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2023.3.6.

말꽃삶 8 나란꽃 함꽃 여러꽃



  모든 말을 새로 짓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말짓기가 어려울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말에 담을 뿐입니다. 말짓기는 안 어려운데, 나라(정부)라든지 배움터(학교)라든지 말글지기(언어학자·국어학자)는 아무나 함부로 새말을 엮거나 지으면 안 된다는 듯 밝히거나 따지거나 얽어매거나 짓누르곤 합니다.


  새말짓기란, ‘새마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새말엮기란, ‘새넋으로 스스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새말 한 마디를 지을 적에는, 낡거나 늙은 마음을 내려놓고서 반짝반짝 새롭게 빛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새말 한 자락을 엮을 적에는,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하거나 추레하거나 허름한 모든 허물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다운 넋으로 거듭납니다.


  나라(정부)에서는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사람들이 깨어나면 사람들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눌 적에는, 온누리 어디에서나 총칼(전쟁무기)이 사라지고 어깨동무를 널리 펼 뿐 아니라, 아이어른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짓고, 순이돌이(남녀)가 더는 서로를 괴롭히거나 다투는 짓을 안 할 뿐 아니라, 위아래(위계질서)를 모두 허물어 아름터로 달라져요.


  아름터·사랑터·노래터·꽃터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새말짓기·새말엮기’입니다. 말 한 마디를 새로 짓는 일이 왜 새나라 첫걸음일까요? 아주 자그마한 말 한 마디부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바꾸어 낼 줄 알 적에 모든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짓는 길을 바로 우리 스스로 깨닫거든요. 이와 달리, 우리가 배움터(학교)를 오래오래 다니거나 책만 오래오래 읽거나 새뜸(신문·방송)에 오래오래 기댈 적에는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부스러기(지식·정보)만 받아들여서 외우게 마련’입니다. 이때에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기운이 사그라들어요. 삶길을 이루는 말을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대로 받아들여서 외울 적에는 얼핏 ‘성가시거나 귀찮거나 번거로운 일이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 보면 ‘스스로 삶을 짓는 마음이 모두 가로막히거나 사그라드는 끔찍한 수렁에 갇히는 모습’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

혼혈(混血) : 1. 서로 인종이 다른 혈통이 섞임. 또는 그 혈통 ≒ 잡혈 2. 혈통이 다른 종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 혼혈인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혼혈’이라는 낱말을 두 가지로 풀이합니다. 둘레(사회)에서 이 한자말을 널리 씁니다. 우리말로 ‘섞다·섞이다’를 쓰면 마치 따돌림(차별)이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튀기’ 같은 우리말은 아예 깎음말로 여기지요.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한자말 ‘혼혈 = 혼 + 혈 = 섞음 + 피’예요. 나라에서는 이 한자말을 써야 ‘차별이 아님’으로 여기지만, 가만히 보면 ‘혼혈 = 섞음 = 튀기’인 얼개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어느 말을 쓰면 따돌림이다’ 하고 못을 박는 시늉을 하지만, 정작 ‘우리말을 쓰면 따돌림이다’ 하고 뜬금없는 굴레를 씌우는 모습입니다.


[숲노래 낱말책]

함둥이 (함께 + 둥이) :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이 다른 사이에서 태어난 숨결.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을 여럿 받아서 태어난 숨결. 여러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이 나란히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섞인 몸으로 태어난 숨결. (= 함피·함꽃·여러피·여러꽃·나란둥이·나란피·나란꽃·섞다·어우러지다. ← 혼혈, 혼혈인, 혼혈아, 다인종多人種)


  한자말이기 때문에 ‘혼혈’이란 낱말을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쓸 적에는 이래저래 모두 따돌림일 뿐 아니라, 참살림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이라, 새말을 짓고 뜻풀이를 새로 붙일 노릇입니다. 그래서 ‘함둥이·함께둥이’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 봅니다.


  ‘함둥이 = 함(함께) + 둥이’입니다. ‘둥이’는 어떤 결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적에 붙이는 말끝입니다. ‘함둥이 = (무엇이) 함께 있는 둥이’란 얼개예요.


  따로 ‘함피’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때로는 ‘함피’를 쓸 만합니다. 여느 자리나 때라면 ‘함둥이’라는 새말로 “여러 씨줄이나 핏줄이나 갈래가 함께 있는 숨결”이라는 뜻을 나타낼 만합니다. ‘섞이다’는 나쁜 낱말이 아닙니다. 수수하게 쓸 적에는 ‘섞이다’를 쓰면 되고, 밑뜻을 새롭게 살리려는 마음을 얹어 ‘어울리다·어우러지다’라는 낱말을 뜻풀이에 보탤 만합니다.


 함꽃 함풀

 나란꽃 나란풀

 여러꽃 여러풀


  사람을 가리키든 사람 아닌 숨결을 가리키든 꼭 ‘-사람’이나 ‘-이’나 ‘-둥이’를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리킬 적에도 ‘-꽃’이나 ‘-풀’을 붙일 만합니다. 수수한 사람들을 ‘들꽃·들풀’처럼 가리킬 만해요. 구태여 ‘민중·민초·시민·인민·국민·백성·백인’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단출히 ‘꽃·풀’이라는 낱말로 ‘민중·민초·시민·인민·국민·백성·백인’ 같은 사람들을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이리하여 ‘함둥이 = 함꽃·함풀’이라 여길 만합니다. ‘나란꽃·나란풀’이나 ‘여러꽃·여러풀’처럼 새말을 더 여미어도 어울려요.


