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음노래

수박



수박이 왜 ‘수박’인 줄 알려면, 수박을 먹어 보기도 해야겠는데, 수박씨를 심고, 수박싹을 보고, 수박잎을 보고, 수박덩굴에 수박꽃을 보다가, 꽃가루받이를 누가 하는지를 보고서, 수박알이 여무는 나날을 보아야겠지. 옛사람은 ‘슈박’이라 말했다지. ‘슈룹’이 ‘우산’을 가리키는 옛말인 줄은 아니? 여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하나씩 돌아보고, 수박 한살이를 헤아리고, 무엇보다 수박한테 마음으로 물어보며 이야기를 할 노릇이야. 이런 다음에 하늘이랑 바람이랑 해랑 나비랑 개미한테 “수박은 왜 수박이란 이름이야?” 하고 물으렴. ‘하나’를 알고 싶을 적에는 너를 둘러싼 모든 숨결한테 두루 물어볼 노릇이야. ‘하나’를 알려면 ‘모두’ 살펴야 하거든. 그리고 ‘모두’를 알고 싶으면 ‘하나’를 알 노릇이야. ‘하나’로 가는 길은 ‘온’이요, ‘온·모두’로 가는 길은 ‘하나’야. 풀싹이 돋는 곳을 보렴. 풀싹은 자리를 가리지 않아. 흙밭이든 잿밭(시멘트)이든 뿌리를 내리고서 줄기를 올린단다. 풀싹은 오직 철을 가려. 스스로 알맞을 철을 가려서 뿌리를 내려서 뻗으려 하지. 그래서 풀싹이 돋는 곳은 해마다 천천히 흙이 싱그럽게 살아나. 풀잎이 머금은 해바람이 줄기를 거쳐 온몸으로 돌면서 뿌리에 가닿거든. 뿌리는 잎이며 줄기가 보낸 해바람 기운을 땅밑으로 두루 퍼트린단다. 자, 수박을 다시 생각해 보자. 넌 수박을 먹으면서, 수박이 그동안 받아들인 해바람비라는 기운을 느끼니? 모든 씨앗은 저마다 누린 해바람비를 품지. 저마다 다르기에 저마다 새롭게 살아. 2022.8.8.달.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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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넌 똥을 하루에 몇 판쯤 누니? 똥을 얼마나 눠? 이틀마다 누니? 사흘이나 나흘마다 누니? 넌 방귀를 하루에 몇 판쯤 뀌니? 얼마나 자주 방귀를 뀌니? 넌 길에서 얼마나 자주 넘어지거나 안 넘어지니? 넌 하품을 얼마나 자주 하니? 넌 하루에 숨을 얼마나 쉬니? 이 모두를 헤아리면서, 너를 둘러싼 ‘남’을 보렴. 넌 남들처럼 똥을 누거나 방귀를 뀌거나 넘어지거나 하품을 하거나 넘어져야 하니? 네가 “아니야! 남들처럼 똥을 누거나 방귀를 뀔 까닭이 없어!” 하고 느낀다면, 이제 스스로 다시 물어보겠니? “남처럼 돈을 벌거나 힘이 세거나 이름을 날려야 할까? 남처럼 서울에서 살며 큰 잿빛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동차)를 몰아야 할까? 남처럼 남처럼 남처럼 되거나 이루거나 쥐거나 해야 할까?” 안팎으로 늘 같아. 네가 겉으로 하는 모든 말은, 네 마음속으로 심는 씨앗이야. 웃기려고 가볍게 하는 말이 참말로 웃기거나 가벼운지, 아니면 웃기거나 가벼운 척하지만 막상 스스로 갉아먹는 말씨(말씨앗)인지 생각하기를 바라. 네 오늘은 네 어제가 깨어난 아침이고, 네 오늘은 네 모레가 맞이할 삶이고, 네 모레는 네 어제를 이루는 밭(바탕)이야. 네 텃밭에 뭘 심고 싶어? 투덜질이나 짜증이나 미움을 심겠니? 네 마음밭·생각밭·꿈밭에는 뭘 심겠니? 네 말밭·글밭·마음밭에는 뭘 심으려 하니? 2022.10.4.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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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 신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가만히 헤아려 보렴. ‘귀신’이란 “스스로 ‘신’인 줄 잊는 바람에, 스스로 ‘신’인 길을 잃고서 스스로 ‘신’을 모르는 채 헤매느라 뭘 어찌해야 하는가를 다 빼앗긴(남한테 바친) 넋“이야. 그렇다면 생각하렴. ‘신’이란 “스스로 누구인 줄 또렷이 새기면서, 스스로 어느 삶길을 가야 하는 줄 알아차려서 스스로 무엇이든 짓고 사랑하면서 누구한테나 어디에서나 사랑을 펴며 스스로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넋”일 테지. 해맑게 뛰노는 아이한테서 왜 ‘하늘님’을 볼 수 있는지 생각하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이라 하지만 활짝 웃으면서 해바람비를 먹을 뿐 아니라, 콩 한 톨을 이웃하고 나누는 사람한테서 왜 ‘하늘빛’을 느낄 만한지 생각해 봐. ‘하늘숨결’은 저 너머에 있지 않아. ‘하늘사람’은 누구나야. 누구나 “하늘을 품어 빛나는 넋”이야. 그러니 ‘산 몸뚱이’를 입었더라도 스스로 “하늘을 안 품고 안 빛나는 넋”이라면 ‘신’이 아닌 ‘귀신’이지. ‘죽어가는 몸뚱이’를 입었더라도 “하늘을 기꺼이 고스란히 품으며 웃음·노래·춤으로 깨어나는 넋”이라면 모두 ‘신’이야. 스스로 빛을 잃거나 빼앗기거나 남한테 바치는 이들은 ‘죽은 낯빛’이란다. 이들한테는 웃음·노래·춤이 없이 차갑고 싸늘하고 거칠지. ‘TV·영화’ 같은 데에서 억지로 꾸미는 몸짓은 웃음·노래·춤이 아니야. 몽땅 눈속임에 거짓(껍데기)이지. 네가 ‘님(신)’인 줄 스스로 못 느끼면 바로 너부터 ‘미친깨비(귀신)’란다. 2022.1.6.나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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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글 - 만들다


손수 삶을 짓는 일이 차츰 사라지거나 줄어들면서 ‘만들다’가 아무렇게나 퍼지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밥을 만들다”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밥을 짓는다”나 “밥을 끓인다”나 “밥을 한다”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공장에서 척척 찍을 적에 ‘만들다’입니다. ㅅㄴㄹ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2015) 104∼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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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글 - 삶과 책을 달리


삶과 책을 달리 볼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삶과 책은 함께 흐르는걸요. 처음 낸 책에서든 나중 낸 책에서든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요. 삶을 가꾸는 마음이 없으면, 처음 낸 책이 아무리 애틋했어도, 이른바 ‘문학을 문학으로 봐야 한다’고 하더라도, 가면 갈수록 넋나간 길로 빠지더군요. 책다운 책을 읽으면서 삶다운 삶을 가꾸는 슬기를 얻기를 바라요. 책다운 책을 사랑하면서 삶다운 삶을 사랑하는 빛을 마음속에 담기를 바라요. ㅅㄴㄹ


《책숲마실》(스토리닷, 2020)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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