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바닷바람 (2022.3.5.)

― 고흥 〈더바구니〉



  우리가 쓸 말은 우리 마음을 꽃빛으로 담아내는 이야기일 적에 서로 즐겁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보금자리를 숲빛으로 가꾸는 손길일 적에 서로 아름답다고 느껴요. 돌림앓이판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서울살림(도시생활)으로 빽빽하게 몰린 탓에 아주 조그마한 톱니 하나라도 빠지면 와르르 무너지는 얼거리가 조금 드러났을 뿐이지 싶습니다.


  시골에도 앓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서울·큰고장처럼 앓다가 죽지는 않습니다. 시골에도 풀죽임물(농약)하고 죽음거름(화학비료)이 무시무시하게 번지지만, 이 모두를 멀리하는 사람들은 포근하면서 푸르게 살림을 지어요. 마당이 없고 나무를 못 심고 흙내음을 맡지 않으면서 빗물을 마시지 않는 얼거리라면, 참으로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목이 마를 뿐 아니라 몸이 망가지리라 느낍니다.


  바람이 불기에 바람을 쐬어요. 햇볕이 내리쬐기에 햇볕을 머금어요. 꽃이 피기에 꽃내음을 맡습니다. 벌나비가 날기에 벌나비 곁에 함께 웃고 춤춰요. 풀벌레가 노래하기에 풀벌레랑 사르랑사르랑 노래합니다.


  작은아이를 이끌고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다시 시골버스를 갈아타고서 도양읍으로 갑니다. 녹동(도양읍)에서 내려 걷자니 바람이 셉니다. 나무를 볼썽사납게 가지치기를 한 어린배움터 곁을 지나 마을길로 접어드니 부릉소리가 가라앉고 호젓한 골목을 품은 〈더바구니〉 앞입니다. “여기에 책집이 있어요?” “응. 바로 앞에 있어.” 책집은 조그맣고 마당은 널찍합니다. 책을 두는 자리는 그리 안 넓어도 됩니다. 마당이 넓으면 넉넉하고,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해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느긋합니다.


  모든 곳에는 그곳을 가꾸려는 마음이며 숨결이 흘러든다고 느낍니다. 집도 뜰도 밭도 일터도 마을도 우리 숨결이 그대로 스밉니다. 혀에 얹는 말도 손으로 옮기는 글도 남이 아닌 우리 숨결로 이루고, 손에 쥐는 책도 우리 숨결로 새깁니다.


  바닷바람을 먹는 고흥군 도양읍 마을책집 〈더바구니〉입니다. 마을 어린이한테 즐거운 놀이터일 테고, 고흥으로 마실을 나오는 이웃님한테 상냥한 쉼터로 흐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돈으로 책숲(도서관)이나 배움터(학교)를 열 적에는 언제나 너른터(운동장)나 마당을 널찍하게 놓고서 풀꽃나무가 마음껏 자라도록 돌보아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풀꽃나무처럼 마음껏 팔다리를 뻗고 생각을 지필 적에 비로소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할 만하거든요.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바닷가로 걸어가서 휭휭 부는 짠바람을 듬뿍 맞이합니다.


《두더지 잡기》(마크 헤이머 글/황유천 옮김, 카라칼, 2021.12.23.)

《어둠의 왼손》(어슐러 K.르 귄 글/최용준 옮김, 시공사, 1995.5.1.첫/2014.9.5.두벌고침)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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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 자리 데 터 (2022.3.20.)

― 서울 〈무아레서점〉



  해날(일요일)에 모처럼 서울마실을 합니다. 예전에는 흙날이나 해날에 쉬는 책집이 없었습니다. “다들 쉬는데 책집도 쉴 만하지 않나요?” “다들 쉬니까 책집에라도 오도록 책집은 열어야지요.” “그러면 여느날(평일)에는 쉬나요?” “여느날에는 하루를 마치고 저녁에 오도록, 또 살림하는 분들은 아이를 데리고 낮이나 아침에 오도록 열지요.” “그러면 언제 쉬셔요?” “설이나 한가위에도 안 쉬어요. 설이나 한가위에는 이 마을을 떠난 분들이 모처럼 찾아오거든요. 그리고 책 좋아하는 분들은 설이나 한가위에 갈 데가 없다면서 책집으로 와요.” “한 해 내내 안 쉰다고요?” “책집사람은 책집에 나오는 일이 쉬는 셈이지요.”


