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



아직 낱말책(사전)을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기 앞서인 2000년 겨울까지 ‘사전에 나온 올림말’에 꽤 시큰둥했습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이라면서 정작 우리말을 허술히 다룰 뿐 아니라 깔보는 티가 물씬 났거든요. 한문쟁이조차 안 쓰는 중국 한문에 일본 한자말을 새까맣게 억지로 실으면서 ‘한자말을 아득바득 50% 넘게 실으려고 용쓴’ 자국을 숱하게 보았거든요.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대학교수는 왜 ‘우리말꽃에 한자말을 아득바득 더 실어서 우리말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들은 여느 사람인 우리가 쉽고 맑으며 고운 말결로 생각을 새롭게 짓는 길을 알아채거나 깨달으면 ‘먹물힘(문자 기득권)’이 사그라드는 줄 일찌감치 알았거든요. 누구나 책을 읽고 누구나 글을 쓰는 때가 찾아오면 ‘먹물힘’은 쪼그라들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낱말책 하나는 무척 대수로우며, 우리나라를 뺀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는 ‘나라(중앙정부)’가 말꽃짓기(사전집필)에 터럭만큼도 못 끼어들도록 막아요. 말꽃이 말꽃다울 적에는 사람들이 맑고 곱게 눈을 뜨면서 생각날개를 훨훨 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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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즈음 되자 비로소 신문이 뭔지 알았으나 뜻은 몰랐지요. “새로 듣는다”고 해서 ‘신문(新聞)’이던데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신문에 거짓글이 실리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때에 ‘정론직필’이란 말을 들었고 ‘바른붓’이란 말도 함께 들었어요. 힘으로 눌러도 눌리지 않고, 돈으로 꾀어도 흔들리지 않는 붓이기에 바르겠지요. 거짓이 아닌 ‘참글’이요, 바람이 불어도 곧게 나아가는 ‘곧은길’입니다. 참소리, 참말, 참붓, 참길이 삶을 가꿉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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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길을 더 느끼고 싶다면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2019)를 곁에 두어 보셔요. 낱말책(사전)이 들려주는 노래를 같이 누려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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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9.



2004년 5월에 첫 책을 내놓았습니다. 2003년이나 2002년이나 2001년에 내놓을 수도 있었으나 다 손사래쳤습니다. 이무렵 사흘에 두 가지씩 ‘1인 소식지’를 엮어서 내놓았는데, ‘책 아닌 작은 소식종이’로 그때그때 이야기를 여미려고만 했습니다. 책을 내기로 한 뜻은 아주 작고 쉽습니다. ‘책으로 엮어서 내놓으면 똑같은 말을 굳이 더 안 해도 되겠네’ 싶더군요. 책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쓰는 이웃님이 있다면, 큰책집이 아닌 작은책집을, 또 새책집이 아닌 헌책집을, 또 누리책집이 아닌 마을책집을, 기꺼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천천히 품을 들여 찾아가서, 다시 천천히 품을 들여 책짐을 짊어지고서 집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책마실맛을 누리도록 징검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큰책집·누리책집은 다 같은 책을 더 많이 팔아치우려는 뜻이 드세다면, 작은책집·마을책집은 다 다른 지기가 책집을 일구면서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이웃한테 다 다른 손길하고 눈빛으로 나누려는 뜻이 깊고 넓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나누려고 첫 책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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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책일 때는 달라요. 서울에서 파는 헌책과 제주에서 파는 헌책과 대구에서 파는 헌책과 청주에서 파는 헌책이 다릅니다. 같은 서울이지만 동대문구 헌책방과 서대문구 헌책방이 다르며 서대문구 안에서도 홍제동과 연대 앞과 신촌이 다릅니다. 신촌에서도 골목길과 대학교 앞이 다르며, 주택가 안도 달라요.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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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길을 더 느끼고 싶다면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2004)를 곁에 두어 보셔요. 다만 이 책은 이제 헌책집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인 저한테도 책이 없으니 저한테 살 수도 없는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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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7.



