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름빛은 저물고 (2022.7.18.)

― 서울 〈서울책보고〉



  함박비가 오는 이른아침에 두 아이가 배웅을 합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여름비를 보면 천조각을 벗어던지고서 비놀이를 누리다가, 자전거를 달려 골짝마실을 하고 싶습니다. 큰고장(도시)에서 산다면 엄두를 못 낼 비놀이·골짝마실일 텐데, 문득 돌아보니 인천에서 나고자란 어릴 적에도 함박비가 오는 날 부러 비를 맞으며 바깥에서 뛰놀았습니다. 옷을 다 적시면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고 구둣주걱으로 엉덩이에 불이 나게 맞았지만, 그래도 비를 맞으며 노는 하루는 싱그러웠어요.


  시외버스가 전북을 지날 즈음에는 빗줄기가 그칩니다. 서울에서 내려 움직일 적에는 그냥 걸어도 돼요. 먼저 〈서울책보고〉에 깃들어 느긋이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16시부터 그림(영상)을 담습니다. 7월에는 부산 헌책집 두 곳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돌아본 책은 집받이(택배)로 보내고서 부천으로 건너갑니다. 천천히 원미동 골목을 걸어 〈용서점〉에 닿았고, 저녁빛을 밝히는 수다꽃을 폅니다.


  밤이 되어 길손집을 찾아갈 적에 비로소 비가 펑펑 쏟아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짐을 풀고 하루를 돌아봅니다. 시골집이 아닌 큰고장 한복판에서도 오늘만큼은 우렁찬 밤비노래입니다. 함박비는 모든 자잘한 잿빛소리를 잠재웁니다.


  새하고 풀벌레하고 냇물이 노래하는 파란하늘을 누리지 못 하는 큰고장에서는 어떤 숲마음을 품을 만할까요? 빗방울이랑 바다랑 구름은 늘 한몸인데, 냇물이며 샘물로도 겉몸을 바꾸어 우리 몸에 스니는 물방울인 줄 얼마나 헤아릴 만한가요?


  몸이 아프다면 허물을 벗고서 새빛으로 나아가려는 뜻입니다. 몸이 튼튼하다면 허물벗기를 마쳤기에 즐겁게 삶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울 적에는 마음에 고요한 숨빛을 새로 품고서 파란하늘 맑은빛을 다시 그린다는 뜻이요, 이제 훌훌 털고 일어설 적에는 처음부터 하나씩 살림길을 새로 걷는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얼마나 삶터다운가요? 우두머리나 벼슬꾼을 갈아치운다고 해서 나라가 바뀔 일은 없습니다. 서울을 줄이고, 잿빛집은 그만 짓고, 부릉이도 확 줄이면서, 누구나 스스럼없이 걷거나 뛰거나 달릴 수 있는 골목을 늘릴 노릇이에요. 골목에는 빈터가 있어야겠고, 빈터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랄 노릇이며, 곳곳에 풀밭이 부드러이 있어 누구나 앉거나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비로소 나라가 아름길로 가리라 봅니다.


  아름길은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보금자리가 모인 마을에서 피어납니다. 우리가 낳은 아이도, 이웃이 낳은 아이도, 서로 어른스레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눈빛일 적에 비로소 하늘땅바다숲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 여름을 여름답게 누리겠지요.


ㅅㄴㄹ


《海峰 1호》(이영조 엮음, 인천전문대학학도호국단, 1982.11.20.)

《社會科學 1호》(박순희와 다섯 사람, 성신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987.2.20.)

《한국 인물 전기 전집 3 칭기즈칸·나폴레옹·알렉산더·케사르·쟌다르크, 국민서관, 1978.7.20.첫/1979.6.28.중판)

《한국 인물 전기 전집 4 최충·의천·문익점·정몽주, 국민서관, 1976.11.30.첫/1980.9.27.중판)

《論語新解》(김종무 옮김, 민음사, 1989.7.10.)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임길택, 종로서적, 1996.9.10.)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반쪽이, 한길사, 1989.3.22.)

《한국어 체언의 음변화 연구》(이상억,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1.15.첫/2007.7.20.2벌)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땡땡책협동조합 엮음, 땡땡책, 2014.3.11.첫/2.14.3.18.2벌)

《月刊 稅金 1호》(민병호 엮음, 세금사, 1975.10.1.)

《화엄사 관광》

《英語の辭書指道は, ‘ライトハウス英和辭典’を使って》(八幡成人, 硏究社, 1984.10.15.)