  새롭게 가리키는 이름을 꼭 하나만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헤아려 여러 낱말을 지을 만합니다. 그때그때 새롭게 여러 낱말을 섞어서 쓸 만합니다. 꽃 한 송이를 가리키는 사투리가 여럿이듯, 어떠한 결이나 모습을 나타내는 낱말을 여러 가지로 두면, 우리 스스로 생각을 한껏 북돋우며 넓히고 지필 만하지요.


 나란둥이


  “피가 섞였다”라는 말씨는 안 나쁩니다. 다만 이 나라(사회·정부)가 이런 말씨를 자꾸 나쁘게 여기거나 낮게 바라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굴레를 조금 더 헤아리면서 ‘함둥이’나 ‘나란둥이’ 같은 새말을 짓습니다. “여러 피가 함께 있다”라는 뜻을 수수하면서 쉽게 드러냅니다. “여러 피가 나란히 있다”는 마음을 부드러우면서 상냥하게 나타냅니다.


  말짓기는 매우 쉽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즐겁게 쓸 수 있는 결을 살펴서 지으면 더없이 쉽습니다. 꾸며내려면 어려울 테지만, 살려내려면 수월하면서 즐거워요. 억지로 짜내려면 까다롭거나 힘들 테지만,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을 적에는 가뿐하면서 새삼스럽고 기쁩니다.


  이웃을 사랑으로 바라보려 하면 새말은 누구나 새록새록 짓습니다. 스스로 속빛을 사랑으로 가꾸려 하면 새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문득 꽃송이처럼 피어납니다. 마음을 가꾸면서 보금자리를 일구는 첫걸음으로 말 한 마디를 지어 보기를 바랍니다. 생각을 빛내면서 아이어른이 한동아리로 보금자리를 돌보는 숨빛으로 말 한 마디를 마음에 고이 심어 보기를 바라요.


  쉬운 말이 사랑입니다. 작은 말이 살립니다. 쉬운 말로 사랑을 나눕니다. 작은 말로 온누리에 꿈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손으로 하루를 가꾸고, 우리 눈으로 하루를 바라봅니다. 우리 손길로 말글을 가다듬고, 우리 숨결로 이야기꽃을 두루두루 퍼뜨립니다. 아침을 열면서 햇빛을 담은 말빛을 틔우고, 저녁을 여미면서 별빛을 실은 말결을 토닥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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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3.1.28.

말꽃삶 6 자유



  우리 낱말책은 우리말을 실었다기보다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잔뜩 실었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말 ‘자유’를 국립국어원 낱말책에서 뒤적이면 다섯 낱말을 싣습니다.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

자유(子游) : [인명]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유학자(B.C.506∼B.C.445?)

자유(自由) :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2. [법률]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3. [철학]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

자유(自有) :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유(刺楡) : [식물]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첫 올림말로 삼은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인데, 더 뒤적이면 “염구(?求) : [인명] 중국 춘추 시대의 노나라 사람(?~?)”처럼 풀이합니다. 중국사람 이름 둘을 먼저 올림말로 삼아요. 참 엉터리입니다.


  둘레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자유’는 셋째에 나오며 ‘自 + 由’ 얼개입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쓰는 낱말인 ‘자유’일 테지만,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기 앞서는 이 한자말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닌 우리말만 썼고, 임금이나 글바치만 중국말을 쓰던 고려·조선이거든요.


  사람들은, 아니 우리들은 지난날 어떤 낱말로 “얽매이지 않고서 마음대로 하는 길”을 나타냈을까요?


 가두지 않다·묶지 않다

 가볍다·무게없다·앓던 이가 빠지다

 가뿐하다·거뜬하다·사뿐대다·서푼대다

 거리낌없다·거리끼지 않다·망설임없다


  가두지 않습니다. 묶지 않아요. 가두지 않으니 가볍습니다. 무게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옛말에 “앓던 이가 빠지다”가 있어요. ‘가볍다’하고 비슷하되 결이 다른 ‘가뿐하다’나 ‘거뜬하다’가 있고, ‘거리끼지 않고’ 움직이거나 한다고도 말합니다.


 거저·그냥

 턱·턱턱·탁·탁탁·톡·톡톡·툭·툭툭

 고삐 풀다·그냥두다·기지개를 켜다

 끄르다·끌르다·벗어나다


  그냥그냥 합니다. 톡톡 뛰거나 튀듯 합니다. 고삐에 매이면 괴로울 뿐 아니라 마음껏 움직이지 못  해요. 고삐에서 풀리면 비로소 마음껏 움직입니다. 기지개를 켜요. 모든 사슬이나 굴레를 끌릅니다. 위아래로 가둔 틀에서 벗어나요.


 풀다·풀리다·풀어내다·풀어놓다·풀어주다·풀어보다

 나·나다움·나답다·나대로·나를 이루다

 스스로·스스로길·스스로하다


  남이 풀어 줄 때가 아닌, 스스로 풀어낼 때에 가볍습니다. 내가 나를 풀어놓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입니다. 나답고 나대로 나아가는 길이 바로 ‘자유’로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나를 이루”면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고 내가 하는 삶이에요.