  요즈음에는 흙날이나 해날에 쉬는 책집이 제법 있습니다. 달날이나 불날이나 물날에 쉬는 책집도 퍽 있어요. 한 해 내내 안 쉬는 책집이 아직 몇 곳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책집도 쉼날을 누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책집에서는 책이 되어 준 나무빛을 누리고, 쉼날에는 집살림을 돌보다가 푸른나무를 마주하는 숲빛을 누릴 적에 이 나라 책밭이 무럭무럭 자랄 만하리라 봅니다.


  봄비가 막 그친 새벽에 고흥에서 길을 나섭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우산은?” “비가 오면 언제나 즐겁게 맞으며 놀잖니. 그리고 오늘길에는 하늘에 대고 ‘비야 그쳐 주렴’ 하고 속삭였어.” 시외버스가 서울로 가까울수록 하늘빛이 파랗게 열립니다. 한낮에 전철을 갈아타서 〈무아레서점〉으로 걸어갑니다. 볕살이 부드럽게 스미는 이곳은 ‘물결무늬’를 느긋하게 담는다고 느낍니다. 미닫이를 열어도 부릉거리는 소리가 책집으로 그리 안 들어옵니다.


  곁님한테 문득 “물결이라고 하면 뭐가 떠올라요?” 하고 물은 적 있는데, “글.”이라 짤막히 말하더군요. 물무늬가 어떻게 글일까 하고 한참 헤아려 보는데, 글이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물’이란 “몸을 짓는 무늬”예요. 우리말로 따지면 ‘말·물’은 뿌리가 같습니다. 〈무아레〉란 글밭이요 글바다입니다.


  모든 곳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이면서 살림하는 데입니다. 어느 곳이든 사랑으로 만나는 터이면서 삶을 가꾸는 집이 됩니다. 서울은 돈벌이·일거리·이름날개가 많아서 사람이 너울거린다고 하지만, 이 서울도 백 해나 이백 해 앞서를 돌아보면, 또 즈믄 해쯤 앞서를 되새기면, 나라 어느 곳하고도 똑같이 시골이었어요.


  빛나는 곳은 남이 빛나게 해주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빛냅니다. 눈부신 자리는 남이 눈부시게 해놓지 않고, 우리가 손수 눈부시게 일굽니다. 남이 쓰고 엮었기에 읽는 책이라지만, 우리가 손으로 쥐어야 비로소 스스로 읽으며 누립니다.


ㅅㄴㄹ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박현선 글, 헤이북스, 2019.11.25.)

《뿌리 Ophav》(에바 틴드 글/손화수 옮김, 산지니, 2021.7.10.)

《결국 마음이 전부인거야》(민소윤 글, 민소윤, 2022.3.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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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22.2.26.)

― 인천 〈집현전〉



  왜 그 책을 골라서 읽느냐고 묻는다면 “오늘 눈에 들어왔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골라서 읽는다기보다 마음으로 “저 책을 사든 안 사든 손을 뻗어서 펼치렴”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덧붙입니다.


  왜 사내가 집안일을 다 하느냐고 묻는다면 “집에서 일할 사람이 하면 될 뿐이고, 제가 집안일을 맡는 일이 좀 잦거나 늘 그러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뚝 끊어서 요만큼은 하고 저만큼은 안 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보탭니다. 함께 누리고 읽는 책처럼, 함께 가꾸며 누리는 살림이에요.


  큰아이하고 인천 배다리로 찾아와 〈집현전〉에 깃듭니다. 큰아이는 ‘피너츠’를 다룬 책을 가리킵니다. “우리 집에 있는 책하고 다르네요.” “응,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새로 엮은 책이야. 우리 집에 있는 책은 피너츠를 그린 분이 스스로 여민 책이고. 그래서 새로 나온 이 한글판은 안 산단다.”