《Mind Garden》(문예진, Rose of Sharon Press, 1979.)

《comic N'ZINE 창간준비호》(편집부, 삼양출판사, 1999.)

《Seletions from Emerson》(영어과, 한국외국어대학, ?)

《환상詩畵集 우정》(홍윤기 엮음, 여학생사, 1985.12.15.)

《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 (중)》(최호연, 진명문화사, 1992.10.25.)

《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 (하)》(최호연, 진명문화사, 1992.10.25.)

《꽃구름과 박힌돌》(곽경아·이필녀, 시인의집, 1984.9.1.)

《불하나 밝혀들고, 외로운 영혼을 위한 詩와 散文》(대구가톨릭문우회 엮음, 대건출판사, 1984.12.1.)

《高等學校 新世界史 初訂版》(鈴木成高·兼岩正夫·松田壽男·鈴木俊, 帝國書院, 1972.4.10.첫/1977.1.20.고침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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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 책 밑에는 (2022.5.16.)

― 광주 〈광일서점〉



  광주에서 글깨나 쓴다는 분들은 으레 “계림동 책골목이 죽었다”고 말하는 듯한데, 책골목이 죽을 까닭이 없기도 하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그분들 스스로 계림동 책골목에 안 간다”는 뜻입니다. 책골목을 살리려면 글깨나 쓰는 나리부터 책마실을 할 노릇입니다. 광주 헌책집이나 책집살림을 북돋우려면 ‘문화예술인’이라 내세우는 그분들부터 책집마실을 누릴 일입니다.


  광주도 전남도 문화재단이 크고 목돈을 굴립니다만, 책하고 얽혀서는 거의 안 씁니다. 책집을 사랑하거나 북돋우는 데에는 푼돈조차 잘 안 쓰더군요. 나라지기 문재인 님이 있던 2020년 7월, ‘남해안 관광벨트’라면서 ‘2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겠다는 길(정책)을 새로 내놓은 적 있습니다. 거의 삽질(토목공사)에 목돈을 쓰는 길인데요, 책숲(도서관)이나 책집뿐 아니라 ‘삶을 담는 글로 여미는 책’하고 얽혀서는 아무런 나랏길(국가정책)이 없다고 느낍니다.


  광주 금남로는 늘 사람들 발길이 북적입니다. 가게는 눈부시고 젊은이 옷차림은 반짝입니다. 광주 계림동을 걷자니 사람 발길이 거의 없고 썰렁하며 젊은이는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금남로하고 계림동이 그리 멀잖으나, 둘 사이는 하늘땅처럼 갈립니다. 이 계림동 한켠에서 오늘도 곧게 헌책집을 여는 〈광일서점〉입니다. 밖에서 스치듯 보면 ‘낡아가는 새 알림판(시청·구청에서 똑같이 새로 바꾼 알림판)’이 한참 빛바랬다고 느낍니다. 광주 글바치는 광주를 ‘예향’이라 일컫는 듯한데, 책집 알림판만 갈아치우는 길은 아름답지도 멋스럽지도 않습니다.


  수북수북 넘실거리는 책물결을 하나씩 들춥니다. 예전에 읽히고서 잊힌 책도, 오늘날 새로 읽힐 만한 책도 수두룩합니다. 새책집에 갓 들어가는 책만 읽을거리일 수 없습니다. 굳이 새로 엮은 헤세를 읽어야 할까요? 지난날 일찌감치 옮긴 헤세를 읽을 수 있고, 새책이건 헌책이건 고스란히 흐르는 빛줄기를 헤아릴 만합니다.


  이 책을 집어서 들추면 어느새 옆에서 다른 책이 부릅니다. 다른 책을 들여다보면 또 이 옆에서 새로운 책이 부릅니다. 책손은 없되 책으로 너울대는 골마루에서 묵은책하고 이야기합니다. “나 좀 봐.” “응, 이 아이부터 보고서.” “나도 좀 보라니까.” “그래, 곧 볼게.” “난 언제 볼래?” “손이 닿는 대로 볼게. 다같이 장만해서 우리 시골집에 옮겨놓고서 몇 달에 걸쳐 느긋이 볼 수 있지.” “그럼 나도 데려가.” “너희를 통째로 데려가고 싶구나. 너희를 하나하나 닦고 햇볕을 먹이고서 새빛을 밝힐 날이 곧 있겠지?” 눈과 귀를 여는 분들이 환하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랑 소꿉놀이를 하듯 책이랑 노는 이웃이 늘기를 바라요.