 우리길·혼길·혼잣길·홀길·혼넋·혼얼·홀넋·홀얼

 혼자·혼잣몸·혼잣힘·혼자리·홀자리·홑자리

 홀가분하다·혼자하다·홀로하다·혼잣짓·혼짓

 홀·홀로·홀몸·홀홀


  우리가 쓰는 ‘우리말’이듯, 우리가 가기에 ‘우리길’입니다. 남한테 기대거나 매이지 않고서 가기에 홀길이요 홀넋입니다. 혼자요 혼잣힘으로 일굽니다. ‘홀가분하다 = 홀 + 가분하다 = 홀로 가볍다’입니다. 혼자·스스로·나·우리가 나아가면서 일어서기에 가뿐합니다. 홀홀 바람을 탑니다. 이리하여 하늘로 나아가는 혼짓입니다.


 하늘·하늘같다·하늘빛·하늘빛살

 나몰라·나몰라라·눈감다·눈치 안 보다

 나다·내놓다·안 하다·하지 않다

 날개·나래·날갯짓·날갯짓하다·나래짓·나래짓하다


  하늘빛을 담는 나다움이 있고, 이웃이며 동무 곁에서 눈을 감는 몸짓이 있습니다. 스스로 짓는 길이 아니기에 안 하기도 하지만, 그저 싫어서 하지 않기도 합니다. ‘나다 = 나 + 다’입니다. 내가 나로 갈 수 있을 적에 내놓을 수 있고, 훌훌 내려놓기에 날개를 날고서 훨훨 춤을 춥니다.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 = 나다 = 날개’로 이어가요. 날갯짓이자 나래짓입니다.


 날개뜨기·나래뜨기·날개펴다·나래펴다

 날다·날아다니다·날아가다·날아오다·날아오르다

 활개·활개치다·활갯짓·활짝·활활·훨훨

 너르다·너른·널리·넘나들다


  두 팔을 활짝 펴는 ‘활개’라 한다면 더없이 시원하게 가는 길입니다. 거리낌없을 뿐 아니라 스스럼없습니다. 스스로 하기에 밝습니다. 혼자 이루면서 아무런 짐을 얹지 않기에 가벼워요. 널리 바라보고 너른 숨결로 피어납니다.


 열다·열리다·트다·트이다·틔우다

 노래·노래하다·놀다·놀이·놀음·놀틈·뛰놀다

 놓다·놓아두다·놔두다·놓아주다·놔주다

 손놓다·손떼다·손빼다


  마음을 열면서 가는 길입니다. 탁 틔우는 하루입니다. 날 수 있기에 놀 수 있어요. 놀 줄 알기에 노래할 줄 알아요. 놀고 노래하면서 뜁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갈 적에는 허물도 흉도 놓을 수 있어요. 나는 나로 서고, 너는 너로 서요. 서로서로 놓아줍니다. 붙잡거나 거머쥐거나 사로잡지 않습니다. 가만히 손을 놓아요.


 누리다·누림·누리기·쉬다·쉬는때·쉴참

 말미·짬·참·담배짬·담배틈·새참·샛짬

 숨돌리다·한숨돌리다·잎물짬·잎물틈·쪽틈·찻짬·찻틈

 틈·틈새·틈바구니


  오늘을 누리는 살림새입니다. 이곳에서 차곡차곡 손수 지으면서 하나씩 누리니, 알맞게 일하고 즐거이 쉽니다. 새참을 누려요. 일하는 틈틈이 말미를 내요. 누구나 가볍게 참을 즐기고, 서로서로 숨을 돌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잎물을 한 모금 마시는 틈새가 있으니 새삼스레 기운을 차려요.


 뒷짐·뒷짐을 지다·앉다·호젓하다

 마구·마구마구·마구잡이·막·막하다·아무렇게나·함부로

 마음·맘·마음껏·맘껏·마음대로·맘대로

 실컷·얼마든지·한껏·한바탕·한탕


  그렇다고 뒷짐을 지지는 마요. 호젓하게 앉을 적에는 즐겁지만, 모르는 척 마구마구 굴거나 아무렇게나 한다면 어지럽습니다. 내 몫이라고 함부로 다룬다면 그만 망가져요. 우리 마음을 우리 눈으로 실컷 볼 일입니다. 얼마든지 춤추고 노래하면 됩니다. 한바탕 일어서고 한껏 꿈을 키워요.


 마음날기·마음날개·마음나래

 멋·멋나다·멋스럽다·멋꽃·멋빛·멋대로·제멋대로

 생각·알아서·잘·제대로

 물방울 같다·바람같다·시원하다·후련하다


  바람처럼 마음으로 나는 넋입니다. 멋스러이 자라나는 숨결입니다. 얼핏 보면 제멋대로 같으나, 잘 생각해 보면 물방울처럼 맑으면서 반짝입니다. 그러니까 나부터 나를 제대로 보면 되어요. 시원하게 털어내고 후련하게 씻습니다. 안 시켜도 알아서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갈고닦습니다.


 신·신명·신바람·즐겁다

 바람꽃·바람빛·바람새·바람이·어화둥둥·어둥둥

 바리바리·잔뜩


  나답고 홀가분한 날갯짓이란 신바람입니다. 신명나는 가락입니다. 신나서 활짝 웃습니다. 바람은 바람꽃일까요. 또는 바람빛일까요. 어화둥둥 덩실덩실 어깻짓이 가볍습니다. 바리바리 싸고 잔뜩 품다가도 새삼스레 바람이가 되어 하늘빛을 파랗게 머금습니다.

