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생각이 깃든 (2021.4.25.)

― 진주 〈동훈서점〉



  공주하고 대전을 들러 포항에서 머물다가 구미로 건너가서 진주로 옵니다. 나흘밤을 바깥에서 보냈습니다. 오늘은 고흥으로 돌아가야지요. 여러 고장을 잇달아 돌면 길삯을 조금 줄일는지 모르나 등짐에 책이 쌓입니다. 책집을 찾아 나그네처럼 다니니 큰고장에 깃듭니다. 우리 시골집 봄꽃은 얼마나 흐드러졌을까 궁금하고, 숲빛을 품은 별빛이 그립습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길이 멀 뿐 아니라, 바로가는 길이 드뭅니다. 순천이나 광주를 거치든, 서울을 찍고 가든, 돌고돌기는 매한가지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이다음에는 조금만 돌아다녀야겠어요. 이틀이나 사흘을 밖에서 묵으면 먼저 고흥으로 돌아가서 숲바람하고 햇볕을 쬐고 샘물을 마시며 몸마음을 달래야겠어요.


  아무튼 진주 〈동훈서점〉에 와서 다리를 쉬고 숨을 돌립니다. 골마루를 거닐면서 눈길을 추스르고, 책시렁을 쓰다듬으면서 손길을 다독입니다. 무슨 일이건 미룰 까닭이 없되 서둘러 끝낼 수 없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마치거나 겨울을 앞두고 마무리를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철이 다 다르게 흐르는 하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일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삐걱거리거나 힘들거나 다칩니다.


  어깨힘을 빼야 일을 풀어냅니다. 어깨힘이 없어야 글을 풀어요. 멋은 오래가지 않아요. 사랑으로 가꾸는 살림이 오래갑니다. 그동안 책집마실을 하며 책시렁 곁에서 스칠 적마다 눈에 들어온 김남주 글모음을 새삼스레 만지작하면서 몇 꼭지를 되읽습니다. 두고두고 손자국이 남은 옛책을 들여다보다가, 어느덧 새책집에서는 사라진 헌책을 바라보다가, 갓 나와 널리 읽히는 책을 힐끗 봅니다.


  어느 책을 품고서 돌아갈까 하고 살피는데, 갓 나와 널리 읽히는 책에는 마음이 안 갑니다. ‘갓 나와 널리 읽히는 책’이 참말로 읽힐 만하다면, 앞으로 서른 해 뒤에도 사람들이 읽어 주겠지요. 서른 해나 쉰 해 뒤에도 오늘날 날개책(베스트셀러)이 날개책이려나 하고 어림하면 어느 책도 날개책조차 아니고, 다 버림받을 텐데 싶어요. “그러면 네가 남기는 글은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너부터 네 마음을 울리는 글로 이어갈 수 있니?” 하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습니다. 오늘 제가 손에 쥐는 책을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태어나서 자랄 아이들 손에 이어줄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세로쓰기라서, 한자말이 많아서, 한자를 대놓고 적어서, 또 영어를 마구 섞어써서, 옮김말씨(번역체)가 가득해서, 이래저래 앞으로는 못 읽힐 책이 수두룩하겠다고 느껴요. 알고 보면, 북적북적 어울리는 듯해 보이는 사람들도 늘 혼자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스스로 살아갑니다. 책도 늘 스스로 살아숨쉽니다.


ㅅㄴㄹ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H.뵐/김창활 옮김, 삼중당, 1984.9.15.)

《Ich lerne Deutsch 2》(이시진, 실학사, 1968.1.)

《현대의 神》(N.쿠치키 엮음/진철승 옮김, 범우사, 1987.9.15.)

《빛을 남긴 韓國의 女人像, 永遠한 삶을 찾아 : 金一葉》(한운사, 명서원, 1976.11.5.)

《빨치산》(이영식, 행림출판,1988.8.20.)

《三賢 19집》(편집부, 삼현여자고등학교, 1992.2.13.)