ㅅㄴㄹ


《민속극》(전경욱, 한샘, 1993.1.20.)

《13월》(에리히 케스터너/정태남 옮김, 영학출판사, 1988.8.10.)

《아낌없이 주는 나무》(쉘 실버스타인/김영무 옮김, 분도출판사, 1975.10.20./1976.12.20.4벌)

《分斷時代의 歷史認識》(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78.8.20.첫/1979.3.30.2벌)

《運命도 虛無도 아니라는 이야기》(김형석, 삼중당, 1964.1.20.첫/1964.4.5.2벌)

《국어 교과서에 따른 표준 발음 지도 자료(장·단음과 실제 발음)》(오명렬, 한국교육출판, 1991.4.)

《中·高等學生用 敎育漢字辭典》(편집부, 구문사, 1973.5.20.)

《현대 차 생활용어》(한국차문화협회 엮음, 보림사, 1990.8.30.)

《나의 아버지 채플린》(C.채플린 2세/이신복 옮김, 중앙일보, 1978.1.25.첫/1981.11.5.5벌)

《東方記行》(헤르만 헤세/곽복록 옮김, 중앙일보, 1978.5.15.첫/1981.7.20.2벌)

《유럽의 民話》(막스 뤼티/이상일 옮김, 중앙일보, 1978.6.20.첫/1981.9.15.3벌)

《北極探險》(홍성호 엮음, 중앙일보, 1979.6.10.첫/1981.11.5.2벌)

《카프카의 한 친구》(아이작 싱거/천승걸 옮김, 중앙일보, 1979.1.15.)

《明洞聖堂》(노기남, 중앙일보사, 1984.4.20.)

《2001년의 日本》(中村忠一/노계원 옮김, 중앙일보사, 1985.8.10.)

《詩란 무엇인가》(J.L.주베르/장영수 옮김, 중앙일보사, 1985.2.20.)

《인형의 집》(엔리크 입센/홍건식 옮김, 학원사, 1989.1.15.첫/1990.4.20.4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F.니체/황문수 옮김, 삼중당, 1984.2.15.)

《밤에 쓴 인생론》(박목월, 삼중당, 1984.2.15.)

《말 29호》(장경옥·김태홍 엮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11.1.)

《盆裁界 2호》(송삼섭·이상현 엮음, 한국분재협회, 1982.10.1.)

《평화의 나무 김대중 2》(오수 글·그림, MK, 2000.12.20.)

《중학준비영어》(박일규·손세환 엮음, 능력개발, 1980.12.5.)

《삶의 바른 길》(이경인 엮음, 교문출판사, 1984.11.30.첫/1985.10.30.2벌)

《東京, 그 巨大한 村落》(김소운, 배영사, 1969.9.15.)

《세개의 황금사과 外》(조운제 옮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5.10.)

《とんぐり民話集る(星新一, 新潮社, 1993.12.15.)

《TO YOU BOOKS 97 상처입은 결혼》(앤 마서/김희성 옮김, 문화광장, 1995.2.5.)

《예비자 및 초보자를 위한 교리문답》(임덕·이영식·구도날드·조영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7.7.1.첫/1980.3.10.4벌)

《에드워드 케네디》(지미 번스/국흥주 옮김, 1979.10.25.)

《Samjungdang English Series C 215 황금강의 임금님》(J.Ruskin/김병익 옮김, 삼중당, 1982.5.15.)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정성환 옮김, 동서출판사, 1978.6.20.)

《알기쉬운 생활한자 모음집》(이상만 엮음, 국민은행·공정문화사, 1996.11.15.)

《中國 雜誌 252號》(편집부, 中華民國, 1983.11.15.)

《少年兒童趣味 字 ...》

《高敞의 얼(傳說篇)》(편집부, 고창군교육청, 1987.12.4.)

《내 고장 해남》(편집부, 해남군교육청, 1987.10.5.)

《분단을 뛰어넘어》(양은식·김동수 외, 중원문화, 1988.6.30.)

《조선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전석담·허종호·홍희유, 이성과현실, 1989.3.20.)

《軍隊文化의 뿌리》(양희완 엮어 옮김, 을지서적, 1988.11.15.)

《古文字學 첫걸음》(李學勤/하영삼 옮김, 동문선, 1991.6.20.)

