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글 + 그림 (2022.5.16.)

― 광주 〈ㅊ의 자리〉



  푸른배움터를 마칠 무렵까지 ‘우리말처럼 보이는 적잖은 말’은 우리말이 아니고 일본말인 줄 몰랐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이 대목을 안 가르쳤고, 흘려넘겼고, 배움수렁(입시지옥)에 어린이·푸름이를 몰아넣기만 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서울을 비로소 만나고 여러 또래나 윗내기를 만나면서 ‘우리나라에서 서울 아닌 데에서 사는 사람은 다 바보일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모두 서울로 쏠리기도 했지만, 서울내기처럼 숱한 책을 마음껏 읽을 터전은 다른 고장에 없더군요.


  큰고장을 아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며 돌아보노라면, ‘서울에서는 종이꾸러미로 배우는 길이 가장 넓을’ 수는 있어도 ‘종이가 온 숲을 배우는 길은 가장 막히고 좁’다고 느껴요.


  총칼로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짓밟고 괴롭힌 일본을 나무라거나 미워하는 분은 많되, 일본사람이 지어서 이 나라에 심은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말씨를 하나하나 털어내는 분은 없습니다. ‘적지도 않고 없’습니다. 다들 그냥 씁니다. ‘사회·문화·정치·학교’ 같은 한자말도 일본사람이 머리를 굴려 엮은 한자말입니다. ‘도서관·서점·출판사’ 같은 한자말조차 일본사람이 퍼뜨린 한자말입니다.


  총칼굴레(일제강점기)에서 홀로서기(독립운동)를 꿈꾼 분들은 일본말 아닌 우리말을 되찾으려 했고, 몰래 한글을 살리면서 지켰고, 우리 삶과 넋과 생각을 담을 우리말을 새로 지으려 했습니다.


  그냥그냥 ‘만화책’이란 일본스런 한자말을 써도 안 나쁘지만, 굳이 ‘글 + 그림’이라는 얼개를 꽃처럼 피우는 결을 헤아리면서 ‘그림꽃책’처럼 새말을 엮어 봅니다. 그림책하고 그림꽃책(만화)은 닮되 달라요. 그림꽃(만화)을 안 읽는 사람은 그림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모를 뿐 아니라, 알 마음조차 없지 싶습니다만, 아름다운 그림꽃을 알아보고 손에 쥐기를 바라는 새 이름입니다.


  광주에서 〈일신서점〉하고 〈광일서점〉을 들르고서 〈ㅊ의 자리〉로 찾아옵니다. 책집이면 그냥 가면 되리라 여겼는데, 미리 여쭈어야 한다더군요. 일본 한자말로 ‘예약제’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미리 여쭙기로 하고서 조용히 둘러봅니다.


  가을은 모두 살찌우는 볕이고, 봄은 모두 깨우는 빛입니다. 겨울은 모두 꿈꾸는 밭이고, 여름은 모두 노래하는 별입니다. 철마다 다른 결을 헤아립니다. ‘이름없는(무명)’ 사람은 없듯, ‘들꽃같은’ 사람이나 ‘들풀같은’ 사람이 있고, ‘바다같’거나 ‘하늘같’거나 ‘숲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ㅊ이라는 닿소리를 혀에 얹으며 ‘철’을 생각합니다. 철마나 찬찬히 착하게 초롱초롱 읽습니다.


ㅅㄴㄹ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장화와 열 사람, 글항아리, 2021.9.3.)

《숨을 참는 아이》(뱅상 자뷔스 글·이폴리트 그림/김현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22.3.21.)

《아무튼, 순정만화》(이마루, 코난북스, 2020.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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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말씨앗 (2022.7.26.)

― 인천 〈아벨서점〉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요. 모든 삶은 살림살이(자급자족)에서 태어나고요. 모든 살람은 숲(자연)에서 태어나는데, 모든 숲은 작은씨앗 한 톨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작은씨앗은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사랑은 꿈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꿈은 마음에서 태어나고, 모든 마음은 생각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생각은 우리 스스로 ‘참다운 나’라는 별빛을 품는 넋에서 태어나는데, 모든 넋은 다 다른 나이면서 너예요. 모든 다 다른 나하고 너는 새롭게 삶을 지으려고 터뜨리는 첫말로 태어납니다.


  ‘숲’에 있으면, 숲이 살림터이자 배움터이면서 사랑터로 나아갈 만합니다. 《아나스타시아》(블라지미르 메그레 글/한병석 옮김) 열 자락을 천천히 읽어 되읽어 본다면 누구나 스스로 알아차리실 만하지요. 숲에서 살림을 가꾼다면 숲빛을 읽으면서 스스로 푸르면 즐거워요. 서울(도시)에서 살림을 일군다면 숲빛을 노래하는 책을 곁에 두면서 하늘빛을 늘 새록새록 가슴으로 안으면 파란노을로 밝고요.


