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매실 책읽기

 


  매화열매는 노랗다. 뒷밭에 매화나무 한 그루 있기 때문에, 이른봄에는 꽃을 보았고, 늦봄에는 푸르게 익은 열매를 보았으며, 이른여름을 지나 무르익는 여름이 된 요즈음 노랗게 익는 열매를 본다. 사람들은 으레 덜 익은 매화열매(매실)를 따서 효소를 담근다고 한다. 푸른매실을 약으로 써야 좋다고 말한다. 노란매실이 되면 약으로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퍽 옛날부터 이처럼 담가서 마셨을 테니까 그러리라 느낀다. 다만,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다시 매화나무로 자라자면 열매가 다 익고 나서 흙땅에 떨어져야 한다. 잘 익은 열매가 품은 씨앗이 흙으로 녹아들 때에 비로소 싹이 트면서 어린나무가 자랄 테니까.


  어디에서나 푸른매실만 먹거나 마신다 하기 때문에 매화열매가 어떻게 익는지 바라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았다. 이웃집 매화나무 열매는 덜 익은 푸른빛이었을 때 몽땅 땄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우리 집만 노랗게 익도록 그대로 두었지 싶은데, 노랗게 익은 매화열매를 바라보니 마치 살구열매 같구나 싶기도 하다. 우리 집이랑 맞붙은 밭뙈기에 나들이한 어느 이웃 젊은 아이가 우리 집 뒷밭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저 노란 열매 살구예요?” 하고 이녁 아버지한테 여쭈니, 이녁 아버지는 “아냐, 매실이야. 노란매실이야. 매실이 익으면 노랗게 되지.” 하고 가르쳐 준다. 나도 올해에 노란매실 달린 매화나무를 처음 보았지만, 여느 사람들도 거의 본 적이 없으리라 느낀다. 그렇지만, 살구랑 노란매실 빛깔은 많이 다르다. 모양새도 다르다. 나는 살구를 좋아하고 살구열매를 늘 먹으니까 눈으로 보면 금세 알아채지만, 그렇다고 살구열매랑 매화열매랑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느낌으로만 안다.


  옆지기는 노란매실을 먹으며 오얏 맛이 난다고 말한다. 나는? 음, 아직 잘 모르겠다. 오얏하고 살짝 비슷하달 수 있지만 오얏이랑 또 다른 대목이 있고, 살구하고는 맛이나 냄새가 확 다르고. 다섯 살 아이는 노란매실을 보며 “노란 자두네.”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노란매실은 ‘매실맛’이 날 뿐이다.


  가만히 생각한다. 먼먼 옛날 사람들은 노란매실 맛이 그리 좋지 않다고 여겼을까. 봄에 비와 바람이 잦아 푸른매실 잔뜩 떨어진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 깨진 푸른매실을 손에 쥐고는 아깝구나 하고 여기다가 문득 ‘덜 익은 매실에서 흐르는 진물이랑 이 진물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꽤 좋네’ 하고 느껴, 잔뜩 떨어진 푸른매실을 한번 효소로 담가 마시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푸른매실일 적에 따서 효소로 담갔을까. 푸른매실에서 얻은 물이 몸에 한결 좋거나 맛나다고 시나브로 여기는 바람에 노란매실을 열매로 먹기보다는 푸른매실로 먹고, 노란 열매는 살구 하나로 넉넉하리라 여겼을까. 매화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노란매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날마다 싱그럽고 소담스레 잘 익어 주렴.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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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박 열매 국물 책읽기

 


  마당가 후박나무 열매가 알차게 맺혔다. 온 마을 멧새와 들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후박 열매 따먹으러 나들이한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밥잔치를 베푼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논다. 첫째 아이가 후박나무 열매를 주워서 세발자전거 바구니에 담는다. 떨어진 후박잎도 담는다. 작은 바가지로 물을 붓는다. 그러고는 “자, 국이야.” 하면서 동생이랑 먹는 시늉을 한다.


