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87] ㄱㄴㄷ



  어떤 이야기를 들면서 곧잘 ‘ㄱㄴㄷ’을 씁니다. 숫자로 ‘1 2 3’을 쓸 수 있지만, 나는 한글 닿소리로 ‘ㄱㄴㄷ’을 즐겁게 씁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사람들은 ‘a b c’를 으레 쓰지만, 나는 씩씩하게 ‘ㄱㄴㄷ’을 씁니다. 그냥 씁니다. 작은 자리에서는 ‘ㄱㄴㄷ’을 쓰고, 조금 큰 자리를 벌여야 할 적에는 ‘가 나 다’를 써요.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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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6] 사랑천



  마루와 씻는방에 쓰려고 커튼천을 아홉 마 끊습니다. 낮에 우편으로 받습니다. 저녁에 상자를 끌릅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옆에서 거듭니다. 두 가지 천을 꺼내어 방바닥에 놓으니, 아이가 문득 “사랑이 가득 있네. ‘사랑천’이야?” 하고 묻습니다. 이 천에는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무늬가 가득 있습니다. 다른 천에는 순록 무늬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아직 순록과 노루와 사슴과 고라니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일곱 살 어린이는, “와, 이건 ‘사슴천’이네!” 하면서 웃습니다. 나는 마당에 나가서 길다란 대나무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레쯤 앞서 미리 잘라 온 대나무입니다. 마루문 길이에 맞게 자른 대나무를 커텐봉으로 삼습니다. 빨래집게로 천을 집습니다. 마루문 위쪽에 못을 박아 걸칩니다. 두 아이는 마루문에 드리운 ‘사슴천’에 몸을 가리면서 놉니다. 이제 씻는방에 ‘사랑천’을 댑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쪽에 하나를 대어 가리고, 씻는방을 드나드는 자리에 하나를 댑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랑천’이라는 이름을 곰곰이 욉니다. 천을 보자마자 아이가 붙인 이름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깁니다. ‘사슴 무늬 천’이나 ‘사랑 무늬 천’이라 할 수 있지만, 무늬라는 낱말을 덜고 ‘사슴천’이나 ‘사랑천’이라 이름을 붙이니,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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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5] 처마물



  전라남도에서는 ‘집시랑’이라는 낱말로 ‘기스락’을 가리킵니다. ‘기스락’은 “처마 끝”을 가리킵니다. 도시에 흔한 아파트나 빌라에는 지붕이나 처마가 따로 없기 일쑤이지만, 시골집에는 어디에나 처마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를 따라 빗물이 흐르다가 졸졸졸 떨어지거나 똑똑똑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라남도에서는 이 물을 가리켜 ‘집시랑물’이라 합니다. 경상도에서는 그냥 ‘처마물’이라고 흔히 쓴다고 합니다. 경기도와 서울 언저리에서는 한자를 빌어 ‘낙숫물(落水-)’이라 씁니다. 그런데, ‘낙숫물’은 말이 안 됩니다. ‘낙수(落水)’가 바로 ‘떨물(떨어지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전라도에서는 ‘집시랑’이라 하지만, ‘처마’라는 낱말도 함께 씁니다. 요즈음은 교통과 통신이 널리 퍼졌기에 여러 고장 낱말을 섞어서 쓴다고 할 만해요.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로 빠져나간 탓에, 이 아이들이 도시로 가서 지내며 ‘도시사람 말씨’에 젖어서 시골로 돌아오기도 해요. 여러모로 살핀다면, 우리가 쓸 낱말은 ‘처마물’을 바탕으로 ‘기스락물·집시랑물·추녀물·비낸물’ 들이지 싶어요. 가을비 그친 한밤에 처마에서 똑똑똑 떨어지는 빗물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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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4] 숲집



  들에는 들짐승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바다짐승이 있습니다. 집에는 집짐승을 두는데, 요즈음은 도시에 머무는 짐승이 꽤 많아, 이 아이들을 가리켜 ‘길짐승’이나 ‘골목짐승’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시골이라면 ‘마을짐승’쯤 될 테지요. 멧골에는 ‘멧짐승’이 있습니다. 멧토끼나 멧돼지는 멧짐승입니다. 그러면, 숲에는 누가 있을까요? ‘숲짐승’이 있을 테지요. 숲짐승은 숲살이를 합니다. 숲에는 이 아이들이 누릴 먹이가 있고 보금자리가 있어요. 사람들이 자꾸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공장 따위로 괴롭히지만, 숲짐승은 조그마한 숲에서 씩씩하게 이녁 삶을 가꿉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시골과 도시로 나누어서 살고,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삽니다. 도시에서는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나 ‘빌라’ 같은 데에서 삽니다. 요즈음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 없어요. 시골에서조차 ‘전원주택’을 짓기 일쑤입니다. 나는 숲짐승과 이웃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숲에서 흐르는 숲노래를 듣고 싶으며, 아이들과 숲놀이를 누리고 싶은 한편, 숲내음과 숲빛과 숲나물을 즐기고 싶어요. 이리하여 내 마음속에서 ‘숲집’이라는 낱말이 태어납니다. 숲을 이루는 집에서 살고 싶은 꿈을 키웁니다. 숲집에서 숲아이를 돌보는 숲사람이 되면, 내가 하는 말은 늘 ‘숲말’이 될 테지요.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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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3] 풀빵



  일곱 살 어린이가 ‘풀빵’을 만듭니다. 밀반죽을 틀에 넣고 굽는 풀빵이 아니라, 네모난 빵조각에 풀을 얹어서 ‘풀빵’을 만듭니다. 일곱 살 어린이가 네 살 동생하고 빵을 먹고 싶다 하기에, 네모난 빵과 풀버무리를 밥상에 올려놓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잼도 바르고 풀도 척척 얹어서 ‘풀빵’을 만들어 동생하고 맛나게 먹습니다. 게다가 아버지한테도 ‘풀빵’을 하나 만들어서 건넵니다. 풀을 넉넉히 즐기면서 먹기에 ‘풀밥’이고, 풀을 맛나게 누리면서 먹으니 ‘풀빵’입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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