  노래하던 김남주(1946∼1994) 님이 남긴 노래 가운데 〈자유〉가 있습니다. 이분 노래 첫머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참다이 빛날 홀가분한 날갯짓을 노래한 글자락을 되읽으면서 “나는 자유이다”를 “나는 나이다”나 “나는 날개이다”로 새롭게 읊어 봅니다.


ㄱ. 이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나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ㄴ. 들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날개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날개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한자로 엮는 ‘자유 = 自 + 由 = 나·부터”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로 바라보는 얼개라면 단출히 ‘나’요, ‘나다움’이고 ‘나로서’이자 ‘날개·날다’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숲을 이루는 ‘나무’도 홀가분한 숨빛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늘을 바라보며 날갯짓을 하듯 가지를 마음껏 뻗는 나무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뿌리를 실컷 내리는 나무입니다. 하늘하고 땅 사이에서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활갯짓을 하듯 퍼지는 나무를 품어 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한결 푸르게 ‘나’로 서는 하루를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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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3.1.4.

말꽃삶 5 첫밗 첫꽃 첫씨 첫발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히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하더라도 ‘글’이라 할 만한 글을 못 여미게 마련입니다.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울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우지 않는다면 제 뜻이며 생각이며 마음을 알맞게 펴는 길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글·한글은 모든 소리를 담습니다. 소릿값(발음기호)으로 삼아도 넉넉할 만큼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웃글(이웃나라 글)도 그 나라 사람들 나름대로 온갖 소리를 담아요. 모든 글은 그 글을 쓰는 사람들 나름대로 그들이 듣고 받아들이는 소릿결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커버

 カバ-


  영어 ‘cover’를 ‘커버’로 적으면 ‘한글’로 적는 셈이지만, ‘한말·우리말’은 아닙니다. 이웃나라가 ‘カバ-’로 적는다고 하더라도 ‘カバ-’가 ‘일본말’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그저 영어 ‘cover’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글일 뿐입니다.


 겉·껍데기

 마개·덮개·뚜껑·가리개·씌우개

 막다·덮다·가리다·씌우다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적에는 ‘소릿글’일 뿐, 아직 우리글도 한글도 아니라고 여길 노릇입니다. 뜻이며 쓰임새를 아이부터 한어버이까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리면서 새길 수 있도록 풀어내거나 옮겨야 비로소 ‘우리글·한글’일 뿐 아니라 ‘우리말·한말’입니다.


시조(市朝) : 시정(市井)과 조정(朝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조(始祖) : 1.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 비조 2. 어떤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처음으로 연 사람 3. 나중 것의 바탕이 된 맨 처음의 것

시조(始釣) : 얼음이 녹은 뒤에 처음으로 하는 낚시질

시조(施助) : [불교]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 시주

시조(時鳥) : 1. [동물] 철에 따라서 우는 새 ≒ 시금 2. [동물] 두견과의 새 = 두견 3. [동물] 올빼밋과의 여름새 = 소쩍새

시조(時潮) : 시대적인 사조나 조류

시조(時調) : 1. [문학] 고려 말기부터 발달하여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2. [음악] 조선 시대에 확립된 3장 형식의 정형시에 반주 없이 일정한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 = 시절가

시조(翅鳥) :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시조(視朝) : 조정에 나아가 정사를 봄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뒤적이면 ‘시조’를 모두 아홉 가지 싣습니다. ‘시조’ 갈래에는 없으나 ‘시조새(始祖-)’도 있습니다. 한자로 적는 열 가지 낱말인 ‘시조’일 텐데, 한자를 소릿값으로 적은 ‘시조’ 열 가지는 우리말·한말일까요? 우리말·한말로 삼아도 될까요?


  곰곰이 보면, ‘市朝·始釣·施助·時鳥·時潮·翅鳥·視朝’ 일곱 가지는 우리나라에서 쓸 일이 없고, 쓸 까닭이 없습니다. 쓰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이런 낡은 ‘중국글’을 누가 쓸까요? 예전에 중국을 섬기던 임금·벼슬아치·글바치는 이런 고리타분한 중국글을 썼을 테지만, 오늘날에는 쓸 일도 까닭도 없을 뿐 아니라, 낱말책(국어사전)에서 털어낼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이 아닌데 왜 올림말로 실을까요?


  지난날 중국글인 한자로 글을 짓던 이들은 ‘時調’를 읊었습니다. 요새도 ‘시조’를 읊거나 짓는 분이 드문드문 있으나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예스러운 글이라서 사라진다기보다는, 우리 삶으로 녹여내거나 풀어내는 길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노래·노랫가락·노래꽃

 글·글월·글자락

 글가락·가락글


  우리나라는 아직 ‘시(詩)’라는 중국글을 그냥 쓰고, ‘시가(詩歌)·시문(詩文)·시구(詩句)’에 ‘시조(時調)’에다가, ‘운문(韻文)’까지 씁니다만, 우리말·한말로 바라보자면 ‘노래’이거나 ‘글’입니다.


  처음은 노래하고 글로 바라보고 풀어낼 노릇입니다. 이다음에는 ‘노랫가락’이나 ‘노래꽃’처럼 새롭게 살펴볼 수 있고, ‘글월·글자락’처럼 살을 보탤 만합니다. 그리고 ‘글가락’이나 ‘가락글’처럼 헤아려도 어울립니다.


