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특수 학급’은 뭘까요



[물어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평등’을 얼마나 살리는 길로 가야 하느냐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서로 다른 길일 뿐, 틀린 길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이 다양성을 살릴 수 있을 때에 진정한 평등이 될 테고요. 샘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안 쓰고 자꾸 어려운 말을 쓰거나 멋을 부리는 말을 쓰려고 하면, 말 사이에서도 계급이 생기면서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이는 다양성을 해치고 평등에도 어긋나는 일이 되겠다고 느껴요. ‘말의 다양성과 평등’ 문제를 조금 더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사회나 학교에서는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이름을 쓰지 싶고, 푸름이 여러분도 이 낱말에 푸름이 여러분 생가글 담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저한테 물어보면서 한 말 사이에 ‘다양성·서로 다른’이란 대목이 있어요. 한자말로 하자면 ‘다양성’이요, 한국말로 하자면 ‘서로 다른’이나 ‘다르다’입니다. 먼저 말씀하셨듯,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누가 맞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푸름이 여러분이라면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낱말을 그냥 쓸 텐데, 이 말씨를 놓고서 여덟 살 어린이나 다섯 살 어린이하고 나란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한테 어린 동생이 있을 적에 이런 한자말을 그냥 쓸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테지요?


  다 다른 길을 살피는 눈이란, 더 많이 알거나 잘 알거나 똑똑하다는 쪽 눈길에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더 많이 안다면 더 많이 알기에 더 쉽고 부드럽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평등도 이렇게 볼 만하지요. 한자말로는 ‘평등’이요, 한국말로는 ‘나란히’나 ‘어깨동무’입니다. 자, 생각해 봐요. 키도 작고 걸음도 느린 어린 동생하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평등이라고 하는 첫걸음이랍니다. 어린 동생하고 눈높이를 맞추려고 푸름이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는 몸짓은 평등이라고 하는 두걸음이에요.


  저는 이 자리에서 ‘다양성·평등’ 두 한자말을 푸름이 여러분보다 훨씬 어린 동생 눈높이에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다 다른 길을 한결 널리 살피고, 더 너른 마음으로 나란히 갈 수 있는 어깨동무를 하자는 마음이 바로 말을 말답게 가꾸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쉬워요. 무엇이 쉬운가 하면, 쉽게 말하면 모든 일이 쉽답니다. 쉽게 말을 하지 않으니 모든 일이 쉽지 않아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어려울까요? 말부터 쉽게 하면 일도 쉽게 풀 수 있는데, 말부터 어렵게 하면 일도 어렵게 꼬이기 마련이랍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빵을 반죽하거나 김치를 담그거나 밥을 짓는 자리에서, 여러분이 알아듣기 어렵거나 낯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를 섞는다면 얼마나 알아들으면서 함께하거나 따라할 수 있을까요? 어린 동생하고 함께 빵반죽을 하거나 밥짓기를 할 적에도 매한가지예요. 같이 즐겁게 일을 하자면 말부터 쉽게 해야겠지요? 한국이 낯선 이주노동자하고 함께 일한다고 생각해 봐요. 한국도 한국말도 낯선 이주노동자한테 어려운 말을 쓰면 일을 함께 할 만할까요?


  우리가 쓸 모든 말은 다 다른 길을 살필 뿐 아니라, 더 너른 길을 나란히 갈 수 있도록 헤아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추스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는 말이란 쉬울 뿐 아니라 곱고, 고울 뿐 아니라 참하고, 참할 뿐 아니라 상냥하며, 상냥할 뿐 아니라 부드럽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어질거나 슬기롭지요.


 별빛 ← 성광, 에이스, 스타, 천사

 별빛사람(별빛님) ← 장애인

 별빛아이(별아이) ← 장애아, 장애 어린이

 별빛칸 ← 특수 학급, 특수반, 장애아 학급


  슬쩍 다른 이야기를 곁들여 볼까 합니다. ‘별빛’이란 낱말을 들었어요. 왜 별빛이란 낱말인가 하면, ‘특수’란 한자말 때문입니다. 사전에서 ‘특수’란 한자말을 찾아보면 “특별히 다름”으로 풀이하고, ‘특별’은 ‘다름’으로 풀이합니다. 곧 ‘특수 = 다르게 다름’이란 셈인데요, 사전은 ‘다르다 = 같지 아니하다’로, ‘같다 = 다르지 아니하다’로 풀이합니다. 매우 뒤죽박죽이에요.


특수(特殊) : 1. 특별히 다름 2. 어떤 종류 전체에 걸치지 아니하고 부분에 한정됨 3. 평균적인 것을 넘음

특별(特別)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 ≒ 특단

다르다 : 1.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2.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

같다 :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 ≒ 여하다

보통(普通) : 1.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2.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


  오늘은 이 엉성한 겹말풀이나 돌림풀이 사전을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특수반·특수 학급’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저한테 다양성하고 평등 이야기를 물으셨는데요, 어느 학교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특수반’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학급이 있어요.