《朴正熙大統領演說文選集, 平和統一の大道》(박정희, 대통령비서실, 1976.3.1.)

《國民讀本》(박관수 엮음, 공산권문제연구소, 1973.7.20.)

《거울 속의 거울》(미하엘 엔데/신동백 옮김, 기린원, 1990.7.10.)

《히로시마 노트》(오에 겐자부로/김춘미 옮김, 고려원, 1995.8.20.)

《기도하는 나무》(김수복, 종로서적, 1989.3.28.)

《鄭道傳 思想의 硏究》(한영우, 한국문화연구소, 1973.11.30.)

《열일곱 살의 쿠테타》(송정연, 황기성사단, 1991.1.10.)

《대변혁》(앨빈 토플러/안정효 옮김, 고려원, 1984.4.15.)

《백팔번뇌》(松濤弘道/현대훈 옮김, 일월서각, 1979.5.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이 글은 2021년 4월 이야기입니다.

2022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갈무리합니다.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2021년 4월 모습이기에

2022년 10월에는 새터에서 사뭇 다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숲마실


지음돌이 (2021.12.6.)

― 대전 〈이데·월간 토마토〉



  어느 날 문득 둘레를 보니, 돌이는 집에서는 밥을 안 하기 일쑤요, 바깥에서는 밥을 도맡아 짓더군요. ‘집에서 밥짓는 돌이’는 드물고, ‘밥집에서 요리사나 셰프란 이름으로 밥짓는 돌이’가 넘쳐요. 아리송했어요. 다들 입으로는 “집밥이 맛있다”고 하면서, 정작 순이 가운데 ‘요리사·셰프’는 적고, 순이가 이런 이름을 받기는 까다롭거나 버거워 보여요. 이와 달리 집밖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밥돌이는 많되, 막상 집살림을 맡는 살림돌이는 드무니까요.


  밥짓기는 예부터 가시버시가 함께하던 살림입니다. 한쪽이 도맡는 일이 아닙니다. 옷짓기하고 집짓기도 가시버시가 함께하던 살림이에요. 이제 숱한 돌이는 밥짓기뿐 아니라 살림돌이란 자리를 버렸는데, ‘집을 버리고 바깥에서 이름을 얻거나 돈을 벌거나 힘을 누리려 하면서 온나라가 망가지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바깥살이(사회생활)를 잘 해내야 할 사람이 아닌, 집살림을 슬기롭게 맡으면서 어질게 다스려야 할 사람이지 않을까요?


  집을 떠나 바깥에서 엉뚱한 데에다가 넋을 팔면서 그만 집살림하고 밥짓기를 잊었구나 싶어요. 순이는 돌이한테 집살림하고 밥짓기를 시켜서, 돌이가 스스로 잊거나 잃은 살림빛을 키워 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돌이는 순이한테서 고분고분 말을 듣고서 집안일을 함께 돌보고 집살림을 같이 가꾸는 길을 가야, 서로 사랑으로 피어나는 보금자리를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대전에서 마을책(지역잡지)을 내는 ‘월간 토마토’가 있고, 이곳에서 꾸리는 책쉼터이자 마을책집이라 할 〈이데〉가 있습니다. 앞서 〈다다르다〉하고 〈중도서점〉을 들르면서 책짐이 가득합니다. ‘월간 토마토’ 일꾼을 만나서 가벼이 수다꽃을 즐기면서, 이 포근한 쉼터를 품은 대전이라는 고을을 헤아려 봅니다.


  책 곁에 가만히 깃들어 마음에 씨앗 한 톨을 심는 꿈이 있으니, 이 꿈이 마을마다 새록새록 자라납니다. 천천히 온누리를 푸르게 가꾸는 밑빛으로 퍼지는 마음이 새록새록 깨어납니다.