  중국글을 옮기는 소릿값으로만 적는다면 우리글·한글은 부질없거나 덧없습니다.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담는 이야기로 여기면서 우리말·한말로 피어나자면,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돌아보면서 새말로 여밀 줄 알 노릇입니다.


 옛새·옛날새

 오래새·오랜새


  ‘시조새(始祖-)’는 오늘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먼 옛날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입니다. 그러니 ‘옛새’나 ‘옛날새’라 하면 되어요. 요새는 ‘오래가게’나 ‘오래마을’처럼 우리말 ‘오래-’를 곳곳에서 잘 살려서 쓰는 만큼, ‘오래새·오랜새’처럼 이름을 새롭게 붙여 보아도 어울립니다.


 한아비


  한자말 ‘시조(始祖)’는 어떻게 풀어낼 만할까요? 소릿값인 한글로 적는 ‘시조’로는 알아볼 수 없기도 하고,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오랜 어버이라는 뜻으로 ‘한아비’라 할 만합니다. 이윽고 ‘뿌리·바탕·밑·밑동’이나 ‘밑뿌리·밑싹·밑자락·밑판·밑틀’처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바라본다면 ‘앞사람·앞님·앞분’이나 ‘앞지기·앞내기·앞어른’이라 할 만하지요. ‘어제사람·옛사람·옛분·옛어른’이나 ‘예·예전·옛날·옛길’처럼 나타내어도 되고, ‘옛빛·오래빛·오랜빛’으로 그리거나 ‘어른·어르신’처럼 수수하게 바라보아도 되어요.


 처음·처음길·처음빛

 첫길·첫빛·첫밗·첫걸음·첫사람

 첫꽃·첫별·첫물·첫싹·첫씨


  처음을 이루는 어버이를 가리키려는 마음을 새롭게 바라본다면, ‘처음’이라는 우리말로 옮길 만합니다. ‘처음길’이며 ‘처음빛’처럼 조금씩 살을 붙일 만합니다. 조금 짧게 ‘첫길’에 ‘첫빛’으로 담을 만하고, ‘첫밗’으로 나타내어도 어울려요.


  이렇게 짚노라면, ‘시조’뿐 아니라 ‘조상·선대·선현·선조’ 같은 비슷하면서 다른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옮길 만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시작(始作/시작점)·시발(始發/시발점)·시초·시점(始點)·원점(原點)·기점’ 같은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풀어낼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효시·원류(源流)·원조(元祖)·원형(原形)·원형(原型)’ 같은 한자말로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을 알맞게 가려서 쉽게 쓰면서 이야기꽃을 펴는 길을 열 만합니다.


 비롯하다·태어나다·나다·나오다

 씨알·씨앗·씨

 움·움트다·싹·싹트다


  첫발을 내딛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거듭납니다. 첫씨를 심기에 오늘부터 새롭게 짓는 말살림·글살림을 이룹니다. 첫물을 내놓습니다. 첫별이 뜹니다. 첫꽃이 핍니다.


  먼 옛날에 첫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오늘 이곳에는 우리말·우리글을 비로소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배우고 익히고 나누고 누리고 즐기면서 가꾸는 첫사람이 있습니다.


  몽글몽글 움틉니다. 새록새록 싹틉니다. 처음에는 늘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게 마련입니다. 아주 작은 곳에서 비롯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듯 말이 태어나고, 마음이 나오고, 생각이 납니다.


  그냥그냥 중국글 ‘시조’를 ‘時調’나 ‘始祖’라는 한자에 가두면, 우리글·한글은 그저 소릿값(발음기호)으로 그치고 맙니다. 중국바라기(중국 사대주의)라는 굴레를 이제부터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본바라기도 미국바라기도 아닌, ‘우리바라기(우리 스스로 우리 삶·살림·사랑 바라보기)’를 하면 됩니다.


  저마다 첫별입니다. 누구나 첫꽃입니다. 도란도란 첫씨예요. 어깨동무를 하는 첫발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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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4 낱말책



  ‘사전’은 한글로 적을 수 있되, 우리말은 아닙니다. 한자를 밝히면, ‘사전(辭典)’은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을 가리킬 적에 붙이고, ‘사전(事典)’은 ‘백과사전’이나 ‘역사사전’을 가리킬 적에 붙입니다.


  한자를 익힌 분이라면 이쯤 대수롭지 않겠으나, 한자를 모르는 분이라면 헷갈리거나 머리가 아플 만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이름을 새롭게 써야 어울리고 즐거울까요? 우리는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알려주거나 물려줄 만할까요?


  일본에 우리나라로 쳐들어온 즈음 주시경 님을 비롯한 분들은 ‘말모이’란 이름을 생각했습니다. 훌륭하지요. 말을 모았으니 ‘말모이’입니다. ‘말모음’이라고도 할 만해요. 그러나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이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선어사전(우리말 큰사전)’처럼 ‘사전’을 쓰고 말았어요. 북녘도 그냥 ‘사전’을 씁니다.


사전(辭典) : 말을 모으다

사전(事典) : 살림을 모으다


  두 가지 사전은 ‘말’을 모으느냐 ‘살림’을 모으느냐로 가릅니다. 국어사전은 국어를 모은 책입니다. 백과사전은 온갖 살림을 모은 책입니다. 곧, ‘사전(事典)’은 ‘살림모이·살림책’이라 할 만하고, ‘사전(辭典)’은 ‘말모이·말책’이라 할 만해요. 저는 말을 모은 책을 ‘낱말책’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켜 봅니다.


