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42] 손톱꽃·손톱빛


  손톱을 곱게 물들입니다. 봉숭아를 빻아서 물들입니다. 바알갛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아하, ‘손톱물’을 들였구나. 물든 손톱은 곱게 빛납니다. 그래요, ‘손톱빛’이 새롭습니다. 요즈음은 손톱을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꾸미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톱을 곱게 빛나도록 가꾸는 일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분들이 찬찬히 손을 놀려 이웃 손톱에 새로운 빛을 입히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합니다. 그렇군요. 손톱을 가꾸는 이들은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하네요. ‘손톱꽃’입니다. 손톱에서 빛이 나고, 손톱에서 꽃이 핍니다. 손톱에 고운 물이 흐르고, 손톱마다 맑은 이야기가 감돕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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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1] 치마순이, 바지순이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며칠 앞서까지 ‘치마순이’였습니다. 언제나 치마만 입겠다 했고, 바지를 입더라도 치마를 덧입겠다 하며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그제부터 갑자기 바지를 입습니다. 웬일인가 하며 놀라는데, 일곱 살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버지, 내가 예전에 치마만 입었어요? 아, 그렇구나.” 하고 말합니다. 고작 이틀만에 지난날은 깡그리 사라집니다. 돌이켜보면, 큰아이가 치마순이로 지내는 동안 작은아이도 치마돌이로 지냈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만 ‘고운 옷’을 입는다며 투정을 부렸고, 저 고운 옷(치마)을 저한테도 달라며 울었어요. 이리하여 두 아이는 치마순이와 치마돌이로 지내며 놀곤 했습니다. 나와 곁님은 아이들을 굳이 치마순이로 키우거나 바지순이로 돌볼 마음이 없습니다. 치마도 좋고 바지도 좋습니다. 때에 맞게 즐겁게 입으면서 뛰놀면 된다고 느낍니다. 작은아이도 치마돌이가 될 수 있고, 바지돌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옷은 스스로 몸을 보살피면서 즐겁게 갖출 때에 아름다우니, 아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4347.6.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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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0] 천바구니 (천가방)


  내 가방에는 언제나 천바구니(또는 천가방)가 여럿 있습니다. 자전거로 마실을 다닐 적에도 천바구니를 늘 챙깁니다. 비닐봉지를 쓰고 싶지 않을 뿐더러, 어쩔 수 없이 받는 비닐봉지조차 너무 많이 쌓이니, 천으로 된 바구니나 가방을 씁니다. 지구별을 생각하거나 환경을 헤아린다는 대단한 마음까지는 아닙니다. 천바구니가 훨씬 많이 담고 튼튼하며 들기에 낫습니다. 옷이든 책이든 먹을거리이든 비닐봉지에 담고 싶지 않아요. 보드라운 천으로 짠 바구니나 가방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 둘레에도 천바구니나 천가방을 챙기는 이웃이 많습니다. 우리 이웃은 언제나 ‘천바구니’나 ‘천가방’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이름을 안 쓰고 ‘에코백(ECO-BAG)’이라는 영어를 쓰는 이웃이 늘어납니다. 요새는 ‘에코백’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못 알아듣는 이웃마저 있고, 백화점이든 누리책방이든 온통 ‘에코백’이라고만 말합니다. 앞으로는 ‘환경책’이라는 말조차 없애고 ‘에코북’이라 하겠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리 지구별을 사랑하지 않는 곳에서까지 무턱대고 ‘에코’를 앞세웁니다. 그렇잖아요. 이 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눌 사랑과 꿈이라면 ‘에코’가 아닌 ‘푸른 별’을 아끼려는 넋을 담는 말이어야 맞잖아요. 4347.6.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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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9] 다음살이


  우리들은 오늘을 삽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목숨을 고이 건사합니다. 오늘을 살기에 ‘오늘살이’입니다. 오늘 저녁에 새근새근 잠을 자면 이튿날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즐겁게 다시 눈을 뜨면서 새 하루를 맞이할까요, 아니면 반갑지 않다는 투로 또 하루가 이어지는구나 하고 여길까요. 불교에서는 사람살이를 놓고 ‘오늘살이’ 다음에는 ‘내세(來世)·내생(來生)·후생(後生)’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살다가 죽은 사람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서 누리는 삶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해요. 한자로 지은 이름인데, 이런 저런 그런 이름을 곱씹으면서 내 다음 삶은 어떠할까 하고 그려 봅니다. 나는 다음에 다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나는 다음에 새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요. 다음에 다시 맞이할 삶이니, 나로서는 ‘다음살이’가 되리라 느낍니다. 내 다음살이는 환한 웃음과 기쁜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잔치가 되면 참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살이를 즐겁게 그리면서, 내 오늘살이부터 알뜰살뜰 눈부시게 가꾸자고 다짐합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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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8] 사름빛


  우리 집 큰아이 이름은 ‘사름벼리’입니다. ‘사름’과 ‘벼리’를 더한 이름이고, 둘로 나눈 이름은 저마다 ‘사름빛’과 ‘벼리빛’으로 쓸 수 있어요. ‘사름’은 “옮겨서 심은 모가 뿌리를 내려 푸르게 맑은 기운”을 가리켜요. 갓 심은 모에서 퍼지는 푸르면서 맑은 빛이라는 뜻으로 ‘사름빛’을 쓸 만해요. “물고기를 잡을 때에 쓰는 그물에서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을 가리키는 ‘벼리’이기에, 이 낱말은 그물이 바닷빛을 머금으면서 환한 결이나 무늬를 나타내려는 뜻으로 ‘벼리빛’을 쓸 수 있습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마음속에서 어떤 숨결이 곱게 빛난다고 느낍니다. 그래, 그렇지요. 아이들은 ‘아이빛’이요, 어른들은 ‘어른빛’입니다. 사람은 ‘사람빛’이고, 모든 목숨은 ‘목숨빛’이 있어요. 지구별은 ‘지구빛’이 있을 테지요. 햇빛과 달빛처럼 말예요. 내 넋은 어떤 빛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 얼은 또 어떤 빛일까 곱씹어 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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