  첫째 특수반은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에 더 시험성적이 나오도록 북돋우려고 하는 곳입니다. 둘째 특수반은 장애가 있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를 모두 몰아넣고서 가르치는 곳입니다.


  다른 길이란 틀린 길이 아니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그저 다르게 다루곤 합니다. 왜 시험성적으로 누구는 첫째 특수반에 들어가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왜 장애로 갈라서 누구는 둘째 특수반에 있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다름하고 같음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장애자’라 하다가 ‘장애인’으로 바꾸다가 ‘장애우’라고도 합니다. 말끝을 ‘자(者)’에서 ‘인(人)’을 거쳐 ‘우(友)’처럼 한자만 바꾼 꼴이에요. 우리 삶터는 이렇게 말끝만 바꾸는 시늉을 했어요. 이러면서 더 생각을 못하기도 했는데요, ‘놈(者)’을 ‘사람(人)’으로 바꾸다가 ‘벗·동무(友)’로 고치는 길인데요, 처음부터 ‘사람’으로, 또 ‘벗’으로, 또 ‘님’으로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 생각해서 ‘장애’라고 하는 이름부터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여느 삶터에서 바라보기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지만, 다른 별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른 삶을 짓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별아이·별빛아이’나 ‘별사람·별빛사람’ 같은 새 이름을 떠올렸어요. 둘째 특수반을 놓고도 ‘별빛칸(별빛반·별빛학급)’ 같은 새 이름을 그려 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다 다른 이웃하고 동무한테서 흘러나오는 고운 별빛을 마음으로 느끼고 나누자는 뜻으로 이런 새 이름을 생각해요. ‘차별·차이’나 ‘특별·특수’로 가르지 말고 서로 마음으로 별빛 같은 눈빛이 되자는 뜻으로 이렇게 새 이름을 헤아립니다.


  별빛하고 꽃빛이 어깨동무하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풀빛이 손을 잡으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물빛이, 별빛하고 흙빛이, 별빛하고 잎빛이, 별빛하고 불빛이, 별빛하고 바람빛이, 서로서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한마당이 되면 좋겠어요.


  여느 사람을 흔히 풀에 빗대곤 합니다. 한자말로 ‘민초’를 쓰기도 하는데요, ‘일반인·보통 사람’을 ‘풀사람’이란 새 이름으로 나타내 보아도 어울립니다. 다 다른 우리는 풀사람·풀빛사람으로, 또 별사람·별빛사람으로 어우러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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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하루 종일”이 겹말이라고요?



[물어봅니다]

  선생님이 쓰신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보고 여러 번 놀랐어요. 겹말이라고 한들 몇 가지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사전에는 자그마치 천 가지나 담아서 놀랐고요, 두께에도 놀랐는데요, 이 사전을 내고 나서도 천 가지를 더 모으셨대서 또 놀랐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이란 말씨도 겹말이라 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늘 입에 달고 살던 “하루 종일”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놀라실 만합니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에 앞서 글쓴이인 저부터 놀랐어요. 우리 삶자리에 퍼진 겹말(중복 표현)이 제법 많은 줄 알기는 했어요. 그럭저럭 생각하며 살다가 사전이란 책을 쓰면서, 무엇보다 비슷한말을 제대로 다르게 풀이해서 가르는 사전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쓰면서, 우리 사전 뜻풀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었나 싶어 깜짝 놀랐답니다.


  여느 어른들은 이럴 때에 ‘확인사살’이란 말을 쓰더군요. 군대에서 쓰는 무서운 말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냥그냥 알던 대목을 눈앞에서 주루룩 낱낱이 보고 나니까 좀 질렸습니다.


  보기를 들어야 알기 쉽겠지요? 이 보기는 《읽는 우리말 사전 1》에 낱낱이 밝혔는데 몇 가지를 읽어 볼게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변화(變化) :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변하다(變-) : 무엇이 다른 것이 되거나 혹은 다른 성질로 달라지다

바꾸다 : 1. 원래 있던 것을 없애고 다른 것으로 채워 넣거나 대신하게 하다

달라지다 : 변하여 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사물을 다른 것으로 바꾸다 2. 어떤 직책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다


  한자말 ‘변화’를 “바뀌어 달라짐”으로 풀이하지요. 뜻풀이부터 겹말풀이랍니다. 그런데 ‘바꾸다(바뀌다)’하고 ‘달라지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이에요. 여기에 ‘갈다’란 비슷하면서 다른 말이 있는데요, 참 엉성하지요.


  그렇다면 이 엉성한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어떻게 손질해야 알맞을까요? 제가 먼저 손질말을 들려주기 앞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자, ‘바꾸다(바뀌다)·달라지다·갈다’ 세 낱말은 뜻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틀림없이 다른 말이에요. 세 낱말을 혀에 얹어서 찬찬히 소리를 내 보시고요, 소리를 내면서 어떤 결인가를 살펴보셔요.