우리말꽃 . 우리말꾸러미 ← 국어사전

우리삶꽃 . 우리삶꾸러미 ← 백과사전


  어느 어르신이 ‘말꽃’이란 이름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말을 그러모아서 꽃처럼 곱게 빛나니 단출하게 ‘말꽃’이라 할 만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분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어울려요. 투박하게 가리키자면 ‘낱말책’이 낫고, 싱그럽고 뜻깊게 바라보자면 ‘말꽃’이 낫다고 느껴요.


  그래서 ‘국어사전’은 ‘우리말꽃’이나 ‘우리말꾸러미’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백과사전’은 살림을 담은 책이니 ‘우리삶꽃’이나 ‘우리삶꾸러미’라 하면 어울려요.


 빛꽃 길꽃 앎꽃 노래꽃


  우리가 쓰는 말을 놓고 ‘말꽃’이라 해보니, 다른 곳에서도 쓰고 싶더군요. 이른바 ‘빛그림’이라고도 하는 사진이라면 ‘빛꽃’이라 할 만하겠더군요. 과학은 삶을 밝히려는 갈래이니 ‘밝꽃’이라 하면 어떠할까 싶고, 철학은 생각을 가꾸어 삶길을 틔우는 실마리를 찾는 갈래이니 ‘길꽃’이라 해볼까 싶어요.


  다만, 혼자 해보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써야 맞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하나 ‘꽃’이란 말을 붙여 보면서 길을 찾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앎꽃’처럼 써 본다면 ‘지식’이나 ‘인문학’을 가리킬 만하려나 하고도 생각하는데, ‘문학’을 ‘글꽃’으로 나타내거나, ‘시’를 ‘노래꽃’으로 나타내면 어울릴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꽃아이 꽃어른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시골빛을 누리면서 뛰놉니다. 시골에서는 늘 들꽃을 만나기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꽃순이’에 ‘꽃돌이’로 자랐습니다. 아이라면 ‘꽃아이’일 테고, 어른이라면 ‘꽃어른’이나 ‘꽃어버이’일 테지요.


  꽃이란 대단하지요. 열매를 베풀기도 하지만, 열매가 아니어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우며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쓰는 살림에 ‘꽃’이란 이름을 붙일 적에도 해사하게 거듭나요.


비구름이 흘러간 하늘은

바다하고 나란히 파랗고

풀꽃나무 씨앗이 자라고

땅이며 마음은 푸르고


  틈틈이 넉줄꽃을 씁니다. 들레에서는 ‘사행시’라 합니다. 수수하게 ‘넉줄글’이라고도 하는데, 굳이 ‘넉줄꽃’을 쓴다고 말합니다.


벌써


벌써 꽃이 지네

“섭섭하다.”

이제 꽃이 지면

“천천히 열매가 익어.”


벌써 집에 가네

“아쉽다.”

이제 집에 가서

“씻고 먹고 또 놀자.”


벌써 끝이 나네

“허전하다.”

이제 끝을 맺고

“새 이야기를 펴거든.”


벌써 별이 돋아

“눈부시구나.”

이제 밤으로 가며

“반짝반짝 꿈길이야.”


  이웃이나 동무를 만날 적에는 열여섯 줄로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노래꽃’이라는 낱말을 ‘시’를 가리킬 적뿐 아니라 ‘동시’를 가리킬 적에도 써요. 동시도 시도 그저 노래요 노래꽃이라고 느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네 철을 가르듯 넉 줄을 넉 자락으로 맞추어 열여섯 줄인 노래꽃입니다. 이러한 노래꽃은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던 무렵 처음 썼어요. 아이가 배울 글은 아이가 지을 살림을 담은 말이기를 바랐고, 아이가 지을 살림은 스스로 푸른 숲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물씬 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열여섯 줄은 낱말책으로 치면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더한 셈입니다. 노래꽃에 붙인 이름(제목)은 낱말책으로 치면 올림말(표제어)입니다.


  큰아이가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쓴 노래꽃이었으나, 이 노래꽃은 저절로 “어린이가 읽고 누리면서, 어린이 곁에서 어른 누구나 함께 읽고 누릴 이야기꽃인 낱말꾸러미”로 나아간다고 느꼈습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시골사람인데, 시골사람을 슬쩍 ‘시골꽃’이란 이름으로 가리켜요. 서울에서 사는 이웃은 서울사람일 테지만 슬그머니 ‘서울꽃’이란 이름으로 가리킵니다. 시골꽃하고 서울꽃이 만나서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운다면, 우리가 저마다 사랑스레 살림을 지피는 마음꽃을 지피는 씨앗을 심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온갖 곳에 꽃을 붙입니다. 꽃아이를 돌보다 보니 저절로 꽃아비가 되는 셈입니다. 말꽃을 짓는 삶길을 걷자니, 제 입이며 손에서 태어나는 말은 늘 꽃말이어야 하겠다고도 느낍니다.


 꽃 꽂다 꼬리 끝 꼬마 꼴찌 곱다


  우리말 ‘꽃’은 ‘꽂다’하고도 얽힙니다. 그리고 ‘꼬리’하고도 얽힙니다. ‘꼬리’란 ‘끝’을 가리키는데, ‘꼬마’하고도 맞물려요. ‘꼴찌’하고도 엮지요. 곧, ‘꽃’이란 ‘꽂’듯 피는 숨결이면서 ‘꼬리’처럼 ‘끝’을 이루는 ‘꼴찌’이자 ‘꼬마’이지만 ‘곱게’ 맺고 ‘곰곰이’ 돋아나는 숨빛이에요.