  마음을 틔우는 사람은 늘 노래를 들어요. 한겨울에는 풀벌레노래가 없어도 텃새노래가 있고, 바람노래가 있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면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느낄 테고, 별빛이 내려앉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생각이 한뼘 자라는 사람들이 새롭게 책빛을 일구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사랑을 포근하게 나누는 사람들이 마을빛을 싱그러이 보듬기를 바랍니다. 지음돌이하고 지음순이가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고 노래할 지음길을 그립니다.


ㅅㄴㄹ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이승미, 월간 토마토, 2021.4.26.)

《월간 토마토 173》(이용원 엮음, 월간 토마토, 2021.1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숲마실


누가 시키면 (2021.12.6.)

― 대전 〈중도서점〉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찾아가는 길은 멀지만, 먼 만큼 길에서 느긋하게 삶을 돌아보면서 붓을 쥐어 글을 쓸 짬이 있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집안일을 맡고 낱말책을 여민다면, 마실길에는 노래꽃을 쓰고 생각을 추스릅니다. 오늘 찾아갈 마을책집을 그리고, 이튿날 만나서 이야기꽃을 들려줄 이웃을 헤아리지요.


  우리는 두 가지 말 가운데 하나를 씁니다. 하나는 사투리요, 둘은 서울말입니다. 사투리란, 삶·살림을 손수 짓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스스로 펴면서 숲빛을 누리고 나눌 적에 피어나는 말입니다. 서울말이란,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받아들이면서 돈을 버는 바깥일을 하려고 외우느라 스스로 갇히는 말입니다. 사투리라서 좋거나 서울말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두 말은 그저 다른 길입니다.


  말글을 보면 볼수록, ‘사투리(들풀 같은 사람들 말)’가 아닌 ‘서울말(표준말, 권력언어)’을 쓰면 쓸수록, 틀말(억누르는 말·지배의 언어)”로 굳어가게 마련입니다. 배움터(학교)와 삶터(사회)와 나라(정치)뿐 아니라, 인문학강의하고 인문책조차 ‘틀말(억누르는 말·지배의 언어)”로 사람들을 휩쓸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우리말(우리 스스로 생각을 가꾸면서 마음을 밝혀 사랑을 심는 말)’을 누구한테서 배우고 언제부터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바깥말(사회용어)’을 언제쯤 내려놓고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사랑으로 나눌 말을 생각하려나요?


  삶이란, ‘남 눈치’를 보면 언제나 막히지만, ‘이웃 눈길’을 보면 언제나 흐릅니다. 스스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풀어낼 길을 찾아내요.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대전에서 칙폭이(기차)를 내립니다. 〈다다르다〉에 들르고서 〈중도서점〉을 찾아갑니다. 〈중도서점〉에 찾아오면 대전·충청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헌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샛말로 하자면 ‘독립출판물’인 ‘비매품’인 값진 책을 만나요. 곰곰이 보면 모든 책은 ‘스스로 일어선 마음을 담은 꾸러미(독립출판물)’입니다. ‘비매품·독립출판물’처럼 일본스런 한자말에 가둔 이름이 아닌 ‘혼책’이나 ‘작은책’이나 ‘손지음책’처럼, 우리 스스로 이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말로 알맞게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누가 시켜야 읽는 책이라면 배움책(교과서)일 테지요. 스스로 찾아서 읽기에 ‘혼책’이면서 ‘작은책’이요 ‘손길책’이자 ‘스스로책’이고 ‘숲책’이리라 여깁니다. 누가 시키기에 외워서 쓰는 말이 아닌, 스스로 살림을 지으면서 말을 짓는 마음을 되찾기를 바라요. 우리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라갈 허수아비가 아닌, 아이를 사랑하고 곁님을 고이 품을 슬기로운 사람일 테니까요.


ㅅㄴㄹ


《アサヒカメラ 263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5.7.1.)

《アサヒカメラ 264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5.8.1.)

《アサヒカメラ 274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6.6.1.)

《アサヒカメラ 277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6.9.1.)

《アサヒカメラ 278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6.10.1.)