[숲노래 사전]

변화(變化) : → 바꿈(바꾸다) . 달라짐(달라지다)

변하다(變-) : → 바꾸다(바뀌다) . 달라지다

바꾸다 : 1. 처음 있던 것을 없애고 그것이 아닌 것으로 하거나 채우거나 넣다 2. 내 것을 나 아닌 사람한테 주고, 이와 걸맞게 그 사람 것을 받다 3. 처음 짠 줄거리나 모습이나 흐름이 아니게 하다 (고치다) 4. 이제까지 있거나 쓰던 것을 버리고 그것이 아닌 것을 두거나 쓰다 5.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그 아닌 사람으로 두다 6. 어느 말을 그 말 아닌 말로 풀어 놓다 (옮기다) 7. 처음 있던 곳에서 그곳 아닌 곳으로 가다 (옮기다) 7.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거나, 이쪽에 있던 것을 저쪽에 있게 하다 (차례를 번갈아 하다) 9. 곡식이나 옷감을 돈을 주고 사다 10. 말이나 인사를 서로 하다 (주고받다, 나누다)

달라지다 : 처음이나 예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것을 빼고서 그것 아닌 것으로 하거나 넣다 (고치다) 2.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빼고서 그 아닌 사람으로 두다


  ‘바꾸다(바뀌다)’는 “이이·이것·이곳을 이이·이것·이곳이 아니도록 하다”를 나타냅니다. ‘이것 밖(바깥)’에 있도록 하는 셈이에요. ‘달라지다’는 ‘다르다·다른 것’이 바탕이니, “다르게 되도록 하다”를 나타내지요. ‘갈다’는 “이이·이것·이곳을 빼내거나 덜거나 없애서 이이·이것·이곳이 아니도록 하다”를 나타내요. ‘갈다’는 ‘갈아치우다’란 말을 떠올리면 느낌이 바로 올 만합니다.


  모름지기 사전풀이라면 그 말이 태어난 뿌리부터 오늘날 우리가 쓰는 흐름까지 두루 살펴서 다뤄야 해요. 그렇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사전풀이가 못 나와요. 다들 다른 사전을 슬쩍 옮겨서 짜맞추기를 한답니다. 올림말을 늘리려고 하다 보니 뜻풀이를 살필 틈이 모자라거든요.


  겹말이란 이 때문에 불거집니다. 숱한 사전은 올림말을 부풀려서 자랑하려고 바쁘다 보니 겹말풀이가 되고, 우리는 뭔가 바쁘거나 부산한 나머지 말 한 마디를 더 깊거나 넓거나 차분하거나 즐겁게 생각할 틈을 못 낸 채 부랴부랴 말을 하다 보니 겹말이 나타나고, 이 겹말에 매이고 말아요.


  그나저나 저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내놓으며 1000가지 아닌 1004가지 겹말을 담았어요. 1000이란 숫자만큼 모아서 사전을 엮으려 했는데 셈을 잘못 하는 바람에 1004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네 가지 보기를 덜어내야 하고 망설였어요. 이 보기를 빼자니 아쉽고, 저 보기도 못 빼겠고, 한참 애먹었어요. 1000으로 맞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요, 1004가지라는 이 숫자는 ‘천사’로 읽을 수 있데요? 그렇지요? 이웃들한테 이 《겹말 사전》이 마치 천사처럼 상냥하게 겹말을 다독여 주면서 즐거운 빛살이 된다면 좋겠네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푸른 벗님이 물어본 “하루 종일”을 차근차근 짚을게요. 먼저 여느 사전 뜻풀이를 읽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

하루 : 1.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동안. 대개 자정(子正)에서 다음 날 자정까지를 이른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3. 막연히 지칭할 때 어떤 날

진종일(盡終日) : = 온종일

온종일(-終日) : 1.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 종일(終日)·진일(盡日)·진종일 2.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종일(終日) :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 온종일


  사전풀이를 보니 어떤가요? ‘종일 = 온종일’이고, ‘진종일 = 온종일’이니까, 세 한자말은 다 같은 말이에요. 그리고 세 한자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뜻합니다. 이렇게 한자말 뜻풀이를 갈무리했으면 ‘하루’ 뜻풀이를 새로 들여다보기로 해요. 자, 둘쨋뜻이 무엇인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이지요?


  이다음은 제가 굳이 보태지 않아도 “하루 종일”이 왜 겹말인지를 푸름이 여러분 스스로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알겠지요?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하루 종일”이 겹말이라 이 말을 못 쓴다면 입을 다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새롭고 즐거이 쓸 말씨를 찾아내면 좋을까요?


