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15. 모시지 마라



나는 스승을 모시지 않는다. 스승을 모셔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 누가 나를 스승으로 삼아 모시고 싶다고 말하면 이때에 똑똑히 자른다.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면, 이제부터 나를 보시지 말라고. 한 마디를 덧붙여, 나를 보시고 싶으면 모시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시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시다 보면 놓치거나 잊는 대목이 많다. 우리 곁에 어른을 모시는 삶이 된다면 그만 배움길이 멈추기 일쑤이다.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시지 않을 수 있다면 볼 수 있다. 좋은 모습도 궂은 대목도 모두 볼 수 있지. 볼 수 있을 적에는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이 아닌, 온삶을 고스란히 배우는 숨결이 된다. 곁에 어른 한 분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고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우리 갈 길을 새로 배운다고 할 만하다. 보아야 한다. 모시지 말아야 한다. 사진기를 모시지 말고, 사진기를 마음껏 다루어야 한다. 돈을 집안이나 계좌에 모시지 말고, 이 돈으로 기쁘게 배움길을 나서고 나눔길에도 펴며 살림길을 널리 지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3. 넘어졌네



넘어졌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넘어져서 아프다는 생각으로 무릎을 붙잡으면 될까? 넘어진 뒤이니, 이제 이 넘어진 곳이 새롭게 나으면서 한결 튼튼해지자는 생각을 하면 될까? 넘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아프다고 끙끙 앓을 수 있어. 네가 그 길을 바라면 그리 가렴.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게 나아갈 수 있어. 밥을 먹은 뒤에 즐겁게 똥을 누지. 땀을 쪽 뺀 뒤에는 시원하게 씻지. 한창 뛰놀고 나서 느긋하게 잠을 자. 넘어져서 다쳤구나,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이렇게 넘어질 적에는 다치기도 하니까, 다친 뒤에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 될는지를 생각해 보렴. 다음에 비슷한 일을 맞닥뜨릴 적에 스스로 튼튼하면서 기운찬 몸짓이 되려면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를 헤아리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4. 물맛



여러 달 동안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에 머무는, 우리 고장 아닌 다른 고장을 다니는, 마실을 다녔다. 마실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 작은아이가 불쑥 묻는다. “아버지, 수돗물은 다 이렇게 안 차가워? 우리 골짜기 물이나 우리 집 물은 덜덜 얼 만큼 차갑잖아. 마을 빨래터 물도 그렇고.” 작은아이가 묻는 말을 가만히 머리에 띄운다. 물맛하고 물결하고 물내음을 헤아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물기운이 왜 그러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집이나 마을 빨래터나 뒷자락 골짜기에는 ‘흐르는 물’이야. 흐르는 물은 늘 차갑다 싶도록 시원해. 그러나 수돗물은 안 흐르는 물이야. 안 흐르는 물은 고인 물이지. 고인 물은 시원할 수 없어. 오랫동안 갇혔다가 흐르니 죽은 물이기도 해.” 내가 작은아이만큼 어릴 적에도 우리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 물결이 궁금해서 여쭌 적이 있을 텐데, 그때 나한테 물맛이나 물기운이 왜 다른가를 제대로 밝혀서 알려준 분이 없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도시라는 곳에서 꽤 오래 살며 스스로 물맛을 알아내야 했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2. 어른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을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서 철이 들지 않으면 ‘철딱서니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을 뿐 사람다운 슬기나 사랑이 없다면 ‘늙어빠졌다’고 한다. 어른은 나이를 먹거나 늙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른은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다. 그래서 나이가 적거나 어리더라도 ‘어른스러운’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철든’ 사람이란,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서 사람답게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몸짓을 펴는 사람이다. 우리 삶터를 보면 나이만 먹은 사람, 곧 ‘늙은 사람(늙은이)’인 몸으로 마구 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른이 말하면 아이가 들어야지!” 하고 여기는 이는 어른이 아닌 늙은 사람이다. 늙은 사람한테서는 배울거리가 없고, 늙은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어른한테서 배울거리가 샘솟으며, 어른인 사람만 가르칠 수 있다. 덧붙여, 아이다운 숨결일 적에 배우며, 아이답게 살아가는 숨결이기에 즐겁게 배워서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난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1. 듣는다



마음을 열어 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생각을 틔워 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눈을 뜨고서 바람이 나무하고 나누는 말을 듣는다. 온몸을 써서 흙하고 새롭게 이야기하면서 꿈을 듣는다. 귀로도 듣지만 마음이나 눈이나 몸으로도 듣는다. 말도 듣지만 생각이나 사랑을 함께 듣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들을 수 있다. 마음을 닫거나 생각을 닫거나 눈을 감거나 꼼짝하지 않으면서, 모든 소리랑 말이랑 이야기를 하나도 안 받아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듣다”를 으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다”로만 여겨 버릇하지만, 말을 잘 듣는 삶이란 온누리에 있는 뭇목숨이나 뭇숨결이 저마다 노래하는 이야기를 알아채고 우리 목소리를 나누어 주는 몸짓이라고 느낀다.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나 기계 소리 말고, 상냥한 구름 소리나 미리내 소리를 듣자. 자질구레한 텔레비전 소리는 접어두고, 넉넉한 풀노래 꽃노래 나무노래 숲노래를 듣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