  지난 2008년 가을에 《끝나지 않은 노래》라는 책이 《빅토르 하라》란 이름으로 새롭게 나온 적 있습니다. 마침 오늘 〈집현전〉에서 들춘 책은 옮긴이 손글씨가 있습니다. 옮긴이한테서 받은 분은 잘 읽고 내놓아 주었을 테지요.


  진작에 장만해서 읽은 《濟州民俗의 멋 2》인데, 오늘 눈앞에서 마주하는 똑같으면서 다른 두 책을 들여다봅니다. 하나는 펴낸날이 다르되 오래 안 팔렸는지 책값이 찍힌 자리에 종이를 덧대어 값을 올려놓았어요. 예전에 ‘영업부 일꾼’으로 지내는 사람은 책집을 돌며 ‘값 올린 쪽종이 붙이기’를 으레 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살피고 읽는 사이에 ‘아이하고 나들이를 나온 젊은 가시버시’가 책집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아저씨만 혼자 들어와서 골마루를 조금 훑고는 다시 나가면서 “야, 여기에는 너희(아이들)가 볼 책이 없다. 가자.” 하는군요. 참말로 어린이가 볼 책이 이 책집에 없을까요? 아주 살짝 슥 보고는 어린이책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다 알아낼 수 있을까요? 어린이한테는 어떤 책을 읽히는가요? 어린이책을 얼마나 깊고 넓게 읽어 보았기에 한눈에 다 알아볼까요?


  어린이책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지만 정작 어린이한테 읽힐 수 없다고 느끼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어른책으로 나오지만 오히려 어린이하고 함께 읽을 아름다운 책이 제법 있습니다. 미리 금을 긋고서 틀을 세울 까닭이 없는 책입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다르게 빛을 품고서 고요히 기다려요. 책집지기는 책빛을 어루만지고, 책손은 책빛을 새롭게 맞아들이는 자리입니다. “저 아저씨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서 볼 책이 없다고 하네.” “책을 한 가지로만 보면 누구나 그렇단다.”


ㅅㄴㄹ


《現代美術의 理解》(임영방 글,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9.8.1./첫/1991.2.15.14벌)

《日語학습문고 2 小公女》(버어넷 글/일어학습문고편찬회 옮김, 다락원, 1980.12.5.첫/1991.2.1.4벌)

《BERLITZ 예루살렘》(톰 브로스나한 글·얼링 만델만 사진/편집부 옮김, 웅진출판주식회사, 1991.12.28.)

《是川遺跡》(淸水潤三 글, 中央公論美術出版, 1966.2.15.)

《빅토르 하라》(조안 하라 글/차미례 옮김, 삼천리, 2008.9.11.)

《죽은 시인의 사회》(N.H.클라인바움 글/문창연 옮김, 성현출판사, 1990.6.30.첫/1992.8.31.13벌)

《沙漠의 새우들》(박주일 글, 둥지, 1989.10.16.)

《濟州民俗의 멋 2》(진성기 글, 열화당, 1981.2.5.)

《濟州民俗의 멋 2》(진성기 글, 열화당, 1981.2.5.첫/1990.4.15.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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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娛 2022-03-2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모 쪽지기 이색적인 책방이군요 한번쯤은 찾아가고 싶은 책방입니다

숲노래 2022-03-27 19:09   좋아요 0 | URL
네, 책집을 여신 지기님도 온갖 일을 숱하게 헤쳐 오셔서
인천 배다리를 밝히는 새길을 여셨기에
여러모로 새롭게 누리실 책집이 되리라 생각해요.

곁에 있는 모갈1호도, 아벨서점도, 삼성서림도, 한미서점도,
나비날다도, 시와예술도, 마쉬도, 저마다 다른 빛깔로
이 책집거리를 밝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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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면 (2019.7.4.)

