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과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2.7.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사진잡지 《월간 사진》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달에 창간 마흔여섯 돌이라 하면서, 특집기사를 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사진을 즐기다’라는 꼭지가 있어, 나한테도 몇 가지를 여쭌다고 한다. 사진책을 읽는 즐거움, 가장 좋아하는 사진책 하나, 사진책을 읽는 버릇, 사진책을 잘 갖춘 책방, 사진책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섯 가지를 여쭌다. 어느 하나 쉬 말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모두들 퍽 길게 적을 만한 물음이다. 그러나 짤막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니까 여러모로 간추려서 적어 본다. 새벽에 바지런히 글을 쓰서 누리편지를 띄운다. 아침에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잡지 기사에 사진을 함께 싣는다 하기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야 한다. 이렁저렁 도서관 청소를 하고 나서 책 사진을 찍는다. 책 사진을 찍는 김에 오랜만에 ‘사진책 자리’도 사진으로 찍는다. 이제 도서관 바닥에 자질구레한 것이 거의 없는 터라, 어디에서 어떻게 찍어도 퍽 그림이 된다고 느낀다. 책꽂이 벽에 붙인 사진도 좋은 그림이 된다. 사진이 그림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 누리편지를 다시 보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책으로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2007년부터 오늘 이때까지 달삯을 꼬박꼬박 치르면서 ‘사진책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벌이가 마땅하지 않으면서 달삯을 치르기란 벅찬 일이라 할 만하지만, 이곳 ‘사진책 서재도서관’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이어가기를 바라는 사람들 따순 손길에 힘입어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킬 수 있다. 나라에서나 지역정부에서나 내 서재도서관을 도운 적은 없다. 아마,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생각이 있었으면, ‘국립 사진도서관’이나 ‘시립(또는 군립) 사진도서관’을 세우지 않았을까. 꼭 번듯한 건물로 세워야 할 ‘사진도서관’ 또는 ‘사진책도서관’은 아니다. 자그마한 골목집 하나를 알맞춤한 값으로 사들여서 예쁘게 꾸미면 된다. 나라에서도 지역정부에서도 이 같은 일을 안 하니까, 나는 내 힘으로 이 일을 한다. 사진과 사진책을 사랑하고 싶은 이라면, 전남 고흥이 퍽 먼 시골로 느낀다 하더라도 스스럼없이 찾아오리라. 책과 사진을 누리면서 좋은 숲과 시골과 자연을 나란히 누리리라.


  사람은 책만 볼 수 없다. 사람이 책을 보자면, 책이 태어나는 밑바탕이 되는 숲을 함께 보아야 한다. 숲을 느끼며 책을 볼 때에 비로소 삶도 사랑도 사람도 슬기롭게 깨달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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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풀 책읽기

 


  수박은 열매이기 앞서 풀이다. 참외도 오이도 당근도 모두 참외풀, 오이풀, 당근풀이다. 작은 씨앗 하나에서 비롯하기에, 참외씨 없이는 참외가 없고, 당근씨 없이는 당근이 없으며, 오이씨 없이는 오이가 없다. 큼지막해서 십 킬로그램이 넘어가기도 하는 수박 또한 아주 작아 한 그램조차 안 되는 씨앗이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


  마당 텃밭 한켠에서 수박풀이 돋는다. 수박씨를 심은 적은 없지만, 수박씨를 몇 차례 뿌린 적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싹을 틔운다. 수박풀은 씩씩하게 잘 자라다가 그만 시들시들하고 만다. 왜 그러한가 하고 들여다보니 줄기가 비틀렸다. 왜 비틀렸지? 아이들이 놀다가 그만 수박풀을 잡아당겨서 끊어질랑 말랑 되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풀을 뽑듯 아이들이 수박풀도 뽑으려고 하다가 잘 안 뽑히니까 비틀다가 줄기가 그만 달랑달랑 되었을까.