 하루·하루 내내·온하루·하룻내


  적어도 네 가지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먼저 수수하게 “하루”라고만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힘줌말처럼 “하루 내내”라 할 수 있고, ‘온하루’처럼 앞에 꾸밈말을 붙일 만하며, “하루 내내”를 줄여 ‘하룻내’라 해도 어울려요.


 하루 : 오늘 하루 책하고 씨름을 했어

 하루 내내 : 하루 내내 즐거웠지

 온하루 : 온하루를 어머니하고 김치를 담그며 보냈다

 하룻내 : 하룻내 애썼지만 수수께끼를 못 풀었네


  겹말이란 군더더기 말씨입니다. 말이나 글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낸다면 홀가분할 수 있어요. 날개를 달고 훨훨 날 만큼 부드럽답니다. “수채화 그림”이라 말하는 분이 있던데, 수채화가 물빛으로 담은 그림이니 겹말이에요. 그냥 ‘수채화’라 할 수 있고, 아예 새말을 지어 ‘물빛그림’이라 해도 됩니다.


  우리가 겹말이란 군더더기를 털려고 한다면, 군말을 씻기도 하는 셈이면서 새로우며 즐거운 말을 스스로 짓는 길이 되기도 해요. 정치를 하는 분들은 곧잘 “참된 정의”를 말하는데요, ‘참되다 = 정의’예요. 겹말이지요. 이때에도 생각해 봐요. “참된 길”이나 “참된 마음”이나 “참된 삶터”처럼 새롭게 손질할 만합니다. 단출히 ‘참길·참마음·참터’라 해도 어울리고요.


  겹말을 씻는 길이란, 어느 말씨가 틀렸으니 바로잡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사는 나머지 그만 잊거나 잃은 상냥하고 즐거운 말씨를 곱게 가다듬어서 새롭고 눈부시게 일구어 보자는 이야기예요. 틀린 말씨 바로잡기는 재미없어요. 새로우면서 곱게 피어나는 말로 우리 생각을 환하고 넉넉하게 짓는 길일 적에 재미있고 뜻있고 신나고 멋있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숨결이 자란다고 느껴요. 말마디에 새숨을 불어넣기를 바라는 뜻으로 겹말을 손질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사전까지 하나 꾸렸습니다. 그동안 모은 보기가 꽤 많으니 앞으로 《겹말 사전》을 한 자락이나 두 자락쯤 더 선보일 수 있겠네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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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동반 상승’이든 ‘시너지’이든



[물어봅니다]

  샘님이 조금 앞서 이야기할 적에 ‘서로좋다’라 하셨는데, 그 말은 저희가 ‘시너지’라고 한 말을 순화한 말이 맞지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바로 순화하는 말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얘기합니다]

  눈치가 빠르네요. 훌륭합니다. 그렇게 빠른 눈치라면 여러분도 얼마든지 ‘한국말 동시통역’을 할 수 있어요.


  네, 저는 ‘한국말 동시통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국말 동시통역’이란 무엇인가 하면, ‘몇몇만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을 ‘어린이나 시골 어르신도 쉽게 받아들이거나 알아듣거나 나눌 수 있는 말’로 그때그때 그자리에서 옮기는 일을 가리킵니다.


  잘 생각해 봐요.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한국말을 써요. 큰 틀에서 보면 오래된 한국말이 하나 있어요. 이 오래된 한국말은 어린이하고 시골 어르신도 다 알아들을 만합니다. 둘째로, 조선이란 나라 오백 해에 걸쳐 임금과 벼슬아치하고 글쟁이가 섬기던 중국 한자말이 있어요. 셋째로, 일제강점기에 스민 일본 한자말이 있지요. 둘째하고 셋째에 걸치는 한자말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넷째로, 해방 뒤에 물결치는 영어가 있고, 번역 말씨가 있습니다. 넷째에 드는 말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자, 다시 생각하기로 해요. 첫째를 뺀 둘째·셋째·넷째는 ‘모든 한국사람이 아닌 몇몇 한국사람이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이기 일쑤입니다. 푸름이 나이쯤 되면 ‘반성’이나 ‘반추’ 같은 한자말은 얼추 알아들을는지 모릅니다. ‘반성문’ 같은 글을 쓸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여덟 살 어린이한테 ‘반성’이나 ‘반추’가 쉬울까요?


  적어도 ‘뉘우치다·돌아보다’라 할 수 있고, ‘되새기다·곱씹다’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입으로 하는 말이나 손으로 쓰는 글은 언제나 이런 ‘한국말 동시통역’이에요. 몇몇 사람만 알아볼 만한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이러다 보니 여느 한국말사전에 아직 없는 말을 늘 새로 지어서 쓰곤 해요.