― 광주 〈광일서점〉



  광주 계림동은 오래도록 이름난 헌책집거리였습니다. 광주라는 고장뿐 아니라 전라남도를 통틀어 글을 배워 글꽃을 피우고 싶어하던 사람들한테 아늑한 쉼터이자 배움터이면서 만남터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제 광주 계림동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광주에서 나고자란 분이 보기에도 그렇고, 이 거리에서 책집을 지키는 분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광주는 뒤늦게 돈을 조금 들여서 이 책집거리를 살려 보겠노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가게 얼굴(간판)을 바꾸는 시늉으로는 하나도 이바지하기 어렵습니다. 책집거리를 살리고 싶다면 길은 아주 쉬워요. 광주지기(시장)부터 이 책집거리를 날마다 드나들면 됩니다. 광주 벼슬꾼부터 이곳 헌책집에서 날마다 책을 한두 자락씩 장만해서 읽고 배우면 되고, 광주에서 길잡이(교사)로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책을 사서 읽고 배우면 됩니다. 벼슬꾼(구청장·국회의원·공무원)도 책집거리를 드나들면서 책을 사고, 저마다 읽은 책을 이웃이나 아이들한테 건네거나 다시 헌책집에 내놓으면서 이곳을 살릴 만합니다.


  헌책집·헌책집골목·헌책집거리가 힘들다면 ‘책이 안 도는 탓’이에요. 책이 왜 안 도느냐 하면 ‘책집에 와서 책을 사서 읽고 다시 파는 걸음’이 확 줄어든 탓이지요. 길바닥을 갈아엎거나 문화예술가를 부른다거나 이름난 글꾼·노래꾼을 불러서 깜짝잔치를 해본들 그날 하루뿐입니다. 한 해 내내 이 거리를 느끼고 돌아보면서 사랑할 만한 길은 아주 쉬워요. 오직 ‘책’을 ‘보면’ 됩니다.


  헌책집은 빌림터(대여점)도 책숲(도서관)도 아닌 책집입니다. 사람들 손길을 타고서 새롭게 빛날 책을 다루는 터전입니다. 같은 책 하나가 돌고돌면서 여러 사람 손빛을 두고두고 타며 이야기가 새롭게 자라는 자리입니다. 어느 갈래를 깊이 파거나 널리 짚으면서 곰곰이 배우고픈 이들이 찾아드는 책쉼터이자 책마당이라 할 헌책집이에요. 딱히 다른 이바지를 안 해도 되어요. ‘광주 계림동 헌책집에서만 쓸 수 있는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광주사람이며 전남사람한테 나누어 주어도 반갑겠지요. 이렇게만 하면 알아서 달라집니다.


  큰길은 찻소리가 시끄럽지만 〈광일서점〉으로 들어서니 조용합니다. 책집은 어둑어둑하나, 책은 어둡지 않습니다. 헌책집지기 일터이자 살림터는 넓지 않으나 아늑합니다. 책을 만진 손마디마다 굳은살입니다. 묵은 책에는 더께가 좀 앉았으나, 더께는 닦으면 되고, 때로는 더께가 있어 손빛책이 돋보입니다. 파고들면 보는데, 안 파고들면 못 봐요. 사랑하면 보는데, 안 사랑하니 안 봅니다.


ㅅㄴㄹ


《절약생활 아이디어 399집》(편집실, 여성중앙, 1980)

《최신 생활기록부 기입자료, 용어별 실례편》(정문사, 1966)

《꾸짖지 않는 교육》(霜田靜志/박중신 옮김, 문화각, 1964)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 2 교사용》(문교부, 1970)

《신 세계사 지도》(조의설, 장왕사, 1962)

《고1 Summit 영어단어숙어집》(명보교육, 1991)

《피터 프램턴》(마셔 댈리/이은애 옮김, 은애, 1981)

《발표샘 웅변샘》(류제룡, 문화연구원, 1982)

《보우네 집 이야기》(김옥애, 세종, 1984)

《새로운 독서지도》(대한교육연합회, 1976)

《1만년 후》(애드리언 베리/장기철 옮김, 과학기술사, 1977)

《구국의 얼을 우리 가슴에 새겨준, 문열공의 생애와 업적》(나주군교육청, ?)

