 좋은 생각을 품으면서 잘 살아 보자. 들길과 숲길 사이를 천천히 헤치면서 책누리에서도 예쁘게 놀 수 있게끔, 또 나부터 들길과 숲길과 책누리에서 예쁘게 노는 어른으로 살아갈 만하게끔, 마음을 곱게 잘 여미자.


  한여름이 되어 서재도서관 가는 길은 풀밭 길이 된다. 낫으로 풀을 치고 싶어도, 이 일까지 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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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수레에서 책읽기

 


  네 식구 저녁나절 살짝 마실을 한다. 둘째 아이를 걸리며 들바람 쐴 생각으로 나오면서 자전거수레를 민다. 걸리다가 힘들다 하면 앉힐 생각이다. 자전거수레는 자전거에 달면 아이들이 함께 타고 자전거마실을 하기에 좋고, 자전거에서 떼어 밀면 아기수레 구실을 하니 좋다. 아이들을 안 태우고 짐을 싣고 밀면 짐수레로까지 쓸 수 있다. 튼튼하고 널찍하다.


  가벼이 들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 아이가 수레에 앉겠다고 말한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을 생각이 없다. 혼자 씩씩하게 걷는 맛에 들려 둘째 아이는 마냥 걷겠다고 춤춘다. 아니, 둘째 아이는 춤추는 몸짓은 아니나, 아직 어설피 걷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춤을 추며 걷는 듯하다. 나와 옆지기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춤걸음’을 즐겁게 느낀다.


  자전거수레에 앉아 《우주소년 아톰》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첫째 아이는 집에 닿아 마당에 수레를 세우고 나서도 내릴 줄 모른다. 줄곧 들여다본다. 나는 곁에 서서 한참 바라본다. 아이는 한참 그대로 앉아 만화책에 빠진다. 이제 모기가 물지 모르니 집으로 들어와서 보라고 몇 번 말하니, 겨우 수레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온다.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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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매실 책읽기

 


  매화열매는 노랗다. 뒷밭에 매화나무 한 그루 있기 때문에, 이른봄에는 꽃을 보았고, 늦봄에는 푸르게 익은 열매를 보았으며, 이른여름을 지나 무르익는 여름이 된 요즈음 노랗게 익는 열매를 본다. 사람들은 으레 덜 익은 매화열매(매실)를 따서 효소를 담근다고 한다. 푸른매실을 약으로 써야 좋다고 말한다. 노란매실이 되면 약으로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퍽 옛날부터 이처럼 담가서 마셨을 테니까 그러리라 느낀다. 다만,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다시 매화나무로 자라자면 열매가 다 익고 나서 흙땅에 떨어져야 한다. 잘 익은 열매가 품은 씨앗이 흙으로 녹아들 때에 비로소 싹이 트면서 어린나무가 자랄 테니까.


  어디에서나 푸른매실만 먹거나 마신다 하기 때문에 매화열매가 어떻게 익는지 바라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았다. 이웃집 매화나무 열매는 덜 익은 푸른빛이었을 때 몽땅 땄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우리 집만 노랗게 익도록 그대로 두었지 싶은데, 노랗게 익은 매화열매를 바라보니 마치 살구열매 같구나 싶기도 하다. 우리 집이랑 맞붙은 밭뙈기에 나들이한 어느 이웃 젊은 아이가 우리 집 뒷밭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저 노란 열매 살구예요?” 하고 이녁 아버지한테 여쭈니, 이녁 아버지는 “아냐, 매실이야. 노란매실이야. 매실이 익으면 노랗게 되지.” 하고 가르쳐 준다. 나도 올해에 노란매실 달린 매화나무를 처음 보았지만, 여느 사람들도 거의 본 적이 없으리라 느낀다. 그렇지만, 살구랑 노란매실 빛깔은 많이 다르다. 모양새도 다르다. 나는 살구를 좋아하고 살구열매를 늘 먹으니까 눈으로 보면 금세 알아채지만, 그렇다고 살구열매랑 매화열매랑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느낌으로만 안다.


  옆지기는 노란매실을 먹으며 오얏 맛이 난다고 말한다. 나는? 음, 아직 잘 모르겠다. 오얏하고 살짝 비슷하달 수 있지만 오얏이랑 또 다른 대목이 있고, 살구하고는 맛이나 냄새가 확 다르고. 다섯 살 아이는 노란매실을 보며 “노란 자두네.”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노란매실은 ‘매실맛’이 날 뿐이다.


  가만히 생각한다. 먼먼 옛날 사람들은 노란매실 맛이 그리 좋지 않다고 여겼을까. 봄에 비와 바람이 잦아 푸른매실 잔뜩 떨어진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 깨진 푸른매실을 손에 쥐고는 아깝구나 하고 여기다가 문득 ‘덜 익은 매실에서 흐르는 진물이랑 이 진물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꽤 좋네’ 하고 느껴, 잔뜩 떨어진 푸른매실을 한번 효소로 담가 마시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푸른매실일 적에 따서 효소로 담갔을까. 푸른매실에서 얻은 물이 몸에 한결 좋거나 맛나다고 시나브로 여기는 바람에 노란매실을 열매로 먹기보다는 푸른매실로 먹고, 노란 열매는 살구 하나로 넉넉하리라 여겼을까. 매화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노란매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날마다 싱그럽고 소담스레 잘 익어 주렴.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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