 서로좋다 ← 동반 상승, 시너지, 윈윈, 일석이조, 일석다조


  제가 문득 쓴 ‘서로좋다’란 낱말은 ‘서로 좋다’처럼 띄어서 써야 맞습니다만, 입으로 말할 적에는 굳이 ‘서로 좋다’처럼 사이를 띄지 않아요. 그냥 붙여서 말하지요. ‘다좋다’나 ‘모두좋다’라 할 적에도, 글하고 말이 달라서, 말에서는 그냥 붙여서 주루룩 읊지요. 어떤가요? 푸름이 여러분 스스로 혀에 얹어서 말해 보셔요. 이 얼거리로 ‘고루좋다’나 ‘두루좋다’를 말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처럼 혀로 주루룩 붙여서 말하듯 글에서도 다다닥 붙여서 쓰곤 합니다.


  아직 이런 말을 쓰는 이웃님이 드뭅니다만, 저부터 쓰는 셈이에요. 즐겁게 쓰자는 뜻으로 입말하고 글말을 하나로 엮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너지(synergy) : 1. 분산 상태에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서로 적응하여 통합되어 가는 과정 2. 한 집단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소모하는 에너지의 총체

synergy : 시너지 효과, 동반 상승효과. 협력 작용, 협동. 공력(共力) 작용. 공동[상승] 작용. 공동 작업

シナジ-(synergy) : 1. 시너지. 공동. 공력(共力) 작용 2. (개개의 일의 합계보다 큰 효과를 노리어 행하는) 협동 활동


  사전에 ‘시너지’란 영어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이 영어를 ‘동반 상승’으로 고쳐쓰라고 풀이했더군요. 요새는 풀이가 좀 바뀌어서 한자말로 고쳐쓰라는 붙임말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있지요, 한자말 ‘동반 상승’이든 영어 ‘시너지’이든 여덟 살 어린이한테는 어렵기 마찬가지요, 시골 어르신한테도 낯설 만합니다. 그래서 저는 둘 다 안 쓰기로 하면서 ‘서로좋다·다좋다·모두좋다·고루좋다·두루좋다’ 같은 말을 쓰려고 합니다.


곡물의 향기가 매치되니 시너지 효과를 내서 맛깔스런 향으로 바뀌는 거죠

→ 곡물 내음이 어우러지니 더 좋아서 맛깔스럽게 바뀌지요

→ 곡물 냄새가 만나 서로좋아서 맛깔스럽게 바뀌지요


  어느 책을 읽으니 이런 글월이 나와서 슬쩍 손질해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더 좋다”도 붙여서 새말로 삼아도 되겠지요. 다만 “더욱 좋다”나 “더더욱 좋다” 꼴로도 쓸 수 있어서 이때에는 굳이 안 붙였어요. “한결 좋다”나 “새롭게 좋다”처럼 말맛을 살릴 수 있으니 “더 좋다”는 띄어서 쓰는 길이 낫지 싶어요. 비슷하면서 다른 갈래에 있는 낱말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쓰지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하나를 꼽을 만합니다.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란 몸으로 태어났어요. 어릴 적에 이 두 가지로 몹시 벅찼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여덟 살∼열세 살 사이에 괴롭힘이나 놀림을 숱하게 받았거든요. 이러다 열 살 적에 천자문을 마을 어르신한테서 배웠고, 천자문을 떼고 교과서를 다시 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어려운 낱말은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어요. 이렇게 깨닫고서 스스로 익히고 살핀 끝에 이제 ‘한국말 동시통역’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저랑 비슷한 몸으로 태어난 푸름이가 있다면 어깨를 활짝 펴면 좋겠어요. 우리가 더듬는 말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나 영어일 수 있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을 수수하면서 스스럼없이 나눌 적에는 말하기 쉽고 어린이하고 시골 어르신도 함께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골라서 쓰면 좋아요. 영어를 익힐 적에는 영어를 잘 소리내도록 더 힘을 내면 되겠지요. 영국이나 미국에도 틀림없이 혀짤배기에 말더듬이가 있을 테니, 그 나라 그 사람은 어떻게 어떤 낱말을 골라서 소리를 내려나 하고 헤아려 보면서 기운을 내고 애쓰면 다 된다고 느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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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에스엔에스(SNS)는 언어파괴를 할까?



[물어봅니다]

  요즘 에스엔에스상에서 언어파괴가 심각하다고 해요. 짧게 줄여서 쓰느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기도 하고 급식체 같은 말을 쓰기도 하잖아요. 이런 언어파괴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저는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제 또래 가운데 피시통신을 거의 아무도 안 했지 싶습니다. 새로 바뀐 대학입시를 쳐다보느라 바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형은 저보다 세 살 위였고, 저보다 일찍 고등학교를 마치고서 ‘천리안·하이텔’ 같은 이름이 있던 ‘PC통신’이 처음 생길 때부터 알았어요. 저는 모든 대학입시가 끝난 1993년 12월부터 피시통신이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고, 이듬해에 갓 태어난 ‘나우누리’를 만났어요. 이무렵 인천에서는 ‘인디텔’이란 이름으로 인천이란 고장 이야기를 스스로 새로 지어서 펴는 누리판이 처음 열리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피시통신이 한창 뜰 무렵, ‘어른’이란 이름인 분들은 “피시통신이 언어파괴의 주범이다!” 하고 윽박질렀습니다. 아마 1993년에도 이런 말이 나돌았지 싶었으나 이해에는 대학입시로 바빠서 시큰둥했고, 1994년부터 이런 말을 신물나게 들었어요.