《國祖檀君 第2輯》(편집부, 단군정신선양회, 1984.11.10.)

《天然記念物總覽》(최원식 엮음, 한국교육출판, 1980.7.20.)

《中等敎授資料(舊 中等敎育) 英語科 編 3호》(박영호 엮음, 월간 중등교육자료, 1971.11.1.)

《체육 교육 자료 총서 28 테니스》(편집부, 문교부, 1975.2.15.)

《최불암 이야기》(윤덕주 엮음, 백암, 1991.12.6.첫벌/1992.1.25.4벌)

《레닌과 아시아 민족해방 운동》(편집부, 남풍, 1988.3.30.)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3.1.첫/1993.1.4.12벌)

《인형극의 실제》(헬렌 플링 글·챨스 포벨 그림/조용수 옮김, 서낭당, 1983.3.10.)

《토함산 노랑제비꽃》(김녹촌, 그루, 1992.7.15.첫/1994.6.20.3벌)

《작은 책방》(엘리너 파전 글·에드워드 아디존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길벗어린이, 1997.1.30.첫/2006.5.1.고침판)

《빨리 해보라구》(찰스 M.슐츠/편집부 옮김, 선영사, 1985.4.1.첫/1989.9.4.중판)

《てるてる坊主れ》(畑守人 글·大隅太南 그림, 第一法規出版, 1991.2.14.)

《おにたのぼうし》(あまん きみこ 글·岩崎 ちひろ 그림, ポプラ社, 1969.8.첫/1979.4.31벌)

《現代韓國人名辭典·現代生活用語辭典》(편집부, 합동통신사, 1968.1.10.)

《21세기 참다래시장전략》(정운천, 전라남도, 1993.5.14.)

《조합결성의 기초지식》(편집부, 동녘, 1984.8.30.)

《오늘의 고흥》(편집부, 고흥군청, 1954.5.)

《최신 학교무용》(구채경·김금희·성인자·이석기·추분자·한현옥, 교육자료, 1985.7.20.)

《科學·人間·自由(갈릴레오의 苦悶》(김용준, 명진사, 1979.10.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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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광주 (2022.5.16.)

― 광주 〈일신서점〉



  어느새 ‘오월광주’란 넉 글씨는 한 낱말로 뿌리내린 듯합니다. 해마다 오월이면 전남 광주는 길을 막고서 여러 잔치를 벌입니다. 그래요, ‘잔치’를 벌입니다. ‘고요히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왁자지껄한 잔치판입니다. 2022년 5월 18일을 앞두고 광주로 바깥일을 보러 가는 김에 헌책집 〈일신서점〉에 들릅니다. 저는 광주책집을 자주 드나들지는 않습니다만, 광주에서 책집마실을 하며 다른 책손을 스치거나 만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누가 오월광주를 묻는다면, 전남사람으로서 “왁자판을 꺼리며 이름을 감추고 들풀로 가만히 지내는 사람이 한쪽이라면, 왁자판을 벌이고 왁자지껄하게 나서는 사람이 한쪽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몸이 다치는 바람에 귀가 먹어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일신서점〉 할배는 구부정한 몸이어도 꾸준히 새 헌책을 추스르고, 언제 찾아들는지 알 길이 없는 책손을 기다립니다. “내가 이제 내년이면 구십이오. 올해로 책장사를 51년 했소. 광주고 옆에서 헌책방을 하는 〈광일서점〉이 나보다 딱 5∼6년 늦어. 나도 젊었을 적에는 무등산에 맨발로 오르고 얼음물에도 들어갔네만.”


  오월 햇볕은 아주 여름볕입니다. 이 후끈한 날에 길거리에서 입가리개를 꿋꿋이 쓴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나라가 시키야 움직인다면 종(노예)입니다. 가게에서 먹을 적에는 가리개를 벗다가, 햇볕이 후끈거리는 길거리에서는 가리개를 쓰는 몸짓이 두동진 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말을 안 한다면, 우리는 모두 생각을 잊거나 잃은 종살이인 셈입니다.


  남이 내주는 홀가분(자유)은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빛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길, 곧 ‘나사랑 = 홀가분(자유)’입니다. 참다운 오월넋이라면 겉치레를 감추는 모든 울타리를 걷어내는 들풀물결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시켜야 읽는 책이라면 아예 안 읽는 쪽이 낫습니다. 책읽기도, 삶읽기도, 나라읽기(정치·사회읽기)도, 마음읽기도, 사랑읽기도, 언제나 스스로 눈망울을 빛내는 길일 노릇입니다.