《김일성의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에 대한 비판》(허동찬, 경북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7)


2019년 여름에 찾아간 이야기를

2022년 봄에야 마무리를 짓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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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하고 (2022.1.20.)

― 군산 〈그림산책〉



  작은아이는 숲노래 씨를 따라나서며, 숲노래 씨는 작은아이를 이끌면서 군산을 처음으로 디딥니다. 아이하고 다니면서 아이 짐은 웬만하면 숲노래 씨가 챙겨서 짊어집니다. 아이는 그림살림이나 놀이살림에 스스로 더 챙기고픈 몇 가지를 살피라고 얘기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숲노래 씨하고 나란히 설 만한 키에 이른다면, 이때에는 아이 옷가지에다가 마실살림을 조금 나누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부릉이로 다니면서 둘레를 보는 눈이랑, 두 다리로 걸으면서 둘레를 마주하는 눈은 아주 다릅니다. 바퀴걸상으로 다닐 적에도 다르고, 아기를 안고 다닐 적에도 다릅니다. 앞선나라로 일컫는 곳에서는 웬만한 벼슬꾼한테 부릉이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더 쉽고 빠르게 달리도록 하기보다는, 천천히 마을빛을 두루 맞아들이면서 마을사람을 마주하도록 헤아립니다.


  우리나라 고장지기(지자체장) 가운데, 또 벼슬꾼(국회의원·공무원) 가운데 부릉이를 안 몰고 두 다리로 일터를 오가는 사람은 몇쯤 될까요? 걷거나 자전거로 집하고 일터를 오가면서 마을을 온몸으로 한 해 내내 느끼고 만나는 일꾼은 몇쯤 있을까요? 이 나라에는 부릉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나라지기·고장지기·벼슬꾼도, 여느 사람들도 부릉이를 너누 자주 몰아요. 지기·일꾼이란 자리를 맡을 사람한테는 튼튼한 신발하고 자전거를 내어줄 노릇입니다.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다달이 30만 원어치씩 주면서 늘 책을 곁에 두며 스스로 익히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군산버스나루부터 걸어서 〈조용한 분홍색〉에 갔으나 겨울쉼입니다. 다시 걸어서 〈그림산책〉으로 옵니다. 오늘 연 책집을 드디어 만납니다. 〈그림산책〉은 그림책하고 어린이책을 느긋하게 펼쳐놓습니다. 책걸상도 느긋합니다. 이 그림책을 펼쳐서 읽다가 덮고, 글꾸러미를 꺼내어 생각을 적고, 저 그림책을 펼쳐서 읽다가 덮고, 새로 글꾸러미를 뒤적이며 생각을 갈무리하면서 한때를 누립니다.


  사람은 하루에 책을 몇 자락쯤 읽으면 넉넉할까요? 열이나 스물쯤 읽으면 될까요? 서른이나 마흔쯤 읽으면 어떨까요? 책으로 징검다리가 되어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는 책을 얼마나 더 놓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겨울이라 찬바람이라면, 봄이라 산들바람이요, 여름이라 땡볕바람이고, 가을이라 열매바람입니다. 겨울에 눈바람이고, 봄에 꽃바람이며, 여름에 잎바람이고, 가을에 무지개바람입니다. 우리 어린씨는 집에서 보던 그림책을 책집마실을 하는 길에 새삼스레 읽습니다. ‘집에 없는 책을 살피고 찾는’ 쪽은 어버이라면, ‘집에 있는 책을 살피고 찾는’ 쪽은 아이입니다. 보고픈 책을 새로 읽으니 더 즐겁겠지요.


ㅅㄴㄹ


《프랭클린의 날아다니는 책방》(젠 캠벨 글·케이티 하네트 그림/홍연미 옮김, 달리, 2018.8.16.)

《빠앙! 기차를 타요》(마세 나오카타 글·그림/정영원 옮김, 비룡소, 2019.1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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