  피시통신보다 조금 이르게 ‘삐삐’가 퍼졌어요. 삐삐도 피시통신 못지않게 “한글파괴의 주범이다!” 같은 윽박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을 넘어서며 인터넷이 생기고 피시통신이 저물어 가니 바야흐로 “인터넷이 언어파괴의 주범이다!”로 말이 바뀌더군요. 어느덧 2010년을 넘어 2020년으로 나아가니 “에스엔에스가 언어파괴의 주범이다!”로 말이 바뀝니다.


  몇 줄로 지난 1990∼2020년 사이 서른 해 사이를 이야기했습니다만, 2030년이나 2040년이 되면 또 이때에 나올 새로운 누리판을 놓고서 ‘어른’들은 “언어파괴의 주범”을 찾아나서리라 싶어요. 그런데, ‘언어파괴’란 무엇일까요? 어떤 말을 누가 어떻게 왜 부수거나 허문다는 뜻일까요?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걱정하거나 나무라는 ‘언어파괴’를 돌아보면, 바로 ‘갑갑하거나 딱딱하거나 차갑게 세운 울타리에서 쓰는 말을 거스르거나 손사래치는 몸짓’은 아닐까 싶습니다. 갑갑한 말이 아닌 트인 말로 가려는 생각으로, 딱딱한 말이 아닌 싱그러운 말로 가고픈 마음으로, 차가운 말이 아닌 포근한 말을 쓰려는 몸짓이라고도 여길 수 있어요. 낡은 말이 아닌 새로운 말에 새로운 생각과 살림과 삶과 사랑을 담고 싶은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시내버스 알림글]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꽉 잡아 주세요

[공사장 알림글] 안전모 미착용자는 현장내 출입을 금합니다


  어른들은 시내버스나 공사장에서 이 같은 알림글을 내겁니다. 이런 말은 얼마나 한국말스러울까요?


[숲노래 글손질 ㄱ] → 손님 여러분이 안 다치도록 손잡이를 꽉 잡아 주세요

[숲노래 글손질 ㄴ] → 안전모자를 안 쓰면 이곳에 못 들어옵니다


  요즈음 공사장 일꾼이 거의 이주노동자입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한글을 읽는 이는 적습니다. 겨우 한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안전모 미착용자”나 “현장내 출입을 금합니다”를 얼마나 알아차릴까 모르겠습니다. 한글을 읽고도 못 알아볼 글을 적는 어른들 말씨는 아닐까요? 오늘날 ‘언어파괴’란 바로 이처럼 딱딱하고 낡은 말씨를 걷어치우고 싶은 젊은 바람은 아닐까요?


  요 몇 해 사이에 ‘최애’나 ‘애정하는’ 같은 말씨가 쫙 퍼집니다. 이 말씨는 아무래도 누리길(에스엔에스·SNS)을 발판으로 퍼졌을 텐데요, 일본 한자말을 함부로 끌어들인 ‘어른’들이 쓰는 말씨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이런 일본 한자말을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겠지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바로 ‘어른들이 퍼뜨린 말씨를 어깨너머에서 지켜보다가 따라서 쓸’ 뿐입니다.


 최애 아이템 → 즐기는 것 / 가장 좋은 것 / 으뜸으로 좋은 것 / 으뜸것 / 사랑것

 애정하는 말 → 사랑하는 말 / 좋아하는 말 / 즐기는 말


  한국말은 “가장 좋은”이나 “가장 아끼는”이나 “가장 사랑하는”입니다. 때로는 “가장 즐기는”이나 “가장 신나는”이라 해도 될 테지요. ‘가장’은 ‘으뜸’하고 맞물리기에 “최애 아이템”이라면 ‘으뜸것’으로 담아내어도 되어요. ‘사랑것’이라 해도 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봐요. ‘언어파괴’를 일삼는 쪽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도 아니요, 예전 피시통신도 아니며, 요즈음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도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가 알뜰히 아름다이 즐거이 사랑스레 참하게 멋스러이 재미나게 신바람을 내면서 쓸 한국말을 알맞게 가다듬거나 갈고닦거나 세우지 못한 ‘어른’이야말로 한국말을 무너뜨리거나 흔들거나 허문다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지난날 삐삐나 피시통신이나 오늘날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는 이음길이에요. 사람하고 사람을 잇는 길인 이 자리를 바탕으로 온나라 사람이 한꺼번에 쉽게 만날 수 있으니 새로운 말을 아주 빠르게 나누거나 퍼뜨릴 수 있어요. 새말도 쉽게 나누거나 퍼뜨릴 수 있고, 얄궂게 퍼진 말씨도 다시금 돌아보도록 서로 바로바로 알려주면서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 생각처럼 걱정거리만 있지 않아요.