  앞으로는 스스로 마음을 읽고 사랑하는 길로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늘까요? 마을빛을 북돋우는 징검다리 노릇을 쉰 해 남짓 이은 작은책집을 눈여겨보는 발걸음이 새롭게 깨어날 수 있을까요? 겉에 먼지가 묻거나 긁혀도 책입니다. 사납빼기가 북북 찢더라도 책에 깃든 이야기는 안 찢깁니다. 어떤 총칼도 사랑을 건드리거나 더럽히지 못 합니다. 오직 우리 생각이 마음을 건드리고, 우리 마음이 사랑을 움직입니다. 사랑이란 마음으로 사랑을 생각하며 쥐는 책일 적에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民俗學辭典》(民俗學硏究所 엮음, 東京堂出版, 1951.1.31.첫/1980.6.20.55벌)

《民衆과 民族》(송건호, 명진사, 1979.10.15.)

《湖巖自傳》(이병철, 중앙일보사, 1986.2.12.)

《創業》(중앙일보 경제문제연구소, 중앙일보사, 1986.6.20.첫/1988.5.4.4벌)

《鄕土서울 50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엮음, 서울특별시, 1991.2.15.)

《머리를 좋게하는 두뇌개발 백과》(이기한, 새로운문화사, 1979.12.25.)

《己未를 알자》(이일구, 무림사, 1979.5.1.)

《즐거운 가정요리》(하명희·정미나, 식생활연구회, 1997.3.)

《내 고장 鄕土飮食》(관광과 엮음, 전라남도, 1987.5.)

《新藥의 副作用과 處方》(편집부 엮음, 한샘문화사, 1974.1.25.첫/1974.2.7.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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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밥 (2022.7.1.)

― 서울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어제는 내내 구름바다에 함박비가 쏟아지던 하늘인데, 오늘은 파랗게 열립니다. 이 멋진 여름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누구나 튼튼합니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들꽃은 꽃송이가 짙다지만, 해를 못 먹는 들꽃은 시들시들하고, 해를 못 받는 나무는 열매를 거의 못 냅니다. 사람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해가 쨍쨍 날 적에는 되도록 가볍거나 짧거나 단출히 입고서 해를 쬘 노릇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늘 여름이라고 하지만, 으레 웃통을 벗고 아랫도리만 살짝 걸칠 뿐입니다. 온몸으로 해를 듬뿍 먹어요. 우리 겨레도 지난날에는 ‘흙을 일구며 살던 사람’은 가벼운 차림새였습니다. 지난날 시골아이는 천조각을 아예 몸에 안 걸치고 해바라기로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뛰놀았습니다.


  땡볕을 실컷 받고 걸으며 돌아보는데, 입가리개를 걷어치우거나 여름볕에 살갗을 내놓는 서울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하나같이 그늘에 있으려 하고 해를 꺼립니다. 해바람비가 몸을 살리는 줄 못 느끼는구나 싶고, 해바람비가 몸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배운 적이 없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요즈음은 풀밥(채식·비건)을 한다는 분이 부쩍 느는데, 거의 서울사람(도시인)입니다. 풀밥살림은 안 나쁩니다만, 가게에서 풀을 사다가 먹을 적에는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친환경·유기농 채소’는 거의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관행농 채소’는 거의 맨땅에서 키웁니다. 이름은 ‘친환경·유기농’이지만 비닐집에서 꼭짓물(수돗물)만 먹기 일쑤요, ‘관행농’은 풀죽임물(농약)에 죽음거름(화학비료)을 잔뜩 머금지만 해바람비를 쐽니다.


  둘 다 살림풀하고는 먼 셈인데, 해바람비를 못 받은 ‘비닐집 꼭짓물 푸성귀’가 참답게 사람한테 이바지할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푸성귀를 새삼스레 비닐자루에 담아 ‘형광등 불빛’이 내리쬐는 시렁에 놓는걸요.


  아침 일찍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앞에 닿습니다. 책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이니, 바깥책(외국도서)을 우리말로 옮기는 ‘나귀’ 님도 일찍 책집 앞으로 옵니다. 열 몇 해 만에 얼굴을 보면서 책수다를 누립니다. 담배·아야후아스카 이야기도 우리말로 옮긴 ‘나귀’ 님이 ‘입가리개·미리맞기(백신)’하고 얽힌 민낯을 다룬 이웃글(외국 자료)을 우리말로 옮기도록 북돋울 펴냄터가 있기를 빕니다.