  인천 배다리에 깃들면서 〈아벨서점〉에 들릅니다. 오늘은 책을 조금만 돌아보자고 생각하지만, 하나를 쥐면 둘이 보이고, 셋이 뜨이며 넷을 품습니다. “그래, 시골집에서 두고두고 읽을 책이라고 여기자.” 하고 생각합니다.


  바깥(사회)에서 보는 대로라면 아이들은 20살부터 ‘밖(사회)’으로 나아가야겠지만,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짓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아이들은 “늘 보금자리라는 아늑한 터전(사회)”에 즐겁게 있어요. 굳이 “돈을 벌거나 부딪혀야 하는 어른나라(기성세대 중심 질서)”로 나아가야 하지 않아요. 어른나라에서 말하는 ‘청소년 복지나 정책’은 모두 책상물림 벼슬꾼(공무원)이 돈 쓰는 틀(예산 소모)에서 맴도는데, 제도권학교를 다녀야만 이 부스러기 울타리를 받더군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스스로 천천히 슬기로이 풀어나갑니다. 스스로 천천히 삶·살림을 풀어나가며 어른으로 자라기에 스스로 천천히 말꽃을 터뜨려요. 삶·살림을 둘러싼 말을 스스로 짓습니다.


  배움터를 오래 다닐수록 말짓기를 못 하더군요. 배움터를 안 다니고서 삶이며 살림을 손수 짓는 사람은 말짓기를 스스로 하고요. 배움터를 오래 다니기에 ‘글쓰기 아닌 글꾸미기’를 한다면, 배움터를 기웃거리지 않기에 ‘글쓰기·삶쓰기·살림쓰기’를 ‘사랑쓰기’로 잇는 실마리를 스스로 알아차립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 아이들이 배움터를 오래 다녀야 한다면, 우리 말글은 비틀거리거나 무너질 만합니다. 이제는 삶·살림을 사랑이란 숲빛으로 마주할 때입니다.


ㅅㄴㄹ


《북한여성》(이태영, 실천문학사, 1988.3.30.)

《숨쉬는 책, 대표작가 대표작품》(이청준 외, 오상, 1982.9.20.첫/1987.5.2.2벌)

《밤마다 꾸는 신기한 꿈, 꼬마 탕이 배워 나가는 재미있는 한자 이야기》(리자 브레스네르 글·프레데릭 망소 그림/윤정임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0.6.25.)

《바람의 사상, 시인 고은의 일기 1973∼1977》(고은, 한길사, 2012.12.10.첫/2017.12.20.4벌)

《남자현》(강윤정, 지식산업사, 2018.12.21.)

《ABE 16 안네》(에른스트 쉬나벨/신동춘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4.8.31.)

《거대한 그물》(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이경식 옮김, 종로서적, 1981.8.30.)

《靑春을 불사르고》(김일엽, 중앙출판공사, 1994.3.5.개정 초판)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이오덕, 청년사, 1977.5.10.첫/1986.5.30.11벌)

《現代女性敎養講座 5 知性의 薔徵》(배영원 엮음, 계몽사, 1963.8.15.)

《쌩 떽쥐뻬리 選集 4 城砦 下》(쌩 떽쥐뻬리/염기용 옮김, 범우사, 1975.11.25.)

《敎育과 文化的 植民主義》(마틴 카노이/김쾌상 옮김, 한길사, 1980.11.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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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돋이하는 애벌레 (2022.7.19.)

― 연천 〈굼벵책방〉



  책집을 잘 모르는 분이 많으나, 적잖은 사람들은 책집마실을 할 겨를이 드무니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바쁘고, 어른은 어른대로 바쁘거든요. 아이들은 배움터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스스로 못 나서기 일쑤요, 배움터 길잡이 가운데 푸름이를 이끌고 책숲마실을 누리는 이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이제는 새로 여는 마을책집 지기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글을 싣는 새뜸(언론)이 조금 생겼지만 턱없이 적습니다. 예전에도 새뜸은 마을책집 지기 목소리를 아예 안 다루다시피 했어요. 잘 봐요. 새뜸에 마을사람 목소리가 나오나요? 새뜸에 시골사람 목소리가 나오나요? 새뜸에 고기잡이나 흙지기나 어린이 목소리가 나오나요? 누리글집(블로그·카페·인스타)이 날개돋지 않았다면 새뜸에서는 마을책집 목소리에 귀를 안 열었으리라 느낍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목소리는 우리가 내면 됩니다. 책집마실을 안 하는 글꾼(기자·작가)이 책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책집은, 그림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미술관입니다. 책집은, 사진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사진전시관입니다. 책집은, 그냥 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도서관입니다. 책집은, 책손이 문득 드나들기만 해도 쉼터이자 만남터이자 수다터입니다. 책집은, 숲에서 자란 나무로 빚은 책을 함께 나누기에 푸른터입니다.