《アサヒカメラ 281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7.1.1.)

《アサヒカメラ 282號》(津村秀夫 엮음, 朝日新聞社, 1957.2.1.)

《ARS CAMERA 427號》(北原鐵雄 엮음, アルス, 1955.6.1.)

《눈새》(강숙인 글·전호 그림, 계몽사, 1984.1.10.)

《웃음》(앙리 베르그손/김진성 옮김, 종로서적, 1983.12.20./1991.3.30.2벌)

《고친판 언어학 개론》(허웅, 샘문화사, 1983.2.10.)

《國語學 硏究選書 1 新羅時代의 表記法 體系에 관한 試論》(이숭녕, 탑출판사, 1978/1982.9.25.두벌)

《國語學 硏究選書 2 十五世紀 國語의 活用語幹에 對한 形態論的 硏究》(안병희, 탑출판사, 1978/1982.8.20.두벌)

《항소 이유서》(김영환, 조성자 엮음, 비매품, 1987.10.)

《매호氏, 거기서 뭐하는 거요》(김성구, 나래, 1983.9.10.)

《핵충이 나타났다》(신기활, 친구, 1989.6.30.)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 99 흰고래 모비딕》(멜빌/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1976.12.1.).

《파랑새》(모오리스 메테르링크/김창활 옮김, 태창, 1978.9.30.)

《새로운 글짓기》(윤석산, 농경출판사, 1974.4.13.첫/1974.9.20.5벌)

《高1 국어낱말사전》(김사영 엮음, 동아출판사, 1985.1.15.)

《民衆과 社會》(환완상, 종로서적, 1980.5.5.)

《韓國의 女神》(이규태, 교학사, 1974.2.20.)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김형석, 범우사, 1975.12.5.)

《바블바블 하우스》(김미림, 서화, 1993.7.25.)

《범우 1984.4.》(박연구 엮음, 범우사, 1984.4.1.)

《범우 1984.8.》(박연구 엮음, 범우사, 1984.4.1.)

《범우 1985.봄.》(윤형두 엮음, 범우사, 1985.3.10.)

《범우 1985.가을.(16집)》(윤형두 엮음, 범우사, 1985.9.20.)

《범우 1986.봄.》(윤형두 엮음, 범우사, 1986.1.1.)

《따개비 한문 숙어 1》(오원석, 민서출판사, 1989.11.4./1998.5.10.9벌)

《comic cake 2호》(김경란 엮음, 시공사, 1999.8.15.)

《wink 179호》(조대웅 엮음, 서울문화사, 2001.1.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숲마실


찍는 마음 (2022.5.24.)

― 인천 〈모갈1호〉



  책집은 어릴 적부터 다녔지만, 1998년에 이르러서야 책집을 빛꽃(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했습니다. 1998년 여름이 저물 즈음 처음으로 제 찰칵이(사진기)를 곁에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외대 ‘우리말 연구회’ 동생한테서 빌렸는데, 이 찰칵이는 제가 일하던 신문사지국에 도둑이 드는 바람에 잃었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하며 32만 원 일삯을 받았는데 15만 원을 꼬박꼬박 우체국에 부었습니다. 모둠돈(적금통장)이 있기에 우체국에서 어렵게 돈을 빌려 동생 찰칵이를 새로 사서 돌려주고, 제 몫으로 12만 원짜리 낡은 미놀타 찰칵이를 장만합니다.