 인터넷 홈페이지 → 누리집

 인터넷 블로그 → 누리글집

 에스엔에스(SNS) → 누리길, 누리마당, 누리판


  사전에 ‘에스엔에스’는 안 나옵니다. 영어사전은 ‘SNS’를 “Social Network Service”로 풀이합니다. 한국은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사회적 관계망’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아요.


  ‘인터넷 홈페이지’를 ‘누리집’으로 풀어내면 좋다고 합니다. ‘네티즌’은 ‘누리꾼’으로 풀어내어 쓰기도 하는데, 저는 ‘누리님’으로 손질해서 쓰곤 해요. ‘누리’라는 낱말을 헤아리면 ‘에스엔에스’를 ‘누리길’이나 ‘누리판’으로 담아낼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 쫙쫙 퍼지는 길이나 마당이나 판이거든요.


  한국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아직 제대로 서지 않았습니다. 남·북녘이 엇갈리기도 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입으로 말할 적에 띄어쓰기를 안 따지면서 잘 말해요. 입으로 잘 말하듯 글로 옮길 줄 안다면 어떤 누리길이나 누리집에서도 걱정할 일은 없으리라 여겨요.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은 흔해요. 누리길이나 누리집에서만 틀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많다면, 맞춤법도 곰곰이 따져서 쉽고 즐겁게 쓰는 새길을 살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언어파괴를 고치거나 없애’려는 생각을 접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한결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쓸 말을 ‘새롭게 짓고 생각하며 가꾸’려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이 말씨는 틀렸으니 쓰지 말자는 가르침’보다는, ‘이 말씨보다는 저렇게 새로 쓰는 말씨가 뜻이며 느낌이 한결 살아날 만하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하는 길’로 간다면 좋겠지요. 이제는 가르침 아닌 이야기로 가면 되리라 생각해요.


  누리길이 온누리를 잇는 길이 되도록, 나라 곳곳을 잇는 너른 판이 되도록, 새롭게 말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한마당이 되도록, 즐겁게 마음을 쓰면 되리라 봅니다. ‘언어파괴 현상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같은 생각이 아닌,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말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찾아서 쓰면 아름다울까?’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써 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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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평화의 언어’인가 ‘분노의 언어’인가



[물어봅니다]

  오늘날에는 다들 ‘분노의 언어’로 표현하는 듯해요. 무슨 일만 있으면 무섭게 달라붙어서 악플을 달고, 이 악플도 엄청 화난 말씨에다가 공격적인 말씨예요. 그런데 샘님이 들려주는 말씨는 되게 낯설어요. 어쩐지 ‘평화의 언어’ 같아요. 들려주는 말에 한자말이나 영어가 안 섞였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 때문은 아니지 싶어요. 샘님이 낱말에 붙인 뜻풀이 같은 ‘평화의 언어’는 어떤 단어로 표현을 하더라도 누구나 따뜻하게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언어 같아요. 우리도 앞으로는 이런 ‘평화의 언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합니다]

  요즈음에는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을 밝히는 곳을 자주 봅니다. 이런 말씨도 나쁘지는 않다고 여기지만, 썩 아름답기는 어렵다고 여겨요.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이란 으레 ‘올바른 맞춤법·띄어쓰기·문장표현’에 기울기 일쑤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시골 할머니가 쓴 글이 무척 사랑을 받아요. 경상도 칠곡 할매가 쓴 글을 모은 《시고 뭐고?》(삶창, 2015)란 시집이 있고, 전남 순천 할매가 쓴 글을 갈무리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 2019)가 있어요. 할매들은 할매 삶을 할매 말씨로 담아냅니다. 올바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아니라, 살아서 숨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할매가 쓴 글이 아닌 어린이가 쓴 글도 그렇지요. 이오덕 어른이 그러모은 어린이 글을 엮은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양철북, 2018)를 읽으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자주 틀리는 멧골 아이들이 멧골말로 저희 이야기를 고스란히 밝히는데, 눈시울을 적시는 슬픈 대목이나 이뻐서 함박웃음이 터지는 대목이 쏟아지는구나 싶습니다.


  올바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로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을 해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러나 우리 삶이, 우리 만남이, 우리 하루가, 우리 어울림이, 우리 오늘이, 빈틈없이 짜맞춘 틀에만 머문다면 어떤 빛이 될까요?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겉치레로 끝나는 말이 많아요. 언제부터인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굴레가 된 터전인데요, ‘감정노동’ 이른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일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속으로 곪습니다. ‘억지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만 해야 하는 얼개라면 마음이 타들어 갈밖에 없어요. 이때에 우리 입에서 어떤 말이 터져나올까요? 억지웃음을 더 짓지 않아도 되는, 억지일을 끝마친 하루라면, 이때부터 어떤 말을 마구 터뜨릴까요? 아무래도 ‘따스한 말(평화의 언어)’이 아닌 ‘매몰찬 말(분노의 언어)’가 되기 쉽지 않을까요? ‘포근한 말’하고 동떨어진 ‘사나운 말’이 되지 않을까요?