  세발자전거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후박나무 열매는 알맹이 없이 빨간 ‘알맹이 받침’만 있다. 멧새와 들새가 열매를 따먹으며 받침만 밑으로 떨구었구나 싶다. 후박나무는 겨우내 푸른 잎사귀로 푸른 봄을 기다리는 노래를 불러 주었고, 봄에는 환한 꽃망울로 예쁜 나날을 들려주었으며, 이제 여름에는 아이들 노리개를 선물해 준다. 풀잎과 풀꽃과 나뭇잎과 나무열매는 모두 아이들한테 좋은 놀잇감이 된다. 아이들은 손으로 풀과 나무를 만지고, 눈으로 풀과 나무를 바라보며, 몸으로 풀이랑 나무랑 동무가 된다.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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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앞에 누운 책읽기

 


  끝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 사진 한 장 찍을까 생각하며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들어선다. 사진기를 들어 첫 장을 찍으려는데 피아노 걸상에 누워서 한손으로 피아노를 치던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본다. 헤헤헤 웃으면서 일어나 반듯하게 앉는다. 그러고는 이제껏 반듯하게 앉아서 피아노를 치던 양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아이도 방 한쪽 끝에 드러누워 누나처럼 놀았지 싶다. 누워서 놀면 어떻고, 앉아서 놀면 어떠한가. 재미있게만 놀면 되지. 아이들아, 온 하루는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가장 좋은 삶이란다. (4345.7.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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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책읽기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을 바라봅니다. 숲이 늘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를 가득 채운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을 바라봅니다.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이 언제나 생각으로 스며듭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마음으로 스민 숲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거나 노래로 빚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으로 스며든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하고 얽힌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이나 노래나 춤이나 영화로 빚습니다.


  씨앗을 심어 푸성귀와 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씨앗과 풀과 꽃과 열매 모두 마음으로 담다가는 그림으로 새로 빚습니다. 씨앗을 심지 않았으나 풀이랑 나무랑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풀이랑 나무가 한 철 두 철 살아내는 흐름을 마음으로 담으면서 천천히 그림으로 새삼스레 빚습니다.


  삶으로 글을 씁니다. 삶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삶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일구는 삶은 내 글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은 그림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내가 보살피는 삶은 내 사진으로 예쁘게 태어납니다. (4345.7.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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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필름스캐너 소리 듣는다

 


  얼마만에 듣는 필름스캐너 소리인지 모릅니다. 몇 달만에 필름스캐너를 돌리는가 가만히 어림합니다. 한 해 남짓 묵힌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사흘만에 받고는 이른아침에 필름 한 통 여섯 장씩 필름스캐너에 앉힙니다. 가장 크게 긁는 사진파일이기에 여섯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꽤 오래 걸립니다. 서른여섯 장을 모두 긁으려면 한 시간 이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필름 여섯 장을 필름스캐너에 앉히고 빨래를 하더라도 스캐너는 그대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필름 한 장 크기는 고작 35밀리미터. 35밀리미터 필름 한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몇 분 걸립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꼼꼼히 아주 천천히 아주 낱낱이 아주 찬찬히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사진기에 필름을 감아 찍을 때에도 더디 걸리고, 다 찍은 필름을 빼내어 현상을 맡길 적에도 더디 걸리지만, 현상된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파일을 이루기까지 또 더디 걸립니다.


  나는 더디 걸리는 오랜 길을 더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더디 걸리며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채고 몇 번 손길을 타면 금세 태어나는 디지털파일이라 해서 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면 어떠한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는 ‘아주 값진’ 기계라거나 ‘값진’ 기계는 아닙니다. 낮고 작은 기계입니다. 그래, 돈셈으로 치면 낮고 작은 기계라 할 텐데, 나는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한테 늘 말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아.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나는 네가 믿음직해.


  나한테 필름사진기를 빌려준 분이 이 사진기에 담은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필름값을 빌려준 분이 이 필름마다 담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야기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꼼꼼히 써레질을 합니다. 흙일꾼 할배는 소를 몰아 논을 갈고, 나는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내 사랑을 꿈꿉니다. 좋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하나 태어나는 날을 맞이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4345.6.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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