  아무리 닦아도 때가 안 벗겨지는 낡은 찰칵이여도 늘 목걸이로 삼았고, 1998년 가을에 “아, 난 날마다 헌책집을 여러 곳 드나드는데, 난 헌책집을 찍으면 되겠구나! 게다가 기자란 놈팡이는 헌책집을 늘 다 쓰러져 가는 얄딱구리한 모습에 엉터리로 찍잖아! 책집은 책집을 다니는 사람이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아직 어느 누구도 책집(헌책집·마을책집)을 찰칵찰칵 담을 생각을 않던 1998년 즈음, 목에 찰칵이를 걸고 들어가니 모든 책집지기님이 손사래칩니다. “자네, 목에 뭔가?” “사진기예요.” “사진기는 왜?” “책을 읽으면서 책집을 찍으려고요.” “어험어험, 사진을 찍으려면 여기서 나가든가, 책만 보려면 들어오든가, 하나만 해!” 그무렵 모든 책집은 기자란 놈팡이가 엉터리로 찍어서 싣는 빛꽃 탓에 다들 싫어했습니다. 아무리 단골이어도 손에 찰칵이를 쥐면 끔찍히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는 얌전히 등짐에 넣었어요. 그래도 책집 앞모습을 살며시 찍고, 책집지기님이 자리를 비우면 얼른 책시렁을 둘러보며 몇 자락 찍었습니다.


  1998∼2000년 세 해 동안 이렇게 ‘몰래 찍은 빛꽃’을 몽땅 종이로 뽑습니다. 이다음 책집마실을 하며 책값을 셈한 뒤, 책집 셈대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이러고서 다음에 책집마실을 하면 “여보게, 여기에 우리 책집 사진이 있던데, 누가 찍었는지 아나?”“글쎄요. 사진이 잘못 나왔나요?” “아니, 우리 책집이 이렇게 멋있던가? 책집을 잘 아는 사람이 찍은 듯해서 궁금해서.”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다른 단골이 기웃하다가 “사장님, 그 사진은 이 젊은이가 찍었잖아요.” “어, 그런가? 그런데 왜 스스로 찍었다고 말을 안 해?” “사장님이 사진을 찍으려면 책집에 들어오지 말라 하셨거든요.” “어험어험, 앞으로 자네는 사진을 찍어도 되네.”


  〈모갈1호〉 책시렁 곳곳에 있는 찰칵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스물 몇 해 앞서 겪은 일을 떠올립니다. 읽고 느끼고 새기는 마음에는 언제나 스스로 피어나는 즐거운 숨결이 흐르겠지요. 책을 읽고 장만하는 손길로 찍으면 누구나 빛꽃입니다.


ㅅㄴㄹ


《세칭 구원파란?》(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엮음, 신아문화사,1981.5.25.)

《21+1 新作抒情詩選輯》(장석주 엮음, 청하, 1987.3.25.)

《파라독스, 아이러니, 그리고 이솝 우화》(편집실 엮음, 시대평론, 1991.12.20.)

《高麗苑 詩文學 叢書 3 오늘은 未來》(박의상, 고려원, 1987.6.7.)

《高麗苑 詩文學 叢書 14 北村 정거장에서》(홍윤숙, 고려원, 1985.9.20.)

《高麗苑 詩文學 叢書 17 우리의 탄식》(이유경, 고려원, 1986.10.1.)

《아무튼, 언니》(원도, 제철소, 2020.7.20.)

《잃어버린 한 조각 + 나를 찾으러》(쉘 실버스타인, 선영사, 2003.1.30.)

《예술의 종언―예술의 미래》(김문환 엮음, 느티나무, 1993.6.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숲마실


모임이란 (2022.7.18.)

― 부천 〈용서점〉



  1994년은 한 해 내내 전철로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무렵 새벽 서너 시 무렵이면 짐을 꾸리고서 하루 글쓰기를 합니다. 다섯 시 사십 분 즈음 집을 나와 첫 마을버스를 타고서 주안역에 가고, 새벽 여섯 시 십 분 전철을 탑니다. 전철나루에 더 일찍 가고 싶어도 첫 마을버스가 늦습니다. 이때부터 불수레(지옥철)에 시달리다가 아침 여덟 시 이십 분 즈음 외대앞역에서 내려요. 아홉 시부터 이야기(수업)를 들으려면 등골이 휩니다. 거꾸로 저녁 여덟 시 사십오 분 전철까지는 타야 인천집에 밤 열한 시 십오 분 마지막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갑니다.