  어린이책을 놓기에 어린이가 문득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느긋이 쉬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노래책(시집)을 놓기에 시끌벅적한 바깥(도시문명)을 잊고서 고요히 노래에 마음을 적시다가 삶자리로 돌아갑니다.


  연천마실을 했고, 〈오늘과 내일〉에 들렀고, 〈굼벵책방〉으로 찾아옵니다. 곁에는 말이 달리는 숲뜰이 있습니다. 굼벵이가 오래오래 나무뿌리 곁 흙을 품고서 꿈을 꾸고 나면,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애벌레 몸을 벗고는 날개를 달고서 노래하고 하늘을 가릅니다. 화살꽃(화살표)을 따라 〈굼벵책방〉에 들어서면 천천히 그림꽃이 피는 결을 누릴 만합니다. 꿈꾸며 날아가는 길처럼 그림책집을 가꾼 손길은 ‘또다른 책짓기’입니다.


  다 다른 곳에서 오늘 이 삶을 짓기에 저마다 새롭게 글그림을 여밀 만합니다. 책읽기란, ‘글쓴이하고 한마음(동의) 되기’가 아닌, ‘글쓴이 곁에서 함께 생각하기’입니다. 생각해 보고서 한마음이 될 수 있고, 생각해 보았기에 새마음으로 이야기를 펼 수 있습니다. 요새 적잖은 그림책은 “당신도 동의하세요!” 하고 윽박지르는 듯합니다. 예전엔 ‘교훈주의·동심천사주의’가 춤추었고, 요새는 ‘교훈 강요·캐릭터’가 춤추는데, 굼벵길을 꿈·숲·노래로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ㅅㄴㄹ


《깜장이》(다나카 기요/김숙 옮김, 북뱅크, 2022.3.15.)

《빨간 마음》(브리타 테켄트럽/이소완 옮김, 위고, 2022.5.20.)

《The Ultimate Book of Horse》(Sandra Laboucarie 글·Helene Convert 그림, Twirl, 2020.)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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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빛 (2022.6.3.)

― 수원 〈책 먹는 돼지〉



  배우는 길이 끝난다면, 늙고 낡아서 죽음으로 가는 끝장이란 뜻입니다. 늘 배우는 사람이라면, 늙거나 낡는 일이 없어 늘 삶을 새롭게 비추는 오늘입니다. 배움길하고 죽음길 사이가 무엇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둘레를 보며 절로 느낍니다. 고개숙여 배우거나 잘잘못을 다스리는 사람은 환하고, 고개숙일 줄 모르거나 잘잘못을 등지는 사람은 어두워요.


  수원 세류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수원나루부터 세류나루 사이는 부릉길이 매우 넓은데, 부릉거리는 큰길 안쪽 골목길은 호젓합니다. 햇볕이 고루 비추고, 바람이 알맞게 드나들어, 마을이 꽃빛하고 풀빛이 어우러집니다. 지붕보다 웃자란 나무가 곳곳에 있고, 새가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새가 부딪히지 말라고 높다란 담에 새무늬를 새기는 데가 늘어납니다만, 풀꽃나무가 우거지는 터로 가꾸면 될 일입니다. 새가 내려앉아 날개를 쉬면서 벌레잡이를 할 풀숲이 있으면 걱정거리가 없어요. 그러나 이 나라 벼슬꾼이나 글꾼은 새바라기도 아니고 숲바라기도 아닌 터라, 자꾸 잿빛으로 올릴 뿐이요, 서울타령입니다.


  빛살을 느끼고 발자국을 느끼면서 〈책 먹는 돼지〉에 닿습니다. 다른 마을책집도 비슷합니다만, 부릉이를 끌고 찾아가면 마을빛을 못 느끼니, 부디 마을책집에는 걸어서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마을책집에는 책을 더 많이 사러 가지 않습니다. 마을책집에서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훌륭한 책을 만나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높은 책은 마을책집하고 안 맞습니다. 걷는 손길을 담고, 새랑 숲 곁에 있는 책이야말로 마을책집하고 맞습니다.