아이가 말에 눈을 뜨면 스스로 마음을 열면서, 이 마음에 스스로 짓고 싶은 꿈을 사랑으로 하나둘 녹여내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몸이랑 마음으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거나 배우는데, 먼저 젖을 물면서 숨을 살리는 사랑을 배우고, 이다음으로 어버이 입에서 터져나오는 노래 같은 말로 사랑을 배워요. 이동안 어버이 낯빛이나 몸짓에서 흘러나오는 상냥한 흐름으로 사랑을 익히지요. 아무 말이나 하는 어버이라면 ‘아무나’가 되고, 아름다이 생각을 가다듬어 알차게 말빛을 틔운다면 ‘아름어른’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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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번역을 하는 적잖은 이들은 영어 ‘make’를 섣불리 ‘만들다’로 옮기고 말아요. 말썽이나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할 적에는 ‘일으키다’로 옮겨야 하는데, 그만 ‘만들다’로 옮깁니다. 어떤 일이 생길 적에는 ‘생기다’로 옮겨야 하지만, 그만 ‘만들다’로 옮겨요. “The news made him very happy” 같은 영어는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꼴로 옮겨야 하지만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꼴로 잘못 옮깁니다. 이리하여, “생각을 하게 만든다”나 “재미있게 만든다” 같은 번역 말투가 퍼지고 맙니다. “생각을 하게 이끈다”나 “재미있게 한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손수 삶을 짓는 일이 차츰 사라지거나 줄어들면서 ‘만들다’가 아무렇게나 퍼지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밥을 만들다”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밥을 짓는다”나 “밥을 끓인다”나 “밥을 한다”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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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말길을 더 느끼고 싶다면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2015)를 곁에 두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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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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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5.



더 재미난 글이나 책이나 영화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만, 이보다는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살찌우면서 기쁘게 북돋우는 생각을 씨앗으로 심도록 살살 이끄는 글이며 책이며 영화이면 아름다우리라고 봅니다. 갈수록 ‘재미’를 너무 앞세우는구나 싶은데요, 굳이 ‘재미없’게 해야 할 까닭은 없되, ‘재미만’ 찾다가는 우리가 스스로 어떤 빛인가를 잃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수수께끼를, 노래꽃(동시)을,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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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082


누구나 짓는 말

어디에서나 여는 말

즐겁게 문득 떠올린 말

놀다가 일하다가 터뜨린 말


보금자리 가꾸는 어머니가

흙을 돌보는 아버지가

나무를 심는 할머니가

새랑 노래하는 할아버지가


숲이 가르쳐 주고

내가 스스로 알고

바람이 가볍게 들려주고

우리가 저절로 익히고


보금자리마다 피어난 말

이 마을에서 살아난 말

저 고을에서 빛나는 말

온 고장에서 깨어난 말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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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말길을 더 느끼고 싶다면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 2020)를 곁에 두어 보셔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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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춥지 않나요? : 고흥은 대단히 포근한 고장이지만, 이 포근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옷을 얼마나 껴입는지 모른다. 나는 한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기에 옷차림이 가볍고, 으레 반바지를 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겨울에도 긴바지를 거의 안 꿴다. 긴바지는 발목 언저리가 톱니에 걸려 자칫 넘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톱니기름이 시커멓게 묻기 마련이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한겨울 이런 차림새를 보면서 “춥지 않나요?” 하고 묻지 않는다. 자전거 즐김이는 으레 “어디서 오셨어요?(어디부터 달려서 왔어요?)” 하고 묻고는 “어디로 가셔요?(어디까지 달려서 가세요?)” 하고 묻는다. 서로서로 자전거를 살피면서 튼튼한지 어디 풀리거나 느슨한 데가 없는지, 어떤 자전거를 타면서 어떤 바람을 가르는가를 헤아린다.


한겨울에 바람을 가르는 맛은 봄가을이나 여름하고 확 다르다. 오싹하면서 싱그럽게 얼어붙는 바람이란 온몸이 찌르르 새 기운을 퍼뜨리면서 팔다리를 가볍게 북돋운달까. 자전거를 달리는 사람더러 “춥지 않나요?” 하고 묻는 사람이란, 책을 읽는 사람한테 “따분하지 않나요?” 하고 묻는 셈이다.


우리가 서로 물어볼 말이라면 “즐겁지요?”이지 않을까? 한겨울에도 반바지차림으로 자전거를 달리며 바람을 가르는 즐거운 맛을, 아무리 두꺼워도 차근차근 읽어내면서 새롭게 삶을 노래하는 맛을.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도 “그런데 안 추워요?”나 “그런데 안 힘들어요?” 하고 꼭 되묻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제는 “하하하! 참말 모르시네! 겨울에 반소매 반바지로 자전거를 달려 보시면 안당께!”라든지 “허허허! 참말 모르시네! 1000쪽쯤 되는 책이야말로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꽃인걸!” 하고 덧붙인다.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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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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