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3.27.


《밈 : 언어가 사라진 세상》

앨리너 그래이든 글/황근하 옮김, 겊은숲, 2017.11.30.



  종이책도 사전도 사라진 머지않은 날에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고 하는 줄거리가 흐르는 《밈 : 언어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소설이라고 말하니, 곁님이 한 마디를 들려준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사나요?” 먼 앞날이고 자시고 바로 오늘 우리를 둘러싼 삶터를 보면, 어느덧 생각을 잊거나 잃은 사람이 많다. 더 낱낱이 들여다보면 나 스스로도 ‘생각하기를 잊거나 잃을’ 때가 있다. 그러니 손전화보다 더 눈부신 새로운 기계가 나와서 모든 것을 다 해 준다고 하는 앞날에 앞서 우리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고 다시금 돌아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휘둘리지도 않고 두려웁지도 않으며 걱정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생각을 잊거나 잃은 사람이라면 두 손에 가득 움켜쥐었어도 걱정하고 두려우며 그저 휘둘리기만 한다. ‘말’이란 생각을 나타내어 나누는 소리이다. ‘글’이란 생각을 나타낸 말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말이 사라질 즈음 글이 사라질 테고, 글이 사라질 즈음 우리가 손수 짓는 살림이 사라질 테지. 아니 삶터는 언제나 나란히 움직인다. 손수 짓는 살림이며 말이며 생각이며 한꺼번에 스러지거나 밀려난다. 대학입시하고 공무원취업에 매달리는 이 땅에는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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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6.


《피아노의 숲 1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문준식 옮김, 삼양출판사, 2005.12.1.



  문득 《피아노의 숲》 열한째 권을 다시 펴 본다. 열한째 권에 나온 어느 낱말이 몇 쪽에 나왔는가를 알아보려고 뒤지는데, 첫 쪽부터 살피다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찾는다. 이러면서 책 한 권을 새삼스레 되읽었네. 열한째 권이 나온 해가 2005년이니 꽤 되었다. 그즈음에는 다음 권이 언제 나오느냐 기다리느라 서둘러 지나갔다면, 오늘은 퍽 느긋하게 말 한 마디 그림 한 칸 새로 새기면서 돌아보는데,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피아노하고 한몸으로 노래를 탄다는 이야기가 반갑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려면 손놀림뿐 아니라 몸도 튼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새롭다. 피아노뿐이랴. 우리가 즐거이 여기는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으면 어떤 일이나 놀이도 얼마 못 하고 끝난다. 힘이 있어야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스레 다스리고, 힘이 있을 적에 김치 담그기이든 집살림이든 모두 알뜰살뜰 해낼 수 있다. 피아노를 치느라 건초염에 걸린 동무한테 ‘튼튼한 몸’이 되도록 애쓰라고 도움말을 들려주는 카이가 상냥하다. 카이 스스로 겪어서 잘 아는 대목이겠지. 나도 스스로 힘을 새로 길러서 집살림을 비롯한 배움살림도 한결 씩씩하게 걷자고 마음 단단히 먹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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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글·다케다 미호 그림·사이토 다카시 엮음/정주혜 옮김, 담푸스, 2018.2.19.



  집에서 푹 쉬면서 그림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편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그림책 지음이인 다케다 미호(타케다 미호) 님이 그렸다. 한국에 이분 그림책이 몇 권 안 나오기에 섭섭하지만, 이렇게 새로 나오는 책이 있으니 반갑다. 구미 삼일문고 그림책 칸에 이 책이 보기 좋게 놓였기에 덥석 집는다. 이 그림책을 옮긴 곳도, 다루는 책집도, 여기에 장만하는 내 손까지 모두 사랑스럽다고 여긴다. 나쓰메 소세키 님 소설에서 ‘고양이’가 이야기를 읊으며 이끄는 대목을 알맞게 추려서 엮은 그림책은 마치 이 그림책을 빚으려고 쓴 글이라기도 하다는 듯이 새롭다. 다만 옮김말에서 “이 몸의 주인(7쪽)”하고 “주인이 대단한(9쪽)”에 나오는 일본 한자말 ‘주인’은 바로잡아야지 싶다. 7쪽은 “이 몸을 돌보는 이”로, 9쪽은 “아저씨가 대단한”으로. 일본말 ‘主人’하고 한국말 ‘주인’은 다르다. 소릿값으로만 적는 일은 번역이 아니다. 그림하고 줄거리로만 보면, 따스하면서 익살스러운 그림결이 나긋나긋하다. 봄볕에 가만히 낮잠에 들고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서 저녁일을 마무리하는 느긋한 하루를 그려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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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4.


《꽃에게 묻는다》

사소 아키라 글·그림/이은주 옮김, 학산문화사, 2018.2.28.



  꽃을 눈으로 볼 수 없어도 꽃을 마주하며 묻는다. 꽃을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꽃을 그리며 묻는다. 꽃내음을 맡을 수 없어도 꽃을 마음으로 부르며 묻는다. 무엇을? 너는 왜 꽃이니? 너는 어쩌면 이리도 곱니? 너는 이 땅에 무엇을 하려고 왔니? 만화책 《꽃에게 묻는다》는 ‘볼 수 있는 사람’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이 나온다. 하루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하루를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사랑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아기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아기를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무엇을 보거나 못 보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못 보는 사람일까? 베트남 이웃을 사귀는 스님이 계신 절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구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진주를 거치고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온다. 이동안 《꽃에게 묻는다》를 고이 품으면서 내가 나한테 물어본다. 나는 꽃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을까. 나는 꽃한테서 어떤 모습을 알아보고서 어떻게 손길을 뻗을 수 있을까. 꽃은 나를 보며 마음으로 무엇을 물을까. 꽃이 나한테 “너는 어떤 숨결이니?” 하고 물으면 무어라 얘기해야 할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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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3.


《레딩 감옥의 노래》

오스카 와일드 글/김지현 옮김, 큐큐, 2018.3.3.



  어제 낮 다섯 시 반에 쓰러졌다. 밤 열두 시 반에 일어났다. 몇 시간이었을까. 끙끙거리면서 마음을 추슬렀고, 마음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니 여러 시간이 걸렸어도 몸이 차츰 나아진다. 물조차 입에 안 대면서 속을 비운 채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선다. 고흥읍으로 가고, 순천버스역, 순천기차역, 진주기차역, 동대구역, 구미역, 이렇게 여덟 시간 남짓 걸려서 간다. 이 길에 책 몇 권을 읽고 무릎셈틀을 꺼내서 글을 쓴다. 《레딩 감옥의 노래》를 읽으면서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이 꿈처럼 짓고 싶던 글·삶·노래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긴다. 왼쪽에는 영어로, 오른쪽에는 한국말로, 두 말로 읽도록 엮은 책이 반가운데, 1800년대 영어란 이렇구나 하고 느끼다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영어는 영국에서도 어느 고장 말, 곧 사투리 영어’일 수 있겠다고 느낀다. 우리는 오늘날 표준 서울 한국말로만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일쑤이다만, 표준도 서울도 버리고서 경상말 전라말 제주말로 아름다이 삶을 노래하며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글을 펼 수 있으면 먼먼 뒷날에 새로운 이야기 씨앗을 남겨 줄 만하지 싶다. 《레딩 감옥의 노래》도 옮김말이 퍽 아쉬운데, 몰록 떠오르기로, 옮김말이 아쉽다기보다 옮긴이가 ‘시를 쓰지 못했구나’ 싶네.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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