악플 → 막글

선플 → 꽃글


  누리그물에서 덧글을 쓰는 분들이 으레 두 갈래로 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악플’이요, 다른 하나는 ‘선플’이라 하더군요. 곰곰이 보면 예전에는 ‘덧글’이란 수수한 말 아닌 ‘리플’ 같은 영어를 썼는데, ‘악플·선플’은 그냥 이대로 쓰곤 하더군요.


  이 말씨도 생각해 봐요. ‘갑질’을 닮은 ‘악플’이에요. 갑질이란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나 일이 아닌, 위아래를 가른 윽박질이에요. 말 그대로 ‘윽박질’이요 ‘막질·막짓’이랍니다. 곧 ‘악플’은 ‘막글(막말)’이에요. 이와 맞서는 ‘선플’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자는 마음이요, 함께 어깨동무하자는 뜻이며, 같이 아름답게 보듬는 숨결이 되자는 생각으로 쓰는 글일 테지요. 이 결을 찬찬히 살린다면 ‘고운글’이자 ‘아름글’이자 ‘사랑글’이자 ‘꽃글’이라 할 만합니다.


[숲노래 사전]

막글 :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굴거나 제멋대로 하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놀리거나 비웃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기도 할 텐데, 다른 사람에 앞서 이러한 글을 쓴 사람부터 스스로 다칠 수 있는 글. ‘악플·비방·폭언’을 가리킨다.

꽃글 : 늘 아름답고 빛나면서 즐거운 글. 꽃처럼 곱고 사랑을 담아서 쓴 글.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감싸거나 아끼거나 달래거나 다독이려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기도 할 텐데, 다른 사람에 앞서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부터 스스로 기쁘게 사랑이 샘솟을 수 있는 글. ‘선플’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 사전은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에 지나치게 갇혔구나 싶어요. 사전 뜻풀이인 만큼 어디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만, 사전 말풀이인 터라 한켠으로 기울거나 휘둘려서는 안 되어야겠습니다만, 딱딱하거나 차가운 풀이는 이제 그만해도 되리라 여겨요. 차곡차곡 풀이를 하면서, 어느 낱말을 혀에 얹거나 손에 실어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 마음에 새로운 기운과 생각을 심을 수 있는 ‘보탬말’을 들려주기도 하는 사전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새로 쓰는 사전에 ‘막글·꽃글’이란 낱말을 새롭게 풀이해서 실으려 합니다. 이 말이 나쁘니 저 말로 좋게 고쳐쓰자는 얼개가 아닌, 이 말에 얽힌 마음이며 삶을 읽어서, 새롭게 사랑으로 보듬어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길에 실마리가 될 만한 말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이끌어 보자는 사전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제가 쓰는 사전을 따로 ‘아름말·사랑말·꽃말(평화의 언어)’로 엮으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말은 우리 삶을 이루는 씨앗이 되기에, 어느 삶이나 몸짓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을 풀이하거나 다루더라도 ‘함부로·가볍게·허술히·그냥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사전 올림말로 ‘전쟁·싸움’을 풀이하는 자리에서도, 이러한 일이 무엇인가를 속속들이 살피고 밝혀서, 앞으로 우리가 말을 바라보는 눈빛을 스스로 새로 가다듬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요.


  이런 마음이기에 요새는 노래꽃(동시)을 자주 씁니다. 낱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뭉뚱그리는 셈입니다. 사전에 싣는 낱말풀이나 보기글은 언제나 노래꽃(동시·시)다울 때에 사전다운 얼거리이겠다고도 생각해요. 노래가 되는 말이 되도록, 노래로 피어나는 글이 되게끔, 우리가 쓰고 읽고 나누는 사전이 새길을 걸을 수 있으면 참말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글은 꽃글도 될 수 있고 밉글(미운 글)도 될 수 있어요. 어느 말글이 될 적에 즐겁거나 아름다울는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새로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래꽃 한 자락을 붙입니다.


꽃글


놀리는 마음이니 놀림말

미워하는 마음이라 밉말

투정이 가득하여 투정글

시샘을 부려서 시샘글


아끼려는 뜻으로 아낌말

돌보려는 뜻이어서 돌봄말

사랑 듬뿍 실어 사랑글

웃음 잔뜩 심어 웃음글


너무 거칠구나 거친말

마구 퍼붓네 막말

싸울 듯 달려드는 싸움글

어거지 넘실넘실 억지글


아름다고 싶어 아름말

포근하게 함께 포근말

숲이 되려는 숲글

꽃다이 노래하는 꽃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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