  서울 시내버스 504를 타 봅니다. 장승배기나루를 지나며 보니, 〈문화서점〉은 잘 있구나 싶습니다. 동작구청 건너에 있는 〈책방 진호〉는 저녁 다섯 시 무렵 연다는 알림글이 붙는데, 책시렁이 많이 비었습니다. 빈 책시렁은 쓸쓸합니다.


ㅅㄴㄹ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시몬 비젠탈/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5.8.10.첫/2019.10.30.고침)

《노래하는 복희》(김복희, 봄날의책, 2021.9.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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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함박 (2022.6.30.)

― 서울 〈콕콕콕〉



  인천으로 가려고 고흥서 안산버스나루로 달렸고, 〈딴뚬꽌뚬〉을 들르고서 서울로 전철을 달리는데, 오늘 서울 볼일이 사라집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오류동에 있는 그림책집 〈콕콕콕〉을 가 보려고 합니다. 함박비가 쏟아집니다. 인천에서는 썩 굵지 않은 빗줄기였으나, 전철을 내려 걷자니 후두둑 시원스럽습니다.


  함박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은 혼자입니다. 서울에서 맨몸으로 빗물을 누리는 사람은 없을 만하지요. 서울이기에 오히려 빗물을 맞으면서 몸도 마음도 바다빛을 품으면서 씻을 만한데요. 모든 빗물은 바다에서 옵니다. 맑고 드넓은 바닷방울이 빗방울로 겉모습을 바꾸니, 빗물은 매우 싱그럽습니다.


  그나저나, 책집은 일찍 닫으신 듯합니다. 빗길에 쓴 노래꽃(동시) ‘프리다 칼로’를 문고리에 걸어 놓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려다가, 찰칵 찍어 책집지기님한테 띄웁니다. 디딤칸에 앉아 숨을 돌립니다. 빗물에 젖지 않도록 등짐을 다시 여미고, 길손집으로 일찍 가서 빨래를 하고 누울 생각을 하며 빗길을 걷는데 책집지기님이 기꺼이 다시 나와 주신다고 알립니다. 책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림책집 〈콕콕콕〉은 이 이름처럼 콕콕콕 내리는 빗물처럼 북새판 서울 한켠에서 차분히 다독이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저마다 나아가는 길을 짚고, 스스로 피어나는 길을 돌아보고, 새롭게 자라나는 길을 생각합니다. 걸상에 앉아 빙그르르 둘러보노라면 문득문득 이 그림책하고 저 그림책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미 읽은 그림책도, 앞으로 읽을 그림책도, 오늘 만날 그림책도, 나중에 다시 볼 그림책도, 새록새록 헤아립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줄 몰랐을 적에는 그냥그냥 빽빽하고 매캐하고 복닥거리는 서울 어느 곳입니다. 마을책집에 한 발짝 들어서고서 다리를 쉬고 눈망울을 밝힌 뒤로는 한여름에 눈꽃송이를 그리고 한겨울에 들꽃잔치를 떠올리는 이야기터입니다.


  다시 함박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의왕에서 서울마실을 온 이웃님을 만나 두런두런 어울립니다. 밤이 깊을 즈음 길손집에 들어서서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등짐살림을 다 꺼내어 바람을 쏘이고서 빨래를 합니다. 이튿날은 맑게 갠 하늘빛을 누리며 걸으리라 어림하며 꿈나라로 갑니다.


  어릴 적부터 숲빛이나 시골빛이나 바다빛을 품고 자라나는 어린이가 그림을 사랑한다면, ‘엘사 베스코브’ 님이나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나 ‘바바라 쿠니’ 님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처럼 사랑으로 짙푸른 그림책을 선보일 새내기를 만날 수 있겠지요. 요새는 가뭇없이 사라진 듯한 그림책밭 앞길을 그려 봅니다.


ㅅㄴㄹ


《내가 예쁘다고?》(황인찬 글·이명애 그림, 봄볕, 2022.6.1.)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문학동네, 2022.6.8.)

《가슴이 콕콕》(하세가와 슈헤이/김숙 옮김, 북뱅크, 2017.11.15.)

《탑의 노래》(명수정, 글로연, 2022.2.11.)

《심장 소리》(정진호, 위즈덤하우스, 2022.3.15.)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사름벼리·최종규, 스토리닷, 2019.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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