  서로 동무라면 어떻게 어울리면서 함께 기쁘고 배부르면서 새롭게 놀 적에 까르르 웃음꽃이 피어나는지 알아요. 사람은 새랑 동무인가요? 사람은 풀벌레랑 이웃인가요? 하나씩 셈을 해서 똑같이 놓는 나눔도 가끔 있을 테지만, 배고프고 가난한 이한테 더 내주는 길이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지음이(작가)를 하고 싶다면, 스스로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 됩니다. 무엇보다 모든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은 숲에서 깨어나니, 숲이 스스로 짓는 결을 스스럼없이 마주하고 맞아들여서 녹여내면 넉넉합니다. 꾸미는 글이나 억지로 채우는 글은 ‘지음’이 아닌 ‘꾸밈·눈속임·베낌’에서 멈출 뿐이에요. ‘눈치 아닌 눈길’을 가다듬으면, 누구나 저마다 즐겁고 슬기로이 지음빛이 될 만합니다. 마을을 품으면 마을지음이로 섭니다. 숲을 담으면 숲지음이로 웃습니다. 바다를 안으면 바다지음이로 너울거립니다. 누구나 지음이로 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이이효재》(박정희, 다산초당, 2019.9.9.)

《나선》(장진영, 정음서원, 2020.10.12.)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권지영 글·소중애 그림, 단비어린이, 2022.1.8.)

《옥춘당》(고정순, 길벗어린이, 2022.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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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을 먹지 않는 (2022.5.24.)

― 인천 〈딴뚬꽌뚬〉



  바다가 살아나려면 숲을 살리면 됩니다. 숲을 살리려면 바다를 살리면 돼요. 들숲바다는 늘 하나예요. 이 들숲바다를 살리려면 들숲을 가로지르는 부릉길(찻길)하고 바닷가에 두른 부릉길을 없앨 노릇입니다. 나무가 마음껏 자랄 빈터를 두어야 하고, 풀죽임물을 이제는 치워야 하며, 아이어른 누구나 홀가분히 거닐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마을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들숲바다가 싱그러운 곳에서 누구나 즐겁고 아름다이 살아갈 만합니다. 들숲바다가 없거나 죽어가는 곳이라면 누구나 매캐하고 메마른 나날이게 마련입니다. 서울로 뻗는 모든 길은 아침저녁으로 죽음길 같아요. 사람이 사람 아닌 납작오징어인 판입니다. 아무리 부릉길을 늘려 본들 이 죽음길을 걷어낼 수 없어요.


  들숲바다가 싱그러운 곳에서는 풀벌레도 지렁이도 새도 짐승도 사람도 매한가지인 숨결입니다. 높거나 낮지 않아요. 사람만 내세우는 나라에서는 부릉길이 끔찍하고 하늘수레(케이블카)가 자꾸 뻗으며 번쩍대(송전탑)를 마구 세워요. 그런데 풀벌레랑 벌나비가 없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나요? 새가 없이 벌레잡이를 할 수 있나요? 지렁이·쥐며느리·개미가 없이 흙이 살아나도록 할 수 있나요?


  여름을 앞둔 늦봄이 제법 덥다고 할 만하지만, 전철길은 매우 춥다고 할 만합니다. 버스·전철뿐 아니라 서울·큰고장은 겨울이 덥고 여름이 추워요. 사람들은 길에서 어울리거나 만나거나 일하거나 지내지 않고, 모두 후끈하거나 서늘한 바람으로 감싼 곳에서 낮에도 불빛을 밝히면서 일하거나 지내거나 놉니다.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언제 흘릴까요? 겨울에 손가락이며 귀코입이 얼지 않으면 언제 얼까요? 인천 〈딴뚬꽌뚬〉을 찾아가는 길에 두동진 민낯을 느낍니다. 봄에 봄볕을 머금기에 봄꽃이 싱그럽고, 이 봄볕을 맨몸으로 맞이하기에 열매가 익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만 봄빛을 거스르는 듯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면 넉넉합니다. 이 마음이 가는 길이란, 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 하나이지 싶어요. 숱한 어른들은 “아이들(어린이·푸름이)이 손전화·보임틀(TV)에 빠져서 산다”고 말합니다만, 너무도 틀린 말이라고 느껴요. 곰곰이 보면 볼수록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손전화·보임틀(TV)을 던져 주고서 내팽개쳤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젊은이·어린이·푸름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 탓하지 말아요. ‘어른이 아닌’ 나이든 사람들부터 책을 멀리하고 손전화·보임틀에 사로잡힌걸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봄볕을 누리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책을 곁에 둘 노릇입니다.


ㅅㄴㄹ


《성우덕이 목소리를 듣는 방법》(윤영선, 딴뚬꽌뚬, 2020.3.10.)

《집들이, 인천 응봉산의 온도》(유광식, 으름, 2021.9.29.)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김지선, 새벽감성, 2021.2.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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