  씨앗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아야, 비로소 꽃이 피니, ‘끝’에 있습니다. 맨 나중이라 할 ‘꽃’이니 ‘꼬마’요 ‘꼴찌’일 텐데, 얽히고 설키는 우리말 살림을 보노라면 ‘끝’이란 나쁘거나 뒤처지는 곳이 아닌, 언제나 처음을 여는 자리라고도 할 만합니다.


  아직 머나먼 길일 수 있는데, 끄트머리에서 겨우 태어날 낱말책이라 하더라도, 꽃으로 피는 고운 숨결을 말마디마다 살포시 얹으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가노라면 찬찬히 이루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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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2022.11.15.

숲노래 우리말꽃


‘파란하늘’하고 ‘푸른들’

말꽃삶 3 파랗다 푸르다



  빛깔말 가운데 ‘파랗다·파랑’이 있고, ‘푸르다·풀빛’이 있습니다. ‘-ㅇ’으로 맺는 빛깔말로 ‘파랑·빨강·노랑·하양·검정’이 있고, ‘-빛’으로 맺는 빛깔말로 ‘풀빛·보랏빛·잿빛·먹빛·물빛·쪽빛’이 있습니다.


 파란하늘

 푸른들


  ‘파랗다’는 하늘빛을 가리킵니다. ‘푸르다’는 들빛을 가리킵니다. 하늘은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아니, 하늘은 온통 ‘바람’이라 할 테지요. 이 바람은 여느 자리에서는 ‘바람’이되, ‘마파람·휘파람’처럼 다른 말하고 어울리면서 ‘파’ 꼴입니다.


 바람

 바다

 바닥

 바탕


  ‘파랑·파랗다’는 ‘바람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바람에 무슨 빛깔이 있느냐 할 텐데, ‘바람빛 = 하늘빛’이요, 우리 눈으로는 ‘파랑’으로 느낍니다. 다만, 이 파랑이라는 하늘빛이 비추는 ‘바다’는 ‘쪽빛’으로 물들기도 하되, 바다나 물에 바닷말이나 물풀이 끼면 ‘푸르게’ 물들기도 합니다.


  바다는 모름지기 ‘물빛’이거든요. 담거나 비추는 결에 따라 빛깔이 다릅니다. 곰곰이 보면 하늘도 해가 물드는 결에 따라 빛깔이 달라요. 동이 트면서 희뿌윰하지요. 얼핏 하얀하늘이 되고, 붉은하늘도 되며, 보라하늘도 됩니다. 노란하늘일 때도 있어요. 밤에는 까만하늘이고요.


  하늘이나 바람이나 바다나 물은 무엇을 품거나 담거나 안느냐에 따라 빛결이 바뀌는 셈입니다. 다만 ‘바탕’으로는 ‘파랑’이라는 숨결을 머금어요.


  곧 ‘파랑·파랗다’는 바탕을 이루는 빛이요, 바탕이란 ‘바닥’이기도 하지요. ‘바다’라는 곳도 물로 이룬 ‘바닥’입니다. 바다라는 곳은 바닥·바탕·밑을 이루면서 뭇숨결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하늘·바람도 뭇숨결이 살아가는 바탕이지요.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풀꽃나무도 숨(바람·하늘)을 쉬어야 살거든요.


 풀

 풀다

 풀빛


  ‘풀빛’이란 ‘풀’을 나타내는 빛깔입니다. 풀은 들풀도 있으나 ‘푸나무’처럼 나무에 돋는 잎도 있어요. 풀잎하고 나뭇잎은 모두 ‘풀빛’입니다. 푸르지요. 갓 돋을 적에는 감잎처럼 노란빛이 어리기도 하고, 가을에 물들 적에도 노랗거나 바알갛기도 합니다.


  풀이란 ‘풀다’라는 낱말하고 얽힙니다. 온 들판을 덮는 풀은 뭍에서 살아가는 목숨붙이한테 먹을거리이자 살림물(약)이기도 합니다. 모든 ‘약초’란 ‘풀’입니다. ‘살림풀’을 한자말로 ‘약초’라 할 뿐입니다.


 푸지다

 푸짐하다


  풀은 들을 덮지요. 숲도 덮습니다. 가없이 많은 결을 나타내는 ‘푸지다·푸짐하다’라는 낱말은 ‘풀’하고 같은 말밑입니다. ‘풀·풀빛’이란, 뭍·땅을 가득 덮는 빛깔이자 숨결을 가리켜요. ‘파랑·바람·바다’는 하늘·물을 가득 이루는 빛깔이자 숨결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부터 ‘푸르다·파랗다’를 옳게 살피고 가누고 가려서 씁니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면, 풀하고 바람은 만나지요. 사람도 풀도 바람(하늘)을 마셔야 살아가거든요. 풀이 푸를 수 있는 바탕은 바람(하늘)을 머금기 때문입니다. 또한 풀은 뭍이며 땅에서 바탕이자 바닥이자 밑을 이루는 결입니다.


  옛사람은 이따금 “파랗게 새싹이 돋는다” 하고도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풀이요 풀빛인데 왜 ‘파랗다’를 넣었을까요?