  서울에서 사는 또래나 윗내기는 “야, 넌 왜 이리 집에 일찍 가니?” 하고 묻지만,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전철을 타면 집에 못 갑니다. 아니, 인천 가는 마지막 전철은 밤 열한 시 즈음까지 있다지만, 저녁 아홉 시를 넘은 뒤에 전철을 타면 인천에서는 마을버스가 끊겨, 주안역부터 밤길을 두 시간 넘게 걸어야 합니다.


  즐겁자고 만나는 모임이라면 어디에서 누가 모이는 어떤 자리를 꾸릴 적에 아름다울까요? 열린배움터(대학교)는 서울사람만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서울 한켠에 삯칸을 얻더라도 ‘우리 집’이 아닌 ‘한때 머무는 빌린 칸’입니다.


  〈서울책보고〉에서 일을 마치고 〈용서점〉으로 전철을 달립니다. 오늘 〈용서점〉에 모인 이웃님하고 ‘모임’을 놓고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모임 = 모이다’인데, ‘모’란 무엇일까요? ‘뫃다’에 ‘모두’가 있습니다. ‘여러모로·모내기’가 있고, ‘모시풀·못’하고 ‘목아지·길목’이 있습니다. ‘모습’에 ‘몰다’가 있지요. 비슷하면서 다른 ‘두레’는 ‘둘·두르다·둥글다·두다’로 잇는 말밑이요, ‘울력’은 ‘우리·울타리·한울(하늘)·울다’로 잇는 말밑이며, ‘품앗이’는 ‘품·풀다·풀·푸르다·푸지다·푸짐’으로 잇는 말밑이에요.


  우리는 늘 쓰는 수수한 말씨가 어떤 뿌리인 줄 어느 만큼 생각할까요? 가장 훌륭한 말이라면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소리로 옮기니 말인걸요. 우리말에서 ‘말’하고 ‘마음’은 말밑(어원)이 같습니다. ‘마음·말’은 ‘맑다·물’하고도 말밑이 같아요.


  알고 보면 빗물은 바닷물입니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숲을 품으면 더없이 아름답고 푸른 빗방울이니, 이 빗방울을 마시고 누린다면 우리는 누구나 푸른별에서 푸른사람으로서 푸른마음을 가꾸리라 생각합니다. 밤이 되니 부천에 비가 쏟아집니다. 빗방울을 맞으면서 “넌 어느 바다에서 우리한테 왔니?” 하고 속삭입니다. 함박비는 밤새 잿빛먼지를 차근차근 쓸어내 줍니다.


ㅅㄴㄹ


《돔 헬더 까마라》(조세 드 브루키르/이해찬 옮김, 한길사, 1979.3.1.)

《집으로 가는 길》(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4.20.)

《우리 문학과의 만남》(조동일, 홍성사, 1978.9.30.첫/1981.5.10.3벌)

《동물학대의 사회학》(클리프턴 P.플린/조중헌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8.24.)

《히로시마의 증인들》(존 허시/이부영 옮김, 분도출판사, 1980.8.5.)

《네째 왕의 전설》(에자르트 샤퍼/김윤주 옮김, 분도출판사, 1978.4.1.첫/1979.12.25.2벌)

《한국교회 100년 종합조사연구 보고서》(김용복 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2.5.28.)

《발해사》(박시형, 이론과실천, 1989.8.10.첫/1991.7.10.2벌)

《맛의 달인 105》(테츠 카리야 글·하나사키 아키라 그림/장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1.3.15.)

《맛의 달인 110》(테츠 카리야 글·하나사키 아키라 그림/이청 옮김, 대원씨아이, 2014.4.30.)

《빛으로 담은 세상, 사진》(진동선, 웅진씽크빅, 2007.2.1.)

《나는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편집부, 나눔문화, 2012.3.8.첫벌/2018.9.141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