  수박풀이 씩씩하게 자라나 수박꽃을 피우고 수박꽃이 찬찬히 여물어 수박열매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이 수박풀은 그만 시들어 죽을 듯하다. 가느다란 줄기가 다시 힘을 내어 살아날 수 있을까. 수박풀은 끈질기면서 힘찬 기운을 뽐내어 새롭게 잎사귀를 뻗고 줄기를 이을 수 있을까.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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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2-07-12 18: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풀이죠^^ 전혀 생각도 못했네요~~

숲노래 2012-07-13 09:19   좋아요 0 | URL
모두 좋은 풀이에요
 


 무릎에 얹은 책

 


  작은 아이가 다리에 그림책을 얹고 읽는다. 작은 아이한테 그림책은 무척 큰 책이다. 다리를 곧게 펴고 앉아 그림책을 얹으면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책으로 덮인다. 나무로 빚은 종이책이 아이 살결에 닿는다. 나무내음과 나무빛이 서린 책이 아이 살갗에 닿는다.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에서 푸른 숨을 마시는 아이는, 나무한테서 목숨을 얻어 빚은 종이책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읽는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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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에서 책읽기

 


  네 식구 함께 여수로 마실을 갑니다. 도시사람이 자주 찾는다 하는 여수바다는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다른 무엇보다 여수에 한 군데 씩씩하게 뿌리내려 책살림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형설서점)〉이 궁금합니다. 여수시가 여수다운 삶터 빛을 곱게 돌보도록 생각밭을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은 어떠한 이야기로 책삶을 나누는가 궁금합니다.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달려 읍내로 나옵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사십 분 남짓 달립니다. 한 시간 훌쩍 넘는 시외버스에서 두 아이와 옆지기가 죽을 동 살 동합니다. 나는 아무 말을 안 했지만 나도 속이 메스껍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다가 이웃 가까운 도시로 나오는 마실길만 하더라도 참 고단하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여수 버스역에서 내린 다음 택시로 갈아탑니다. 택시삯 3900원을 들여 여수경찰서와 여수등기소 사이 헌책방으로 찾아갑니다. 택시 일꾼은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모릅니다. 그래도, 여수 버스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는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잘 압니다.


  택시는 엑스포를 펼친다는 곳 옆을 끼고 달립니다. 퍽 먼발치에서도 우람하게 지은 건물이 보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저 우람한 건물에 들어가서 무언가 구경하려고 몇 시간이고 줄을 선다고 합니다. 아마 구경거리가 많으니까 저곳으로 찾아가겠지요.


  택시를 타고 달리는 짧은 길이지만, 여수시에서는 이웃 다른 도시에서와는 좀 다른 빛깔을 느낍니다. 여수하고 이웃한 순천이나 광양하고만 대더라도, 여수 시내에서는 푸른 빛깔이 꽤 짙습니다. 가까이에 숲이 있고, 곁에 숲이 있으며, 둘레에 숲이 있습니다. 여수도 순천도 갯벌이나 바닷가에 온갖 건물과 아파트와 시설을 때려지으면서 관광산업을 북돋우려 똑같이 애쓰기는 하지만, 여수에는 아직 건물이나 아파트나 시설에 덜 밀리거나 안 밀린 숲이 제법 있습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이곳 여수에서 책숲을 돌보는 일꾼 두 분이 땀흘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풀숲이 있어 이곳 여수에서 이야기숲을 꿈꾸는 일꾼 두 분이 책손을 기다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이 적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뿐 아니라 여수 새책방도 안 적힙니다. 관광길그림이건 이런저런 길그림이건 책방을 하나하나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내는 관광길그림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그려 넣지만, 부산 시내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알뜰히 그려 넣지는 않아요.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대구에서도 광주에서도 대전에서도 길그림에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제대로 그려 넣지 않아요.


  그렇지만, 책방 일꾼은 스스로 책사랑을 빛내며 예쁜 책길을 걷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들은 책사랑이 빛나는 책길을 함께 걷습니다.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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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도서관 이야기책 《삶말》 3호를 만듭니다. 오늘 사이에 얼추 마무리를 짓고 이주에 인쇄소에 넘기면 다음주부터는 책을 부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6쪽으로 내야 종이값을 빠듯하게 맞추는데, 《삶말》 3호는 40쪽이 될 듯합니다. 새로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실 분이 늘어나면 서재도서관 이야기책 엮을 때에 한결 수월할 텐데, 좋은 님들이 즐겁게 지킴이가 되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름비 쏟아지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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