 싱그럽다

 맑다


  풀이며 바람은 싱그럽거나 맑은 기운입니다. 풀을 “파란 새싹”이라 할 적에는 “싱그러운 새싹”이나 “맑은 새싹”이라는 뜻입니다. 이때에는 숨결을 가리키는 말씨이니, 빛깔을 가리키지 않는 만큼, 헷갈리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푸르다’는 ‘풋’으로도 잇습니다. ‘풋열매·풋능금·풋포도’처럼 쓰고, ‘풋사랑·풋풋하다·풋내기’로도 씁니다. 이때에 ‘풋-’은 “푸른 빛깔로 익은” 하나하고 “아직 덜 여물거나 익은” 둘을 가리켜요. 푸른 빛깔인 능금도 달큼한 맛으로 누리고, 푸른 빛깔은 포도도 달면서 살짝 신맛으로 누립니다.


  한자로 ‘청(靑)’은 ‘푸르다’입니다. 그런데 ‘청색’이란 한자말을 ‘푸르다’뿐 아니라 ‘파랗다’로도 자칫 섞어서 쓰기도 하면서, 우리말까지 그만 뒤섞는 분이 많더군요. 곰곰이 보면 한자 ‘청(淸)’이 따로 있어요. 푸른 결이건 파란 결이건,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나 ‘싱그럽다·맑다’를 담습니다. 빛깔뿐 아니라 숨결을 가리킬 적에 ‘파랗다·푸르다’를 나란히 쓰다 보니 헷갈리는 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우리말 ‘맑다·깨끗하다·정갈하다’는 비슷하되 다른 낱말입니다. ‘싱그럽다·싱싱하다·생생하다’도 비슷하되 다른 낱말이에요.


  어느 결에서는 맑음을 가리키려고 비슷하게 쓰더라도, 빛깔을 가리킬 적에는 또렷하게 갈라서 쓸 ‘파랗다·푸르다’입니다.


  ‘맑다’를 ‘티없다’로도 가리킵니다만, 두 낱말 ‘맑다·티없다’는 같은 낱말은 아닙니다. 비슷하게 가리키되 다른 낱말입니다. 물과 같은 결이기에 ‘맑다’이고, 티가 없기에 ‘티없다’입니다. 우리말 ‘맑다’는 “티가 없는 결”이 아닌 “물과 같은 결”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물과 같은 결 = 바다 같은 결 = 하늘 같은 결 = 바람 같은 결”로 잇습니다.


 파리하다

 새파랗게 질리다

 서슬이 푸르다

 한창 푸른 나날


  ‘파랗다’에서 갈린 ‘파리하다’가 있습니다. “파랗게 질린다”고 말합니다. 몸이나 얼굴에서 핏물이 사라진다고 여길 적에 ‘파랗다’라 하고, 핏기운이 사라지면서 아파 보이기에 ‘파리하다’라 합니다.


  ‘푸르다’는 “서슬이 푸르다” 꼴로 씁니다. 핏기운이 가실 적에는 ‘푸르다’를 안 씁니다. “서슬이 파랗다”처럼 쓰는 일도 없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처럼 말합니다. “푸르게 어린 녀석”처럼 쓰는 일은 없습니다. ‘푸르다’는 “한창 푸른 나날을 보낸다”처럼 씁니다. 두 낱말 ‘파랗다·푸르다’는 맞물리는 자리도 있으나, 둘은 또렷하게 다른 낱말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

푸르다 :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파랗다 :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그러나 이 나라(국립국어원)에서 펴낸 낱말책은 두 낱말 ‘푸르다·파랗다’를 엉터리로 풀이합니다. ‘푸르다’에 “하늘빛·바다빛을 닮는다”로 풀이하거나 ‘파랗다’에 “선명하게 푸르다”라 풀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틀린 말풀이는 얼른 바로잡을 노릇이고, 반드시 뉘우칠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말 ‘푸르다·파랗다’를 헷갈리거나 잘못 쓸까요?


  까닭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배운 일이 드물거든요. 배움터에서는 ‘우리말’이 아닌 ‘국어’를 가르치고,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 치르는 ‘국어 시험’은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거나 알거나 다루거나 익히거나 나누는 길을 짚지 않습니다. 온통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번역어투)가 춤추는 ‘말비틀기’라고 할 만합니다. 더구나 낱말책(사전)조차 뜻풀이가 엉망입니다.


  배움턱을 한 발짝조차 디딘 적이 없이 시골에서 흙을 짓고 살아가던 수수한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 가르치던 지난날에는 ‘푸르다·파랗다’를 잘못 쓰거나 헷갈린 사람은 없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와 달리 갈수록 ‘푸르다·파랗다’를 옳게 짚거나 가리는 사람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이제는 시골에서 살거나 숲에 깃드는 어른이 확 줄 뿐 아니라, 시골에서 놀거나 숲을 품는 아이도 죄다 사라진 판이에요.


  들빛하고 하늘빛하고 바다빛을 늘 곁에 두면서 바라보지 않는 삶일 적에는 ‘푸르다·파랗다’라는 빛깔말을 삶으로 마주하거나 배우지 못 합니다. 모든 빛깔말은 들숲바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들숲바다를 삶자리에 두지 않는다면, ‘푸르다·파랗다’뿐 아니라 ‘노랗다·빨갛다·하얗다·검다’ 같은 밑말(기초어휘)이 어떤 뿌리이며 어떻게 퍼졌는가를 어림하기 어려울 만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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